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7)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7)

柏道 2021. 3. 3. 13:31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7)

 

박사논문

2015. 8. 25.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7)

과정신학자들의 하느님의 양극성에 대한 강조는 앞 장에서 언급한 유(有)와 무(無)의 차원에서 그리고 상대적인 관점과 절대적인 관점에서 하느님을 재해석한 유영모의 사상과 비교할만하다. 과정신학의 양극성 이론에 의하면, 하느님은 상대적인 존재이면서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현존은 하나의 인간이고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므로 하나의 상대적인 존재인 반면에, 하느님 만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은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유영모의 하느님 개념은 ‘반대의 일치’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 양극성의 하느님은 상대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인 존재이다. 양극성의 사고는 서로 다른 필연적인 양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이 함께 ‘반대의 일치’를 이룬다. 이러한 면에서, 콥의 그리스도 개념은 그리스도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면, 내재적인 존재도 될 수 없다. 콥에 있어서, 내재성과 초월성의 양극성은 모든 것에 있어서 공통적인 특성으로 나타나나 그리스도에 양극성을 적용하면 특별히 분명해진다. 콥의 내재적이며 초월적인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이해는 앞 장에서 언급한 다석 유영모의 하느님 개념과 매우 가깝다.

콥의 그리스도 해석은 과정신학에 근거한 하느님 이해에 근거하지만, 창조적 변혁의 원리로서 로고스는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개념화를 통해서 로고스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콥이 이해하는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물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우주적 로고스와 관계가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생명, 특히 인간의 세계에서 로고스의 내재나 성육화이다. 생명과 비생명 사이의 분명한 선이 없으므로 생명의 분야에 창조적인 변혁이나 그리스도의 한계성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창조적인 변혁이 비유기체 분야에서 작용할 수 없다면, 생명은 결코 나타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유기체 분야뿐만 아니라 비유기체 분야에서도 나타나므로 다른 것과는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시간 개념의 관점 안에서 비유기체적 세상에 있는 창조적 변혁은 무시해도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생명의 세계에서 널리 퍼져있는 로고스의 내재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발견되는 인간 안에 특별히 로고스가 내재한다. ”

이와 같이 콥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로고스를 위한 하나의 이름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로고스는 같은 활동을 나타낸다. 로고스는 원래부터 나타나는 반면에 그리스도는 하나의 형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로고스로서 그리스도는 끊임없는 진행 과정 중에 있다. 로고스는 끊임없는 발달과정 중에 있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 있는 로고스로서 그리스도는 다른 인간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다석 유영모의 얼로서 그리스도 개념은 콥의 그리스도론인 로고스로서 그리스도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

‘얼’이라는 말은 순수 한글이다. 얼이라는 이 한글은 한자말이 없다. 다석은 ‘얼’을 신약성서에 나오는 ‘프뉴마’(靈, pneuma)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다석의 얼의 개념은 ‘영’(靈, spirit), ‘혼’(魂, soul)을 뜻하고 활력과 연속성을 생명에 불어 넣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하느님의 속성이 똑같이 얼인 성령에게 주어졌다고 다석은 주장한다. “하느님이 나무라고 하면, 그 나무의 씨는 ‘얼’이다. 씨가 어디에서 왔나. 나무에서 왔다. 나무는 씨의 근원이다.”

다석은 얼로서 성령의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성령으로서 얼은 하느님의 근원적인 속성이다. 그러므로 이 ‘얼’은 성질상으로 하느님과 하나이다. 유영모의 얼의 개념은 성령의 내재를 의미한다. ‘얼’이 ‘영’이고, ‘영’이 ‘얼’이다. 따라서 이들 얼과 영이 성질상 하나이다. 이러한 생각은 영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콥은 이 문제를 인지하고, 이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이 약각의 애모모호한 해석을 하였다고 비판한다. “불행하게도 교회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그리스도와 구별되게 하느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서의 영에 대해 주목할 수 있는 어떤 형상을 설명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형상과 영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콥과 다석의 그리스도 개념은 일치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내재성과 성육화 속에서 ‘아들’과 관계한다. 예수를 생각할 때는 ‘아들’ 보다는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 다석과 콥에 있어서 예수는 로고스의 성육신이기 때문에,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은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인 하느님의 형상과 관계한다. 그러나, 교회가 성령에 의미를 부여할 때, 신약성서의 이미지와 교회의 신심은 성령의 내재성을 강조하였고, 그리스도교 정신 안에서 영은 하나의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였다” 고 콥은 주장한다. 이와 같이 영은 ‘아들’보다도 오히려 ‘그리스도’와 더 유사하다.

다석 사상은 영(靈)인 얼이 그리스도가 되고, 정신적인 수행의 과정을 통해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으로, 영과 하느님의 관계성을 설명한다. 인간이 하느님께로 돌아가듯이, 정신 수양의 과정을 통해 자기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면,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다석은 이 길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된 길로 간주한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가 인간이고 신(神)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석 유영모는 부다, 공자, 노자, 장자와 같은 인물도 ‘귀일’(歸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석은 다른 여러 길을 통하여 이 얼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다석은 인간을 궁극적 존재인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발전시키는 활동적인 존재로 이해하였다. 인간은 자기 부정과 영적 수행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귀일할 수 있다고 다석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콥은 선행에 대한 ‘매력’으로 예수의 전형적인 의미에 강조점을 둔다. 또한 콥의 접근 방법은 그리스도 중심인 반면에, 다석은 하느님 중심이라는 점에서 둘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콥의 로고스 중심의 그리스도론 보다도 다석의 하느님 중심의 접근방법이 하느님의 우주적인 활동을 긍정하는데 효과적인 길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과정신학의 그리스도론 중심의 접근방법은 영적 수행과 자아 안에서 영(靈)인 얼의 성취를 통해서, 즉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참나를 발견함으로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유영모의 예수 이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좋아요공감

공유하기

글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