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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40)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40)

柏道 2021. 3. 3. 13:35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40)

 

박사논문

2015. 8. 25.

다석사상, 돈교, 산은 산이요, 수덕신학, 신비신학, 심우도, 십우도,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영모, 윤정현, 점도, 현각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40)

 

논문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영상 강의를 조금씩 올립니다.
강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를 조금 더 보충했습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 頓(부서질 돈) 悟(깨달을 오) 修(닦을 수)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단 한번에 불심의 이치를 알아 구극의 깨달음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수행이 필요없는 경지를 말합니다.
본래 돈오(頓悟)의 성불론은 선종에서 주장되었습니다.
즉 미망과 깨달음은 한 생각의 차이이니 본성이 단지 일념에 상응하여 중생의 자아가 바로 본심을 보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 돈오의 성불론입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 漸(점점 나아갈 점) 修(닦을 수)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깨닫고 나서도 계속 수행하여 깨달음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돈오점수란 그렇게 한 순간에 깨달았다 할지라도 완전한 깨달음이란
순식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불도를 차례대로 닦고 행하여 점차적으로 향상하여
완성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완전한 깨달음인 돈오돈수와 깨닫고 나서도
계속 깨달음을 닦아야 하는 돈오점수의 차이는 선종의 수행론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현각(玄覺: 637~713) 또는 영가현각(永嘉玄覺)은 중국 선종의 승려이다.[1] 본성은 대(戴), 자는 명도이며, 호는 일숙각, 시호는 무상 대사, 진각 대사이다.
증도가(證道歌) 현각대사가 자신의 깨달음을 노래한 선시(禪詩)

山是山 水是水
산시산 수시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山卽非山 水卽非水
산즉비산 수즉비수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

山只是山, 水只是水
산지시산 수지시수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그러니까 망녕되게 굴지마라)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결국 모두 허망한 존재인 것을)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다(분별없이 그냥 바라볼 뿐이다)
只(다만 지)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소를 찾아 나서는 것에 비유하여 선수행의 단계를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는 타력구원이 불교는 자력구원(깨침)이 강하다
도식적인 이해가 아닌 “측면이 강하다”는 의미
예수와 붓다의 가르침은 ‘타력(他力)에 의한 구원’과 ‘자력(自力)에 의한 해탈’로 이해

'수덕신학(修德神學 ascetical theology)'과 '신비 신학(神秘神學 mystical theology)'

3.2.3.3.2. 화합(和合)과 상호보완 (相互補完)의 길
다석 유영모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은 똑 같은 말이다” 고 말하였다.
화두(話頭)는 말이나 주제를 뜻하는 말로서 임제종(臨濟宗)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화두(話頭)라는 말은 전문적인 용어로서 높은 단계에서 선을 할 때 사용된다.
화두는 지성으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집중하여 몸으로 깨우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화두(話頭)는 부정을 통해서 높은 단계의 도(道)를 얻는 수단이다. 유영모는 아미타(阿彌陀)의 이름을 부르고 항상 마음 속에 부처가 있게 하면 득도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상태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통해서 유지된다.
다석 유영모의 금욕적 삶과 철저한 신앙 실천은 지눌(知訥) 사상의 원리를 통하여 지켜졌다. 다석은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성신(聖神)을 받고 돈오(頓悟)를 하면 한꺼번에 다 될 줄 알아도 그렇지 않다. 석가도 단번에 모든 것을 다 알은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돈오(頓悟) 뒤에도 점수(漸修)를 해야 하다. 돈오도 한번만 하고 마는게 아니다. 인생의 길이란 꽉 막혔던 같다가도 탁 트이는 수가 있고, 탁 트였다 싶다가도 또 꽉 막히고 그런 것이다.”

돈오(頓悟) 뒤에는 반드시 점수(漸修)가 있어야 한다고 다석은 주장한다.

이 말은 득도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오가 반드시 점수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득도의 상태에서 다석 유영모는 참 자아를 깨달았다.
“나는 계(絶對界)로부터 나온 나그네다. 허공을 건너갈 나그네다. 불교는 제계(彼岸) 가야 한다고, 바라밀다(波羅密多)라고 한다.”

허공(虛空) 으로 건너가는 동안에, 완전한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정신적으로 닦아야 한다고 수신해야 한다고 다석은 말한다. 다석은 그것을 하느님, 니르바나, 원일물불이(元一物不二)라고 부른다. “원일물불이 (元一物不二) 이것이 하느님이요, 니르바나다, 나는 원일물불이(元一物不二)를 믿느다.”

더 나아가 유영모는 천국 따로 있고 하느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천국이고 천국이 하느님이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유영모는 인생을 죽음으로부터라고 생각한다
다석은 참 삶은 죽음의 문제를 극복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죽음은 대사(大死)를 뜻한다.
즉, ‘영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다석 유영모는 말한다.
“이 오줌 똥으로 가득찬 이 더러운 땅 예토(濊土)를 넘어서야 정토(淨土)에 들어간다. 정토가 천국이요, 니르바나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깸(覺)이 천국이다. 그래서 있다시 온 이(如來)가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정토에는 늙음이 없다. 병도 없다. 죽음이 없다. 고통이 없다. 영원한 진리와 사랑이 있을 뿐이다.”
다석의 이 말은 앞에서 설명한 반야심경(般若心經, Prajñāpāramitā)의 공사상(空思想)과 통하는 내용이다.
영원한 진리와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깨달은 후에도 지속적으로 몸과 마음을 수신해야 한다고 다석 유영모는 생각하였다

깨달은 후에도 수행해야 한다는 다석의 사고는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과 일치한다. 지눌이 선종의 돈교(頓敎)와 교종의 점교(漸敎)를 화합시켰듯이, 다석 유영모도 자신의 깨달음의 체험에서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자력(自力) 구원과 타력(他力) 구원을 조화시켰다.

앞에서 언급한 지눌에 의해서 확립된 돈오점수(頓悟漸修) 사고를 통해서 제자를 훈련시키기 위해 다석은 기독교청년회관(YMCA)의 연경반(硏經班)에서 돈오점수(頓悟漸
修) 의 관점 에서 성서와 더불어 다른 종교사상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