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마스터와 가르침 (1209)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53) 악을 악으로 갚지말라 (53) 악을 악으로 갚지말라 18년 정신적 사제(師弟)…류영모의 길,김교신의 길 (2) [다석 류영모] 한국 기독교의 길을 연 두 사람 류영모와 김교신의 길은 사뭇 달랐다. 그러나 김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류영모에 닿기 어렵다. 류영모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김교신의 사상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류영모에게로 가는 길은, 김교신을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류영모는 1890년생이고 김교신은 1901년생으로 11년 차이다. 두 사람 모두 유학자 가정에서 자라났다. 류영모는 15세에 교회 기독교에 입문해 오산학교에 신앙을 전파하기까지 했으나 7년 만인 22세 무렵에 교회와 결별한다. 김교신은 20세에 교회에 입문해 세례를 받..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52) 김교신이 죽자, 자신이 죽을 날을 정한 류영모 (52) 김교신이 죽자, 자신이 죽을 날을 정한 류영모 18년 정신적 사제(師弟)… 류영모의 길 김교신의 길 (1) [김교신(1901~1945)] 그리스도 인연 끊겨도 조선은 사랑할 것 1937년 12월 15일 성서조선 108호 제작을 끝낸 뒤 김교신은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출판 허가원을 낸다.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1938년 신년호 첫머리에 황국신민서사를 실으시오." 순간 김교신은 이런 요구를 듣느니 차라피 폐간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수정을 했다. 그런데 경무국에서 다시 원고 내용을 고치라고 했다. "함석헌의 중에서 "만일 이 만유인력이 전광 사이에서 동하지 않게 된다면 이 우주는 혼돈에 빠질 것..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51) 왜 그는 우주인임을 역설했는가 (51) 왜 그는 우주인임을 역설했는가 하느님은 허공이다 [다석 류영모 초상] 신은 없이 계신다 인격신(人格神)이란 말이 있다. 신이 인간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고유의 지성과 의지를 갖춘 개체적 존재이면서 초인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신은 모두 인격신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신 또한 인격신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닮은 신, 혹은 신을 닮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신앙을 이뤄온 것은 인류 신관(神觀)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이 인격신은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이며 인간이 지니지 못한 지혜와 능력을 지닌 전지전능이며 인간이 살고 있는 상대세계를 벗어난 절대자이다. 하느님이..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50) 금성을 맨눈으로 세번이나 본 사람 (50) 금성을 맨눈으로 세번이나 본 사람 윤동주의 '서시'와 류영모의 '첨성유감', 깨달음이 반짝인 밤 음력 정월 첫날 하늘과 통한 시 1943년 2월 15일은 계미년 음력 설날이었다. 53세의 류영모는 새벽에 일식(日蝕)을 보기 위해 서울 북악(北岳)에 올랐다. 산은 희끗희끗 잔설(殘雪)이 덮여 있었다. 그 전해 57일간 감방에 있었고, 제자인 김교신과 함석헌, 송두용은 아직 풀려나지 않았던 때였다. 뒤숭숭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는 날, 그는 두해 전의 파사일진(破私一進)의 기세를 가다듬고 싶었다. 북악마루에서 동트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울 상공에는 안개바다가 펼쳐졌고 무평선(霧平線, 안개의 수평선)이 남쪽 관악까..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9) "마땅히 일본도 항복할 것" 류영모 풍자시조 (49) "마땅히 일본도 항복할 것" 류영모 풍자시조 위암 장지연이 쓰던 감방에 앉아 '세상이 옥살이'임을 깨닫다 [다석 류영모] 일본이 못 읽어냈던, 류영모 풍자시 다석 류영모의 연시조(聯時調) '개성당일왕복' 아침에 한산(漢山)을 두고 낮 못돼 송악에 대니 즈믄해 거스른 일을 한 나절에 보는구나 갈릴 때 생각으로는 돌아봄이 늦었네 아침에 한산을 두고 낮 못돼 송악에 대니 꺾인 즈믄 거스른 일이 한 나절에 돌아오다 갈릴 때 나는 대(竹)로는 역력히도 같구나 아침에 한산을 두고 송악의 낯 없어서니 즈믄해 거스른 일은 한 나절에 보는구나 갈릴 때 나는 대로는 한 맘인가 하노라 아 처음 한산 두고 낯 없이도 송악의 짝 즈믄해 꺾인..
