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조셉머피. 요한복음 18장 해설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조셉머피

조셉머피. 요한복음 18장 해설

柏道 2022. 8. 23. 18:10

조셉머피. 요한복음 18장 해설


요한복음 18장

(1) 예수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케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가시더라. 거기에 동산이 있는데 주와 주의 제자들이 들어가더라. (2) 주를 배반한 유다도 그 장소를 알고 있었으니 이는 예수께서 자주 그 곳으로 제자들과 함께 다니셨기 때문이라. (3) 그때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온 경비병들을 이끌고 등불과 햇불과 무기들을 가지고 그 곳에 오더라. (4)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에게 다가올 모든 일을 아시고 나가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하시니 (5)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주께 대답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니라.”고 하시더라. 주를 배반한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더라. (6) 주께서 “내가 그니라.” 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리더라. (7) 그때 주께서 그들에게 다시 물으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하시니 그들이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라.”고 하더라. (8)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 ‘내가 그니라.’고 내가 말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길을 가게 하라.”고 하시니 (9) 이는 그가 말씀하신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 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함이더라. (10) 그때 시몬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리더라. 그 종의 이름은 말코더라.

무슨일에든지 참되며,무슨일에든지 정직하며,무슨일에든지 의로우며, 무슨 일에든지 순결하며, 무슨 일에든지 사랑스러우며, 무슨 일에든지 좋은 평판을 얻고, 만일 무슨 덕이 있거나 무슨 칭찬이 있으면 이런것에대해서 생각하라. 빌립보서4:8

이 같은 진리를 명상할 때 마음의 정원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위대한 진리에 집중해 머물러 있으면 기쁨과 즐거움의 기름을 짜내는 게세마이 언덕에 있는 것이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라는 4절의 질문은 항상 예수, 즉 우리를 구원해 줄 무언가를 찾는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과 이익이 되는 것을 의식 속에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이다.내가 그니라 고 답변하는 음성이있다.

6절에서는 주께서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리더라 라고 한다. 이 절은 물론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문자적인 면에서만 보면 이 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횃불과 무기를 지닌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어떤 신사를 보고 땅에 엎드리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는 문자적인측면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 이이야기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유일한 방법은 문자 이면의 정신적 가치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모든 잘못된 개념과 이론, 부정적이고 공포에 가득 찬 사고는 땅에 엎드린다. 즉 그것들은 당신 마음에서 쫓겨나고 힘을 잃는다.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란 잘못된 개념들을 버리고 나는I AM이라고 불리는 정신적이고 유일한 최고의 존재를 인정하고 충
성을 다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내가 그니라. 이 구절에서 그라는 단어는 나중에 덧붙여졌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은 게세마이 언덕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조용히 앉아서 의식을 소망, 목표에 집중하고 그것에 믿음을
유지하라.의식이 목표한 것에서 벗어난다면 당신의 이상과 그것의 실체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되돌려 놓아라.

 

그러므로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길을 가게 하라. 18:8

당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당신은 하나님 외에 다른 힘을 인정해서는 안 되고 다른 힘에 대한 모든 믿음을 거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은 올바르게 단련되고 소망의 실체에 대한 명상속으로 완전히 흡수된다.


10절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리더라 란 우리가 객관적 증거, 외부현상이나타인의관점을듣는것을거부해야한다는것을 상징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하시더라. 18:11


잔은 사고를 받아들이는 당신의 마음이다. 커피를 잔 속으로 붓듯이 마찬가지로 당신 계획 안에 생명, 사랑, 느낌, 그리고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다. 모든 씨앗은 그것에 맞는 열매와 양식糧食의 약속이다. 당신의 소망은 그것의 실현에 대한 예언이다. 유일하게필요한것은마음속에서받아들이는것뿐이다. 그때 군대와 대장과 유대인 경비병들이 예수를 붙들어 묶으
니라. 그리하여 주를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이는 그가 그해의대제사장인카야파의장인이기때문이더라. 18:12-13


안나스(지성, 현재의식)는 카야파(율법의 아버지)의 장인이다.법칙은다음과같다.나는내자신에대해서느끼는것그자체이다. 카야파는 씨앗 또는 잠재의식을 의미한다. 현재의식은 잠재의식의 아버지이다. 왜냐하면 현재의식은 잠재의식을 조정하고어떤종류의 인상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사람 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18:14


