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조셉머피. 요한복음 12장 해설 본문
조셉머피. 요한복음 12장 해설
요한복음 12장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오시니, 그 곳은 주께서 죽었던 나사로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곳이라. (2) 거기서 그들이 주를 위해서 저녁을 마련하였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나사로는 주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하나더라. (3) 마리아가 매우 값진 감
송 향유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으니, 그 집이 향유 냄새로 가득 차더라. (4) 그때 그의 제자 중 하나로 주를 배반한 자인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기를 (5)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고 하니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인 까닭에 돈 주머니를 맡아서 그 안에 넣은 것을 가져감이더라. (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녀를 가만
두어라. 그녀는 나의 장례 날을 위해서 이것을 간직해 둔 것이라. (8)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나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느니라.” 고 하시니라. (9) 그때 유대인의 큰 무리가 주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알고 왔으니, 이는 예수뿐만 아니라 그가 죽은 자들로
부터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더라. (10)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도 죽이려고 모의하였으니
유월절passover이란 넘어가다pass over, 즉 문제나 장애의 극복,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감의 혼란과 횡포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 유월절 행사 중에 우리의
의식이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간다.
유대인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해 매년 축제를 거행한다. 이집트란 비참함과 고통 그리고 보이지 않는 테러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채워진 인류의 마음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은 마음의 감옥이다. (진정한 감옥은 벽돌 벽이나 쇠창살로 이루어진 교도소가 아니다.) 우리는 이집트를 떠나서 마음과 영혼의 진정한 세계로 가야한다. 이것이 예수가 말하는 천국이고 사도 바울이 언급한, 사람이 만든 집이 아니고, 천국 속에서 영원히 거하다 의 의미이다.
2절에서는 나사로가 이 연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우리의 의식이 우리를 고양시켰기 때문에 지금 원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의 발에 붓고 란 사랑과 기대의 즐거운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발은 이해를 의미하고 예수는 진리 또는 정신적 인식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손에 있는 향유는 영원한 진리, 그리고 삶의 정신적 가치 또는 마음의 성스러운 술잔으로부터 사랑을 쏟아내는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과 그의 사랑에 대해서 경배하고 성스러운 것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물론 성서에서 말하는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소망의 이루어짐이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 상태는 당신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즉 기도가 이루어진 기쁨을 알기 전에 그것을 사실로 느껴야 한다. 성서에서 그 집이 향유 냄새로 가득 차더라 라는 의미는 이루어진 기도의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내부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접촉한다.
그녀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으니 란 하나님의 힘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전능이 우리 믿음에 응답할 때, 우리기도는 이루어진다. 우리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하나님의 실체에 믿음을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머리카락으로 우리 발을 닦게 되었다. 이것의 의미는 유일한 최고의 힘에 대해서 믿음을 다하고, 그 외 다른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에게 머물고, 전능자의 그림자 밑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 분의 손을 치거나 그 분께 말하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할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다니엘 4:35
6절에는 유다가 도둑인 까닭에 돈 주머니를 맡아서 그 안에 넣은 것을 가져감이더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어떤 문제에 대한 해방과 해결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에는 어떻게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이룰 수 있는가를 가르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유다란 우리의 문제 또는 제한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가 들고 다니는 돈이나 돈 주머니는 우리의 결핍과 부족을 상징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나 란 지혜, 진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대한 우리의 결핍감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쁨, 웃음, 선의에 대해서는 가난하다.
비록 그들이 백만 불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앎과 그분의 법칙에 대해서는 매우 가난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난한 상태가 당신의 문제이다. 이 가난한 상태는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를 일으켜 극복하도록 재촉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유익한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신성과 천성적 힘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은 문제를 통해서 성장한다. 지금 당신을 덮고 있는 문제의 암흑 속에서 갈라진 작은 틈의 빛을 찾아보아라.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기crisis라는 단어의 옛날 의미 안에는 기회라는 뜻도 있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힘과 지혜를 불러와서 문제를 해결하고 신체를 치유하고 절망의 구름을 없앨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었을 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 사랑을 잃었을 때야말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실체를 잃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나 인류의 의식으로 최면 된 상태의 사람들은 건강, 화합, 하나님의 부유를 잃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동료에게 “혹시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라. 아마 그들은 “아직 걸리지 않았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들은 곧 그것이 걸릴 것을 기대하고 있는 말투이다.
우리 안에 있는 유다는 항상 결핍감을 상징하는 주머니를 들고 다닌다. 우리가 해방이나 우리 문제의 해결책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결핍감을 버려야 한다. 유다는 배신을 한다. 배신betray을 하는 것은 드러내는reveal 것이다. 당신의 문제(유다)는 당신의 구원자(당신의 소망)를 드러낸다. 모든 어려움과 문제와 제한은 소망의 형태로 그 자체의 해결책을 갖고 있다. 소망의 실현이 항상 우리의 구원자이다.
