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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28 욕지양단(欲知兩段) 원시일공(元是一空) 양단을 알고자 할진대 원래 하나의 공(空)이니라(공임을 알라). 앞 게송 26에서 나는 저 사람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하고, 저 사람은 내가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한다면 양단(兩段) 중에 어느 쪽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져서 승부(勝負)를 가리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양쪽에서 서로 저 사람이 잘못하고, 저 사람은 나의 적(敵)이니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립하는 이원론(二元論)적 사고와 사상이다.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어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즉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식이 양단(兩段)을 주장하는 것도 이분법(二分法)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양단(兩段)은 원래 하나의 공(空)에서 나온 것임을 알라고 했다. 원래 스트레스를..
27 경유능경(境由能境) 능유경능(能由境能) 경(境)은 능(能)으로 말미암아 경(境)이 되고 능(能)은 경(境)을 말미암아 능(能)이 된다. 경인 너는 능인 내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능인 나는 경인 네가 있기 때문에 능인 내가 있는 것이다. 부인은 남편이 있기 때문에 부인이 있는 것이고, 남편은 부인이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신도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신도는 스님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한다는 말씀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나는 당신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요, 당신은 내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 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서로 긍정적인 관계로..
26 능수경멸(能隨境滅) 경축능침(境逐能沈) 능(能)은 경(境)을 따라 소멸되고 경(境)은 능(能)을 따라 침몰한다. 능(能)은 주체이고, 경(境)은 객체이다. 능이 ‘나’라면 경은 ‘너’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너와 나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적용되는 말씀이다. 내가 너의 괴팍한 감정을 따르다보니 내가 미치게 되고, 네가 나를 몰아치다보니 너도 제 정신이 아니게 된다는 말씀이다. 고용주가 노조에게 잘해주고자 그들이 원하는 데로 따르다보면 결국 망하게 되고, 노조가 고용주를 몰아치거나 바짝 붙어 쫓아가려하면 결국 노조가 침몰한다는 뜻도 된다. 불륜관계에 있는 두 남녀의 사이에서도 이러한 관계로 발전하기 쉽다. 부부지간에도 사정이 어려울 때, 나는 너 때문에 기분 나쁘고 너는 나 때문에 기분 나쁜 사정이 ..
25 무구무법(無咎無法) 불생불심(不生不心) 허물(咎)이 없으면 법이 없고, 생(生)이 아니면 마음도 아니다. 무구무법(無咎無法) 중 허물(咎)이 없다는 말은 번뇌가 없다는 말이고, 법이 없다는 뜻은 허물이 없어 부정(不淨)한 마음이 없다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텅 비어있는 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텅 비어 있는 마음은 그 대상이 없으니 법이 있을 수 없다. 불생불심(不生不心)은 무슨 생각이나, 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마음이 있어도 구하는 반연(攀緣)이 없으니 나타나는 마음이 없다. 수행상에서 공(空), 무심(無心), 무념(無念) 즉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 든 것을 의미한다. 일체 번뇌가 소멸되고 일체 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선정(禪定)에 든 마음이다. 이는 곧 불생불멸(不生不滅)과 같다...
24 일심불생(一心不生) 만법무구(萬法無咎) 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느니라. 무구(無咎)의 구(咎) 자는 허물 ‘구’이다. 일심불생(一心不生)이란 ‘한 마음이 생(生)하지 않는다.’ 이다. 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한 마음에서 표출되는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다.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경계를 대할 때 자신을 위해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한 생각이 바로 한 마음의 표출이니 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 일심불생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경계를 대함에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수자(修者)는 모든 자아상(自我相)을 여읜 것이 된다. 자아상(自我相)을 여의었다는 것은 아만(我慢), 아애(我愛) 등 자기 주장을 ..
