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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17장 본문

영성수행 비전/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17장

柏道 2021. 11. 15. 15:12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17장

 

우리의 모임을 갖기로 했던 날의 저녁이 되었다. 머리 위로 하늘에는 달빛이 비치고 있었으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있는 별들로 가득했다. 달은 보름달이 되어 있었으며 지난번에 모임을 가졌을 때와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계곡과 코몰하리 산이 완전히 눈으로 뒤덮여 모든 것이 하얗다는 것이었다.

그 아름다운 산은 새하얀 수호신(guardian)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반사하며 달빛 속에 실루엣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산의 배경으로는, 달빛어린 파란 하늘 속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수 백 만 개나 되는 별들이 있었으며, 잔잔한 빛을 비추어 땅 위에 있는 것들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은 절묘하게 아름다웠다. 비록 바깥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지만, 우리들 주위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은 온기가 있었다.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투모 숙련가들이어서 따로 투모1)를 쓰지 않아도 충분한 열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1)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5장을 보면 투모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호흡과 명상을 통해 몸과 주위에 열을 내는 기술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으며, 방안의 공기도 발현이 되기에 충분하게 전기적인 성질을 띠고 있었다.

이 날 밤 모임이 크게 성공하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보다 조건이 더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게쉬 림포체는 지난 번 모임에서 그가 했던 방식대로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나의 책,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에 기술되어 있다.)

그는 말했다:
사랑이란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단어가 사물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은 이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단어가 자신 안에 만들어내는 반응 때문에 그 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신이라는 말은 어떤 신경에 의한 반응(nervous response)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그들이 말에 의지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words)은 공허합니다. 말은 신경조직에 의한 반응(nervous response)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도 아니며, 신도 아닙니다. 그대들이 말(word)이란 무엇인지, 말이 어떻게 해서 마음속에 관념들(ideas)을 형성하는지를 알고 있을 때라야, 그대들은 신이란 말이 아니며 또한 사랑 역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말이란 반응을 창조할 뿐입니다. 그래서 반응(reaction)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action)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문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행동이란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과 이라는 말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그대들이 이해하고 있을 때라야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느낌과 고통에 대해 민감하게 알아차릴 때에만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서, 구세주(Savior)를 통해서, 관념들을 통해서, 집중을 통해서, 환생을 통해서, 음주를 통해서, 다른 종류의 탐닉을 통해서 등 그들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모든 수단을 써서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정녕 배고플 때,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하지(discuss) 않습니다. 그냥 음식을 원할 뿐이지 어떻게 해야 음식을 얻는가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지(concerned)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자신의 분별없음(thoughtlessness), 자신의 어리석음과, 자신의 편협함과 잔인함을 똑바로 바라볼 때, 그대들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 그대들은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게 될 것이며, 이제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려 하지 않고 다만 이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대들은 고통의 원인에 대해 예리해지며(keen), 조심스러워지며(watchful), 깨어있게(alert) 됩니다. 그때 그대들의 마음은 더 이상 무뎌 있지 않으며, 그대들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친절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됩니다.”

그대들이 고통(suffering)을 이해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들에 대해서 민감해지게 됩니다. 그대들은 더 이상 회피하려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엇도 회피하려 하지 않을 때, 그대들 가슴에는 친절함과 애정(affection)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애정-사랑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을 요구하며, 다른 이들의 느낌과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지 않고서는, 위대한 지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Affection-Love demands the highest intelligence and without being sensitive there can be no great Intelligence). 지성이 알고 있는 것이란, 다만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이 아니며, ‘이라는 말은 이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이를 이해하고 있을 때, 사랑이 존재하고, 신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의 말을 내 안에서 깊이 느꼈다. 저 깊은 차원에서부터 변모(transformation)가 일어나고 있었으며, 우리는 몇 분 동안 이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 나는 이라는 말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았다고 말한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 모두 같은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잠시 뒤 그는 다시 말을 하였다:
지난번에 우리가 모였을 때보다 오늘 모임을 갖기에 조건은 더욱 완벽합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는 더욱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로 인해 이토록 훌륭한 조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It was what he said that created these excellent conditions). 나는 방 전체가 엑토플라즘의 구름들로 채워지면서 거대한 하나의 구름으로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땅 위로 높이 들려져 구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사실 그때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구름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의 윤곽이 점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나는 말라레파(Malarepa)2)가 그이가 늘 하던 대로 축복을 하며 우리를 환영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고, 이내 우리의 모임(seance)은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었다.
2) 한국에서는 밀라레빠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말라레파는, 특정한 누구에게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말을 하였다.
그는 말했다:
저도 우리의 형제인 게쉬 림포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이 모두 그가 말했던 것에 함축되어 있던 내용까지도 이해하였기를 바랍니다.”