예수님,즉우리의소망이부활하기위해서는반드시먼저죽어야만한다는것을말하고있다.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죽으면많은열매를맺느니라. 12:24

 


트라워드는 씨앗(소망)이 그 자체의 과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당신의 소망은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그 자체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지금 당신이 갈망하는 상태에 있다고 믿고 느끼면, 이전 개념이나 당신에 대한 이전 평가에 대해서는 죽게되고새로운개념에대해서는부활하게된다. 기도할 때 당신은 문제나 곤란한 상황에서 의식을 멀리 떨어지게 하고 소망이 곧 이루어질 것을 알면서 소망의 실체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당신을 제약하는 모든 것들을버리고 당신 세계에서 실현되기 원하는 것과 정신적으로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이 지금 무엇을 인식하고 있든지 그것은 당신의 믿음을 나타낸다. 이 장을 읽어감에 따라 기도하는 대상이 실체임을 인식하고 외부의 것들에게 힘을 부여하던 행위를 단호하고확고하게멈출것이다.그래서당신의이상에반대되는 것들, 그리고 다른 힘들과 장애를 더 이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게된다.


나는 몸 일부가 마비되어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에게 몸이 건강했을 때 평상시 했던 일들, 예를 들어 자신
의 사무실에서 걷고 책상을 만지고 전화를 받는 것과 같이 그가 치유되었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했다. 이러한 기도를 몇 주 실행한 어느 날, 그의 부인과 간호사가 외출 중일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는 약 12 피트 쯤 떨어져 있었는데 그는 그 전화를 받았다. 전능의 힘은 그의 의식의초점을따라흘렀고치유는뒤따라일어났다.심리적으
로 말해서 그의 지적 상像은 마음의 암실 속에서 현상現像되었고 완벽한치유가뒤따르게되었다.그는뇌에서다리까지도달하는임펄스의흐름을방해하는지적장애물을가지고있어서걸을수없었다. 하지만 그가 전능한 존재에게 의식의 초점을 옮겼을 때 치유력은전능한존재와조화되지않는모든것들을분해하면서흐르게되었다. 그는절뚝거리는이전의믿음에대해서는완전히 죽고,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유다(문제, 질병, 결핍)처럼 자살했다. 즉 그의 과거 상태는 죽고 예수님 또는 구원의 의식 상태는 부활했다. 새로운 상
태에 자신의 의식을 두고서 마치 그것들이 사실인 듯, 정신적인 세계 속에서 살았다. 이로써 과거의 상태는 생명을 잃고, 새
로운 상태는 결국 그 안에서 확고한 것이 되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자살했다(과거의상태의죽음)고말할수있다. 아무도 생명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으나...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10:18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전에 현재 상태에서는죽어야한다. 우리는이장에서가장중요한부분을다루겠다. 27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가 마태복음 26장 34절에도 나온다.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 할 것이다. 하나님 혹은 내부의 영적인 힘이 아닌 어떤 다른 주인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3이라는 숫자는 깊은 믿음이나 확신을 나타낸다. 우리를 조정하고 지배하는 어떤주인이나 다른 힘이 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노예이다. 많은 사람들은날씨나보이지않는바이러스의노예가되어서만약독감에라도걸리면이런것들로원인을돌린다.


베드로는 세 번 부인했다 란 오직 하나의 힘에 대한 믿음을 요한복음 18장 가지고 그 외의 다른 힘에 굴복하지 않는 의식 상태나 단련된 태도를 의미한다.세 번 부인하다 란 어떤 논쟁을 허용하지 않는 믿음의 주관적 상태이다. 창조행위 후에 닭은 항상 태양의 탄생(계몽된 현재의식)을 알리며 운다. 동이 트면서 두려움과 의심의 그림자는 저 멀리 사라진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승리의 노래를 상징한다. 그 노래를 부르게 될 때 인간은 창조자이자 모든 문제의 구원자인 내부의 주이자 마스터 IAMness에게 온마음을 다하게 된다.