23 이유일유(二由一有) 일역막수(一亦莫守)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둘로 나누어져 선악(善惡) 시비(是非)의 상대적인 개념이 되고, 이 시비(是非)에서 수많은 생각으로 갈라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한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쇠고기 파동이 처음에는 한 생각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10만 군중의 촛불 시위로 확산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선(禪) 수행으로 다스려야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참선을 통해서 많은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다 보면 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두 생각이 일어나는 이치가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자신을 섬세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생각이..
22 재유시비(纔有是非) 분연실심(紛然失心)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럽게 얽혀 마음의 중심을 잃으리라. 재유시비(纔有是非)의 재유(纔有)는 잠깐이라도 이고, 시비(是非)는 옳고 그른 것을 서로 따지는 관계를 말한다. 분연실심(紛然失心)의 분연(紛然)은 실같이 나누어져서 서로 얽혀 어지럽다는 뜻이고 실심(失心)은 마음을 잃는다고 했으나 마음의 중심을 잃는다고 해석했다. 남과 잠시라도 시비(是非)를 일으키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중심을 잃게 된다고 했다. 남과 아주 하찮은 시비(是非)라도 있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은 그로 인해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고, 솟아오르는 화를 참기 어려워지기도 하고, 전화를 걸거나 만나서 따지고 언쟁하다보면 화가 하늘 끝까지 오르고, 두 사람사이는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이까지 ..
21 이견부주(二見不住) 신막추심(愼莫追尋)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삼가 찾으려고 하거나 쫓지를 말라. 이견(二見)은 두 가지 견해인데, 진과 망(眞妄), 선과 악(善惡), 공과 유(空有), 근과 조(根照), 적과 조(寂照), 근과 경(根境), 남과 녀(男女), 등 상대적인 두 가지 견해 혹은 개념 중에 한 쪽에 치우쳐 머물지도 말고, 삼가 치우친 견해를 쫓아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이러한 상대적인 개념에 대해 분별심을 갖지 말라는 말씀이고, 한 쪽에 치우친 일에 대해서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혹은 자기 의견을 내세우기 위해 근거를 찾고자 시간 낭비를 하지 말라.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말씀이다. 우리들 마음에는 과거에 자기가 경험한 일들이 새겨져 있다. 이 경험에서 자기 마음이 쏠리는..
20 불용구진(不用求眞) 유수식견(唯須息見) 참됨을 구함에는 쓸모가 없으니 오직 그런 견해를 반드시 쉴지니라. 공관(空觀)을 하는 수행은 진리를 구함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공관을 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여기에서 소승(小乘)이라고 알려진 상좌부(上座部) 수행법과 대승(大乘) 수행법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상좌부에서는 공관(空觀) 수행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신도님들이 수행 체험을 하게하는 대는 도움이 되는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전공(前空)에 머물면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 그리고 반조(返照)를 포함해 어떠한 수행법도 한 경지에서 법열(法悅)을 느낀다고 머물게 되면 수행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할 수 있는 법이다.
19 전공전변(前空轉變) 개유망견(皆由妄見) 앞의 공함이 움직여 변해(轉變)가는 것은 모두 망령된 견해(妄見)이다. 18송에서 공관(空觀)이란 눈앞에 한 대상을 택하여 그 대상이 공(空)하다고 보는 수행법이다. 눈앞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그 나무가 가벼워져 공중에 둥둥 떠다닐 수도 있고, 점점 작아지면서 나중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사수관에서 시신을 바라보다보면 그 시신이 공해진다. 이렇게 수행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지고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나 전변(轉變)할 수 있는데 이를 모두 망견(妄見)이라 했다. 이러한 공관의 단계에 가려면 자신의 업장을 많이 정리해야 한다. 스님은 공함을 체험하는데 까지는 사람에 따라 좋은 수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8 수유반조(須臾返照) 승각전공(勝脚前空)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 봐도 [눈]앞의 공함보다 수승하리라. 수유(須臾)의 수(須)는 모름지기 ‘수’이고, 유(臾)는 잠깐 ‘유’이니, 수유(須臾)는 ‘모름지기 잠깐이라도’가 된다. 반조(返照)의 반(返)은 돌아올 ‘반’이고, 조(照)는 비출 ‘조’인데, 반(返) 자나 귀(歸) 자는 주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본래의 자리, 즉 원점(原點)을 돌이켜 비추어 본다가 되니 수유반조(須臾返照)는 모름지기 잠깐사이라도 마음의 자성(自性)을 돌이켜 비추어 보면이 된다. 승각전공(勝脚前空)의 승각(勝脚)은 보다 수승하다는 뜻이고, 전공(前空)은 ‘앞의 공(空)이니’ 눈앞의 공이고, 눈앞의 공은 경계(境界)를 공(空)으로 관(觀)하는 수행법이..
