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마스터와 가르침 (1209)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다석 사상은 한국 신학의 광맥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2021-03-03 15:38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⑦ 김흡영 교수 경북 영주는 중국에서 들여온 한국 유학의 본향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享)을 배향하는 소수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감싸고 흘러가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이다. 다양한 형태의 구조를 지닌 40여 채 고택이 옛 그대로 남아 있다.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 해우당(海愚堂) 고택이다. 이 건물은 선성 김씨 입향조인 김대(金臺)의 손자가 1830년에 건립했고 고종 때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1879년에 중수(重修)했다..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1)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05 09:35 천지창조의 비밀 밝힌 겨레의 경전, 류영모가 풀다 천부경에서 신의 숨결을 느꼈다 천부경(天符經)은 출처의 근거가 미약한 게 사실이다. 단군이 지니고 있던 천부인(天符印, 하늘의 증표인 도장)에 적힌 글이라는 설이 있으며, 환인이 환웅에게 전한 것으로 신라 최치원이 묘향산 바위에 새겨놓았던 것을 1916년 계연수가 발견해 옮겼다는 주장도 있다. 천부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환단고기(桓檀古記,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가 정리한 것을 1979년 이유립이 출간)는 역사학자들로부터 위서(僞書)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천부경'이 줄기차게 관심을 받고 있는 까닭은 뭘까. 그것을 전달한 사람이 의심스러운 것..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2) 육체를 믿는 것은 기독교엔 없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07 10:03 류영모 기독교사상과 8가지 반(反)육신론 육체는 죽고, 성령은 영원히 산다 류영모는 기독교인이다. 1905년 15세 때 한국 YMCA 초대총무였던 김정식이 이끌어 서울 연동교회에서 입신(入信)한 이후, 한순간 한 치의 배교(背敎)도 드러낸 바 없었다. 오히려 갈수록 굳건하고 단호한 믿음을 세워 일생을 나아갔다. 1912년(22세 때) 오산학교 교사 생활을 마감하면서, 교회와 교리 기독교의 깊은 모순에 눈을 떴고 교회와 결별했으며 성서 읽기와 신앙 실천을 통해 진리파지(眞理把持)에 주력했다. 류영모는 투철한 기독교 신관의 사상가-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독교 사상을 짚는 일은, 매우 당연한..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3) 십자가는 무엇인가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12 10:35 죽음 앞둔 예수의 기도, 요한복음을 강의하는 류영모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의 기도엔 뭔가 있다 류영모는 1943년 성서조선 폐간호에 '예수의 기도'를 새로 풀어서 실었다. 그는 '결별의 기도'를 늘 새기는 사람이었다. 헬라어로 된 기도문을 스스로 번역해 자주 암송하였는데, 그 제목을 '옛다시 가온 보입'이라 했다. 있다시 온(하늘에서 본디의 '나'가 그대로 온) 이후에, 옛다시 가온(여기 있던 '나'가 그대로 돌아간) 예수가 하느님께 보이는 글이란 의미다. 조선인의 민족얼과 신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기어이 성서조선의 말문까지 막아버린 무렵에, 류영모는 왜 저 결연한 '죽음 앞의 기도문'을 실었을까. 이 세..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4) 나는 얼나 제너레이션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14 09:32 2만2천날 기념강연회와 하루살이 인생 世와 代, 한 사람의 삶과 '뿌리 이음' 세대(世代, generation)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世, 사람의 한평생)와 대(代, 대신해서 잇는 것)를 합친 말이다. 세대는 한 사람의 삶과 그 이후를 물려받는 다른 사람의 삶의 관계를 말한다. 세와 대는 가계(家系)체계를 구성하는 핵심개념이다. 자신의 뿌리가 되는 조상을 1세(世)로 할 때, 2세, 3세로 내려와 자기까지 세어 몇세손(世孫)이라고 말하게 된다. 