(48) 일본의 종교탄압 '개구리를 애도함' 필화사건 류영모 부자 함께 일제에 체포된 성서조선 사건 [김교신] 김교신의 산문 '조와(弔蛙)'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른 폭포 밑에 작은 담(潭, 연못)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 천연)의 성전이다. 이 반상(磐上, 너럭바위 위)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 기도를 하여 구함)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좌우로 엉기엉기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岩色, 바위빛깔)에 적응하야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大變事, 큰일)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 새로 찾아옴)의 객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蛙君, 개구리..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7) 동양사상도 신의 품에 있다, 기독사상 혁신가 (47) 동양사상도 신의 품에 있다, 기독사상 혁신가 天 · 性 · 孝 · 空 · 道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다 신문 읽어봐도 신문(新聞)이 없구나 류영모는 참신앙을 찾기 위해 허튼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허튼 우상이란 무엇인가. 신(神)이 아닌 인간을 숭배하는 일, 성령이 아닌 육신을 우러르는 일이 잘못된 믿음이다. 그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유불선(儒佛仙)과 세속적 믿음 속에 들어 있는 공허한 가치관들을 경계했다. 그의 연작 한시 '불배우상(不拜偶像,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은 '참'을 찾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궁신(窮神)함으로써 터득한 지화(知化, 조화를 읽어냄)라고 할 수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6) 부처 · 노자 · 공자가 모두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46) 부처 · 노자 · 공자가 모두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독교의 본질적 진수를 찾아낸 '참사상가' 류영모 [다석 류영모] 예수가 하느님 아들인데, 다른 누굴 찾겠습니까 1942년 3월호 성서조선(제158호, 이것이 일제의 의해 폐간됨으로써 마지막 호가 된다)에 류영모는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글을 기고한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말은 요한복음 6장68절에 등장한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를 떠나가자, 예수는 베드로에게 묻는다. "그대도 가려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한다. "영생의 말씀이 스승에게 있사온데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류영모가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말을 쓴 것..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5) 나를 깼다, 예수가 (45) 나를 깼다, 예수가 그랬듯이 파사일진(破私一進), 얼나로 나아간 기쁨의 노래 전미선作 '파사' 그림과 다석 초상화 앞에 선 박영호 회장. 백척간두진일보, 나를 깨고 나아가다 류영모는 제나에서 얼나로 나아간 깨달음을 '파사일진(破私一進)'이라고 했다. 나를 깨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다. 송나라 도원의 불교기록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오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수행묘리를 기독교 사상에 적용한 것이다. 백척의 꼭대기에 올라가 더 디딜 수 없는 허공에서 한 걸음 내딛는 백척간두진일보는 현재의 상태(삶)를 감연히 포기함으로써 큰 깨달음을 얻어 영생으로 나아간다는 동양적 화두(話頭) 수행이다. 류영모의 파사일진은 서양의 신앙사상에..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4) 죽을 때 너에게 묻노니, 너는 사람이었나 (44) 죽을 때 너에게 묻노니, 너는 사람이었나 52세에 깨달음으로 다시 태어나다 [다석 류영모(오른쪽)와 부인 김효정.] 50대에 '7금 수행'으로 몸나를 꺾다 50대에 든 류영모는 7금(禁)을 행했다. 일일일식으로 입의 탐욕을 금했고, 단색(斷色)으로 육욕을 금했고, 시와(屍臥, 주검처럼 눕기)로 편한 잠을 금했고, 궤좌(무릎꿇기)로 편한 기거를 금했고, 냉욕(冷浴)으로 불결을 금했고, 체조로 기색(氣塞, 기운이 막힘)을 금했으며, 걷기로 편리한 삶을 금했다. 이 7가지의 금지는 모두 '몸나'의 헛된 위세를 꺾어 얼나로 향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몸나를 채찍질한 이런 투철한 실천은 육신의 강건함을 낳는 바탕이 되었다. 