17 귀근득지(歸根得旨) 수조실종(隨照失宗)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다 보면 종취(宗趣)를 잃으리라. 귀근(歸根)의 근(根)은 뿌리 ‘근’으로 원점(原點)을 의미하는 것이니 마음속 근본이 되고, 득지(得旨)의 지(旨)는 맛있을 ‘지’이니, 합하면 뿌리의 맛, 혹은 원점의 맛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니, 즉 ‘마음속 근본에 돌아가면 대도의 뜻을 얻게 되지만’이 되고, 수조(隨照)의 수(隨)는 따를 ‘수’이고, 조(照)는 비출 ‘조’인데 앞의 근(根)의 상대는 마음 밖의 경(境)이 되니, 수조(隨照)는 밝게 비치는 외경(外境)을 따르면 실종(失宗), 즉 종취(宗趣)를 잃어버린다고 했다. 종취(宗趣)는 원칙(原則)이니 원칙을 잃는다는 의미이다. 먼저 귀근(歸根)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위 게송 ..
16 절언절려(絶言絶慮) 무처불통(無處不通)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못할 곳이 없느니라. 말이 끊어진 절언(絶言)이란 말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말이 끊어졌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음 순간에 또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心地)의 자리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심지(心地)의 자리가 있다고 해도 틀리고 없다고 해도 틀리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해도 틀리고 무엇이라 입만 열면 틀리니 무엇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묵언(黙言)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절언이다. 그리고 생각이 끊어진 곳, 절려(絶慮)된 곳은 곧 무념(無念)에 든 곳이다. 무념에 든 곳은 곧 무상삼매(無相三昧)에 든 것이고, 무상삼매에서는 ‘나’는 사라지고 법계와 하나가 된 것이니 ..
15 다언다려(多言多慮) 전부상응(轉不相應)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상응(相應)치 못하느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이 움직이면 대도(大道)와 상응치 못한다. 대도는 말에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도(大道)는 불생불멸하는 마음이라 고요히 있는 것인데 말이나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그 생각과 말에 가려져 대도가 눈앞에 나타나지지 않기 때문에 상응(相應)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 게송 종공배공(從空背空)에서 설명했듯이 공을 생각으로 만들어가려고 하면 오히려 공을 등지게 된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대개 가상(假相)하여 생각하고 말을 하는데, 그 가상은 어디까지나 가상이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과 잘 맞지 않는 생각을 많이 하고 말을 ..
14 견유몰유(遺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 있음을 버리려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려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여기에서도 유(有)와 공(空)을 상대로 말씀하고 있는데 현상적으로 보이는 일체 문제는 모두 있음과 없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논함으로서 사람 심리(心理)의 깊은 곳을 다루려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이 견유몰유(遺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견유몰유(遣有沒有) : 있음을 보내려고 하면 오히려 있음에 빠진다. 있음을 버리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탐진치 삼독을 떼어내 보내다, 혹은 버리다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자 염불을 하면 할수록 돈에 대한 집착심이 더 강해져 돈 없이는 못살 것 같은 생각에 빠져버리는 예이다. 또 사정이 생겨 친구와..
