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레프.톨스토이 편역 要約 福音書- 8. 생명은 시간을 초월하여 있다. 9. 홀리는 꾀임 본문
8. 생명은 시간을 초월하여 있다.
고(故)로 참 생명은 오직 현재에 있어서의 생명이다.
예수는 말하기를―모든 육신(肉身)의 고뇌(苦惱) 내지(乃至) 상실(喪失)에 대한 각오(覺悟)가 없는 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마 10:38). 육의 생명을 위해 모든 좋은 것을 얻은 이는 참 생명을 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가르침을 행하기 위하여 육신의 생명을 멸하는 이는 참 생명을 받는 사람입니다(마 10:39).
이런 말에 대답으로, 베드로가 저에게 말하기를―이렇게 우리들은 당신의 말을 듣고 모든 걱정과 재산을 버리고 당신을 따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보수를 받게 되겠습니까?(마 19:27).
예수는 저에게 말하기를―내 가르침 때문에 집과 자매, 형제, 부모, 처, 자와 아울러 자기의 전토(田土)를 버린 이는, 형제, 자매, 전토 그 밖에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의 백배 이상의 것을 받는 외에 시간을 초월한 생명까지도 받을 것입니다(막 10:29,30). 천국에는 보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천국 그 자체가 목적이고 보상입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해서 먼저 사람도 나중 사람도 없습니다(막 10:31).
그 까닭은 천국은 다음의 비유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 주인이 아침부터 집을 나가서 농원에서 일할 일꾼을 모집하러 갔습니다(마 20:1). 저는 일꾼을 하루에 1데나리온씩 주기로 하고 고용하여 농원에 가서 일을 시켰습니다(마 20:2). 그 다음 또 식사하러 가서 일꾼을 모아 그들도 농원에 보내 일을 시키고, 저녁때 또 모아서 일을 시키러 보냈습니다. 누구나 꼭 같이 1데나리온씩의 약속이었습니다(마 20:3~7). 품삯을 줄 때가 왔습니다. 주인은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지불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것도 맨 나중에 온 이에게 먼저 지불하고, 처음에 온 이를 나중으로 미루었습니다(마 20:8). 그때 먼저 온 사람들이 맨 나중에 온 사람게도 1데나리온씩 지불하는 것을 보고(마 20:9), 자기들에게는 그보다 많이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온 사람들에게도 꼭 같이 1데나리온씩 지불됐습니다(마 20:10). 저들은 그것을 받아가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마 20:11).―저들은 그저 잠시동안 일을 했을 뿐이었는데 우리는 모두가 그들의 사배(四培)나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수가 같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것은 불공평(不公平) 합니다(마 20:12). 그때 주인이 곁으로 와서 말하기를―여러분 무엇을 중얼거리시오? 과연 내가 여러분을 모욕한 것입니까? 나는 정한 품삯을 지불했습니다. 우리의 약속은 1데나리온씩이 아니었섰소(마 20:13). 자기 몫을 받아 가시오. 만일 내가 맨 나중에 온 이에게도 여러분과 같은 것을 주고 싶으면, 그것은 내 자유가 아니겠소?(마 20:14). 혹 당신이 내가 사람이 좋은 것을 보고 부러워 졌습니까?(마 20:15).
천국에서는 먼저 사람도 나중 사람도 없습니다.―모두가 한 가지 입니다(마 20:16).
어느 때 예수의 곁에 두 사람의 제자―야곱과 요한이 가까이 와서 말하기를―선생님, 우리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을 우리를 위해 해주시마 하고 약속해 주십시오(마 10:35).
저는 말하기를―당신은 무엇을 원하시오?
저들은 말하기를―우리는 당신과 동등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막 10:36,37).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당신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오. 당신들도 나와 같이 생활하며 나와 같이 육체적 생활에서 깨끗해지게는 될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은 나와 같은 이로 되게 하는 것은 내 힘으로는 미치지 못합니다(막 10:38,40). 각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아버지의 권위아래 들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 20:23).
이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은 두 형제가 스승과 같이 되어서 제자들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데 대하여 그들에게 노했다(막 10:41).
예수는 그래서 그들을 불러서 말하기를―요한과 야곱, 당신들이 만일 제자들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나와 같은 것이 되려고 내게 바랐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또 다른 여러분들, 여러분이 만일 이 두 사람이 여러분들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 데 대하여 저들에게 화를 낸다면, 그것도 또한 잘못입니다. 오직 이 세상에 있어서만 웃 자리에 있는 이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저들을 왕이라느니, 관리라느니 부르는 것입니다(막 10:42, 마 20:25). 허나 여러분 사이에는 나이가 젊은이도 나이가 많은 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다른보다 크게 되려면 모든 이의 종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마 20:26). 당신들 가운데서 맨 첫째 것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신을 맨 나중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마 20:27). 왜냐하면, 이 생각에야말로 사람의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이 저가 살아 있는 것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모든 사람을 섬겨, 영의 생명의 대속(代贖)으로서 육체의 생명을 버리는데 있다고 하는 아버지의 뜻이 있는 까닭입니다(막 10:45).
