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조셉머피 요한복음 8장 해설 본문
조셉머피 요한복음 8장 해설
요한복음 8장
(1)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라. (2) 이른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나오시니 모든 사람들이 주께로 오더라. 주께서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시더라. (3)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주께 데리
고 와서 그 여인을 한가운데 세우고 (4) 주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이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서 그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령하였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 라고 하니
(6)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주를 시험하여 그를 고소할 구실을 얻고자 함이라. 그러나 예수께서 못 들은 체 하시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다 쓰시더라. (7) 그래도 그들이 계속해서 물으니 일어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
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고 하시더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다 쓰시니 (9) 그 말을 들은 자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늙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맨 나중 사람까지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뜨더라. 그리하여 예수께서 혼자 남으시니 그 여인이 한 가운데 서 있더라. (10) 예수께서 일어서시어 그 여인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여인에
게 말씀하시기를 “여인아,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더냐?” 고 하시니 (11) 그 여인이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나이다.” 라고 하더라.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 가라,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니라. (12) 그때에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결코 어두움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시더라.
예수께서 올리브 산으로 오르다 란 영적인 이해를 뜻한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내부에 계신 하나님에게 가면 평화, 진리, 아름다움이 당신에게 주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문자에는 비유, 상징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성서에서 소경, 불구, 귀머거리 등의 단어를 읽을 때 비록 신체기관은 정상이고 병이 걸리지 않은 상태이지만 거기에는 정신적으로 앞을 못 보고 진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성서의 심리적 의미를 듣는 것을 거부하는 정신적 귀머거리이다. 많은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장애물을 본다. 이런 사람들은 절뚝거리는 사람이다. 성서에 나온 모든 이야기는 문자적인 면보다는 심리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장에 나온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보는 것과 심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약 백 년전 큄비는 성서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해서 이런 해석
을 했다. 나는 이 이야기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큄비는 오래된 전통적 방식을 버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을 간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간음을 한 여인은 예전 동료들의 눈에서 보면 죄를 지은 것이다. 여기서 나온 돌은 그녀에게 가해지는 비난, 조소, 그리고 욕설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
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고 진리를 고수해감에 따라 자신 안에서 과오를 찾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과오를 찾는 것을 멈출 때, 세상 사람들도 그녀를 향해서 던지던 돌을 그만둔다!
이것의 의미는 인간이 아무리 생명의 법칙을 어긋나게 살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의식의 높은 위치까지 오르면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비난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매질하려
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의 없는 기계적인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고 새로운 인간이 되려고 하는 강한 열망과 마음, 감정의 변화만이 과거의 오류들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 있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 있다.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 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처럼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다.
이사야 1: 18
성서에서 말하는 간음이란 우상숭배나 정신적인 부도덕不道德을 의미한다. 공포, 증오, 분노의 부정적 분위기 속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간음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잘못된 믿음과 결혼한 것이고 진리를 더럽혔기 때문이다. 두 개의 권능이 있다든가 마귀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간음을 저지른 것이다. 질투, 중상中傷, 비
방, 비판, 분노, 혐오와 같이 사악한 것과 함께 할 때 우리 마음을, 즉 신의 성소聖所를 더럽히게 된다.
성서에서는 우리 마음이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에 자신을 동일시 한다면 우리 마음은 도둑 소굴이 된다. 우리는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 된다. 만약 적의敵意와 동일시하면 우리는 마음 속(주관적인 느낌, 감정)에서 간음을 저지른 것이고, 이 부정적 감정은 우리의 언변, 사고, 행동, 반응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된다. 인간이 부정적 상像과 감정의 지배하에 있으면 마음을 차지하는 이 부정적 사고에 의해서 마치 노예처럼 실제로 명령을 받는다. (나는 2장 “카나의 혼인식”에서 모든 기도는 실제로 혼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감정적, 지적으로 무엇과 동일시하고 있는가?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의 현재 느낌, 인식, 분위기, 또는 내적 확신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나 청사진이 어떤 마음의 아들을 낳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느낌으로부터 나온 아이들은 건강, 평화, 부, 사회적,
경제적 지위 등으로 나타난다. 당신의 의식과 느낌과 감정을 어떤 부정적 사고에게 준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간음을 저지른 것이다.
