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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元 으뜸원자는 그대로 기도하는 모습을 상형화한 것이다. 元 으뜸 원자의 二는 氣를 나타낸다. 儿는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元은 氣之始也(기지시야)다. 生命은 먼저 氣(기)를 요구한다. 氣는 萬物의 生成根源이 된다. 氣는 生之元也(생지원야)다. 네이버 한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見解)도 있음. 二(이 ☞ 上의 고자)와 儿(인)의 합자(合字). 사람의 몸은 맨 위에 머리가 있으므로, 머리, 처음의 의 뜻으로 쓰임. 또는 사람의 머리 부분을 강조한 전신을 본뜬 글자. 元자는 ‘으뜸’이나 ‘시초’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元자를 보면 人(사람 인)자의 머리 부분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元자는 본래 사람의 머리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시간이..
自覺(자각). 見性(견성). 知天(지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요한 14:6-7) 여기서 나는 모두 성령인 얼나를 말한다. 성령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얼나를 깨달은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를 모를 수 없다. 하느님 아버지가 성령인 얼나를 보내주신다. 성령의 나는 아버지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이다. 이것이 自覺. 見性. 知天이다. 眞心. 空心으로 기도를 한다면 "하느님아버지의 계심은 거룩하옵니다. 아버지의 나라를 주옵소서"만 외도 見性(견성) 成佛을 한다. 하느님아버지의 나라는 성령이요. 진리요. 사랑이요. 기쁨이요. 영원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느님의나라였다. 그런데 슈바이처..
"류영모는 죽음이 깨달음이라고 하였다. 하느님 아들이란 죽음을넘어선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과 죽음을 넘어 선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죽음과 깨달음은 같은 말이다. 지식을 넘어선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죽음을 넘어서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얼이 산다. 내가 완전히 없어져야 참나다. 참나가 우주의 중심이요. 나(自我, ego)의 임자다. 道는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이 언제나 주인을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진다." 나는 거짓입니다. 나는 가짜입니다. 라고 자수하는 것이 회개다. 회심이다. 이것이 기도의 기본자세다. 柏道
祈禱란? 하느님은 하나이시고 絶對이시다. 祈禱는 絶對와 通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靈通하는 것이 祈禱다. 예수는 宇宙의 임자가 하느님아버지 이시고, 生命의 임자가 하느님아버지 이심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의 聖靈이 永遠한 生命이다. 하느님아버지와 聖靈으로 通하는것이 祈禱다. "내 맘속에 하느님아버지가 속삭이는 것을 듣는 것이 기도다. 절대이신 아버지와 이어지는 것이 기도다. 기도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길은 다 막혀도 좋다. 그러나하느님아버지와의 연락만은 뚫려 있어야 한다. 하느님아버지와의 연락이 기도다. 기도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기도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다. 기도는 영원한 생명길이다." 기도는 하느님아버지와 얼줄로 연결하는 것이다. 생각의 줄로 연결되는 것이다. 탐진치의 잡..
제나에서 얼나로 (다석 류영모 어록)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적 천재 류영모 선생의 주옥 같은 깨달음의 어록 드디어 출간 20세기를 관통하며 살다 간 다석 류영모의 가슴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 사상의 옥동자가 잉태하고 자라나 꽃을 피웠다. 기독교, 불교, 유교, 노장 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어 독창적인 종교 철학의 체계를 세운 종교일원론자이자 사상가, 철학자, 교육자. 20세기 한국이 낳은 정신적인 큰 스승이자 진정한 의미의 ‘종교개혁자’로, 땅의 어버이로부터 받은 몸과 맘의 거짓된 제나(EGO)를 벗어나 우주의 주재자이자 우주정신이신 한얼님(니르바나님)이 주시는 얼나로 솟나(부활)는 길을 가리켜 보였다. 본서는 YMCA 연경반(硏經班)에서 강의한 내용의 속기록 중..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예수가 말하였다. "人生이란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平生을 하느님을 아는일에 삶의 目的을 두어야한다. 사람으로서 사람노릇을 하려면 하느님을 알아야한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한다. 敎育도 사람의 本質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데 그 根本을 두어야 한다. 人生의 本質을 外面한 敎育은 도둑놈의 敎育이다." 예수, 석가, 공자, 노자의 가르침의 核心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 永遠한 生命을 구하라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그의 나라가 하느님 나라이다. 그의 나라가 얼의 나라이다. 그의 나라가 聖靈이다. 예수의 聖靈, 釋迦의 佛性, 孔子의 德性, 老子의 道性, 多夕의 얼나가 모두가 같은 나라이다. 이 나라가 모두 하느님 나라이다. 20세기에 와서 基..