-진리-사랑은 그대들로부터 떨어진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사랑-신은 영원하며(Eternal) 항상-현존하는(Ever-present) 것으로서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신은 혼란스럽고, 조건으로 묶여 있고, 제한되어 있는 마음으로는 결코 깨달아질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마음이 어떤 한계도 없으며, 모든 조건에서 자유로운 실재-(Reality-God)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깨달으려 하는 마음은 그 전에 이미 자신을 스스로 조건들로 묶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스스로를 자신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마음은 자신을 넘어서 있는 그것을, 제한과 관념과 언어(word)를 넘어서 있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실재는 마음에 알려지지 않은 그것(the Unknown)이며, 언어(words)는 결코 알려지지 않은 그것을 드러낼(reveal) 수 없습니다.”

자아는 실재를 꾸며냅니다(invents). 왜냐하면 자아는 늘 무엇인가를 모방하고, 베끼고 있으며, 한 권 한 권 모두 다 똑같이 수많은 관념들(ideas)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들을 그토록 많이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아는 관념들과, 다른 이들의 경험들과, 온통 말뿐인 이 모든 것들을 그저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그대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그대들은 말이란 무엇인지(what a word is)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대들은 더 이상 베끼거나 모방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을 되풀이하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언어(words)와 관념들보다 더 위대하며, 그것들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들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but Reality is not created).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seeing) 하기보다 종교에 관한 책들을 읽고, 신에 대해 사색(speculate)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아를 이해(understanding)하지 않는다면, 자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실재에 대한 깨달음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마친 뒤 그는 나에게 와서 말을 했다:
아들아, 네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란다. 우리는 너를 따라다니며 너를 돕고 지켜줄 것이란다. 너의 일은 거짓된 것(the false)을 폭로하는(expose) 것이란다. 너는 반드시 거짓된 것에 대해서 무정해(ruthless) 져야 한단다. 너는 거짓된 그 모든 것들의 본래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단다(you must show it up in all its falseness).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것을 사라져 버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에 관한 말의 그물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단다. 거짓된 것에 관한 진실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거짓은 거짓일 따름이며, 그것이 거짓에 관한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이란다(Refuse to be caught up in a net of words in regard to it, for there is no case for the false, for it is false and that is the Truth about it).

또한 너는 거짓을 축소하거나 실재의 그 어떤 형태로도 감추려고 해서도 안 된단다.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a lie)가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거짓이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속에 어떻게 깊이 뿌리박혀 있든지 간에, 심지어는 그것이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beliefs)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물려받은 소중한 믿음이라는 이유로, 너는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동의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다만 머리로 만들어 낸 이 모든 것들의 허구성을 폭로해야 한단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실재는 모든 것을 통합하는 것이지 배제하는 것이 아니란다(The Real is all-inclusive and not exclusive).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릇된 것이며, 그것이 바로 관념과 말(words)이 하는 일이란다. 그래서 진리는 언어나 관념, 그것이 글이든 말이든 가릴 것 없이 그러한 것들 안에서는 결코 발견될 수 없는 것이란다.

네가 이 사실을 깨닫고 있을 때라야 실재가 일하는(operate)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란다. 그리고 그렇게 실재가 일하는 가운데 사랑이 있고, 무한한 지성(unlimited Intelligence)이 있는 것이란다.”

이 말을 마치고 말라레파는 창 타파에게로 가서 말을 하였다. 창 타파는 오크 수도원의 예언자(oracle)였으며, 밀라레파가 게쉬 림포체에게 말을 할 때 쓰는 영매였다. 그리고 그는 게쉬 림포체가 히말라야 속에서 눈에 갇혀 있을 때, 창 타파에게 음식을 들려 게쉬 림포체에게 보내기도 했었다. (필자 주: 나의 책,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3).)
3) 역자 주): 티벹의 성자를 찾아서 제 8장을 참고하시라.

