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지구드라마>------< 제15편> 본문
지구드라마- 제15편
그런데, 신 아닌 게 없는, 이 지구에 절대 순수의식이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몇 가지 드라마의 운영 장치와 법칙을 만들어,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드라마가 저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그 장치와 법칙들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에고’(자아)란 장치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 가장 중요 캐릭터가 바로 메인 배우인 인간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의 형상,
그 자체로서의 중요한 의미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본래 자신이 절대, 신이라는 그 정체성을 숨기고(?) 단지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역할에만 전력투구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생각, 즉 《에고》라는 확실한 장치입니다.
이 에고라는 장치가 있어야만 인간이 자신이 원래 신, 절대 그 자체라는 진실을 까먹고,
자신에게 부여된 배역을 충실히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모든 연기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포 안, 게놈지도에 장착된 《마음씨》라는 프로그램에 따라
저절로, 자동적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인간 세상의 프로급 배우들이 주어진 캐릭터에 빠져 연기를 하다 보면, 상당기간 동안 자신의 원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정신적인 착란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구 드라마에서는 아예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깡그리 잊어 먹도록
전생의 모든 기억을 지운다는 사실입니다.
깨달은 성자들에 의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의식 안에, 세가지 역할이 나눠져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행위》 주체로서의 나’이고, 두 번째는, 모든 것을 주시하는 관객입장의 ‘나’이며,세 번째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자각입장의 ‘나’입니다.
첫째가 바로 《에고》란 我相으로서, 이 몸과 마음이 모든 《행위의 주체》,즉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주체라고 착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시》의 역할은 내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관객의 입장에서 무의식적으로 관찰하고 구경하고, 주시하는 역할입니다.
세 번째 역할은 오감으로 들어 오는 모든 정보와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 등을 단순히 자각하고 《알아차리는》 역할입니다.
깨달은 성자들은, 첫 번째는 《자유의지》를 가진 에고의 역할이고, 두 번째, 세 번째가
복합된 상태를 ‘참나’ 또는 신, 하나님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두 번째 주시자의 역할마저 사라진 세 번째 상태를, 빅뱅 전 태초 “나는 존재한다”는, 순수자각(앎)만 있는 《절대, 순수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첫 번째의 경우인 행위의 주체로서 자유의지를 가진 에고의 역할은 이미 게놈지도에 있는 프로그램에 따라 저절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니, 《나라는 생각》즉 에고는 착각에 불과하여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나, 즉 《참나》는 바로 2번째 주시자와 3번째 알아차리는 역할,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첫 번째 역할인 에고가 사라지면 진정한 나의 모습인 《참나》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一念未生前’,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이나
‘父母未生前,’(부모가 태어나기 이전)이 바로 이 《참나》자리를 말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도, ‘나는 아브라함 이전에도 있었다’고 하신 것도 바로 이 《참나》의 자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여기서도
불교나 기독교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는 종교를 초월하여 똑 같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에고》라는 착각은, 한 인간이 아기로 태어나서 만 두 살이 되는 시점에서 생기게 되는데,
그 이전까지는 갓난아기가 자신이 단순히 “있다”라는 존재의식(알아차림)만 있다가,
어느 날, 눈으로 보이는 엄마가 《대상》으로 들어 오면서 ‘나’와 ‘대상’이 갈라지고 분리되는 매우 자연스런 二元性의 세계가
시작됩니다.
이 때부터 이 에고가 작동되기 시작하여 이 몸과 마음이 나라는, 기나긴 착각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에고》란 장치가 원래 신, 절대인 인간이 자신의 ‘本來面目’을 상실하여 한 인간이란 개체로서 배우의 역할을 실감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에고의식이 있어야만 “내가 있다”는 존재감을 통해 언젠가는 자신의 본성인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죽어서는 천국 못 간다’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이것은 에고인 개체의식이 영적진화를 그쳐 전체의식인 순수의식과 합일 되어야만 하는데 이 에고의식이 없이는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을 가질 수가 없고 존재의식이 없이는 전체의식(절대)과 합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고)는 아버지(참나)와 똑 같다, 그러나 아버지(참나)는 나(에고)보다 더 위대하다”라고 하셨고,
“나(에고)를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아버지(참나)께 갈 수 없다”고 하셨지요. 에고가 《축복의 통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에고》는 본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 몸 안팍의 어떤 대상을 눈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로서 ‘나’란 개체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모든
것이 《나와 너》란 분리의식이 작동하여 인간이 苦痛의 바다에 뛰어 들게 됩니다.
이 에고의식을 성경에서는 《善惡果》로 표현하기도 하고, 용이나 옛뱀(사탄)으로 규정하기도 하지요.
#운각님!(제 1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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