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배움과 깨달음/柏道語錄 (35)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 성경 -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의 진의 *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 또는 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God I am에 대한 믿음과 시인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그렇게 믿고 그런 모습으로 서 있듯이 너희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라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한 쪽은 그렇게 하나 한 쪽은 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서 진리를 또는 자신을 우상의 제물로 바쳐버린 꼴로 내려오고 있다. 같은 것은 같은 것을 끌어당기는 법칙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 또는 신의 아들로 시인할지라도 나를 신으로 시인하지 않는다면 그 신과 또는 신의 아들과 합일이 될 가능성은 없다. 한 쪽이 그렇게 서 있을 때 다른 한쪽도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의 저녁 묵상 백도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편 3장 7-8) 사업이 늦어지다 보니 나의 인생에도 압살롬이 벌떼처럼 일어 나고있다 그들은 진실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는것 같다 오로지 돈 밖에 모른다 이럴 때 참 힘들고 답답하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떠오른다 기다림과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이 때가 기도할 때이고 은혜받는 시간이기에 힘들어도 참는다 지금이 다윗처럼 주님께 엎드리고 나아갈 때이다 성령님께 항복할 때이다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나에게 이익이 있는지 손해가 있는지에 모든 초점이 잡혀 있는듯하다..
오늘의 묵상 24. 03. 04 백도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출 20: 3-4)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믿음의 시대에서 성령의 시대 다시 깨달음의 시대를 실아가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 도마복음과 함께 발견된 ‘빌립복음’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농사를 짓는데 네가지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 地水火風(지수화풍) 지(地) 땅이 있어야 하고, 수(水) 물이 있어야 하며, 화(火) 빛이 있어야 하고, 풍(風)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연현상의 결과로 수확물을 곳간에 모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농사에도 이와 같이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깨달음.” 믿음은 우리가 뿌리 내리는 땅입니다. 소망은 우리에게 영양분을 주는 물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자라게 하는 바람입니다. 깨달음은 우리가 ‘여물게 해주는’ 빛입니다.” 무엇을 깨쳐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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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오늘은 봄이 조용히 온다. 봄아 궁금하구나. 오는 길에 무얼 보았니? 갈 곳은 정한 거니? 갈 곳 없으면 가평 북면으로 오거라. 이곳에 오면 명지산도 있고 화악산도 있고 연인산도 있단다. 이 곳에 와서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다오. 이름없는 들풀들이 꽃도 피우고 향기도 피울 수 있도록 도와다오. 무엇보다 어린 양들이 잃어 버린 어미를 찾고 본향을 찾도록 도와다오. 그러다 너 쉬고 싶은 곳에 편히 쉬다 가고 싶으면 떠나가거라. 화악산 따라 백두로 가도 좋고 화악천 따라 바다로 가도 좋고.... 아니면 안개되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너 떠나온 곳으로 가거라. 나도 떠나온 본향을 헤메고 헤메다 이제사 겨우 찾았단다. 봄아 너도 알지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영생의 길이란다. 그 길을 쉬엄 ..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에 디오게네스(BC 410 ~ BC 323)라는 무소유의 철학자가 있다. 그는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누군가 물었다. "자네는 왜 밝은 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가?" 그러자 그가 대답하길 "사람 같은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등불을 들면 혹시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라네." 이처럼 ‘참사람’에 대한 갈망으로 대낮에도 등불을 밝혀 찾고자 했던 디오게네스의 이색적인 행위는 수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왜냐면 지금은 ‘참지식인’의 발견에 목이 타는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안에 사랑이 꿈틀대고, 그 사랑의 마음이 내안을 가득 채우고 밖으로 흘러나온다면,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숭모하는 마음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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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땅위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가십시요. 