모임 도중 링--라 은수자는 나에게로 왔으며, 나는 그를 일주일 안에 다시 보게 되어 기뻤다. 그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는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인 듯 보였다. 이것이 그를 만났을 때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해가 그의 얼굴을 통해서 빛나고 있는 듯 그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나는 그 은수자를 계속해서 더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한데, 왜냐하면 그는 애정이 가득 담긴 생각과 축복을 나에게 쏟아주셨기(showered)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나에게는 놀라운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참으로 알겠다.

그는 말했다:
나는 네가 가는 길에 내딛는 발걸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갈 것이란다. 네가 녠첸탕가 산맥에 있는 니블룽 리충 산을 오를 때에도 나는 너와 함께 있었단다. 그 암자에서 보이던 그 산맥 말이야. 네가 잠사르에 가게 되었을 때 알게 되었겠지만, 사실 내가 있던 곳으로부터 잠사르까지는 독수리가 직선으로 날아간다면 약 40마일(64km)에 불과하거든. 그러나 거기는 아직 탐사되지 않은 지역이라 산에는 나 있는 길이 없었고, 그래서 너는 뺑 둘러가는 길을 택해야만 했지. 잠사르까지 150마일(240km)에 달하는 길을 말이지.

그러고 나서 그는 말을 계속했다:
아들아, 너로 인해 참 기쁘구나. 잠사르에서 지내는 동안 생각해야 할 것들을 참으로 많이 발견하였더구나.”

.”
나는 말했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들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었고, 그 과정에서 참으로 크게 깨달았습니다.(We went into much detail and I had great enlightenment)”

이제 나는,”
그는 말했다.
질서란 혼란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out of chaos, order cannot come)을 네가 깨닫길 원한단다. 질서를 세우겠다는 목적으로 네가 혼란을 일으킨다 해도 질서를 창조할 수는 없는 것이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잘못된(false)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많은 사람들은, 질서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불가피하게 혼란과 무질서를 창조해야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이 자신들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더욱 복잡해진 무질서를 만들어낼 뿐이란다. 이것이 바로 전쟁과 경제적 재앙(economic disasters)이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이란다.”

너는 미래의 어느 순간에 변혁(transformation)이 이루어지길 구하고 있는데, 그리하여 이러한 조건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그러한 식의 변혁은 언제나 미래의 어느 순간에 있는 것이지. 항상 미래의 관점(terms) 안에서 생각하고 있는(thinking) 마음에는 현재 안에서 행동할(acting) 수 있는 능력이 없단다.”

아들아, 너는 변혁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있느냐?”
, 그렇습니다. 미래의 어느 때에 변혁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짓(the false)을 거짓으로 알아보고, (the true)을 참으로 알아볼 때, 참으로 받아들이던 것 안에 숨어 있던 거짓을 알아볼 때, 변혁은 바로 지금이라는 순간 안에서, 순간에서 순간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변혁이 지금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혁은 내일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변혁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변혁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It does not happen tomorrow, it must be now, otherwise there is no transformation).

그래서 제가 거짓된 것을 이해하고(see) 있을 때, 저는 거짓된 것에 관한 진실(the truth)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진실이란 거짓이란 거짓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고 있을 때 거짓은 저절로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지금이라는 바로 그 순간, 그 즉시 변혁이 있게 되고, 이 변혁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단다. 내 아들아.”
그는 말했다.
뭔가를 반복한다는 것은 묶여 있는 마음이 투사되고 있는 것임을 네가 이해하고(see) 있을 때, 그리고 네가 이에 관한 진실을 이해하고 있을 때, 변혁이 있게 되는 것이란다. 분리와 갈등과 불행을 만들어내고(creates) 있는 그 무엇을 알아보게(see) 될 때, 그 순간 즉각적인 변혁이 일어나게 되고, 거짓된 그것에 관한 바로 그 진실(the truth)은 마음을 자유롭게 한단다.

진리를 지각(perception)하는 행위 자체가 곧 변혁이 일어나는 것이며, 자유로워짐 그 자체란다. 그리고 이는 미래(tomorrow)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왜냐하면 변혁이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지금이 아니라면 변혁이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란다.”

네가 곧 돌아가게 될 세상 안에서 너는 거짓된 것들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란다.”

그러나 거짓된 것들을 지각하는 행위 그 자체가, 순간순간 변혁으로 곧장 이어진단다(But the very perceiving of the false, moment to moment is transformation). 너는 기억을 통해서도, 시간을 통해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단다.