그리고 예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아버지는 멸망해가는 이의 구원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목자가 헤매던 양을 찾았을 때 기뻐하는 것과 같이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1마리의 양을 잃었을 때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그 잃어버린 1마리를 구하러 나섭니다(마 18:11,12). 만약 여인이 드라크마 1잎을 잃었으면, 집안을 쓸고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 찾을 것입니다(룩 15:8).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저를 가지 곁으로 부르십니다(룩 15:9).
또 그는 저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해서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 대하여 하나의 비유를 말했다.
저는 말하기를―당신이 만일 연희(演戱)에 초대되거든 윗자리에 앉는 것을 피하시오.―당신보다 높은 사람이 왔을 때, 주인이 당신에게 말할 것이오(룩 14:8),―그 자리를 내서 당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라고. 그때 당신은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룩 14:9).―차라리 맨 아랫자리에 앉는 것만 못합니다.―그때에는 주인이 당신을 발견하고 당신을 윗자리로 부를 것입니다. 당신도 체면이 설 것입니다(룩 14:10).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는 교만을 받아주는 자리는 없습니다. 스스로 높은 체 하는 이는, 그것으로서 스스로를 깎아 내리며, 스스로를 겸비(謙卑)해서 자신을 값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게 하는 것입니다(룩 14:11).
어떤 사람에게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룩 15:11).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아버지 저를 분가시켜 주셔요. 아버지는 저를 분가시켰습니다(룩 15:12). 동생은 자기의 몫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재산을 낭비하여 곤궁해지기 시작했습니다(룩 15:13,14). 그래서 저는 타국에서 도야지 치기 신세로까지 떨어졌습니다(룩 15:15). 그래서 도야지와 같이 도토리를 먹어야 할 지경으로 주렸습니다(룩 15:16). 거기서 저는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고 혼자말로―왜 나는 분가를 해서 아버지 곁을 떠났단 말인가? 아버지에게는 모든 것이 풍부하게 있다. 아버지의 곁에는 노동자들도 배부르게 먹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도야지와 같은 것을 먹고 있다(룩 15:17). 지금이야말로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 그의 발아래 엎드려 말하리라.―아버지, 저는 당신 앞에 죄를 졌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될 자격은 없습니다. 품팔이 일꾼으로 보시고 저를 받으소서(룩 15:18,19).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아버지의 곁으로 갔습니다. 저가 가까이 오자마자 아버지는 벌써 멀리서 저를 알아보고 몸소 저를 맞으러 뛰어나가 저를 포옹하고 입맞추기 시작했습니다(룩 15:20). 아들은 말하기를―아버지, 저는 아버지께 죄를 졌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될 자격이 없습니다(룩 15:21). 그런데 아버지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일꾼들을 향해 말하기를―빨리 가서 제일 좋은 옷과 제일 좋은 신발을 가져다, 저에게 입히고 저에게 신켜라(룩 15:22). 또 가서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 잡아서 우리 함께(룩 15:23) 이 내 아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을 축하지 않겠는가!(룩 15:24).―그런데 큰아들은 밭에서 돌아와 집에 가까이 이르르니 집안에서 노래소리가 울려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룩 15:25). 저는 아이들을 불러 말하기를―그럼 당신은 정말로 모르십니까? 당신의 동생이 돌아온 것을. 당신의 아버지가 기뻐서 그 축하로 살찐 송아지를 잡게 한 것입니다(룩 15:27). 형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나와서 그를 불렀습니다(룩 15:28). 헌데, 그는 아버지에게 말하기를―아버지, 저는 몇 해 동안이나 당신을 위해 일하고 당신의 명령을 거스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일찍이 한번도 저를 위해서는 살찐 송아지를 잡은 일이 없습니다(룩 15:29). 이에 반대로 동생은 집을 나가 술꾼들과 함께 어울려 전 재산을 마셔버렸는데 아버지는 지금 그를 위해 송아지를 잡아 주었습니다(룩 15:30). 그래서 아버지는 말하기를―보아라, 너는 항상 나와 같이 잇고, 내 모든 것은 다 네것이다(룩 15:31). 너는 아예 화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네 아우의 죽은 것이 살아나고 잃었던 것을 찾았으니 기뻐해야 한다(룩 15:32).
한 사람이 농원에 과수를 심고, 그것을 다듬고 준비해서 그 농원에서 되도록 많은 과실을 거두려고 온갖 공을 다 들였습니다(막 12:1). 그래서 저는 농원에 일꾼을 보냈는데, 그것은 저들이 거기서 일을 해서 과실을 거두어 들이고 계약에 따라 농원에 대한 임차료를 저에게 지불할 약속이었던 것입니다(막 12:2).