족보는 대개 가문의 세계(世系, 세의 계통)를 밝히는 것으로 세보(世譜)라고 부른다. 대(代)는 자신을 빼고 계산하는 상하의 관계도이다. 위로 부모는 1..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5) 이런 것이 큰손! …날 위해 왜 쓰나, 남 위해 왜 아끼나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19 09:37 류영모의 '하느님 경제론'…사람 사이 계산하는 건, 운명을 캄캄하게 할뿐 류영모와 이상웅의 인연 1935년 류영모가 북한산 비봉 아래 구기리로 이사 올 때, 거기에 있던 낡은 집을 수리해야 했다. 근처 구드랑골에 살고 있던 이상웅(1913~1988)이란 청년에게 일을 맡겼다. 기와를 손질하는데 이상웅이 아래에서 진흙을 던져주는 일을 했다. 그 진흙을 받아 기와에 붙이던 일꾼이 얼굴로 갑자기 진흙덩이 하나를 이상웅에게 도로 던졌다. 아래에서 흙을 똑바로 던져주지 않아 일 하기가 어렵다며 기와일꾼이 성질을 낸 것이다. 난데없이 진흙세례를 맞은 스물두살의 이상웅. 버럭 화를..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6) 류영모 집에 인민군이 총을 겨눴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21 08:23 죽음을 연마하는 이에게 '삶의 광기'가 들이닥친, 6.25의 기록 기억과의 전쟁, 망각과의 전쟁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다. 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이 70년 전으로 밀려났다는 의미다. 그해에 태어났던 아기는 70세가 되었다. 전쟁에 참여했을 20대는 이제 90대가 되었고, 부모의 손을 잡고 피란을 떠났던 10대도 80대가 되었다. 이렇게 전쟁 시절에 있었던 이들의 나이를 떠올려 보는 까닭은, 전쟁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한국 역사 최대의 비극을 상기(想起)하자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전쟁의 체감지수(體感指數)가 확 낮아지고 기억들조차 역사 속으..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7) 류영모와 나훈아의 이구동성? 테스형과 '다석형'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26 10:16 6.25를 통한 깨달음,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는 없다" 지난 추석 무렵(2020년 9월 30일) TV공연을 한 가수 나훈아가 공연 중에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고 말해, 논란을 부른 적이 있다. 이 말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구구한 해석이 나왔다. 한 원로가수가 한 국민의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꺼낸, '갈증이 담긴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풀이를, 아주 정확하게 류영모가 해주고 있다. 이미 수십년 전에 위대한 사상가가 그 문제에 관해 해명을 해놓은 셈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만큼 국민이 알 건 알아야 합니다. 온 국민이 모든 것..
얼나의 성자(78) 꿈에 육체적 욕망을 느낀 류영모의 충격 이상국 논설실장 2020-10-28 09:29 1년 뒤 죽는 날을 선포했던 다석, '사망시계'가 도는데… '때가 이르렀으니" 준비한 예수처럼 전쟁이 끝난 지 2년. 1955년 4월 26일 류영모는 '죽을 날'을 발표했다. 그날로부터 365일 뒤인 1956년 4월 26일에 죽음을 맞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공표하는 일이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왜 하필 류영모는 이날을 택했을까. 뜻밖에도 해방 직전에 타계한 김교신과 관련이 있다. 1939년 6월 25일 김교신은 성서연구회 사람들과 함께 구기리의 류영모를 찾았다. 이날은 류영모의 탄생 1만8천일을 맞은 날이었다. 김교신은 류영모에게 조선어사전을 기념선물로 건넸다. 사전에는 김교신이 친필로..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79) 바보새의 눈물과 다석의 고함소리 이상국 논설실장 2020-11-04 09:40 류영모의 길, 함석헌의 길…스승과 제자의 절연(絶緣) 사건 [조금은 특별한 내용이 있는 시리즈에 들어가며, 필자의 말 = 어떤 의미에서든, 류영모와 함석헌 두 분이 모두 '큰 사람'인 만큼, 그 주체의 삶과 선택을 기반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다석의 원칙에는 맞지 않았지만 바보새(함석헌)의 길이 전면적으로 부정될 수는 없고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한 다석의 비판을 함부로 일반화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의 길을 간 것이었고, 뉘우침까지도 그의 길이었다. 