진리란 지금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며, 과거나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너는 미래의 어느 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네가 읽고 있거나 듣고 있는 것들 안에서 발견할 수도 없는 것이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

진리가 너에게 오는 것이지, 네가 진리로 가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진리로 간다고 할 때, 그것은 너의 자아가 투사된 것에 불과하단다. 자아가 스스로 이해되어질 때라야 진리는 오는 것이며, 그때 그것은 즉각적으로 들어서게 된단다.

영원이란 곧 지금인 것이다(Eternity is Now)! 그리고 지금이란 새로움이며(The now is NEW),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렇게 하는 것은 기억이기 때문이지.
또한 지금(NOW)이란 미래도 아닌데, 미래란 마음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지금!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란다(The Now! is alive). 과거란 죽은 것이며, 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단다.”

만약 네가 오래된 것(the old)을 가지고 새로운 그것(the new)에 접근한다면, 너는 새로운 그것을 결코 발견할(discover) 수 없단다. 오래된 기억들을 등에 지고 있는 한 새로운 그것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네가 이해하고(know) 있을 때라야, 오래된 기억은 새로운 지금 안으로 자신을 투사하는 것을 그치게 된단다(does the old cease to project itself into the new).

아들아, 너도 알겠지만, 지금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있을 뿐이란다. 그리고 방금 전에 지나간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항상-현존하는 지금(ever-present now)이 될 수 없는 것이란다. 마음 안에 있는 것들, 그것들은 새로운 지금에 방해물일 뿐이란다. 그러므로 반드시 너는, 과거에 얽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지금에 새롭게(fresh) 접근해야 한단다. 그렇게 할 때에만 너는 매순간 새로워지고 있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다.”

네가 변화되어지길 바라고 있을 때, 변혁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단다(When you desire to be transformed there is no transformation). 왜냐하면 그때 너는 무엇인가로 되어간다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진리란 매순간 지금 존재하는 것이란다(Truth is 'Being' now moment to moment).

진리란 결코 책속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이란다. 그것은 웃음 속에서, 눈물 속에서, 포옹 속에서, 사랑의 충만함 속에서 매순간 발견될 수 있을 뿐이란다. 사랑이 없다면 진리도 없단다(Without Love Truth is not). 사랑이 있는 그곳에 변혁도 있게 되는 것이란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순간에서 순간으로 존재하는것이기 때문이란다(because Love is 'Being' moment to moment). 이것이 곧 진리(Truth)란다, 아들아.”

네가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우리는 너와 함께 있을 것이란다. 모든 이 하나 하나 안에 살고 계신 영 안에서 분리란 결코 없기 때문이란다. 신은 나누어져 있지 않단다. 이 위대한 진리를 가리고 있는 것은 조건으로 묶여 있는 마음이란다.

아들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때, 네 믿음은 변치 않을 것이며, 너의 사랑은 구속함이 아닌 자유로움이 될 것이란다(In knowing this, my son, your faith will be constant, and your Love will be liberating, never binding). 구속하는 것은 사랑은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구속하는 사랑은 마음에 속해 있는 것이지만, 진리-사랑은 마음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이며, 유일한 실재란다.”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는 비켜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의 존엄한 영적 안내자인 성 안토니오가 너에게 말할 것이란다(Now your august spiritual guide, St. Anthony, will speak to you).

나는 성 안토니오에게 말을 걸기를 열망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나는 세상 곳곳을 다니며 그와 그토록 많이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일을 수행하는 동안 그의 영향력을 참으로 자주 느끼곤 했다.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말을 표현하고 했다. 물론 그 말들을 통해 같은 진리가 드러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는 그의 앞으로 손을 내밀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손을 잡게, 내 친구여. 지금 너는, 내가 자성 물질을 수단으로 하여 그대들의 차원에서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이 창조되어 나온 실체의 한 가지 양상이란다(now you see I am functioning on your plane by means of the magnetic substance which is a phase of the Substance out of which everything is created).

형태를 갖고 있는 모든 것들, 현상계로 나타난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있을 따름이란다. 그 실체(Substance)에는 저마다 다른 차원(degrees)이 있지만 말이야. 그러므로 실체의 이 모든 차원들은 지금 너와 함께 있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실체의 그 모든 차원들 안에서, 그것들을 통해서 기능(functioning)하고 있단다.