주인이란 바로 아버지이시고 농원이란 바로 세상이며 일꾼이란 바로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오직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저들에게 준 생명을 이해하게 하고, 오로지 그 과실을 가져오도록 하기 위해 자기의 아들인 사람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낸 것입니다. 때가 되어 주인은 임대료를 받으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즉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저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꾼들은 주인의 심부름꾼에게 한푼도 주지 않고 저를 쫓아 보내고 농원은 자기들의 것이라며 자기 자신의 힘으로 거기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아버지의 뜻에 대한 기억을 자기에게서 몰아내고 자기들은 육신의 생명을 향락하기 위해 살고 잇는 것으로 생각하여, 각자 자기일신을 위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막 12:3). 여기서 그 주인은 다시 심복하인을 보내고 또 다시 그 아들을 보내어 일꾼들에게 저들의 의무를 상기시키도록 했습니다(막 12:4~6). 그러나 일꾼들은 모두가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농원이 저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들에게 상기시키려는 주인의 아들만 죽여버리면 자기들은 아주 안심할 수 잇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막 12:7). 그래서 저들은 그를 죽였습니다(막 12:8).
사람들은 저들 안에 살아 있으면서 저들에게 자기는 영원하지만, 저들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에 대해서는 그 기억조차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될 수 있는 한, 영에 대한 의식을 말살해 버렸습니다. 저들에게 주어진 은화를 헝겊조각으로 싸서 땅속에 파 묻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막 21:40). 그들 일꾼을 내 쫓고, 다른 사람을 보내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열매를 맺을 때까지 종자를 뿌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마 21:41).
사람들은 그 영의 의식―저들 속에 있는 것을 방종한 행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저들이 감추고 있는 그 영의 의식을 깨닫지도 못했었고, 또 지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또 이의 이해야말로 저들의 생명인 것을 깨닫지 못했었으며,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되고 있는 초석(礎石)을 뽑아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마 21:42). 그래서 영의 생명을 기초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이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생명을 받지 못합니다. 신앙을 가지고 생명을 얻으려면 자신의 입장을 분별해서, 보수를 바라지 않는 것이 긴요(緊要) 합니다(마 21:43).
그때 제자들이 예수에게 말하기를―우리의 신앙을 더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저희가 더 굳세게 영의 생명을 믿고, 육신의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게 되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영의 생명을 위해서는 얼마쯤을 내주어야 하는지 모르며, 모든 것을 내누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면―그럼에도 선생님 자신은 보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룩 17:5).
이에 대해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저 자작나무의 작은 씨에서 큰 나무가 나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은 신앙이 있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그와 같이 여러분의 속에 그로부터 참 생명이 생장할 수 있는 한 점의 영의 싹이 있는 것을 믿으면, 특별히 나에게 여러분은 신앙을 더해 달라고 청하지는 않을 것이오.
신앙이란, 어떤 놀라운 일을 믿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위치를 깨닫고 구원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데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자신의 위치를 깨달으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당신에게 맡겨진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룩 17:6).
주인이 일꾼과 함께 들에서 돌아와도 그는 저들에게 바로 식사를 하라고는 하지 않지 않습니까?(룩 17:7). 먼저 가축을 우리에 몰아넣고 자기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게 하고 그런 다음에 비로소 당신도 앉아서 먹고 마시라고 하지 않습니까?(룩 17:8). 주인은 일꾼이 해야 할 일을 한데 대하여 저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꾼도 자기가 일꾼인 것을 깨닫고 있으면 자기에게 적절한 것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화내지 않고 일할 것입니다(룩 17:9).
그러면 여러분도 아버지의 뜻을 행했을 때, 우리는 무익한 일꾼이다. 다만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대가를 바라지말고 여러분에게 적당한 것을 받는 것으로서 만족해야 합니다.
보답이 있으리라는 것, 생명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기 위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이것은 그렇지 않을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생명을 멸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가 그 과실을 맺어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룩 17:10).
그런고로 여러분은 주인을 기다리는 하인과 같이 저가 올 때 즉시 그에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룩 12:35,36). 하인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빨리 올지 늦게 올지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항상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들이 주인을 영접할 때, 그의 뜻을 행하고 있으면 저들도 또한 마음이 평안할게 틀림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같습니다. 항상 현재의 각 순간을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것 없이 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해야 하겠다는 등,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말고 영의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룩 12:37,38).
주인이 만일 도적이 오는 때를 알면, 그는 자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도 결코 잠을 자서는 안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의 아들의 생명에 있어서 때란 없고, 저는 오직 현재에 살고 그 생명의 시작과 나중을 모르는 까닭입니다(룩 12:39,40).
우리들의 생활은 주인이 집을 비웠을 때 집 지키는 사람의 우두머리로 집에 둔 하인의 생활과 마찬가지입니다. 저가 만일 항상 주인의 뜻을 행하고 있으면, 저에게도 좋을 것입니다(마 24:45,46). 그러나 만일 저가 주인은 일찍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주인의 명령을 잊어버리기라도 한다면(마 24:48). 주인은 생각지 않은 때 돌아와서(마 24:50) 저를 쫓아 낼 것입니다(마 24:51).