역설이..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3) 새벽 3시 냉수마찰과 '류영모 체조법' (43) 새벽 3시 냉수마찰과 '류영모 체조법' 아랫배에 숯을 굽듯 단전을 구워라 [다석 류영모[그림=박상덕화백]] 1919년경 스페인독감 때도 멀쩡했던 비결? 1919년은 3·1만세운동으로 기억되는 해이지만, 들끓는 전염병의 해이기도 했다. 그 전해인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들어왔고, 1919년 8월에는 콜레라까지 번졌다. 두 전염병은 1920년까지 기승을 부렸는데,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18만명이나 됐고 콜레라 사망자는 2만4300명에 이르렀다. 류영모의 식구들도 모두 '독감'을 앓았다. 태어난 지 50일밖에 되지 않은 둘째 아들 류자상이 기침을 몹시 했고, 사촌집에서는 사망자도 있었다. 어린 시절 유난히 몸이 약했던 류영모..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2) 하루종일 무릎 꿇고 산 분을 아시오 (42) 하루종일 무릎 꿇고 산 분을 아시오 기도는 입으로 않고 몸으로 하는 것, 석가 가부좌보다 힘든 궤좌 수행자 깨달음 얻기 전엔, 앉은 채 안 일어난다 류영모의 50대는 공자의 지천명(知天命)을 실천하는 시기였다. 몸나를 얼나로 거듭나게 하는 '준비된 결행'이었다. 식색의 단단(斷斷, 끊고 끊음)으로 단단히 시작한 뒤, 그는 눕고 앉는 자리에 '단단한 죽음'을 깔았다. 그 뒤에 할 일은 칠성판 위에 꼿꼿이 앉는 일이었다. 부처는 가부좌(跏趺坐)로 앉았다. 가(跏)는 반대쪽 다리를 넓적다리 위에 올리는 것이고 부(趺)는 발등이란 의미다. 가부좌는 발등을 반대쪽의 허벅지에 얹어놓고 허리를 쭉 펴고 바르게 앉는 자세다. 가부좌를 한 까..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1) 나는 밤마다 죽는다, 류영모의 칠성판 '메멘토 모리' (41) 나는 밤마다 죽는다, 류영모의 칠성판 '메멘토 모리' 40년간 널판 위에서 잠들고 생활하다 [다석 류영모.] 우린 태어날 때부터 사형선고 받은 몸 식색(食色, 식사와 정사)을 끊기로 한 일은, '몸'을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삶의 주인 노릇을 하려는 몸을 삶의 수족(手足)으로 길들이려는 것이었다. 삶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 식욕과 색욕으로 나를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 식(食)을 죽이고 색(色)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식색을 죽이는 것은 몸을 죽이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라면 실없는 호언일 수 있지만, 이후 평생이었던 40년이라면 극기(克己)에 이른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했..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40) 부부 침실에 만리장성을 쌓다 (40) 부부 침실에 만리장성을 쌓다 나는 51세까지만 범방(犯房)을 했습니다 [다석 류영모와 부인 김효정.] 왜 식사를 줄이는 동시에 해혼을 했을까 1941년 2월 18일 아침에 온 가족을 모아놓고 51세의 류영모는 아내 김효정과의 해혼(解婚)을 선언했다. 결혼(結婚·혼인을 맺음)을 하였으니 그것을 푸는 '해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해혼은 부부 간의 성생활을 끊는 것이었다. 남녀의 육체적인 결합을 푸는 것이다. 부부가 갈라서는 이혼과는 다른 개념이다. 최근 졸혼(卒婚)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는데, 이 말의 뜻은 결혼행위를 졸업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이혼이 지니고 있는 결별이나 불화(不和)와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누그러뜨리고자 함이며 별..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39) '100년 비만문명을 꾸짖는 영성의 만찬' 류영모의 하루 한끼 (39) '100년 비만문명을 꾸짖는 영성의 만찬' 류영모의 하루 한끼 세끼는 짐승의 식사, 한끼는 신선의 식사 [다석 류영모] 그가 실천한 한끼는 '영성의 만찬' 류영모가 하루 한끼의 삶을 선언하고 실천한 것은 육체의 건강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영성을 가꾸기 위해 건강한 몸은 꼭 필요하기에, 건강은 신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게 육체는 벗어버릴 허물이나 옷일 뿐이었다. 육체 위에 다시 옷을 입는 것은 육체가 옷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옷은 아무리 겹겹이 입었더라도 다 벗어야 할 것들이다. 그가 실천한 '한끼'는 오직 인간이 지닌 짐..