아직은 네가 그것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야. 현재로서 너는 물질(the material)이라고 부르는 차원에서 기능하고 있단다. 그러나 하나의 실체(one Substance)가 그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할 따름이란다(but that is merely a modification of the one Substance). 이것은 다양한 차원들 중 하나의 차원으로 나타난 것이지 하나의 실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란다(it is a degree and not separate).

네가 육체 또는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을 떠나게 되더라도, 너는 여전히 같은 실체 안에서 기능하고 있을 거란다. 차원이 달라졌을 뿐이야.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다양한 차원을 거쳐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며, 가면 갈수록 더욱 섬세해진단다.”

너의 일을 수행해 나갈 때 너는 자성체(magnetic body)라고 알려져 있는 것을 사용하게 될 거란다. 육체에 적합한 필수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자성체란다(that is the body that can be charged with vital energy suitable for the physical).

너는 또한 정신과 영을 동시에 사용하게 될 것이란다. 나는 지금, 네 마음의 심리적인 어떤 측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너의 아스트랄체와 자성체를 관통하고 있는 어떤 실체를 뜻하는 거란다(I do not mean the psychological side of your mind but a substance which interpenetrates both your astral and magnetic sheaths).

영은, 몸이라 하는 이 모든 껍질(sheaths)4)들을 그 쓰임새에 맞게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가 너의 일을 돕고 있을 때, 우리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이러한 껍질들과 연결되어 있는 중심(the centre)을 통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4) 본래는 칼집이라는 뜻으로, 영은 칼, 몸은 칼집이라는 은유가 담겨져 있다.

네가, 생명에 관한 영적인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영감을 받고 있을 때, 우리는 보다 섬세한 껍질들 또는 중심들을 통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When you feel inspired to speak of the Spiritual things of Life we are working through the finer sheaths or centres).

그러나 진리는 이 모든 것들 너머에 있단다. 진리는 생명-사랑이야(Truth is Life-Love). 마음이 과거, 오래된 것에서 자유로울 때 사랑은 그 즉시 들어서 존재하게 된단다.

사랑이란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서, 과거, 즉 오래된 것이 다 이해되고 저절로 떨어지고 나서야, 너는 새로운 지금을 만날 수 있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새로운 지금을 만나고자 한다면, 너는 오래된 과거(the old)를 가지고 그것을 만나서는 안 된단다. 그렇지 않는다면, 새로운 그것은 그저 오래된 것이 투사된 것으로 바뀌게 될 것이란다.

그러나 오래된 그것이 곧 기억이자 경험이라는 것과, 오래된 그것은 결코 새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see) 있을 때, 너는 오래된 그것은 결코 새로운 그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를 알고 있을 때 너는 새로운 지금을 만나게 된단다.”

그것이 바로 진리이며, 그것이 바로 사랑이란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거든. 그러므로 새로운 그것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오래된 그것은 실재가 아니란다. 오래된 그것은 기억이자 경험으로서 너를 종종 구속하고(condition) 있는 것이지.”

참된 영적 치유란 네가 오래된 그것에서 자유로울 때 이루어지는 것이란다. 영적인 치유란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지. 내 말을 이해하고 있는가?”

,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Spirit)이란 항상 현존하며, 항상 새롭고 결코 오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은 언제나 스스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영은 매순간 새로워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질병도, 죽음도,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지금’(‘Now’)이 있을 따름이며, ‘지금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이 안에서 저는 참된 영감을 받게 되는 것으로서, 이는 과거나 기억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렇단다, 내 친구여.”
그는 말했다.
나도 네가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겠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갖고 있을 때, 너의 일은 세상에 보다 위대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야. 그리고 세상의 변혁을 위해 너와 함께 일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너는 대단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될 것이야.”

너는 그저 네가 읽었던 것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게 될 거란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선생들은 축음기에 올려져 있는 다양한 레코드판일 뿐이야. 그러나 너는 음악가이자 음악이 되어야만 한단다(But you must be the musician and the music). 이렇게 할 때라야 너는 창조적인 것이야.”

그러고 난 후에 그는 말했다:
너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다른 이들도 여기에 있단다.”