그러면 여러분 방심하지 말고, 항상 영으로 현재에 사시오. 영의 생명에는 때는 없습니다(마 13:33). 여러분 항상 자신에게 조심하여 술 마시기, 포식하는 것, 마음걱정 같은 것에 홀려서 마음이 둔해지는 일 없이 구원의 때를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하시오. 구원의 때는 그물과 같이 만인의 위에 던져집니다. 그것은 언제라는 때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항상 사람의 아들의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룩 21:34~36).
천국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처녀 열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갔습니다(마 25:1). 다섯 처녀는 현명하고, 다섯 처녀는 어리석었습니다(마 25:2). 어리석은 이는 등잔은 가져왔으나 기름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마 25:3). 현명한 처녀들은 등잔을 가지고 온 외에 예비 기름도 준비했습니다(마 25:4). 신랑을 기다리는 사이에 그들은 졸았습니다(마 25:5). 신랑이 왔을 때(마 25:6),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기들의 기름이 모자라는 것을 보고(마 25:7,8), 그것을 파는 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이 간 사이에 신랑은 왔습니다. 기름을 준비해 가지고 잇던 현명한 처녀들은 저와 함께 들어가고 대문은 잠겨졌습니다. 처녀들은 오직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기 위해서만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녀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등불을 켜는 것이 아니고, 적시에 그것을 켜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올 때에 언제나 불이 켜져 있기 위해서는 그들은 끊임없이 불을 켜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생명은 오직 사람의 아들을 공경하기 위해 잇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의 아들은 끊임없이 있습니다. 저는 때를 초월해서 있습니다. 그런고로 저를 섬기려면, 때를 초월해서 오직 현재에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마 25:10,13).
그런고로 여러분은 영의 생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재에 있어서 노력하시오. 만일 노력하지 않으면 그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룩 13:24). 여러분이―우리는 이러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해도, 좋은 일은 오지 않고 와전한 생명도 또 오지 않을 것입니다(룩 13:25,27). 왜 그러냐 하면, 오직 하나의 영인 사람의 아들은 사라이 그를 위해서 행한 일에 따라 각 사람을 위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마 16:27).
모든 사람은 그들이 어떻게 사람의 아들을 섬겼느냐에 따라 구별됩니다. 그들은 무리중의 양과 산양이 구별되듯이 그 행함에 따라 둘로 구별됩니다. 그래서 한쪽을 살고, 한쪽은 멸합니다(마 25:32,33).
사람의 아들을 섬긴 이는 세상 처음부터 저에게 속했던 것, 즉 저들이 보전해 오던 생명을 받습니다. 저들은 또 아버지의 아들을 섬기는 것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보전해 왔던 것입니다.―즉 저들은 주린 이를 먹이고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히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갇힌 이를 찾아보았습니다. 저들은 사람의 아들로서 살고, 만인의 속에 있는 것은 그가 하나인 것을 느꼈기 때문에 가까운 이를 돌보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로서 살지 않은 이는 저를 섬기지 않고 만인의 속에 있는 것은 그 한 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따라서 그와 일치하지 못하고, 그 속에 있는 생명을 잃고 멸망한 것입니다(마 25:34~46).
9. 홀리는 꾀임
시간적 생명의 속임수는 사람에게서 현재에 있어서의
참 생명을 가리어 숨긴다.
어느 때, 사람들이 예수에게 어린이들을 데려왔다. 그의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쫓아 보내려고 했다(마 19:13). 예수는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쫓아 보내려는 것을 보고, 가엾이 여겨 말하기를―
여러분은 공연히 어린이들을 쫓으오. 그들은 가장 좋은 사람들이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을 본받아서 살기 때문이오. 저들이야말로 이미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마 19:14). 여러분은 그들을 쫓아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버지의 뜻을 본받아 살려면 어린이들이 사는 것과 같이 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은 욕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악의를 가지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아무일도 맹세하지 않고 악에게 저항하지 않으며 사람과 송사하지 않으며, 자국인과 외국인의 구별을 모릅니다.― 그런고로 저들은 어른들보다 쉽게 천국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룩 18:17). 만일 육의 모든 홀리게 하는 꾀임을 물리치고 어린이들과 같아지지 않으면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마 18:3).
어린이들은, 아버지의 뜻에 거역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보다 선량한 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오직 그들만이 나의 가르침을 이해합니다(마 18:5). 그리고 내 가르침을 이해하는 이만이, 아버지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룩 9:48). 우리는 어린이를 없수히 볼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들은 우리보다 착하고 저들의 혼은 아버지 앞에 깨끗하고 항상 그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마 18:10).