"진리의 성령으로 거룩함을 받는 것이다. 예수가 흘린피의 공로로 속죄받아 의로워진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없다. 어떤 이는 예수가 흘린 피가 진리를 뜻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가 흘린 피의 공로로 속죄받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도그마에 빠져 있다. 이것은 예수가 가르친 말씀이 아니다. 바울의 대속신앙이다. 지난 2천년간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바울의 대속신앙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의식을 사로 잡고 있다. 여기에서 깨어나야 한다. 존 쉘비 스퐁은 이 시대에 가장 학구적이며 진보적인 성직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 감독교회의 뉴왁 교구 감독으로 24년 동안 봉직하고 2..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누리)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그득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 17:13) 여기서 예수가 말한 기쁨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희로애락의 기쁨이 아니다. 희로애락이 일어나지 않은 중(中)에서 일어나는 기쁨이다. 中을 느끼는 기쁨, 道를 느끼는 기쁨, 靈을 느끼는 기쁨이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道는 세상을 초월한 眞理를 말한다. 道는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이 언제나 주인을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진다. 정말 眞理를 찾으려면 생명을 내걸고 실천해 보아야 한다. 道는 참나다" (류영모 다석어록) 우리가 眞理인 聖靈을 찾아가는 것은 한없는 기쁨이다. "목숨은 기쁨이다. 사는 것은 기쁜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기쁜..
?? 봄이 왔고 곳곳에 봄 채비를 하는 풍경을 볼 수 있지요? 토양을 거꾸로 뒤집으면 토양이 태양에 노출되고 토양을 살아 있게 하는 미생물이 죽습니다. “경작하다”는 것은 땅을 파다, 휘젓다, 뒤집는다는 의미입니다. 삽, 괭이, 곡괭이 또는 쟁기로 작업을 하여 토양의 상층부를 뒤집어 신선한 영양분을 표면으로 가져오는 동시에 잡초를 묻히는 것입니다. 경작은 처음부터 농업의 특징이었고 이를 위한 가장 집약적인 도구는 쟁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시작한 지 10,000년이 지난 후, 인간은 마침내 지구를 파내는 것이 우리를 위한 농산물을 만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수십 년(1940년대–1960년대)의 녹색 혁명은 우리가 토양에서 빼앗긴 주요 영양소를 합성 영양소..
책소개 영어가 우리말이라면 황당하다고 하겠지만, 어휘 연구와 조어원리 등을 근거로 영어의 뿌리가 우리말임을 주장하는 책 제1권이다. 발음과 의미가 비슷한 몇몇 어휘만을 가지고 영어가 우리말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영어사전에서 찾은 수많은 동음동의어(同音同意語)는 물론 그런 단어가 지니는 음운상의 공통성과 규칙성, 일관성이 우리말에 있음을 근거로, 영어의 기본어휘 생성이 우리말의 소리음가와 음운현상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을 저자는 논리적,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수많은 어휘와 음운규칙 등 직접증거를 제시하여 주장하고 있다. 목차 1장 들어가며 2장 소 뒷발질에 쥐를 잡다? 3장 보물창고의 진주 명세 4장 영어는 우리말이다 5장 간략히 살펴보는 영국사와 우리말 6장 영어를 ..