이 날 모임은 이제껏 내가 참여했던(experienced) 모임 중 가장 대단했다. 세상을 먼저 떠나갔던 많은 친구들이 이 날 모임에 왔다. 내 두 요기(Yogi) 친구들인, 압둘(Abdul)과 실럼(Seelum)은 아포츠(apports)5)몇 개와 고대 이집트의 서판(tablets) 몇 개와 귀한 돌들과 티베리우스에서 쓰던 금화 등을 가져 왔는데, 다 해서 스무 점 가량 되었다.

그 중 하나는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된 오래된 양피지 문서였다. 그의 왼손 아래편 구석에는 매매증서도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 필기체로 씌어져 있었다(in the left hand bottom corner was a deed of sale in Roman cursive). 그 증서는 명백하게 어느 시기에 매매되었던 것 같았는데, 아마 기원후 1 세기 정도인 듯하다. (나는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시드니에서 열렸던 베일리 씨의 모임 Mr. Bailey's seance 에서 그와 유사한 것을 받았다.)

고대 페르시아 마기(Magi)6) 중 한 명도 말을 했으며, 이후에 자연스럽게 내 어머니와 다른 친구들도 말을 하였다. 그 모임은 새벽 3시까지 진행되었는데, 몸을 떠난 이들과 아직 지상에서 몸을 입고 사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여섯 시간 동안 만난 것이다. 그 모임 중간 중간에 동시에 열 명이나 열 명 조금 더 넘게 방 안에 사람들이 있기도 하였다.
6) 옛 페르시아의 마기승족(僧族)

이렇게 그들을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보다,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더 위대한 증거란 없다.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은 영원한 생명(Life Everlasting)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친숙한 내용들을 많이 이야기했으며, 고향에 있는 사람들의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들은 다른 정보들도 정확하게 제공해주었는데, 내가 떠나왔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들이 말했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내 친구가 지상의 삶을 정리하고 떠난 그 날짜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았다.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하면서 어떤 이들은 믿기 힘들어 하기도 하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모임의 마지막에 찬란한 빛이 비치더니 그 빛 속에 성인(the Master)께서 나타나셔서 우리 모두를 축복해주셨는데, 이때가 모임을 통틀어 최고의 순간이었다. 모든 이의 가슴 안에서, 온 우주의 모든 영역에서, 영원토록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앎을 느끼는 순간이었다(the knowledge of the Eternal Living Christ Who exists in all hearts, in all realms).

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방이 있으며, 나는 그대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고자 갑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그곳에 그대들 역시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바이다.
이것으로써 그 날 모임은 끝났다.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었으며, 저마다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제 나는 곧 나에게 이토록 많은 것을 주었던 내 놀라운 친구들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 생각이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가면서 다소 슬퍼지기도 했다. 게쉬 림포체도 내 슬픔을 감지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내 어깨 위로 손을 올리더니(나는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들아, 네가 느끼는 대로 나 역시 느끼고 있단다. 나도 네 생각을 알아차렸지만(aware of), 사실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단다. 오늘 밤 너에게도 증명되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신 홀로 살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으며,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살아 계시고 움직이고 계신다는 이해 속에 기뻐하여라. 그래서 마음 안을 제외하고는 분리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네가 알고 있듯이, 이러한 생각은 환상이란다.”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서로 이야기를 하며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는 극도의 배고픔을 느꼈으며 이를 수도원장에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지금 저는 뭐라도 좀 먹고 싶어요. 왜 이렇게 배고픈지는 모르겠네요.”

.”
수도원장이 말했다.
이제 곧 아침을 먹을 시간이거든요. 아침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수도원장은 아침 식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사전에 빠짐없이(apparently) 준비해 놓았었다. 그리고 수도원장의 시중을 드는 두 명의 라마승들이 음식을 날랐다. 사실 아침식사라기 보다는 만찬에 가까웠다(It was more like a dinner than a breakfast).

게쉬 림포체는 빵을 쪼개고 음식을 축복하면서, 내가 이곳에 와서 머물다 다시 돌아가게 된 것에 대해 사랑을 가득 담아 말씀하였다. 이토록 위대한 현자께서 가슴으로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동안 나는 겸허해짐을 깊이 느꼈으며, 그때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랑이 거기에 있었다.

이 곳, 이 방 안에는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친구 그 이상의 친구들이었으며, 현자들이자, 대자연을 자신을 통해 드러내는 마스터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과 사랑과 지혜는 갈등으로 가득한 우리의 세상에는 결코 알려지지 않은 바의 것이었다.