그래서 하나의 어린이도 아버지의 파멸하지 않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오직 어른들 때문에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른들이 저들을 진리에서 떼어놓기 때문입니다(마 18:14). 그런 까닭에 저들을 잘 보호해서 아버지와 참의 생활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들을 순결에서 떼어놓는 것은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를 선에서 떼어놓고 저를 꾀어서 홀리게 하는 이는 어린아이의 목에 돌절구를 매달아서 물 속에 던지는 것과 같은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헤어 나오는 방법을 모르고 다만 빠져버릴 따름입니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에게는 어른들에 의해 끌려 들어간 홀리는 꾀임에서 빠져 나오기는 어렵습니다(마 18:6).
사람의 세상은 홀리는 꾀임이 있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홀리는 꾀임은 세상 어디에나 끊임없이 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 홀리는 꾀임으로 말미암아 파멸하는 것입니다(마 18:7).
그런고로, 홀리는 꾀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줘버리고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여우가 만약 덫에 걸리면 발을 비틀어 끊고 달아납니다. 그러면 발은 낫고 그 목숨은 구해집니다. 당신도 이것을 배우시오. 홀리는 꾀임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내 버려야 합니다(마 18:8,9).
첫째 계명에 거슬리게 되는 꾀임을 경계하시오.―사람이 우리를 모욕할 때, 우리는 저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것 때문에 사람에게 원한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만일 당신을 모욕하더라도 저도 같은 아버지의 아들이고 당신에겐 형제인 것을 기억하시오. 저가 당신을 모욕하는 일이 있거든 가서 상대하여 타이르시오. 만일 들어주면 당신에게 기쁜 일이고―형제를 하나 얻은 것이 됩니다(마 18:15). 만일 들어주지 않았다면, 저를 설득할 수 있는 두, 세사람을 부르시오(마 18:16). 그래서 만일 후회하고 고치거든 저를 용서하시오. 만일 일곱 번 당신을 모욕하고 일곱 번 용서해 달라면 그를 용서하시오(룩 17:4). 만일 안들으면 내 가르침을 믿는 사람의 모임에 그것을 알리시오. 만일 모임의 말도 듣지 않으면 저를 용서하고 이후 그와의 관계를 끊으시오(마 18:17).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임금이 그의 납세인들과 청산을 시작했습니다(마 18:23). 왕에게 1만 달란트의 빚진 납세인을 데려왔습니다(마 18:24). 그러나 그에게는 한푼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의 재산, 아내, 자식 및 그 자신도 팔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마 8:25). 그러나 그 납세인은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빌기 시작했습니다(마 18:26).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서 그의 빚 전부를 탕감해 주었습니다(마 18:27). 그래서 이 납세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는데 길에서 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이 농부는 저에게 100데나리온의 빚이 있었습니다. 왕의 납세인은 그를 붙들어 목을 조르며 말하기를―당신의 빚을 갚으라(마 18:28). 농부는 그의 발아래 업드려 말하기를―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남김없이 갚아 드리겠습니다(마 19:29).―그런데 그 납세인은 저를 용서하지 않고, 전액을 갚을 때까지 가둬두기 위해 감옥으로 보냈습니다(마 18:30).―다른 농부가 이것을 보고 왕에게 가서 납세인이 한 일을 알렸습니다(마 18:31). 이에 왕은 납세인을 불러다가 그에게 말하기를―악한 개(犬)야, 나는 네가 나에게 자비를 빌기에 너에게 온 세금을 탕감해 주었다(마 18:32). 내가 너를 용서해 준 것에 대해서라도 너는 자신의 빚진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마 18:33).―왕은 노하여 이 납세인을 그가 세금을 완납할 때까지 고문을 했습니다(마 18:34).
여러분이 만일 여러분에게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을 마음에서 용서하지 않는 한, 아버지는 여러분에 대해 이와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마 18:35).
당신도 아는 바와 같이 당신이 만일 다른 사람과 다투었을 경우에는 그것을 법정에 송사하지 않고 그와 화해하는 편이 훨씬 상책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아는 까닭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정에 송사 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원한에 대해서도 꼭 같습니다. 당신이 만일 원한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로부터 당신이 떼어놓는 것이라는 것을 알거든 차라리 속히 원한에서 떠나서 화평한 기분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마 5:25).
여러분은 자신들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지상에서 매인 것은 아버지 앞에서도 매어지고, 지상에서 풀린 것은 아버지 앞에서도 풀릴 것이라는 것을(마 18:18).
여러분이 만일 두․세 사람이 이 지상에서 나의 가르침에 결속 될 때에는 저들이 원하는 것들은 모두 이미 우리아버지로부터 받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시오(마 18:19). 왜 그러냐 하면, 두․세 사람이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의 이름에서 결속될 때에는 사람의 영도 또 저들의 속에 살아 있는 까닭입니다(마 18:20).
여러분 조심하시오. 둘째번 계명에 거슬리는 꾀임은 사람이 그 아내를 바꾸는데 있습니다.
어느 때 예수에게 바리새파 교도의 교사들이 와서 저를 시험해 보려고 말하기를―사람은 그 아내를 버릴 수가 있습니까?(막 10:2, 마 19:3).
