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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4)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4)

柏道 2021. 3. 3. 13:06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4)

 

박사논문

2015. 8. 25.

다석사상, , 반야심경, 없음, 없이 계시는 하느님, , 유영모, 윤정현, 있음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4)


III. 무(無)로서 하느님


3.1. 머리말
일본의 종교철학자 요시노리 타케우치(Takeuchi)는 존재(存在)와 비존재(非存 在)에 대하여 언급할 때 대부분의 서양의 철학자나 신학자는 존재(存在)의 입장에 선다고 말하였다. 존재(存在)에 대한 개념은 서구사상의 중심사상이다. 철학이나 신학뿐만 아니라 전통에서 존재의 개념은 서구사상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동양 사상이나 인도 철학은 비존재 (非存在)의 개념에 비중을 두는 반면에 서구사상은 존재(存在)의 개념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의 종교적 직관(直觀)과 사상 그리고 철학적 사고는 유(有)의 개념보다는 무(無)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또한 서구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과학적 방법에 근거한 실험과 증명에 의한 이성과 지식의 인식 방법을 통하여 진리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경향를 보이는 반면, 동양의 철학자나 신학자들은 이성보다 직관(直觀), 과학적 증거보다는 대체로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고가 동양적 사상, 특히 동양의 고전 사상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동서양의 만남」(Meeting of East and West)을 쓴 노드롭 (F. S. C. Northrop)은 주장한다. 서양은 과학적 사고와 객관적 해석 중심에서 체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동양은 직관적인 이해인 경험에서 벗어나 더 객관적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동서양은 서로 배우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동서양 서로가 상호 보완(補完)하고 서로가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동양사상의 깊은 영향을 받아 온 다석 유영모는 무(無)뿐만 아니라 유(有)를 이해한 그리스도인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석은 유(有)와 무(無)를 서로 보완하고 조화시켰다. 따라서 그의 하느님 이해는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고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교리와는 거리가 있다. 다석의 독특한 하느님 개념은 역사적인 것도 아니고, 임시적인 것도 아니며,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개념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쉬임도 없이 계속된다. 이것은 어제의 일도 아니요, 오늘의 일도 내일의 일도 아니다. 이러한 사고는 시간을 넘어 영원히 계속된다. 이러한 개념은 동양 사상이 강조하는 절대무(絶對無)과 절대허공(絶對虛空)의 사고에서 나온다. 하느님의 일은 그 자체가 시간과 공간인 절대 현재, 영원한 현재에서 이루워진다. 하느님의 일은 완전한 사랑이요, 전적으로 연대순 배열이나 목적론의 어떤 류형이나 형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일련의 순차적인 시간 개념을 넘어, 절대 현재에서, 무(無)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신 일이다. 무(無)에서 천지를 창조한다는 말은 불교인들에게는 낮익은 소리이다. 아마도 불교 교도들은 공(空)의 이론을 생각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무(無)의 관점에서, 본 장에서는 무엇보다도 비존재(非存在, non-being)와 무(無, nothingness), 또는 공(空, emptiness, Sūnyatā))으로서 하느님을 이해한 다석 사상을 불교적인 시각에서 다룬다. 해석학적인 차원에서 다석 자신의 다원종교적 체험에서 온 인식의 틀 안에서 궁극적 존재이해를 연구한다. 다석은 불교의 주요 논리인 ‘이것도 저적도 아닌’ 논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불교의 입장에서 알아보는 하느님의 개념은 다른 종교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하고 종교간 대화를 위해서 서로의 하느님 이해를 비교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고 본다.

3.2. 없이 계시는 하느님
나의 견해로는 다석 유영모의 하느님 이해에서 궁극적 존재가 무(無) 이거나 공(空)이라는 사실이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유영모는 신이 없이 계신다고 주장한다. “신(神)이라는 것은 어디 있다면 신이 아니다. 언제부터 어디에 어떻게 생겨 무슨 이름으로 불러지는 것은 신이 아니다.” 궁극적 존재가 무(無)라는 관점에서는 하느님이 어디에 있다거나 무슨 이름으로 불러질 수 없다.

신이라는 것은 어디 있다면 신이 아니다.
언제부터 있었다고 하면 신이 아니다.
언제부터 어디서 어떻게 생겨 무슨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은 신이 아니다.
상대 세계에서 하나라면 신을 말하는 것이다.
절대의 하나는 신이다.
그래서 유신론이라고 떠드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있는 지 없는 지를 알 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느님은 본래 이름이 없거나 무어라 불러질 수 없는 존재라고 유영모는 말한다. 만약 하느님이 무슨 이름으로 불러지면, 이미 신(神)이 아니고 우상 (偶像)이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하는 도덕경 (道德經), 1장 첫머리에 나오는 말과 통한다. 다석 유영모는 하느님이 없다고 말하지만, 다석은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존재로서의 하느님을 결코 의심해 본 일이 없다. 오히려 철저하게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하느님은 존재없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어떤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속성을 규정할 수 없다. “하느님은 존재한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의하는 하느님의 개념은 자기 모순적이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역설적인 표현 방법이다. 다석에 있어서 하느님은 모든 존재나 형상의 개념을 넘어 존재한다.

이러한 까닭에 유영모는 하느님은 “없이 계시는 하느님”이라고 정의한다. 반야심경(般若心經, Prajñāpāramitā)이 궁극적 존재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무(無)와 공(空)을 잘 나타내기 때문에 다석 유영모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자주 읽었고 암송하기를 좋아했다. 유영모의 무(無)로서의 하느님 이해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영모는 비운 마음 즉, 무아(無我)의 상태에서만이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하는 완전한 지혜와 하느님인 니르바나(Nirvana)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