당신의 문제, 즉 유다는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에서 물러서서 당신의 지성을 주관적인 지혜와 접촉시켜라. 그러면 당신이 가야할 길과 당신이 선택해야 할 것을 드러낼 것이다.” 만약 당신이 더 높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에서 해방될 것이다.
전기 기술자는 집에 전기가 끊겼다면 전기에 대한 높은 지식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당신이 전기에 대한 원리를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것은 당신에게 있어서는 문제가 된다. 지금 당신의 유다를 보고 그것을 즐겨라. 이것이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유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 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결코 제한적이고 병적인 상태를 향해 주의를 주지 말라. 결코 부정적인 감정 속에 묻히지
말라. 보잘것없고, 비참하고, 수준 낮은 것을 향해 우리 의식을 둔다면 그것들은 우리 삶 속에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문제와 싸우고 저항하면 그것들은 더 커지게 된다. 당신의 예수인 당신의 이상적 상태와 하나라는 것을 느껴라. 두려움 없는 소망은 이루어진다.
(12) 명절에 온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
는 말을 듣자 (13) 종려나무 가지들을 들고 주를 맞이하러 가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은 복이 있도다.” 라고 외치더라. (14) 예수께서 어린 나귀 한 마리를 찾아서 그 위에 타시니 기록되기를 (15) “시온의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도다.” 라고 함과 같더라.
이것은 일요일 종려나무 이야기이다. 종려나무는 승리, 성취를 상징한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탔다고 묘사된다. 나귀 새끼는 아직 훈련받지도, 길들여지지도 않은 우리의 새로운 이상과 소망, 즉 아직 고삐를 매지 않은 것이다. 예수께서 짐승 등을 타다 란 우리는 활기에 찬 의식이나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 하고, 우리가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에 들어가기까지 그것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
시 말해서 그 분위기가 뚜렷해져 마음속에서 그 소망에 관
해 평화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정신적으로 그것을 받아들
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현재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에 더 이상 분쟁이 없을 때 기도는 이루어진다. 그렇게 정신
적으로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한 것들은 내부의 영이 현실로 만들어낸다. 의식 속에서 받아들인 것만을 현실에서 받게 된다.
나귀 새끼를 타다 란 올바른 분위기를 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내를 의미한다. 말 조련사는 단호하면서도 다정하다. 그는 말에게 누가 주인인가를 각인시킨다. 당신의 주도적인 마음태도가 주인이다. 이것이 당신이 가야할 길을 결정한다. 그러면 우리는 “호산나”라고 외친다.
호산나라는 말은 평화 또는 신성한 해결책을 의미한다. 주의 이름으로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은 복이 있도다. 오시는 그분은 우리의 소망이다. 주(법칙)의 이름(속성)은 안으로 각인된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복이 있도다 란 우리의 소망이 실
현되는 것을 말한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영광받을 시간이 왔도다. (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음은 항상 형태의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새로운 관념을 가지면 우리의 생각도 바뀐다. 이 변형과 변화는 과거 사고의 죽음이고 우리는 일상적인 삶의 결핍, 제한에서 빠져나온다.
한 알의 밀이 땅(우리의 의식)에 떨어져 죽다 라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나 소망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있는 한 좌절을 느끼고 행복하지 못하다. 마음속의 전쟁은 일어난다.
우리 소망과 지적, 정신적으로 동일시하면 소망은 죽어서 감정의 주관적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얼마 후 소망은 외부로 나타난다. 그러면 요한 계시록- *박사님의 요한 계시록을 설명한 책 Pray your way through it 참조-에서 말한 새로운 하늘과 땅이 오게 된다.
새로운 하늘이란 당신의 새로운 의식상태를 말하며, 이 새로운 지적 세계에 부합符合하여 당신의 세계를 재창조하게 된다.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과거의 인간과 과거의 사고와 개념은 죽어야 한다.
이 장의 나머지 구절 중에 이미 설명한 것을 가능한 생략하고 중요한 구절만을 다루겠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영생까지 보존하리라. 12:25
많은 사람들은 이 훌륭한 구절을 삶의 안락과 기쁨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지나친 겸손으로 주위 사람의 관심을 피하거나 혹은 신체를 학대하면서, 심지어는 채찍으로 자신의 신체를 때리는 것들이 진리를 위하는 행동이라고 믿는 것은 미신이고, 인간의 타고난 신성을 거부하는 성숙하지 못한 생각이다. 인간은 신의 영광과 부를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가 잃을 것은 신에 대한 잘못된 개념과 우리 자신에 대한 낮은 평가이다. 우리는 신과 하나됨을 주장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제한, 한계를 사랑(감정적 결합)하면 우리는 그것과 결합되어 하나가 된다. 계속해서 더욱 더 큰 제한과 한계를 만들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은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이다.