더 늦기 전에 낙엽이 시들어 흙으로 돌아갈까 두렵습니다. 이 낙엽이 당신의 책갈피 속에 머물길 원합니다. 떨어진 낙엽은 한 시절 우주의 소식을 땅으로 받아온 생명의 안테나였습니다. 소중한 소식들이 잊혀지지 않고 당신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흘러 당신의 영혼을 살찌게 하길 원합니다. 이 낙엽이 아직은 흙으로 돌아가기에는 전해줄 소식이 더 있나 들여다 봅니다. 柏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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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귀한 느낌들 모두는 신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대는 신의 세계를 아는가? 상상과 느낌을 소중히 하라. 상상 안에는 발견되지 않은 대륙들이 많다. 하나님을 찾아 느끼는 것 안에는 종착지가 없다. 의식의 세상은 열의를 다해 하나님을 쫓아 느끼는 자들의 세상이다. 느낌은 신의 음성이다. 우리의 생각을 하늘나라로 향하게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하늘의 천사들로 채우라. "Feeling after Him"(그 분을 쫓아 느끼자) 진리를 찾는자들의 외침이다. 네빌고다드 라디오 강의 113p 느낌이 열쇠다에서 발췌 柏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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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은 욕망을 창조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욕망과 상상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다. 오늘도 상상하라.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그대의 오늘의 모습은 지나간 과거의 상상이 만든 것이다. 오늘의 상상이 내일의 당신을 창조할 것이다. 세상은 진흙이고 우리의 상상력은 토기장이다. 당신은 완전하다. 상상력이 진정한 자아이다. 진아는 순나이다. 순나는 참나이다. 참나가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당신 안에 있다. 상상력이 하느님이다. 柏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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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毒(삼독)과 스승 三毒(삼독)은 貪瞋痴(탐진치)를 말한다. 삼독인 탐진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컫는다. 탐진치는 獸性(수성)인 짐승성질이다. 짐승성질이 삼독이다. 짐승성질인 탐진치 삼독을 벗자는 것이 天命이다. 자기(제나)를 이긴 분을 스승이라고 한다. 스승은 三毒을 이긴 분이다. 삼독을 이긴 분이 스승이다. 스승은 스스로(自我)를 이기신 분(승)이다. 나에게 스승이 있다는 것은 성공한 인생이다. 스승을 통해 스승이 된다. 스승이 가르치시는 참 가르침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道(도)을 깨닫게 하신 가르침이다. 스승을 통해 성령을 깨달았다. 성령이 스승이다. 성령이 얼나이고 얼나가 스승이다. 참스승은 하느님이다. 우리의 사명은 참스승이 되는 것이다. 스승은 제나를 이기신 분이다. 스승은 삼독을 제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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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毒이란? 貪瞋痴 이다. 삼독을 제하여야 사람이 된다. 삼독은 獸性이다. 수성이 제나이다. 제나는 몸과 맘의 거짖나이다. 거짖나는 짐승성질이다. 짐승성질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이 참나이다. 참나가 얼나이다. 얼나가 성령이다. 성령이 참나이다. 참나가 얼나이다. 얼나가 삼독을 다스린다. 柏道
"죽음을 알아야 삶을 알 수 있다. 죽음이 삶이고 삶이 죽음이다. 사는 것이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죽음을 알게되면 '지금의 나'를 알게 되고 죽음 너머의 '영원한 나'도 알게 된다" -다석사상에서 발췌- 참으로 심오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가슴에 품고 골수에 새깁니다. 죽음공부를 가르치는 宗敎가 진짜 宗敎다. 감사합니다. 柏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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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임씨 羅州林氏 향토문화전자대전 분야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성씨/성씨 지역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시대조선/조선 후기 출처디지털진안문화대전-나주 임씨 정의 임비(林庇)를 시조로 하고, 임타(林imagefont)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나주 임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대장군 임비(林庇)이다. 임비는 1281년(충렬왕 7) 왕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시종 보좌공신 2등에 책록되었고, 대장군, 충청도 도지휘사 판재사사에 이르렀다. 임비의 9세손 임탁(林卓)이 해남 감무를 지내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으로 돌아가 살면서 본관을 회진으로 하였으나, 회진현이 나주에 속하게 됨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바꾸었다. 임탁의 8세손에서 갈라져 장수..