지금 읽어야할 건, 다석의 철두철미(徹頭徹尾)다.] [바보새 함석헌.] [바보새 함석헌.] 제자를 파문하다 류영모는 함석헌을 파문(破門..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0) 신은 '가운데'에 있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1-11 11:10 왜 류영모는 광주에 가서 살고싶어 했나 김정호에게 '양떼 목자(牧者)'를 권한 류영모 철학자 김정호(1931년생)는, 사귐을 함부로 넓히지 않았던 류영모에게는 각별한 사람이었다. 1967년에서 1968년 사이 1년이나 무등산 산양목장에서 함께 기거했다. (함께 머무를 당시 목포대 교수였던 김정호는 타계했으며, 자세한 삶의 행적을 추적하기 어려웠다.) 무등산 양떼목장을 일으킨 윤영일(尹榮一, 1940~ )은 김정호의 매부(妹夫, 동생은 김옥)다. 그의 장남이자 양떼목장을 현재 운영하고 있는 윤영일의 장남 윤대원에게 김정호는 외삼촌이다. 윤영일은 20세 때인 1960년에 함석헌의 천안 씨알농장에서 생활한 ..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1) "아바디 아바디" 깨끗과 거룩을 산 류영모, 제자 김흥호의 증언 이상국 논설실장 2020-11-18 04:50 인생은 감격이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스승 [영화 '왕중의 왕(The King of Kings, 1927년작)'의 한 장면.]이미지확대 [영화 '왕중의 왕(The King of Kings, 1927년작)'의 한 장면.] 그리스도교인은 한 사람뿐이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안티크리스트'에서 한 이 말은 충격적이다. "그리스도교의 진짜 역사에 대해 말해 보겠다. 그리스도교라는 말 자체가 벌써 오해이며, 근본적으로는 오직 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었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복음이 십자가에서 죽어버..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2) 천하효자(天下孝子) 예수처럼 살고싶소 이상국 논설실장 2020-11-25 11:30 제자 김흥호가 본 류영모…식색 못끊으면 인간이 아니다 공기같은 기체(氣體)로 산 사람 편지를 쓸 때 상투적인 문구로 '선생님 기체후 일향만강(先生 氣體候一向萬康)'이란 표현을 쓴다. '선생님 기력과 신체의 상황이 오로지 모두 편안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이런 편지를 받은 류영모는 제자에게 이렇게 설명을 해준다. "이 말이야 말로, 하늘의 말씀입니다. 선생(先生)님은 생을 초월한 존재를 말하고, 기체후(氣體候)는 공기처럼 기체로 사는 사람의 근황을 말하는 것이고 일향만강(一向萬康)은 하느님(一)을 향한 모든 것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소." 김흥호는 류영모를 '고체(固體)..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3) "다석은 인간의 최고경지" 이상국 논설실장 2020-12-02 10:51 류영모 삶에서 '예수'를 떠올린 이들, 서영훈, 이진구, 기자 이충우 다석사상 용어인 '가온'을 호로 쓴 사람 서영훈(1923~2017)의 호는 '가온(嘉溫)'이다. 한자를 풀면 '아름답고 따뜻한'이란 뜻이지만, 실은 류영모의 철학용어인 '가온(가운데)'에서 빌린 말이다. 서영훈은 류영모에게 "저의 호를 가온으로 정했으면 좋겠다"고 뜻을 말했고 류영모는 흔쾌히 수락했다. 서영훈은 1953년(30세) 대한적십자사에 입사해 1982년 퇴임할 때까지 29년을 이곳에서 일했다. 1972년에는 남북적십자회의 대표로 참가해 남북한을 왕래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된 것은 김대중정부 때인 2001년이었다...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4) "우리 만남은 바람꽃이었소" 류영모의 탄식 이상국 논설실장 2020-12-07 10:30 류달영과 현동완, 류영모가 아낀 제자들 [다석 류영모]이미지확대 [다석 류영모] 스승이라는 말 속엔 허허벌판이 있다. 눈 내리는 허허벌판에 크고 굳센 어른 하나 서 있다. 스승은 말하지 않는다. 그 삶이 거울이 되어 내내 한 존재를 비춘다. 스승은 원래 앞날을 예언하는 여자무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죽음이 늘 가깝게 내려와 있던 맨발의 시절에 부락의 중심에 좌정하고 앉아 가야할 길을 읽어내던 지혜로운 자였다. 스승이 교육이라는 백년대계를 책임지게 된 것은 거기서 연유한 것일까. 그 뒤 부처의 가르침에 한 나라가 귀의하면서 왕을 길러내는 스님을 스승이라 불렀다. 한 사람의 덕망이 어린..