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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레프.톨스토이 편역 要約 福音書- 6. 거짓 생명(生命) 7. 나(우리)와 아버지와는 하나다.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톨스토이

레프.톨스토이 편역 要約 福音書- 6. 거짓 생명(生命) 7. 나(우리)와 아버지와는 하나다.

柏道 2020. 9. 8. 14:15

6. 거짓 생명(生命)

 

그런고로 사람은, 참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있어서

육(肉)의 거짓 생명을 거부(拒否)하고 영으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가 저를 찾아왔지만, 군중이 예수를 둘러싸고 있어서, 아무리 해도 만날 수가 없었다(룩 8:19, 마 12:46). 어떤 사람이 그를 보고 예수에게 가까이 가서 말하기를―당신의 집안 식구가, 어머니와 형제가, 밖에서서 당신을 만나려 하고 있습니다, 라고(룩 8:20).

예수는 말하기를―내 어머니와 내 형제란,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그를 행하는 이입니다(룩 8:21).

그러니까, 한 부인(婦人)이 말하기를―당신을 잉태한 태는 행복합니다, 당신을 먹여 기른 젖도 행복합니다(룩 11:27).

예수는 이에 대해 말하기를―아버지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간직하는 이만이 행복합니다(룩 11:28).

한 남자가 예수에게 말하기를―당신이 어디를 가거나,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룩 9:57).

이에 대해 예수는 저에게 말하기를―나를 따라 갈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습니다.―내게는 내가 살집도 장소도 없습니다. 들짐승에게는 보금자리와 굴이 있을 뿐이지만, 사람은 만일 영으로 살면, 가는데 마다 집입니다(룩 9:58).

어느 때,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작은 배에 탄일이 있었다. 저가 말하기를―저 건너 언덕으로 건너가지 않겠오, 라고(막 4:35).―잠시 후 호수에 폭풍이 일어 요란하게 파도가 쳐 위험하게 저들은 물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막 4:37). 그런데 그는 배고물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저들은 그를 부러 일으키며 말하기를―선생님, 당신에겐 우리들이 빠져죽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습니까?(막 4:38). 그래서 폭풍이 가라 앉은 다음, 그는 말하기를―당신들은 왜 그렇게 겁이 많습니까? 당신들에게는 영의 생명에 대한 신앙이 없습니다(막 4:40).

예수는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를―나를 따라오라고, 그 사람은 말하기를―제게는 늙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먼저 제가 그의 장사를 지내게 해 주십시오. 그때 제가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룩 9:59).

그래서 예수는, 그에게 말하기를―죽은 이로 하여금 죽은 이를 장사하게 하시오, 당신이 만일 살아 있고자 생각하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것을 전파(傳播) 하시오(룩 9:60).

또 한 사람은 말하기를―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 당신의 명령대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앞서 저에게 가족을 정리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룩 9:61).

그래서 예수는 저에게 말하기를―만일 농부가 뒤를 돌아보고 있으면, 저는 밭갈이를 못합니다. 아무리 뒤 돌아 보기를 적게 한다 해도,―뒤를 돌아보고 있는 동안에는 밭갈이는 안됩니다. 자신이 갈고 있는 밭이랑 이외의 것은 모두 잊어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때 비로소 밭이 갈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육신의 생명 때문에 일어나는 일을 걱정하고 있으면, 당신은 참 생명을 깨닫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아 살게는 되지 않습니다(룩 9:62).

이 일 후에, 어느 때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어느 마을에 갔다. 마르다라는 한 부인이 저를 그 집에 초대했다(룩 10:38).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 여인은 예수의 발 곁에 앉아서 그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룩 10:39).

잠시 후, 마르다는 예수께 와서 말하기를―제 동생이 저 혼자만 일하게 하는 것을 당신께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애도 저와 함께 일하도록 말씀해 주십시오(룩 10:40).

그 대답으로 예수는 그 여인에게 말하기를―마르다여, 마르다여! 당신은 여러 가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을 하지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입니다(룩 10:41). 마리아는 그 필요한 하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아무도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오직 하나, 영의 양식만이 필요한 것입니다(룩 10:42).