念在神在(염재신재) 天地主在(천지주재) 至高至純(지고지순) 萬物創造(만물창조) 處處神香(처처신향) 柏道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기 제2장 4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먼저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축복하라.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소망하는 것이야말로 복을 빌어 주는 최고의 축복의 말이다. 전능자 되시고 천지의 주재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치못 할 일이 없으리라. 축복의 말을 받았으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처럼 함께 축복하라. 축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선포하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빌어 주라. 이것이 최고의 인사이고 배려이고 사랑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
禮佛을 하기보다는 念佛을 해야하고 念佛을 하기보다는 覺佛을 하여야 한다. 柏道
斷斷(단단)하고 屯旦(둔단)하라. 斷斷(단단)은 食貪(식탐)을 斷(끝으라)하고 色(색)을 斷(단)하라는 것이다. 斷斷(단단)은 제나(自我, ego)의 獸性(수성)인 貪瞋痴(탐진치)를 다스려서 얼나가 참나임을 깨달아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얼나는 인간 개개인의 생각 속에 들어있지만, 신과 개인을 잇는 매체이다. 다석에게 이런 사유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말의 힘일지도 모른다. '얼'은 한자의 '영(靈)'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얼은 '알(卵)'이며 '속(내면)'이며 '씨앗'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줏대'이며 '영혼'이며 '신의 정수'이다. 이 '얼'이라는 한 글자가 있었기에, 다석은 종교적 사유를 폭넓고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었다. 서구기독교에서 정착시킨 '성령'이란 말에는, '..
祈禱는 나(自我, ego)가 없는 상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다. 釋迦는 默想을 하였다. 예수도 거의 默想의 祈禱를 한것 같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神)이 있어서 이루어진다. 하느님이 내게 건네 주는 것이 거룩한 생각이다. 하느님이 건네주지 않으면 참 생각을 얻을 수 없다. 거룩한 참 생각은 하느님과의 연락에서 생겨난다.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못된 생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고 염재신재(念在神在)라 한다. 그러면 생각이 신(神)인가? 나로서는 모른다”(다석어록, 22쪽). 하느님의 音聲을 듣는 것이 祈禱다. 聖靈이 주시는 音聲을 듣는 祈禱가 진짜 祈禱다. 내가 하느님께 要請하는 것은 祈禱가 아니다. 祈禱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고자 해야한다. 불교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 4장24) 예수는 기도에 대해 말하기를 "하느님은 얼이시니 경모하는 이는 참인 얼로 예배할지니라" (다석) 하느님은 얼이시므로 제나가 아닌 얼나(참나, 眞我, 靈我, 純我)로 예배해야 한다. 祈禱는 하느님과 靈通하자는 것이다. 道는 뛰엄 뛰엄(辶) 하느님(首)께로 가는 것이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하는 것이다. 자신의 골방을 남이 들어와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제 祈禱(기도)는 제가 해야 한다. "眞理意識(진리의식)과 絶對槪念(절대개념)이 있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祈禱는 혼자해야 한다. 제 祈禱는 제가 해야 한다. 스스로 깨어 祈禱함으로써 하느님의 聖靈을..
自覺(자각). 見性(견성). 知天(지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요한 14:6-7) 여기서 나는 모두 성령인 얼나를 말한다. 성령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얼나를 깨달은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를 모를 수 없다. 하느님 아버지가 성령인 얼나를 보내주신다. 성령의 나는 아버지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이다. 이것이 自覺. 見性. 知天이다. 眞心. 空心으로 기도를 한다면 "하느님아버지의 계심은 거룩하옵니다. 아버지의 나라를 주옵소서"만 외도 見性(견성) 成佛을 한다. 하느님아버지의 나라는 성령이요. 진리요. 사랑이요. 기쁨이요. 영원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느님의나라였다. 그런데 슈바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