그는 저들에게 말하기를―처음부터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마 19:4). 그런고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사람에게 있어서 육과 같은 것입니다(마 19:5). 그런고로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법칙을 깨트려서 그 결합을 갈라놓는 것은 허락이 안됩니다(마 19:6). 여러분의 모세율법에 따르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을 허락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르면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마 19:8).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대저 아내를 버리는 이는 그 여자와 또 그 여자와 결합하는 이를 간음으로 몰아 넣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아내를 버려서 세상에 간음을 퍼드리는 사람입니다(마 19:9).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에게 말하기를―한평생을 한 사람의 아내와 보낸다는 것은 너무 곤란합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차라리 전연 결혼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마 19:10).
그는 저들에게 말하기를―물론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는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두지 않으면 안됩니다(마 19:11). 사람이 만일 아내가 없이 살겠다고 생각하면 온전히 순결을 지켜서 여자에게 접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여자를 사랑할 경우에는 한사람의 아내와 결합하여 그를 버리지 말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마 19:12).
여러분 조심하시오. 셋째 계명에 거슬리는 꾀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무를 이행케 하는 맹세를 하게 하는 일입니다.
어느 때 징세인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저에게 묻기를―당신들의 선생은 어떻습니까?―세금을 내지 않습니까?(마 17:24). 베드로가 말하기를―네, 내지 않을 것입니다.―그리고 예수의 곁에 와서 사람들이 그를 가로막고 그에게 사람은 누구나 납세의 의무가 있다고 말하더라는 것을 보고했다.
그 때 예수는 저에게 말하기를―왕은 그 아들들에게서는 세금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 이외에게는 저들은 누구에게도 세금낼 의무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 외에 아무에게도 어떠한 일에도 의무를 지지 않으며, 일체의 의무에서 자유일 것입니다(마 17:25,26). 그러나 만일 당신에게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내는게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에게 그 의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악에 항거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악에게 항거하는 것은 한층 더 큰 악을 낳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17:27).
또 어느 때, 바리새파 교도들이 카이사르의 관리들과 함께 예수에게 와서 말꼬리를 잡아서 그를 올무에 빠뜨리려고 그에게 말하기를―당신은 진리로서 모든 것을 가르치는 분입니다(마 22:16).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오.―우리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칠 의무가 있습니까? 어떻습니까?(마 22:17). 예수는 저들이 그가 카이사르에 대한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마 22:18). 저는 그들에게 말하기를―여러분이 카이사르에게 내려고 하는 것을 보이시오.―저들은 그에게 은화를 내 주었다(마 22:19). 그는 은화를 보고 말하기를―여기 있는 것이 무엇이오? 누구의 초상이오, 누구의 서명이오?(마 22:20). 저들은 말하기를―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그렇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시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인 자신의 영은 하나님 이외의 누구에게도 내 주어서는 안됩니다. 돈, 재산, 자신의 노력, 이러 것은 모두 그것을 달라는 이에게 내 주시오. 그러나, 자기의 영은 하나님 외에 누구에게도 내 주어서는 안됩니다(마 22:21).
여러분의 바리새파 교사들은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억지로 맹세하게 하여, 저들에게 율법을 따를 것을 약속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을 홀리게 꾀어서 전보다 악한 사람이 되게 할 뿐입니다(마 23:15). 육체로써 자신의 영에 대한 약속을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사람앞에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마 23:16~22).
여러분 조심하시오! 넷째번 계명에 거슬리는 꾀임은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고, 처형하며, 또 다른 사람의 재판과 처벌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하는 일에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의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가서 하루 저녁 자고 가기를 청했다(룩 9:52).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었다(룩 9:53). 그때 제자들이 예수에게 와서 그 일을 호소하여 말하기를―아! 저들은 벼락이나 맞아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룩 9:54).
예수는 말하기를―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의 영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룩 9:55). 나의 가르치는 것은 사람을 멸망케 하려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사람을 구워하느냐 하는 것입니다(룩 9:56).
어느 때 한 남자가 예수에게 와서 말하기를―당신께서 저의 형제에게 명해서 저에게 유산을 분배해 주도록 해주십시오(룩 12:13).
예수는 저에게 말하기를―아무도 나를 당신들의 재판관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누구도 재판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도 사람을 재판할 수는 없습니다(룩 12:14).
어느 때 바리새파 교도들이 예수에게 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말하기를(요 8:3)―이 여자는 간음한 현장에서 잡혔습니다(요 8:4). 율법대로 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하십니까?(요 8:5).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저들이 고쳐 생각할 것을 기다렸다(요 8:6). 그런데 저들은 그에게 귀찮게 재촉하며 그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때 그는 말하기를―여러분들 중에 잘못이 없는 이가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져 치도록 하시오(요 8:7). 그리고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요 8:8).
여기서 바리새파 교도들은 스스로 반성해 보았다. 양심이 저들을 책망했다. 그래서 앞에 있던 이는 뒤에 있는 이의 등뒤로 숨으려 하기 시작하여 모두 멀리 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는 다만, 그 여인과 함께 남았다(요 8:9).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여인에게 말하기를―아무도 당신을 송사하는 이가 없습니까?(요 8:10).