그리고 예수는 일동에게 말하기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의사를 거부하고, 항상 궁핍과 육체의 고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때 비로소 나를 따라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룩 9:23). 왜 그러냐 하면, 자신의 육체의 생명을 위해 근심걱정 하는 이는 참 생명을 멸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행해서 육체의 생명을 멸하는 이는, 참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룩 9:24). 왜 그런고 하면, 사람이 만일 온 세계를 얻어도 자신의 생명을 멸망케 하고 또 해치면 아무 이익도 없기 때문입니다(룩 9:25).

그리고 예수는 말하기를―여러분은 재물에 마음을 허락지 마시오. 그 까닭은 당신의 생명은 가진 물건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는 것에 좌우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룩 12:15).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지방에는 풍년이 들었습니다(룩 12:16). 그래서 그는 생각하기를―창고를 고쳐서 더 큰 것을 짓고 거기다 내 모든 재물을 모으리라고(룩 12:17,18). 그리고 자신의 영에게 말하기를―영혼아! 여기 있는 모든 것은 네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편히 먹고, 마시고, 그리고 즐기며 살아라고(룩 12:19).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말하기를―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 네 영혼을 잃게 된다. 네가 축적한 것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룩 12:20).

모든 것을 육체의 생명을 위해 비축하고 하나님에 따라 살지 않는 이도 이와 같습니다(룩 12:21).

그래서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여러분은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저들이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이 갈릴리 사람들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보다 악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까?(룩 13:2).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다 같습니다. 만일 죽음에서 구원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도 또한 다 멸망하는 것입니다(룩 13:3). 또 탑이 무너졌을 때에 압살(壓殺) 당한 18사람은 과연 예루살렘의 다른 모든 주민보다 각별히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까?(룩 13:4).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죽음에서 구원되지 않으면, 오늘이 아니면 내일, 이와 같이 멸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룩 13:5).

만일 우리가 또 저들과 같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의 뜰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주인이 뜰에 나와 그 나무를 보고, 거기에 열매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룩 13:6). 주인이 뜰 가꾸는 이에게 말하기를―나는 3년이나 와 보았으나, 이 무화과나무는 끝내 열매를 맺지 않소. 이제는 베어 버리지 않으면 안되겠소. 그렇지 않으면 공연히 땅만 손해를 보게되오(룩 13:7). 뜰 가꾸는 이가 말하기를―주인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저에게 이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게 하시고, 그리고 다음 여름에 결과를 보게 해 주십시오. 틀림없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름이 와도 열매를 맺지 않거든, 그때 가서 잘라 버리십시오.

우리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육체에 따라 살고, 영의 생명의 열매를 맺지 않는 동안은, 우리도 역시―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입니다. 다만, 누군가의 온정(溫情)으로 간신히 여름까지 살아 있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열매를 맺지 않았더라면 저 창고를 지은 사람과 같이, 갈릴리 사람들과 같이, 또 탑에 치어 죽은 18사람과 같이, 그밖에 또 모든 열매를 맺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영원한 죽음으로 멸망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룩 13:8,9).

이것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 지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일입니다. 단지, 한집안의 일만이 아닙니다. 온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있어서도 우리는 판단하고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오면 우리는 말하기를―비가 오겠다고,―그래 대게의 경우 그렇습니다(룩 12:54). 또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면, 우리는 말하기를―맑을 것이라고,―그래서 대게의 경우 그렇게 됩니다(룩 12:55). 우리는 이렇게 천기는 미리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모두 죽는 일, 멸망하는 일, 우리에게 있어서 오직 하나인 구원은―영의 생명이고, 그 뜻의 실천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룩 12:56).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래서 저는 또 다시 일동에게 말했다(룩 14:25).

내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는 부, 모, 처, 자, 형제, 자매 및 모든 자기의 소유물을 생각지 말고, 항상 만사에 각오가 돼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됩니다(룩 14:26). 내가 행하는 바를 행하는 이 만이, 내 가르침에 따르는 이 만이 홀로 죽음에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룩 14:27).