13 일종불통(一種不通) 양처실공(兩處失功) 일종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의 공덕을 다 잃으리라. 상대적인 일들이 한 종자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양쪽에서 다 그 공덕을 잃으리라. 즉 주는 것만 알고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조만간 어느 쪽에서든 원망을 듣게 되어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다 같이 손해를 본다는 말이고, 손님에게 외상만 주다가는 손님도 잃고 돈도 잃어 양쪽 다 잃는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일종불통(一種不通)이라 함은 앞에서 공부한 간택(揀擇)-가려내고 택하는 것, 증애(憎愛)-미워하고 사랑하는 것, 순역(順逆)-순리대로 가는 것과 역으로 가는 것 등이 상반(相反)되기는 하지만 그들이 같은 성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한 쪽에만 치우치면 반드시 양쪽에서 얻을 덕을 다 놓친다..
12 유체양변(唯滯兩邊) 영지일종(寧知一種) 오직 양변에 빠지기만 하면 어찌 일종임을 알리요. 유체양변(唯滯兩邊)이란 ‘오직 양변에 빠지기만 하면’ 인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있는 것만 알고 없는 것은 모르는 것, 없는 것만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 움직일 줄만 알고 멈출 줄 모르는 것, 멈추어 있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 줄줄만 알고 받을 줄 모르는 것,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것; 일만하고 쉴 줄 모르는 것, 쉬기만 하고 일하지 않는 것; 모으기만 하고 쓸 줄 모르는 것, 쓸 줄만 알고 모을 줄 모르는 것; 누워 있기만 하고 일어날 줄 모르는 것, 서 있기만 하고 누울 줄 모르는 것; 옳은 일만 할 줄 알고 그른 일은 할 줄 모르는 것, 그른 일만 할 줄 알고 옳은 일은 할 줄 모르는..
11 지동귀지(止動歸止) 지갱미동(止更彌動)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니 그침이 다시 두루 움직이더라. 우리가 욕망이나 망상을 쉬게 하기위해 참선수행을 한다. 한 생각을 쉬게 하면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나 번뇌나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본 게송 11에서 이렇게 움직였다 사라지고 다시 움직이는 수행과정을 가지고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니 그침이 다시 움직이더라.’ 라고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앞 구절에서 일종평회(一種平懷)하면 민연자진(泯然自盡)한다. 즉 일종(一種)으로 바로 지니면 없어짐이 저절로 다하리라고 한 것이 곧 지동(止動)의 의미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들이 수행하는 방법부터 살펴보자. 움직이는 생각을 멈추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
10 일종평회(一種平懷) 민연자진(泯然自盡) 일종(一種)으로 바로 지니면 없어짐이 저절로 다하리라. 일종(一種)은 제9절의 유연(有緣)과 공인(空忍)이 양극(兩極) 같이 보이지만 실은 같은 하나의 종자라는 말이고 평회(平懷)는 이와 같이 바르게 품는다는 말인데, 품는다는 말은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유(有)와 공(空), 즉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바르게 생각하며 활용하면 유(有)와 공(空)이 양극(兩極)이고 별개라고 인식한 마음이 민연(泯然), 즉 힘을 잃고 저절로 다 없어져 버린다는 말씀이다. 반야심경에서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한 것도 여기에서 일종(一種)이라고 표현된 것과 같은 뜻이다. 이해를 하고 마음에 새기면 유와 공, 즉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관계가 ..
09 막축유연(莫逐有緣) 물주공인(勿住空忍) 유연(有緣)에 쫓지도 말고 공인(空忍)에 머물지도 말라.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감에 있어서는 연(緣)이 있어야 현상을 유지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며,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연이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데 연을 쫓지 말라고 한 것은, 연이 사리에 어긋남에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도덕 불감증이 있는 사람이 연을 쫓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예를 들면 돈은 필요하고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리에 어긋나거나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돈버는 연을 추구하지도 말고, 명예에 집착해서 연을 추구하지도 말며, 무엇에나 집착해서 연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자본주의 혹은 실용(實用)주의를 주장하며 사리에 어긋나도 상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