그 여인이 말하기를―아무도 없습니다.
저가 말하기를―나도 당신을 송사할 수는 없습니다. 가시오. 다음에는 죄를 짓지 마시오(요 8:11).
여러분 조심하시오! 다섯째 계명에 거슬리는 꾀임은 사람들이 자신을 자국민에게만 선을 행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외국인을 적대시(敵對視) 하는데 있습니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를 홀리게 꾀이려고 말하기를―참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겠습니까?(룩 10:25).
예수는 말하기를―당신이 아는대로 입니다.―자신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따라 자기의 형제를 그 나라 사람이냐 아니냐를 묻지 않고 돌봐주는 일입니다(룩 10:27).
율법학자는 말하기를―만일 여러 가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없다면, 그래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떻게 내가 내 국민의 적을 돌봐줄 수가 있겠습니까?(룩 10:19).
예수가 말하기를―한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불행한 지경에 빠졌습니다.―그는 매를 맞고 약탈을 당하고, 길에 버려졌던 것입니다(룩 10:30). 한 유대인인 제관은 옆을 지나다가 맞은 사람을 보았으나, 그대로 지나가고 말았습니다(룩 10:31). 또 한 유대사람인 레위사람도 맞은 사람을 보고 지나갔습니다(룩 10:32).
다음에 이방인으로 적국인(敵國人)인 사마리아 사람이 거기를 지나갔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사람을 보자, 평소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을 안중에도 없이 보던 것도 생각하지 않고, 맞은 유대사람을 가엾게 생각했습니다(룩 10:33). 그래서 그의 상처를 닦고 붕대를 감고, 자기의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룩 10:34), 그를 위해 여관주인에게 돈을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 또 저를 위해 돈을 치르러 들릴 것을 약속했습니다.
여기 입니다.―여러분도 또 이방인, 여러분을 경시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때야 말로, 참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룩 10:35).
예수는 말하기를―이 세상은 자기의 것은 사랑하고 하나님의 것은 미워합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사람들―제관, 학자, 관리―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이를 괴롭혀서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영은 죽여지지 않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마 16:21).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게 된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는 마음이 아파 예수의 손을 잡고 저에게 말하기를―만일 그렇다면 예루살렘에는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막 8:32).
그 때 예수는, 베드로에게 말하기를―무슨 말이오, 베드로. 당신의 하는 말은 그게 홀리게 하는 꾀임이오. 당신이 만일 나의 고난과 죽음 때문에 두려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일이나, 영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막 8:33).
그래서 예수는 사람들을 제자들과 함께 불러서 말하기를―내 가르침을 따라 살려는 이는 그 육의 생명에서 멀리 하게 하고, 모든 육신의 고통에 대해 항상 각오하고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육체의 생명 때문에 두려워 하는 이는 참 생명을 멸하는 것이며 육체의 생명을 경히 여기는 이는 참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막 8:34,35).
그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사두개파 신자들이 가까이 왔으므로 저는 일동에게 참 생명과 죽음으로부터 부활의 의미를 설명했다.
사두개파 교도들은 말하기를―육체의 생명의 사후에는 벌써 어떠한 생명도 없다고(마 22:23). 저들은 말하기를―어떻게 모든 사람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면 다시 살아난 이는 좀체로 같이는 못살 것입니다(마 22:24). 여기에 우리 가운데 일곱 사람의 형제가 있었습니다. 장자는 아내를 맞은 다음에 죽었습니다. 그 아내는 둘째 동생과 결혼했으나 그 사람도 죽었습니다. 그 여인은 셋째 동생에게 시집을 갔으나 그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곱째까지 똑같이 반복했습니다(마 22:25,26). 그럼 만일 모두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때 이 일곱 형제는 한 사람의 아내와 어떻게 생활할 것입니까?(마 22:28).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여러분은 생명의 부활이 무엇인지를 고의로 혼란케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오. 이 세상 생활에 있어서 만은 사람이 아내를 가지고 시집을 갑니다(마 22:29). 영원한 생명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에 상당하는 사람들은 장가도 자기 않으려니와 시집도 가지 않습니다(룩 20:35). 왜 그런고 하면, 벌써 그 이상 죽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아버지와 같아 집니다(룩 20:36). 여러분의 책중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오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야곱이 이미 사람으로서 죽은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으로서 죽은이도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은 죽지 않는 이라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이는 영원히 살아 있는 까닭입니다. 죽음에서 부활이란 아버지의 뜻에 있는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대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아버지와 같아져 갈 경우에는 사람도 때와 죽음을 초월하는 것입니다(마 22:31,32).
이 말을 듣고 바리새파 교도들은 벌써 저를 침묵케할 방도를 몰랐다. 그래서 일제히 예수를 시험하기 시작했다(마 22:34). 바리새파 교도의 한 사람은 말했다(마 22:35).