왜 그러냐 하면, 모든 사람은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일이 유익하냐 아니냐를 생각해서 만일 유익하면 그 일을 행하고, 불리하면 내버려 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 사람은 먼저 앉아서―돈은 얼마가 필요한가,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나 있나, 모두 마치기까지 그 돈으로 될 것인가, 어떨 것인가를 생각합니다(룩 14:28). 이것은 짓기 시작하여 마무리를 못해서,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룩 14:29).

이와 같이 육의 생명에 의해 살고자 하는 이는 먼저, 자기의 종사하고 있는 일을 완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룩 14:30).

또, 어떤 왕(王)이리도, 나가 싸우려 할 때에는, 그에 앞서 먼저, 1만명을 가지고 적(敵)의 2만명에 대항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할 것입니다(룩 14:31). 그래서 만일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사절(使節)을 보내서 화친(和親)을 청하고,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도 육의 생명에서 몸을 내주기 전에 먼저, 잘 생명의 죽음에 대하여 싸울수 있느냐 없느냐, 만일 죽음이 그보다 강할 경우에는 싸우기 전에 화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떨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모두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족과, 돈, 재산들에 대해 우선 먼저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래서 거기에서 어떠한 이익이 있는가를 헤아려 보고, 아무 이익도 없는 것을 깨달았으면, 그때 비로소 내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룩 14:33).

이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영의 생명의 틀림없이 있을 경우에는 그래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난 다음에 이 생명도 없어지게 됩니다(룩 14:15).

이에 대해, 예수는 말하기를―그것은 틀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의 생명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을 실행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된 마음의 걱정 때문에 참 생명에서 멀어져서 그것을 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려분이 하고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주인이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은 사양(辭讓)하기 시작했습니다(룩 14:16). 한 사람은 말하기를―나는 땅을 샀습니다. 가보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룩 14:18). 다른 이는 말하기를―나는 황소를 샀습니다. 시험해 보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룩 14:19). 셋째 사람이 말하기를―나는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 식(式)을 행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룩 14:20). 이래서 하인이 와서 아무도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주인에게 일렀습니다. 주인은 그 때, 걸인(乞人)들을 부르게 했습니다. 걸인들은 사양하지 않고 왔습니다(룩 14:21). 저들이 왔지만 아직 자리가 남았습니다(룩 14:21). 그래서, 주인은 또다시 하인을 불러서 말하기를―가서 모든 사람에게 내 잔치에 모여서 내 집을 채우게 청해오도록 하라.―이래서, 여가(餘暇)가 없다고 사양한 사람들은 끝내 이 잔치에 참례하지 않았습니다(룩 14:23,24).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생명을 주시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에 나가지 않는 것은, 재물의 속임수가 저를 꼬이고(誘惑)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부합된 참 생명을 위해, 속임수의 한 때의 재물을 버리는 이는 어느 현명한 청지기의 한일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자집 주인 밑에서 청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청지기는 자기가 조만간에 주인에게 쫓겨나서 집도 먹을 것도 없는 신세가 될 것을 짐작하게 됐습니다(룩 16:1,3).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옳지, 이렇게 하자.―주인의 물건을 몰래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저들의 부채액(負債額)을 적게 해주자. 그러면, 주인이 나를 쫓아냈을 때, 농부들이 나의 친절함을 잊지 않고 나를 못 본체 하지 않을 것이다(룩 16:4). 청지기는 이대로 실행했습니다.―저는, 주인의 채무자인 농민들을 불러다, 그들의 증서를 고쳐 써주었습니다(룩 16:5). 금(金) 100을 빚진 이에게는 50이라고 쓰고, 금 60을 빚진 이에게는 20이라고 쓰고, 그 밖에 사람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했습니다(룩 16:6,7). 주인은 그것을 알자, 혼자말로―옮지 옳지! 저는 썩 잘했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저는 밥을 빌러 다니지 않으면 안됐을 것이다. 내게는 손해를 끼쳤지만, 그 생각은 썩 잘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육의 생명에 대해서는 정확한 계산을 잘하고 있으나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룩 16:8). 정당하지 않은 거짓 재물에 대해서는 우리도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영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룩 16:9). 우리가 만일 재물과 같은 하잘 것 없는 것을 영의 생명을 위해 아까워하면, 그 생명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룩 16:10). 우리가 만일 거짓 재물을 내주지 않으면 우리의 참 생명 또한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룩 16:11).