 


(31)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를 데리고가서 너희의 율법에 따라 재판하라.”고 하니, 유대인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누구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적법지 못하이다.”라고 하더라. (32) 이는 예수의 말씀, 즉 주께서 어떤 죽음으로 죽으실 것인지 예시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게 함이더라. (33) 그때 빌라도가 다시 재판정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하니 (34)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그 말이 네 스스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해 준 말이냐?”라고 하시더라. (35) 빌라도가 대답하기를 “내가 유대인이냐? 너의 민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나에게 넘겨주었느니라.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하니 (36)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나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라. 그러나 지금은 나의 왕국이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시더라. (37) 그러므로 빌라도가 주께 말하기를 “그러면 네가 왕이냐?”고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왕이니라. 이를 위하여 내가
태어났고, 이런 연유로 내가 세상에 왔으니 진리를 증거하려는 것이라. 진리에 속한 자는 누구나 나의 음성을 듣느니라.” 고 하시니 (38) 빌라도가 주께 말하기를 “진리가 무엇이냐?”고 하더라. 이 말을 한 후에 그가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와서 말하기를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하였노라. (39) 그러나 유월절이면 내가 한 사람을 놓아 주는 것이 너희와의 관례인데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놓아 주기를 바라느냐?”고 하니 (40) 그때 그들이 모두 다시 소리질러 말하기를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고 하니라. 그런데 바라바는 강도더라.

 

빌라도는 현재의식이고, 항상 판결을 내린다. 당신도 당신의 생각이나 결심 혹은 마음속에 내린 결론에 기초해서 하루종일
판결을내리고있다.여기서 재판정은 명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마음의 왕국을 말한다. 33절에서는 구세주가 누구인지는 현재의식이 알지 못하고 오로지 느낌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36절에서 우리의 부하들은 우리의 사고,계획,느낌,그리고지적,정신적 법칙의 이해를 의미한다. 마음의 작용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면 결과는 필연적이고 모든 장애들은사라진다.외부적인 방법으로는 내부의 평화에 도달하지 못한다.우리가 힘에 의해서 무언가를 강제로 얻는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다. 사랑은 자유를 주며, 영원히 자기 자신을 내어준다. 또한 만물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영이다.


37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그의 사고, 감정, 그리고 자신의 반응에 대해서 왕이기 때
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사고를 다스릴 수 있고 모든 부정적 개념과 잘못된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인간은 자
신의 영역에서 왕이다. 당신의 왕은 당신의 의식이다. 사고들은 항상 당신의 명령(믿음)을 따르고,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
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 사고와 느낌에 대해서 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절은 우리가 신의 존재를 목격하고
표현하고, 우리의 지배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요한복음에 대한 강연에서 어떤 알코올중독자에게, 당신이 알코올을 지배하는 왕이고 주인이라고 말했다.그는 자유롭고 행복하고 건강했을 때 하던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이 지적 상을 계속 그림으로써 자
신의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 힘을 끌어내 이 힘이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 것임을 알았다. 그가 이 단순한 진리를 고수해나
갔을 때 자신이 보았던 마음의 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의 비전은 경험 속에서 구체적인 실체가 되었다. 마음속 그림은
마음의 평화와 완벽한 절주가 되어 나타났다. 나의 육신 속에서 나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38절의 의미는 현재의식, 즉 각자의 세속적 마음은 항상 “진리가무엇이냐?”고묻는다는것이다.진리는항상조용하다.이것은 논쟁, 논증, 이론, 독단, 교리를 뛰어넘는다.진리 란 당신자신의 실체를 느끼고 접촉해보는 내적 경험, 내적 인식, 또는 내적 느낌이다. 당신의 의식이 사람들과의 관계, 외부 세상과의 관계, 당신의 모든 경험들을 결정한다. 성서는 “나는 진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당신 안에 있는 신의 존재는 진리이고,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변하지 않는 실체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들의 실제적 원인은
주관적요인이다. 2더하기2는 4가 된다는 사실은 논쟁할 수 없다. 진리는 논쟁을 허용하지 않는다.나는 최근에 어떤 남매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동생은 딸기를 먹으면 뾰루지가 생기고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는 여자 아이의 주관적인 공포 때문이다. 그녀는 딸기를 맛있게 먹고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이것은 정신적인 물질이고 나의 소화기관을 통해서 아름다움으로 변형된다.”이제딸기를먹고도더이상어려움을겪지않게되었다.이 상대적인 세상의 모든 진리는 절반의 진리라고 불린다.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덩굴 옻나무가 당신에게 심각한 뾰루지를 준다고 믿으면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겪게 될 것이다. 나는 병사들이 덩굴 옻나무 위에서 자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았다.진리란 무엇인가? 이것은 주관적인 믿음이다. 당신은 이 상대적인 세상에서 혼란,논쟁,갈등,싸움을보게될것이다. 그러나 당신 내부의 깊은 곳에는 무한한 존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수면을 취하고 있다. 이절대적인존재속에는모든축복,평화,화합,완벽성이있다.이것이 에머슨이 말한, 조용한 현명함이다. 신은 고요함 속에 존재하고 진리는 고요 속에서 살고 있다. 진리는 고요 속에서 들리고 느껴진다. 진리는 고요 속에서 전달된다. 왜냐하면 신은고요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이얼마나훌륭한가!