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5) 생에서 24일을 잃어버렸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2-09 11:16 죽음 근처로 갔던 71세 추락사고…내 마음 안에 허공 있소 [다석 류영모]이미지확대 [다석 류영모] 대미산 농장에 류씨가 오두막 은거를 하고 계촌 계곡 뜨락에 스스로 먹을 걸 심는구나 내려온 은혜 올리고 올린 마음 내려오니 영원한 진리라 서울과 강원도가 참으로 평안하구나 大美山庄柳考盤(대미산장류고반) 桂村洞庭自强植(계촌동정자강식) 昇恩降忠永遠理(승은강충영원리) 漢城江原太平安(한성강원태평안) 류영모 한시 '대안만강(大安萬康, 아주 평안하구나)' 이 시는 류영모가 아들을 생각하며 지은 특별한 작품이다. 류고반(柳考盤)의 '고반'은, 시경의 위풍(衛風)에 나오는 고반(考槃)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고반재간..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6) 마지막 숨을 끄는 게 '소식' 이상국 논설실장 2020-12-14 11:22 3만번의 저녁을 읊은 제자 시를 류영모가 고친 뜻 [다석 류영모]이미지확대 [다석 류영모] 3만번의 저녁을 읊은 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연하던 게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오래 살려고 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다. 사람은 대개 100년을 넘어 못사는 것을, 지나간 사람들을 통해 알면서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한사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약 83세다. 남자는 80세이고 여자는 86세다. 앞으로 자신이 이 지상에 얼마나 더 우물쭈물하고 있을지 계산하는 일은 초등학교 산수다. 남은 해가 20년이라고 치자. 우린 그 시간이 지금껏 살아온 것과 같은 품질의 ..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7) 나 어디 좀 간다, 다석 실종사건 이상국 논설실장 2020-12-21 10:32 '죽음'을 찾아 떠난 길… [다석 류영모]이미지확대 [다석 류영모] 과식하는 건, 밥 먹을 줄 모르는 것 낙상으로 입원한 지 29일 만에 서울대학병원에서 퇴원했다. 1961년 12월19일의 일이다. 71세의 몸이 의식을 잃은 채 실려갔다가, 근 한달 만에 돌아온 이 사건은 류영모의 사상과 믿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육신은 결코 섬길 대상이 아니며 정신을 실어나르는 캐리어 정도로 인식했던 류영모에게, 사경(死境)을 방불하는 신체 위기는 삶과 죽음에 관해 더욱 깊이 음미할 만한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는 불교적 개념인 탐진치(貪瞋痴), 즉 탐욕(貪欲)과 진에(瞋恚, 성내는 일)와 우치(愚癡, ..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8) 9억번의 숨이 멈추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2-23 11:33 이것이 꿈 아닌 꿈이 아니고 무엇이오 [김효정-류영모 부부]이미지확대 [김효정-류영모 부부] 나너 너나, 네 글자만 알면 돼 1975년 1월 1일 류영모는 '다석일기'를 멈췄다. 그해 10월호 '성서신애' 206호에 주필 송두용이 이런 글을 실었다. "어느 날 류영모 선생님을 방문하였더니 선생님은 생시에 꿈을 꾸셨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신문회관을 찾아가다가 차중에서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원효로 종점에서 내렸다. 어찌된 일인지 몰라 다시 버스로 돌아오다가 무슨 생각으로 남대문에서 내려 걸어서 구기동 집까지 오니 거의 하루해가 소비되었다. '나는 분명히 깨어 있으면서 꿈을 꾸었어..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9 류영모는 예수를 스승이라 불렀다 이상국 논설실장 2020-12-28 11:54 다석의 재발견(1) -얼나사상(上) 예수는 얼나의 증언자였다 섣부른 생각이 감히 용훼하기엔, 다석 류영모는 너무 크고 깊은 사람이다. 원고 30장을 꽉 채우는 시리즈 88회로, 그 생애를 일별하는 작업을 끝냈다. 지금부터는, 그의 사상을 나름으로 추슬러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나의 깜냥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알 수 없다. 좋은 의욕의 발로라 해도, 위험천만한 상황이지만, 지금에 와서 그걸 생략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여러 제자들이 이미 많은 말씀을 하셨고, 정리도 하셨으며, 깊고 다양한 분석도 나와 있다. 그걸 살피며 가만히 돋는 갈증이 있었다. 정작 다석사상의 정수(精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