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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1) 본문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1)
박사논문
2015. 8. 25.
공자, 다석사상, 대동정신,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영모, 윤정현, 장재, 장횡거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1)
대동(大同)이라는 말은 하나(一)라는 뜻이다. 응당히 하나라는 말로써 ‘하나’가 옳고 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편이라 옳으니 위해 주고, 자기편이 아니면 그르니 미워해 없애야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라는 말을 알고 그 따위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주장만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니까 멸망시켜야 한다는 소견을 가지고는 대동(大同)을 찾을 수 없다. 대동이란 온통 하나가 되는 지혜다. 누구 할 것 없이 예외라는 것 없이 하나 되자는 것이다. 어떻게 대동(大同)이 될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대동하자는 이가 어디 있겠느냐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침내는 하늘이 되고 하나가 된다. 모두가 하나인 하늘로 들어가야 한다. 너 나가 있는 상대세계에는 잠깐 지내다가 마침내 이것을 벗어버리고 절대자(한아님) 앞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말씀도 하나밖에 없다. 삼라만상이 굉장하다고 할지라도 하나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믿는다. 하늘이 정의이므로 최후의 승리를 한다는 것은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늘에 들어간다는 이길 것 다 이기고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동양의 공자(孔子)도 대동편(大同篇)이라는 책을 썻다. 나는 말한다면 적어도 그 유교의 해석이라는 것은 송(宋, 960-1279)나라 때 와서 처음 유학이 바르게 서게 되고 유교라는 철학체계가 섰는데, 여기서는 대동정의(大同正義)라는 것을 부인한다. 유교 밖에 것은 대단히 이단시(異端視) 한다. 석가나 노자(老子) 사상 같은 것의 대동주의를 대단히 이단이라고 한다.
다석 유영모는 대동(大同)의 길을 공정, 정의, 사랑과 모든 선한 일의 정점으로 생각하였다. 다른 어떤 최상의 길도 하늘의 길인 대동(大同)을 대신할 수 없다고 다석은 말한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되돌아 간다. 이 길이 예수, 석가, 노자, 장자 그리고 장횡거가 주창하였던 길로서 사람이 따라야 할 길이다. 그러나 후기 유교와 성리학이 대동의 정신을 발전시키기 보다도 오리려 점차로 혈통과 가족 중심의 폐쇄적인 사고로 흐르게 만들었다. 결국 유교가 폐쇄적이고 가족주의적인 사고로 사회에 많은 폐를 끼치게 되었다고 유영모는 가혹하게 유교를 비판한다.
더더욱 다석은 공자와 주희도 이러한 잘못을 하였다고 비판한다. 출세하고 감투쓰려고 애쓰게 만들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유교가 부흥하려면 장횡거의 대동정신과 같은 사상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다석은 생각한다. 장횡거가 「서명(西銘)」에서 주장한 사고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구해야 한다. 이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그리고 모든 사물을 위해 존재하여야 한다고 다석 유영모는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유영모는 대동(大同)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심화하였다. ‘대동(大同)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사물과 자신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한다’는 장횡거의 사상을 유영모가 받아 들이고, 그 기본적 사고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사랑 정신에서 나온 사고로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하나이고,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라는 동양의 유기체적 사고로 유영모는 세상을 이해하였다. 이 세상에는 존재 요소와 허공(虛空) 그리고 감각적 존재의 영역을 통하여 모든 사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통하고, 모든 것 안으로 스며드는 초월적이고 순수하고 묘한 그 무엇이 있다고 다석은 말하였다.
다석은 이들 성인이 성령과 통했다고 생각한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 그렇게 바탈을 잘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예수, 노자, 석가, 장자의 종교적인 이해는 서로 다르나, 개혁을 요구한 데는 같다. 개혁의 태도는 서로 다르나, 평등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모두 같다 고 다석은 주장한다. 이들 종교 창설자들의 말씀이 분명히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그 차이는 단지 그들이 살았던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정신에서 오는 것일 뿐, 같은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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