만약 부인이나 남편이 원한을 품고 있으면 그나 그녀는 이미 간음을 저지른 것이다. 왜냐하면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부정적 개념, 사고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괴팍하고 성급하고 항상 불평하는 사람은 그의 침대 안에서 사악한 사
고들과 같이 누워 생활한다. 그의 침대란 그의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사고 한 가운데 누워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영혼 속에서 휴식처를 찾았는가? 사고와 사랑으로써 내부의 신성으로 되돌아가서 우리 목표인 평화, 일치, 기쁨, 건강, 행복의 빛을 통해 타인을 보면 우리는 내부
깊은 곳에 있는 평화, 휴식처, 침착, 그리고 안전을 발견할 것이다.
영원한 진리에 맞춰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라. 내부의 정신적 힘의 영향 아래 자신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분노감을 느끼려고 하면 즉시 당신의 목표나 인생에서의 목적지를 생각하라. 그러면 바로 부정적인 사고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선의, 진리, 아름다움의 긍정적 느낌이 밀려올 것이고 정신적으로 전진하게 될 것이다.
(5) 모세는 율법에서 돌로 치라고 명령하였는데. 지금 이 뛰어난 드라마의 심리적 의미를 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돌을 던지고 있는가?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사업에서 많은 돈을 잃고 부도不渡를 맞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는 홀로 앉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그 돈을 투자했을까?” “실패할 거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아무 쓸모없어.” “나는 실패자야.” 이런 종류의 말이 그의 입에서 조용히 나오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유일한 비난자는 결핍과 실패에 대한 느낌, 그리고 우리의 목표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무능無能이다.
사생아를 낳은 음란한 여인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내부의 진리로 나아가서 자유를 요구할 수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눈은 너무 정결해서 부정을 보지 못한다. 사회와 세상은 그녀를 비난할지 모른다.
모든 심판은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이란 니콜 박사가 언급했듯이 당신의 마음이다. 이곳에서 당신이 품은 사고에 의해서 자신에 대한 판결을 선언한다. 음란한 여인은 그녀가 오직 해야 할 것은 자신에 대한 비난을 멈추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이미 그녀를 용서했다. 실제로 하나님, 절대자는 그녀의 과오나 공포에 대해서 아는 바 없다. 그러므로 그녀는 죄책감, 절망, 그리고 자기
비난의 감정을 씻어내고 평화, 사랑, 그리고 일치의 분위기를 자신에게 부여했다. 과거를 버렸고 과거 삶의 방식에서부터 자신을 완전히 멀리 떨어지게 했다. 지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그녀의 목표인 평화와 고결함, 행복과 자유와 동일시했다. 이렇게 함에 따라,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은 자
동적으로 응답한다. 마치 하늘에서 내린 이슬처럼 그녀에게 평화가 밀려오고, 하나님의 빛이 마음의 어두운 곳을 비추게 된다. 하나님 지혜의 동이 트고 공포, 죄책감, 자책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을 멈출 때, 세상 사람들도 그녀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게 된
다.
(10)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더냐? (11) 그 여인이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나이다.” 라고 하더라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몸을 굽혔다고 한다. 하나의 존재와 힘으로부터 떨어져서 잘못된 신을 경배할 때 우리는 몸을 굽히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의 높은 곳에서 내려와서는 안 된다. 우리 목표로부터 떨어져서는 안 된다. 공포, 걱정, 근심이 들어오도록 허용하면 우리는 몸을 굽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모든 좋은 것들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떨어지게 된다.
성서에서 마귀란 비난자, 또는 우리가 삶의 목표에서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정적 사고와 느낌을 상징한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기억하라. 그리고 당신이 왔던 원천으로 되돌아가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은밀한 장소*시편 91:1 참조인
당신 안에 있는 신성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라. 그러면 당신은 고양高揚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진리인 당신의 목표와 또다시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당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여기 존재한다.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생각할 때 자신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게 된다.
(7) 일어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시더라.
이것이 당신 마음속에 있는 잡동사니를 대하는 방식이다. 이런 잡동사니는 힘도 없고 그것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정신적으로 완전히 거부할 때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잠잠해진다. 그것들은 대단한 것이 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당신은 하나님과 그의 전능이 머무는 내부의 고요하고 은밀한 장소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 잡동사니의 목을 치고 그것들을 소각시킬 수 있다. 지금 하나님의 갑옷이 당신을 감싸고 있다.
(9) 예수께서 혼자 남으시니 그 여인이 한 가운데 서 있더라.