그러나 진리가 자신을 통해 일하도록 자신을 완전히 비우는데 숙련자들인 그들은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자들 중에서 자신의 가슴을 신에게 열게 될 사람들을 돕고 있었는데, 그들은 조건들에 의해 묶여 있는 자신들의 마음의 상태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가슴을 신에게 열게 될 것이다.

생각에 묶여 있는 마음을 제외하고는 실재의 치유력과 사랑이 일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햇살이 코몰하리 산 정상 뒤편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발코니로 가서 그 장엄한 광채를 지켜보았다. 해가 떠오를 때 그 날 아침은 더욱 경이롭게 보였다. 다채로운 햇살은 코몰하리 산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퍼져 있는 거대한 부채 모양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수정처럼 투명한 새하얀 눈은 이 눈부신 광채를 반사하고 있었으며, 라마승들은 옴 마니 받메 훔을 노래하면서 기도하고(chant) 있었는데, 그들의 깊은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그 날 아침의 풍경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침 기도가 끝났을 때 우리는 건물 위로 올라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잠을 잘 때 보았던 것이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 수 없으나, 그때 나는 지상에 속해 있지 않은 자들과 어울렸으며(mingling), 나는 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감지할 때까지 잠들어 있었는데, 그때는 정오였다. 눈을 뜨자 게쉬 림포체가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는 말했다:
이제 너는 영, 영혼, 몸 모두 원기를 회복했구나(You are now refreshed in Spirit, Soul and body)”.

나는 대답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네가 침대에서 일어나거든,”
그는 말했다.
계곡 아래쪽으로 같이 거닐자. 너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거든. 내일이면 너는 우리를 떠나갈 것이라 오늘은 너를 내 옆에만 두고 싶구나. (Spirit) 안에 분리란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내 유일한 아들과 이별하는 듯 느껴지는구나.”

음식을 좀 들고 나서 우리는 코몰하리 산 방향으로 계곡 아래쪽을 거닐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을 떠나가게 돼서 참으로 슬픕니다. 더군다나 몸을 입은 상태로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생각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당신은 저에게 아버지 그 이상이시며, 저는 당신을 볼 때마다 매우 깊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 아들아.”
그는 대답했다.
네가 몸을 입고 있는 나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시작되었단다(my affection for you was long before you saw me in the flesh). 그동안 네가 일할 때 나는 오랜 동안 너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제 곧 나는 내 생명을 내려놓게 될 것인데, 이는 몸으로부터 자유로운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란다(But now I will soon lay down my life to take it up again, freed from the physical).

더 이상 몸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른 영역들에서 머물게(sojourn) 될 것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너의 훌륭한 안내자인 성 안토니오처럼 말이지.”

그리고 그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격언이 있단다:
지혜를 얻어라, 이해를 구하라,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서 멀어지지 말라.’ 그러나 이 보다 더 차원 높고 더 좋은 길이 있단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사랑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신은 사랑이며, 사랑은 신이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 속에 다른 이를 향한 미움을 품고서 그분에게 다가서려하지. 그러나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하며 마음에는 적개심이 하나도 없어야, 신성한 그분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아들아, 너도 알겠지만, 어떤 특정한 종교를 따르고 있으며, 다른 종교를 따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적대적인 사람은 종교적이지 못하게(irreligious) 된단다. 그래서 소위 종교적이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위험하단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를 서로에게서 갈라놓고 있는 이상들(ideals)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아들아, 너도 깨닫고 있겠지만, 관념은 다른 것들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갈라놓는단다. 좌파로 기울어지는 자들도 있으며, 우파로 기울어지는 자들도 있단다. 그들은 그저 관념을 추구하고 있을 따름이지. 자신의 관념이 다른 자들의 관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태도는 적개심, 투쟁, 유혈 사태로 이어지게 된단다. 관념과 믿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그 모습을 이해하게 될 때라야 평화와 사랑은 찾아오게 된단다.”

자신의 관념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환상을 놓아버릴 때라야, 사랑이 사람의 가슴과 마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단다. 그리고 사람이 거짓된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그 순간 사랑도 즉각적으로 들어서게 된단다.

그러면 그때 사랑이신 아버지의 모습과 꼭 닮아 있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란다.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릴 마땅한 권한을 갖고 있단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우리와 전혀 다른 초자연적 존재는 아니란다(Man will then appear in the likeness of his Father who is Love, having a natural dominion over all things, which is not being supernatural, as many believe).”