선생님! 당신의 의견에는 모든 율법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계명입니까?
바리새파 교도들은 예수도 율법에 대한 대답에는 혼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마 22:36).
그러나 예수는 말하기를―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지배하시는 주를 전영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음 계명은 거기서 나옵니다(마 22:37).―즉 가까운이를 돌봐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가까운이들 속에도 같은 주가 계시기 때문입니다(마 22:39). 그리고 여러분들의 모든 책에 기록된 것은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마 22:40).
예수는 또 말하기를―여러분의 의견에는 그리스도란 어떤이 입니까? 그는 누구의 자손입니까?
저들은 말하기를―우리의 의견으로는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입니다(마 22:42).
이 때, 그는 저들에게 말하기를―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라고 불렸던 것입니까?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도 누구의 자손도 아닙니다(혈육에 따라서는). 그러나 그리스도―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아는 것과 같이, 자신의 속에서 알 수 있는 우리의 지배자인 바로 그 주이십니다. 그리스도라 함은 실로 우리속에 있는 오성(悟性)입니다(마 22:43).
그리고 예수는 말하기를―여러분 바리새파의 교사들의 누룩을 조심하여 경계하시오. 사두개파 교도들의 누룩과 당국자(當局者=官邊)의 누룩을 경계하시오(룩 12:1, 막 8:15).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칭 바리새파 교도들의 누룩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거기에는 모든 홀리게 하는 꾀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마 16:11).
이래서 사람들이 그의 말의 뜻을 깨달았을 때, 그는 말하기를(막 16:12)―
여러분, 무엇보다도 학자 자칭 바리새파 교도의 가르침을 경계하시오(룩 20:46). 어째서 저들을 경계해야 하느냐 하면 저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할 예언자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할 권위를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차지한 것입니다. 저들은 말을 전파할 뿐으로 아무것도 행하지는 않습니다(마 23:2). 그래서 결과는 항상 이러 이러하게 하시오. 이러 이러하게 행하시오 라고 말할 뿐으로 아무것도 행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들은 선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입으로 말만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마 23:3). 저들은 즉,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마 23:4). 그리고 다만, 자신의 교사의 지위를 유지하기에만 힘쓰고 그 때문에 위엄을 지키는 것,―복장을 정제해서 존대한체 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마 23:5~7). 여러분 이런고로 알아두시오. 아무도 자신을 교사라 목사라 불러선 안된다는 것을(마 23:8). 그런데 자칭 바리새파 교도들은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그렇게 불리는 것으로서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자신도 그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마 23:13). 이들 바리새파 교도들은 외적인 의식과 맹세에 의해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마 23:15), 앞 못보는 사람과 같이 겉모양의 무의미한 것과 또, 모든 것은 사람의 영안에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마 23:16). 저들은 가장 쉬운 외형적인 것은 행하나 필요하고 어려운 것―남을 돌봐주는 일, 불쌍히 여기는 일, 진리를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마 23:23). 저들은 다만, 외형적으로 율법에 따르며, 다른 사람까지도 외형적 율법에 인도할 따름입니다(마 23:28). 이런 까닭으로 저들은 마치 칠해놓은 관과 같이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마 23:27). 저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수교자를 숭배합니다(마 23:29,30).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저들은 그 성자를 박해하고 살상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모든 선한 것에 적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저들로부터 나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들은 선을 가려놓고 선 대신에 악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서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자칭 교사들의 무리입니다(마 23:31).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이 이미 아는바와 같이 모든 잘못은 고칠 수 있으나(마 3:28), 만약 사람이 선한 일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르면 벌써 그 잘못은 고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칭 목사들은 이것을 하고 있습니다(막 3:29).
이래서 예수는 말하기를―나는 이 예루살렘에서 참 행복의 이해에 대해 사람들을 일치시켜 보려고 했으나, 이곳 사람들은 오직 선한 교사를 벌하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마 23:37). 이런 까닭으로 저들은 전과 같이 배신자로 남아서 즐겨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 동안은 끝내 참 하나님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마 23:38,39).
그리고 예수는 신전에서 떠나고 말았다.
그때, 그의 제자들은 그에게 말하기를―이 신전과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바친 많은 장식품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마 24:1).
예수는 말하기를―내가 참으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신전과 그 많은 장식물들은 파괴되어서 거기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마 24:2). 오직 하나의 신전이 있습니다.―그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돌봐줄 때의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저들은 또 그에게 물었다.―그 같은 신전은 어느 때 이루어지겠습니까?(마 24:3).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그것은 급히는 오지 않을 거시오. 사람들은 아직 더 오래 나의 가르침이란 명목으로 기만당하고 그 때문에 전쟁과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마 24:4~7). 그리고 크게 불법천지가 되어 남을 돌봐주는 일은 적어질 것입니다(마 24:12). 그러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참의 가르침이 퍼질 때가 오면, 그때에는 죄악과 홀리는 꾀임도 뿌리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마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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