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신심명 14 견유몰유(遺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 본문
14 견유몰유(遺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
있음을 버리려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려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여기에서도 유(有)와 공(空)을 상대로 말씀하고 있는데 현상적으로 보이는 일체 문제는 모두 있음과 없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논함으로서 사람 심리(心理)의 깊은 곳을 다루려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이 견유몰유(遺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견유몰유(遣有沒有) : 있음을 보내려고 하면 오히려 있음에 빠진다.
있음을 버리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탐진치 삼독을 떼어내 보내다, 혹은 버리다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자 염불을 하면 할수록 돈에 대한 집착심이 더 강해져 돈 없이는 못살 것 같은 생각에 빠져버리는 예이다. 또 사정이 생겨 친구와 헤어져야 하는데 헤어져야 한다고 마음먹으면 먹을수록 그 친구가 가슴깊이 파고들어 고민이 더 심해지는 것과 같은 예이다. 이러한 예는 다양하다.
술을 끊으려고 하면 오히려 술독에 빠진다. 담배를 끊으려고 하면 오히려 담배를 더 피우게 된다. 노름이나 마약을 끊으려고 하면 오히려 거기에 더 빠지게 되는 등등이다. 이는 사람이 어떤 일에 중독되었을 때 무조건 끊으려고 하면 오히려 몸에서 그것을 요구하는 욕구가 더 강해진다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부부지간에 살다가 한 쪽에서 바람이 났을 때, 그 바람을 막으려고 강력한 경고를 하게 되면 뜻밖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말씀도 된다.
종공배공(從空背空) : 공(空)을 쫓는다고 할 때, 내 마음에는 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이 무슨 마음일까?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마음, ‘나는 없다.’ 를 추구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없다.’는 색공(色空)을 의미하는 것인데 ‘나’라는 존재는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연(緣)을 맺어 이루어 진 것이니 그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 모든 법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수많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므로 이 번뇌를 끊음으로서 얻어지는 것인데, 생각으로서 ‘제법무아’를 추구해가면 ‘내가 없는데’ 내가 원할 것이 무엇이며, 진리를 탐구할 내가 어디 있겠는가? 등 다양한 생각의 고리가 이어지게 되는데 공을 추구하는 것이 이러한 생각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공의 참뜻을 등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한 경우, 유(有)의 마음이 공(空)의 마음을 쫓아가는 것이 되는데 공의 마음을 쫓아가다보면 그 공의 상대되는 만큼의 유(有)가 같이 따라오게 된다. 그것은 공하고자 하는 마음도 사실은 유(有)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공(空)을 쫓아가면 결국 공이 되어야 하는데 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하고자 하는 마음은 연에 따라 일어난 마음이니 생멸이 없는 공의 마음이 아니라 생멸이 있는 유의 마음이다. 그리고 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공하고자 하는 유의 마음이 더욱 더 강해지는 것이니 불생불멸하는 공의 입장에서는 배신(背信) 당했다, 혹은 공을 오히려 등지게 되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공(空)을 추구하려하면 결국 공을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공에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게 되어 끝내 공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된다.
같은 게송에서 공(空)을 유(有)로 바꾸어 놓으면 종유(從有) 배유(背有)가 된다. 있는 것을 쫓다보면 있음에 배신당한다가 된다. 이도 역시 지나치게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이 오히려 등을 돌린다는 말씀이 된다.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사물을 보고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 돈을 오히려 낭비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
공(空)한 것이 좋다고 있는 것을 다 버리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그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더 있는 것을 쫓게 되니 공을 배신하는 격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마음의 구성은 제8, 7, 6식, 세 가지 능변식으로 되어 있는데 제8 아뢰야식은 그 자체는 불생불멸하지만 우리들이 숙세에서 지은 모든 업을 소장하고 있지만 그 업에 의해 오염되지는 않는다. 이 마음이 있기에 우리들의 본성은 불생불멸하고 때가 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마음자리이다. 제7 말나식은 제8식에 저장된 과거에 지은 업들 중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에 집착하여 그 나란 존재를 보존하고 유지시키고 번영하게 하고자 온갖 생각을 다하고, 그 생각들을 제6 의식으로 하여금 집행하게 한다. 제6 의식은 제7 말나식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현재 자기로서 해야할 일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행하는 능력이 있어 본래부터 청정한 제8 아뢰야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이 욕구를 원력이라 하는데, 이 원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제7 말나식과 접전(接戰)을 벌리게 되면 말나식도 그 동안의 업력에 의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있는 것을 없애려고 하던 것이 오히려 있음에 빠지게 되고, 공(空)해 지려하다가 오히려 공을 등지는 사례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없애고자 하는 업의 종자를 하나하나 찾아 소멸시켜가는 방법을 택해 서서히 진행하든지 아니면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 즉 한 발자국 더 나가면 백척이나 되는 벼랑에서 떨어져 죽더라도 한발 앞으로 나가는 정신으로 대담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이것은 제6 의식의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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