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38) 하루 한끼 먹고 40년, 91세 까지 살다 (38) 하루 한끼 먹고 40년, 91세 까지 살다 시체를 뭘 그리 열심히 먹는단 말이오, 음식물은 동식물 죽인 것 [다석 류영모] "식색(食色)을 금욕하겠다" 51세의 선언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것을 실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류영모는 몸나가 죽어야 얼나가 산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육신을 죽여야 성령이 산다는 말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석가의 말이나 예수의 말은 내 마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한 번 죽어야 마음이 텅 빕니다. 한 번 죽은 마음이라야 빈탕(허공, 우주)의 마음입니다. 빈 마음에 하느님 나라와 니르바나 나라를 채우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1941년 2월 17일..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37) '북한산 톨스토이' 류영모와 '질투'의 최진실 (37) '북한산 톨스토이' 류영모와 '질투'의 최진실 고통과 쾌감은 결국 같은 맛이다 [1992년 방영한 MBC 미니시리즈 '질투'의 한 장면. 고인이 된 최진실이 구기동 현대빌라를 무대로 열연했다. ] 최진실이 열연하던 그곳이, 류영모의 뇌곡산장 혹시 1992년 여름(6~7월)에 히트한 MBC 미니시리즈 '질투'를 기억하는가. 남녀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을 다룬 스토리로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였다.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연기자 최수종과 최진실이 주연을 맡았다. 언론에선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분석하며 "파라솔 밑에서 마시는 톡 쏘는 사이다 맛"(1992년 7월 2일자 동아일보)이라는 평가..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36) 삶은 하루살이 생선토막이오 (36) 삶은 하루살이 생선토막이오 사학자 문일평과의 교유, '조선심'과 '씨알님'이 만나다 [호암 문일평 선생.] 조선심(朝鮮心)을 계몽한 사학자 문일평 호암 문일평(1888~1939)은 망우역사공원에 묻혀 있다. '한국학'의 대가로 불렸던 조선일보 기자 이규태(1933~2006)는 문일평을 학문적 선배로 존경했다. 묘지 비석에는 이규태의 글이 새겨져 있다. "불우한 세대를 짧게 살면서 큰 뜻을 세웠기로 그 그늘을 오늘에 드리우고 여기 고히 잠들고 계시다. 얼굴에 비해 눈이 큰 편이었으며 항상 한복에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담배는 안 하시고 술만 드시면 일제의 압제에 분통을 터뜨려 화를 못 가누곤 하였다. 이웃에 어려운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벽..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35) 스무살에 나는 짐승 노릇을 면하였다 (35) 스무살에 나는 짐승 노릇을 면하였다 십자가에 기댈 것이냐, 십자가를 짊어질 것이냐예수는 왜 12살 때 잠깐 세상에 얼굴을 비쳤을까 예수의 생애는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누가복음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누가복음은 베들레헴에서의 탄생과 8일째 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봉헌식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의 고향인 갈릴레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간다. 이후 어린 시절의 모습은 확인할 수가 없지만 문득 중요한 기록 하나가 등장한다. 예수 나이 12세 때의 일이다. 예루살렘에서 파스카(πασχα, 유대인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날, 유월절(逾越節)이라고도 한다) 축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소년 예수가 보이지 않아 부모..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34) 없이 계신 하느님, 얼마나 시원한 말인가 (34) 없이 계신 하느님, 얼마나 시원한 말인가 '50년간 신의 부재를 느꼈다'는 마더 테레사... 류영모의 역설 [다석 류영모. [그림 = 박상덕] 독생자와 부활에 대한 새로운 접근 1937년 류영모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새롭게 밝히며 '독생자론'을 편 것은, 한국 종교사상사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독생자(獨生子)는 독자(獨子, 외아들)와는 조금 다른 말로, 기독교 용어다. 헬라어 모노게네스(Monogenes)에서 온 이 말은 어원적 의미가 다소 모호하다. 뒤에 붙은 게네스(genes)가 '되다' '태어나다' '파생하다'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무이한 존재', '유일무이하게 태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