한번에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하나님과 재물을 아버지의 뜻과 자기의 뜻을 어느 쪽이건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룩 16:13).

바리새파 교도들도 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재물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를 조소(嘲笑)했다(룩 16:14).

그래서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여러분은, 당신들이 부유한 까닭으로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을 보고 진정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겉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높은 것은 하나님 앞에는 낮은 것입니다(룩 16:15).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땅위에 있으며, 그로 들어가는 이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에 들어가는 이는 부자가 아니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의 율법으로 보아도 모세에 의해서도 예언자들에 의해서도 항상 같은 것이었습니다(룩 16:16,17). 들어보시오, 여러분의 신앙에 의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인가를.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사스럽게 즐기게 있습니다(룩 16:19). 또 라사로라는 옴쟁이 떠돌이가 있었습니다(룩 16:20). 라사로는 항상 부자의 집밖에 와서, 부자의 먹고 남은 찌꺼기라도 없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먹던 찌꺼기마저 라사로에게는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부자의 개들이 죄다 먹어버리고, 오히려 라사로의 부스럼딱지가지 핥고 돌아다녔습니다(룩 16:21). 얼마 후에 두 사람은―라사로도, 부자도 죽었습니다(룩 16:22). 그래서 부자는 지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을 보았고, 옴쟁이 라사로가 그 옆에 앉아 잇는 것을 보았습니다(룩 16:23). 부자가 말하기를―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보오니 당신의 옆에 옴쟁이 라사로가 앉아 있습니다. 저는 저의 집 담 밑에서 굴러다니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괴롭힐까 두렵습니다. 아무쪼록 옴쟁이 라사로를 제게 보내셔서 그의 손가락을 물에 적시게 하여 그것으로 제 목을 식히도록 해 주십시오,―저는 지금 이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룩 16:24).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하기를―어찌 내가 라사로를 불 속에 있는 너에게 보내겠느냐? 너는 세상에 있을 때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라사로는 오직 슬픔을 당했을 뿐이다. 그러면 저는 이제 기쁘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룩 16:25). 설령(設令), 내게 그럴 생각이 있어도 그것은 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와 너희들과 사이에는 크고 깊은 연못이 있어서 그 것을 건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으나, 너희들은 죽은자이기 때문이다(룩 16:26). 그때 부자가 말하기를―그러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옴쟁이 라사로를 어려우시겠지만 저의 집까지 보내는 것을 허락 하소서(룩 16:27). 제게는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는 그들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로 하여금 저들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재물이 얼마나 해가 많은 것인가를 증명하도록 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들도 또, 무슨 수로 이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룩 16:28). 아브라함이 말하기를―저들은 벌써 그의 해가 많음을 알고 있다. 모세도 모든 예언자도 이 일을 말하고 있다(룩 16:29). 부자가 말하기를―그러나 죽은 사람 중에서 누가 살아서 저들에게 가면 더욱 좋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저들도 더욱 잘 생각을 고칠 것입니다(룩 16:30). 아브라함은 말하기를―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마저 듣지 않았다면, 설령 죽은 이가 살아났다 해도, 그의 말을 들을 리가 있겠느냐(룩 16:31).

사람들과 물건을 나누어 가지고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할 것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모세의 모든 율법도 모든 예언자들도 오직 이 한가지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면서 행할 수가 없는 것은 재물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바리새파 교도 중에 부자인 한 관리가, 예수 앞에 나와서, 그에게 말하기를―선한 선생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저는 무엇을 해야 겠습니까?(막 10:17).

예수는 말하기를―무엇 때문에 나를 선하다고 하시오? 선한 이는 아버지 뿐이십니다. 당신이 만일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계명을 행하시오(막 10:18).

그 관리가 말하기를―계명은 수가 많습니다.―어떤 계명을 행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는 말하기를―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또 너의 아버지를 경배하고, 그 뜻을 행하며, 가까운 이를 자기 자신과 같이 돌보아라, 이것입니다(막 10:19). 바리새파 교도는 말하기를―이런 계명은 모두 어려서부터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묻는 것은, 당신의 가르침에 의해 그밖에 또 무엇을 행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막 10:20).