 


당신은 지극히 높은 존재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서 당신 소망이 이미 이루어진 모습을 그려라. 당신이 믿는 대로 그것은 그대로 당신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이 고요속에서신과 홀로 있을 때 고무鼓舞,인도引導,깨달음이 찾아온
다.성서에나오는등장인물들은당신안에있다.그것을2천년 전의 역사적사건으로보아서는안된다.


유월절이면 한 사람을 놓아 주는 것이 관례라는 39절의 내용은기도의 과정과 기교를 말해준다.유월절은 과거의 의식상태
에서 새로운 의식상태로 옮겨가는pass over, 의식의 변화를 나타낸다. 앞서 말했던 알코올중독자는 이 유월절의 방법으로 건강과 행복이라는 마음속 그림에서 현실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옮겨갔고,이로써살아있는실체로써마음의평화와절주를얻게되었다.


대중들(당신의 사고와 소망)은 외친다.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고 하니라. 그런데 바라바는 강도더라. 우리 모두는 바
라바, 즉 우리에게서 평화, 일치, 번영을 빼앗아가는 의식상태를 제거하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아프면 건강(우리를 구원하
는예수)을간청하고바라바(질병)를풀어주고싶어한다. 1년 동안 대장염을 앓고 있는 어떤 남자가 그의 동료에 대한 분노를 버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만약 분노(바라바)를 풀어주고 사랑과 선의(예수님)로 마음을 채운다면 치유될 거라고 말했다. 그의 분노는 고통이 되풀이 되도록 그를 묶고 있었다. 그는 동료에게 신의 축복, 즉 평화, 건강, 기쁨, 생명, 자유 등을 기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치유되었다. 그의 마음속 사고들은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외쳤고 이로써 신체조직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만약 당신에게 이루지 못한 소망, 꿈, 목표가 있다면 틀림없이 마음 속에서 공포나 걱정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거나 장애물
을 보고 있을 것이다. 정신적, 감정적으로 목표와 하나가 되는 것을 통해 소망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여겨라. 목표의 실현을
자주 마음속에 그려봄으로써 마음속에 그것을 건설하라. 마치 집을지을때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듯이 계속된 분위기와
느낌은 점점 커져서 결국 의식 속을 당신이 원하는 사고와 느낌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 계속해서 비전에 충실히 머물러 있
다면 당신은 당신 이상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해서 그것을 현재의식 상태에서 내적 인식의 주관적 상태, 즉 잠재의식 안의 형
체로 만들 수 있다.


당신은 빌라도, 예수, 바라바, 그리고 대중들이다. 당신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지적으로 바라바를 풀어주고 당신의 예수
(소망)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즉 그것을 의식 속에 고정시켜야 한다. 당신의 소망은 죽거나 사실로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원하게 될 것이다. 기도는 죽음과 탄생의 과정이다. 우리는 항상 과거의 상태에 서는 죽고 새로운 상태에서 살아나야한다.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는 드라마는 신비적인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사형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도 당신의 구원자를 죽일 수 없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구원자이다.신에대한 믿음이 당신의 구원자이다. 우리는 이 기도의 이야기를 왜곡했고 가학적이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우리는 유대인이라 불리는 민족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자신들의 신성을 깨닫는 아름다운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