예수께서는 자신이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초자연적 존재라고 내세운 적이 결코 없었단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관념을 만들고는, 그것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란다. 자신들의 머리로 만들어낸 환상을 말이지. 사람들은 초자연적 존재라는 관념을 숭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실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시도한단다. 적개심과 미움과 질투로 가득 차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말이지.

거짓된 것들을 이해하는(understanding) 것으로써만이 참인 것이 그 즉시 들어설 수 있게 된단다. 아들아, 이것이 곧 지혜란다. 거짓된 것을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고 있을 때라야 지혜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란다(Only by understanding the false and how it comes about does wisdom come into being).

이렇게 할 때라야 많은 이들이 떨쳐내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로움이 있게 되는 것이란다.”

너에게 지혜가 찾아올 때, 풀 한 포기도, 꽃 한 송이도, 나무 한 그루도 자기 좋을 대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싹이 하나 트는 것조차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란다.

무한하신 하나(Infinite One) 안에 자신의 근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란 이 땅 위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깨닫게 될 것이란다. 이는 물질 차원을 넘어서도 마찬가지란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무지 앞에서 입을 다물거나, 거짓된 것들 앞에서 벙어리가 되지 않을 것이란다. 오히려 너는 이해를 통하여 그 오류(the error)를 수정하게 될 것이란다. 더 이상 너는 고통이 무엇인지 묻지 않게 될 것이며 다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란다.”

가장 높은 차원으로서의 생각-느낌의 형태는 이해를 통해서 오는 것이지, 관념이나 믿음에 대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자아의 독단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는 오직 실재 안에서, 사랑 안에서만 우리 창조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단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안전을 구하지 않게 될 것이란다. 안전을 구하고 있는 자는 항상 부족한 상태(in want)에 있기 때문이지. 네가 안전해질 수 있는 그 기초는 이해에 있는 것이지 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너는, 항상-현존하고 있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공급의 원천 속에서 이미 매순간 지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란다(For you live now in the ever-present, never-ending Source of Supply).”

나는 그의 말을 전적인 주의를 기울여 들었으며, 생각(ideas)을 만들어 내지 않고 다만 자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듣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자기를 이해하는 것(self-knowledge)이 곧 자유이며, 변혁(transformation)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유로움(Freedom) 안에서 실재는 그 어떠한 형태의 한계에 의해서도 제한을 받지 않으며 무한하게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들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 마음 속에서 진리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와 시도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석한 내용이 참이든 거짓이든 간에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렇게 하는 것은 실재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가장 큰 방해물로서, 머리를 써서 하는 놀이에 불과했다(being merely mental gymnastics).

이것이 게쉬 림포체가 나에게 들려준 마지막 이야기(final talk)였다. 이는 마지막 충고라 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는 결코 충고를 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의 말의 대부분은, 이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정화(cleansing) 작업이었으며, 이는 남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에 이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전에 내가 계획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너와 함께 링마탕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다. 나는 이곳에서 겨울을 보낼 것이란다. 해가 뜨고 질 때 저 아름다운 산을 올려다보면서 너를 생각하게 될 것이란다. 모든 곳을 통틀어 이곳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칼림퐁까지는 네 스승이 함께 따라갈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너 혼자 가게 될 것이란다. 몸으로는 혼자이겠지만 영적으로는 혼자가 아니란다.”

이 십자가를 받아라. 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었던 상징이란다. 내 아버지께서 나한테 주셨던 것이지. 이곳을 보면 수직과 수평 막대기가 교차하고 있는 그 중심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란다.

이는 아버지-어머니-신의 뜻에 충실한 아들을 상징한단다(this represents the Son, the conformation of the Father-Mother-God). 아들은 진리이자, 사랑과 지혜인 그것 안에서 태어난단다. 나는 네가 이것을 언제까지나 네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기를 바란단다.” 그는 온화하게 말했다.

그는 목에 걸려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풀러 내 목 주위에 걸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축복해주었다.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이를 알지 못했다.

그 순간 내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가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마치 거지의 옷을 벗어던지고 사랑의 옷(the Robe of Love)을 입은 듯 느껴졌다. 그 사랑의 옷이 바로 그리스도의 요가이다. 고통 받는 영혼들이 그 옷의 끝자락에 손을 닿기만 하더라도 그들은 낫게 될 것이다.

[출처] 17장|작성자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