無始無終(무시무종) "天符經에서 無始無終(무시무종)이란 말은 不生不滅(불생불멸)이란 말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멸망의 자식에서 벗어나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 얼나로 솟나자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요. 단군의 가르침이다. 석가. 노자의 가르침이다. 멸망의 자식 반대는 영생의 아들이다. 純나의 아들이다. 참나의 아들이다. 성령의 아들이다. 깜박 정신을 못 차리면 내 속에 있는 독생자(성령의 나)를 내쫓고 이 죄악 몸뚱이가 차지하게 된다. " 절대에 속한 이는 영생의 아들이다. 상대에 속한 이는 멸망의 자식이다. 예수는 위로부터 오는 이를 절대에 속한 이라하고 땅에서 난이를 상대에 속한 이라 하였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
毋意毋必毋固毋我 (무의무필무고무아) (孔子) "1. 한 쪽으로 치우친 편견(偏見)으로 판단(判斷)하거나 지레 짐작하지 않으시고, 무의(毋意): 편견(偏見)을 가지시거나 억측(臆測)하지 않으심. 2. 확실(確實)하지 않은 것을 틀림없다고 우기지 아니하셨으며, 무필(毋必): 불확실한 것(일)에 집착(執着)하거나 장담(壯談)하지 않으심. 3. 자기 생각이나 행동만이 옳다고 융통성(融通性) 없이 고집(固執)하지 않으시고, 무고(毋固): 융통성(融通性) 없이 고집 불통(固執不通)하지 않으심. 4. 소아(小我)에 집착(執着)하여 자기 자신(自己自身)만을 내세우지 아니하셨다. 무아(毋我): 이기적(利己的)이거나 유아 독존(唯我獨尊)하지 않으심." 毋意毋必毋固毋我(무의무필무고무아)는 "제나를 초월하여 얼나로 솟나자는 ..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요한 18:37) 진리에 속한 자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얼나(참나,순나)에 눈뜬 사람들이다. 柏道
見性得道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득도(得道), 즉 깨달음을 얻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문자 그대로 일체 만물의 근본이 무엇임을 보고 알았다는 뜻이다." 多夕 류영모선생은 기독교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見性得道란 말의 뜻은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인 聖靈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人生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절대목적이다." 聖靈이란 무엇인가? 聖靈이 佛性이다. 聖靈이 道性이다. 聖靈이 德性이다. 聖靈이 純性이다. 聖靈의 나는 無所不在하다. 聖靈의 나는 無時不在하다. 聖靈의 나는 無人不在하다. 聖靈의 나는 時間, 空間, 人間의 한계가 없는 영원한 생명이다. 聖靈의 나가 참나이다. 聖靈의 나가 얼나이다. 聖靈의 나가 純나이다. 聖靈의 나가 속알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 1..
영원한 생명은 聖靈이다. 聖靈은 無限이다. 永源이다. 모자람이 없다. 聖靈은 하느님이 보내주신다. 마태복음 5장3절은 해석이 잘못되었다. "심령이 가난한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성령을 구하는 이'로 바뀌어야 한다. 柏道
毋意毋必毋固毋我(무의무필무고무아)-논어 자한편 '공자(孔子,공구孔丘·중니仲尼)'께서는 네 가지를 근절(根絶)하시고 절대(絶對)로 하지 않으셨다. '공부자(孔子)'께서 절대(絶對)로(어떠한 境遇에도) 하지 않으시는 것(일)이 네 가지 있으니... '공자(孔子)'의 네(4) 가지 절대적(絶對的)인 금기 사항(禁忌事項) 毋意毋必毋固毋我 (무의무필무고무아) 1. 한 쪽으로 치우친 편견(偏見)으로 판단(判斷)하거나 지레 짐작하지 않으시고, 무의(毋意): 편견(偏見)을 가지시거나 억측(臆測)하지 않으심. 2. 확실(確實)하지 않은 것을 틀림없다고 우기지 아니하셨으며, 무필(毋必): 불확실한 것(일)에 집착(執着)하거나 장담(壯談)하지 않으심. 3. 자기 생각이나 행동만이 옳다고 융통성(融通性) 없이 고집(固執)하지..
빛되신 성령이 오면 어둠인 제나는 물러 갑니다. 제나인 삼독 탐진치가 얼나를 막고 있습니다. 제나가 마귀입니다. 거듭남을 방해하는 탐진치가 마귀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면 제나는 물러갑니다. 얼나가 성령입니다. 성령이 순나입니다. 순나가 얼나입니다. 얼나가 참나입니다. 柏道
소요유(逍遙遊) 소요유(逍遙遊)의 뜻을 아십니까? 莊子思想의 重要한 特徵(특징)은 人生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서 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기계적 소모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莊子는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서 ‘일’을 권하는 사람이 아니라‘소풍’을 권한 사람이다. 우리는 ‘일’하러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成功’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과거 생에 무엇을 잘했는지 모르지만, 하늘로부터 삶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 우주에는 아직 삶을 선물로 받지 못한 億兆蒼生(억조창생)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에 순번을..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 17:5) "아버지여! 맨첨부터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뚜렷함으로서 이제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뚜렷이 하옵소서." (다석 류영모 해석)
하느님 뜻대로 하는 것이란? 聖靈의 나로 다시 나는 것이 하느님 뜻대로 하는 것이다. 柏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