삶의 어떤 열정도 가지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생명을 잃는 것이고,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죽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존하리라.
성서의 미워하다는 의미 속에는 거부하다, 거절하다는 뜻도 있다. 부정적인 상像과 부정적인 암시를 거부할 때 우리는 이전 삶을 미워하는 것이다. 마약 중독자가 자신을 지적으로 개조해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이전 삶을 미워한 것이다. 그의 습관적 사고가 그를 마약 중독자로 만들었다. 그가 잠재의식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엄청난 존재에 대해 배워서 사용하게 되면 삶 속에서 대단히 훌륭한 것을 이룰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작업터라고 불리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상을 그리고 있다.
잠재의식은 그의 지적 틀에 따라 정확한 상을 충실하게 만들어낸다. 우리의 습관적 사고가 우리의 운명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습관적 사고가 현재 우리의 상태를 만들었다. 자신의 지적인 틀을 바꾸면 영생永生을 이루게 된다. 이것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히 평화, 일치, 번영의 기쁨을 누린다는 것이다. 신의 얼굴(진리)을 본 사람이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신의 작품을 보자. 만약 우리가 올바르게 보면 풍요로운
삶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미소에서, 연인들의 입
맞춤에서, 그리고 친구의 미소 속에서 신을 보게 될 것이다.
또 내가 땅에서 들리우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오
리라. 고 하시니라. 이것을 말씀하심은 주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으실 것인가를 의미하심이라. 12:32-33
이것이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의 높은 지점까지 오를 수 있는 가를 말하는, 비유이자 뛰어난 심리적 표현이다.
기도할 때 당신은 당신이 이미 받았다는 곳까지 관념을 고양시켜야 한다. 그러면 그것의 실현은 뒤따른다. 당신의 육체적 오감은 기껏해야 의기소침한 것만을 전달할 뿐이다.
기도할 때 당신은 내부의 정신적 진리의 영역으로 가서 거기에 마음을 정착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오감을 뛰어 넘는 힘과 용기, 믿음을 받는다. 그러면 당신은 고양되어 과거의 상태는 죽게 되고 의식의 새로운 상태는 부활한다. 이
것이 바로 심리적 죽음이다.
이 세상 속에서 당신이 보는 것을 신에 대한 지식에 의해서 올바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의기소침한 상태에서는 결코 유익한 것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산 위로(의식의 높은지점) 올라가서 새로운 상태에 대한 스릴을 느껴야 한다.
우리의 비전을 보고 그것의 실체를 느끼는 것을 통해 거슬
러 올라가지 않으면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얻을 수가 없다.
너희는 빛이 있을 동안에 행하여. 12:35
빛이란 우리가 불렀을 때 우리를 인도하는 내부의 신, 신
의 지성을 말한다. 신이 우리의 모든 길을 인도한다는 믿음
을 갖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오직 올바른 행동과 표
현이 우세적이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혼란 속에 있다면
어둠 속을 걷는 것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진리를 보려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눈이 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거부
하고 내부의 힘에 대해서는 눈먼 상태로 남아있다. 과거의
원한과 분노에 집착해서 마음이 굳어져 있다. 그들은 부정적 감정과 동일시했고, 종교적 편견으로 가득 차있다. 만약 그들의 눈과 귀가 열려서 자신들에 대한 진리를 들으면 치유와 평화가 찾아온다.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 12:48
심판하는 이란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모든 심판은 아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니콜 박사는, 아들이란
당신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것은 또한 당신의 사고
를 의미한다. 당신 사고로써 당신은 스스로를 하루 종일 심
판한다. 우리의 지적상태가 우리를 심판하고 우리의 믿음과 확신에 따라 우리를 재창조한다. 우리를 비난하고 벌주는 사람은 우리 자신 말고는 없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준것은 바로 자신이기에, 실제 그의 존재와 그가 갖고 있는 것이나 그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의식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확신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심판한다. 우리는 어떻게 타인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는가? 우리는 병자를 보는가, 건강한 사람을 보는가?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이 아픈 것을 보고 “나는 그가 좋아지기를 희망한다.”라고 혼잣말을 한다면, 옳은 판단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환자를 올바르게 다루고자 한다면, 그가 이미 치유되었고 건강해졌음을 확신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의 말에 의해서 우리는 옳게 되고, 우리의 말에 의해서 우리는 옳지 않게 된다. 우리의 말이란 의식의 변화를 말하고 그것은 불변의 법칙을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행복하고, 빛나고, 완벽한 상태의 모습을 봄으로써 옳게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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