예수님과 여인은 바로 당신을 나타낸다. 당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 혹은 갖고자 하는 것과 하나 되었을 때의 당신을 나타낸다. 모든 비난은 사라졌고, 당신은 당신 이상과 홀로 남아 있다. 당신 마음속에서 응답 받은 기도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절만을 다루겠다.
(24) 이는 너희가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
트라워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 자체이다.” 당신은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느끼는 존재가 된다. 지금 당신이 갈망하는 상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계속해서 현재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당신 죄들 가
운데 죽을 것이다. 당신 죄들이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궁핍한 생활을 한 사람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영원히 공급해줄 수 있는 신의 부유를 믿지 못하고 부유의 느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면, 그가 어떤 종파에 속해있든지 또는 어떤 교리를 받아들이든지
계속해서 가난하게 살 것이다.
(31)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만약 지금 당신이 아프다면 마음의 평화와 건강의 실현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건강에 대한 소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의 구원자이자 구조자이다. 병의 외부적인 모습과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완벽한 건강의 느낌과 사고에 충실히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말 속에 거하는 것이다. 말은 당신의 사고, 느낌, 내적 인식이다.
내가 이 장을 쓰고 있는 도중에 어떤 여성분의 전화를 받았다. 최근에 출판된 나의 책 속에 있는 치유법을 그녀가 어떻게 실행에 옮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했다.
그녀의 다리는 썩어 들어갔고 페니실린이나 다른 항생제마저 소용이 없는 심각한 상태여서 걸을 수가 없었다. 하루 6-7차례 마음을 차분히 한 채, 눈을 감고 자신의 내부로 들어갔다. 외부에 나타난 현상인 자신의 다리에 대해서는 정신적으로 멀리했고, 결국 그것과 격리시킬 수 있었다. 무한한 치유력이 자신의 사고와 신체의 모든 원자에 가득 차서 자신을 깨끗하고 완전하고 완벽하게 만들기를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요구했다. 그녀는 20-30분 정도 이것을 행했다. 상상 속에서 걸어 다니면서 집 안의 물건들을 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자신이 건강했을 때 일상적
으로 했던 것을 했다. 그녀는 이것을 약 5분 정도 행했고 내부에 계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면서 정신적 치료를 끝냈다.
그녀는 완벽한 치유가 일어날 때까지 이 기도 방식을 지속했다(이것은 그녀가 말 속에 거하는 것이다). 수술 예정일에 의사 선생님은 그녀의 발이 완벽히 치유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리를 아는 것이란 마음을 움직여서 소망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는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말하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또 어떤 이는
“나는 이번 휴가에 런던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 당신은 자유롭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을 떠나서 당신이 런던에 있다는 것을 상상하고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상태의 자연스러움을 느낄 때까지 이 명상상태 속에서 수 분 동안, 아니면 그 이상 머물러라. 눈을 떴을때 당신은 런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그곳을 여행했다. 당신은 이것을 마음속에 고정시켰
고 결핍감을 자신으로부터 제거했다. 깊은 자아는 런던에 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할 것이다. 당신은 지적으로 원하는 것에 상응하는 의식상태를 가졌다. 이것이 당신이 자유롭게 된 이유이다. 당신의 의식상태가 당신의 명상, 느낌, 믿음을 객관화시킨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만약 부정적인 사고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면 우리의 아버지는 마귀이다. 우리 마음속에 진리의 씨앗을 심고, 사랑과 헌신을 공급해서 그것이 발아發芽되도록 해야 한다.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의 부모는 마귀가 된다. 주도적인 분위기가 결정요인이다. 공포, 노령, 죽음, 병에 대한 믿음과 다른 잘못된 믿음들은 마귀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진리에 대해서 거짓을 말하기 때문이다.
마귀devil를 거꾸로 쓰면 lived이라는 단어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사고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과거의 경험과 틀에 따라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역행해서 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에 얻었던 의심과 공포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마귀란 역행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
어떤 현시顯示가 있기 전에, 그것은 먼저 보이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의식 속에서 확신을 먼저 가져야 한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가? 쉬운 말로 해서 당신은 나는I AM이라는 상태에 있었다. 당신은 절대적 또는 천국 같은 상태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다면 그아이는 특정한 역할을 지니는 우주적 생명, 신, 또는 나는IAM이다. 이것은 무형無形이 유형有形으로 된 것이다. 형상이 없는 것이 형상화 된 것이다.
내가 헐벗을 때에 입혀 주었으며,마태복음 2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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