예수는 잠시 그의 얼굴과 그의 잘 차려입은 복장들을 훑어 보고 나서,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다만 한가지 사소한 일을 당신은 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오.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으로서도 이들 계명―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특히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같이 가까운 이를 돌보라는 그것을 행하려고 생각한다면, 즉시 당신의 재산을 팔아서,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그때 비로소 당신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막 10:21).

이 말을 듣자, 그 관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가버렸다. 왜 그러냐 하면, 그에게는 자기 재산이 아까웠기 때문이다(막 10:22).

그때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이와 같이, 부자에게는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막 10:23).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반복해 말하기를―그렇소, 어린 사람들아, 자기의 재물을 가진 이는, 아버지의 뜻에 알맞을 수가 없습니다(막 10:24). 재물에 의지하는 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차라리 쉬울 것입니다(막 10:25).

그래서, 제자들은 더욱 두려워하며 말하기를―그렇다면, 그들은 그 생명조차 지키기 어려울 것입니다(막 10:26).

예수는 말하기를―사람에게는, 재산이 없이는 자기의 생명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재산도 없이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막 10:27).

어느 때 예수는 여리고의 거리를 지나갔다(룩 19:1). 이 거리에는 징세인의 우두머리로 삭개오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룩 19:2). 이 삭개오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가 여리고에 왔다는 것을 알고, 저를 마나고 싶었다. 그런데 저의 주위에는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 곁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삭개오는 키가 작았다(룩 19:3). 그때 저는 앞으로 달려나가 나무에 올라가 예수가 그 옆을 지나갈 때에 그를 보려고 했다(룩 19:4). 과연 예수는 옆으로 지나가면서 저를 보고, 그가 자기의 가르침을 믿는 이라는 것을 알고 말하기를―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가시오, 내가 당신의 집을 찾아 가리다(룩 19:5). 삭개오는 내려와 집으로 달려가 예수를 맞을 준비를 하고, 기쁨으로 그를 영접했다(룩 19:6).

사람들은 예수의 일을 비난하여 말하기 시작했다.―보시오, 저는 징세인의 집, 사기꾼의 집에 들어갔소(룩 19:7).

한편, 삭개오는 예수에게 말하기를―선생님, 저는 이렇게 하려고 생각합니다.―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 중에서 제가 괴롭힌 모든 사람에게 네배로 해서 돌려주도록 하겠습니다(룩 19:8).

예수는 말하기를―이제 당신은 스스로를 구워했습니다. 죽었던 것이 살아나고, 잃었던 것을 찾아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당신은, 그 아들을 찌르려 했던 아브라함과 같이 행하고, 자신의 신앙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룩 19:9).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의 온 생명은 자신의 영안에서 멸해가고 있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구출해 내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희생은, 그 양(量)에 따라 헤아릴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 예수는 그 제자들과 함께 연보궤 앞에 앉았던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 그 상자에 넣고 갔다. 부자는 와서 많은 돈을 집어넣었다(막 12:41).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렙톤 두 개를 집어넣었다.

예수는 그 여인을 가리키며 말하기를―보시오, 저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개를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누구보다도 많이 바친 것입니다(막 12:43). 왜 그러냐 하면, 많은 사람은 저들의 생활에서 필요치 않은 것을 바친 것이지만, 저 여인은 가진 것 전부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전 생명을 바쳤기 때문입니다(막 12:44).

어느 때, 예수는 또 시몬이라는 옴쟁이의 집에 갔었다(마 26:6).

그 집에 한 부인이 들어왔다. 그 부인은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값진 귀중한 기름이 들어있는 항아리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죽음이 가까움을 이야기했다. 그것을 듣고 부인은 예수를 측은히 여겨 그에게 자기의 애틋함을 표시하기 위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려고 했다. 그 여인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항아리를 깨어 그의 머리에도 발에도, 온몸에 기름을 쏟아 뿌렸다(마 26:7).

그래서 제자들은 그 여자의 행동이 잘못 됐다는데 대해, 서로 여러 가지 논란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예수를 판 그 유다는 말하기를―아아! 얼마나 많은 보화가 허비된 것인가(마 26:8). 이 기름을 300데나리온에 팔면, 몇 사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가 있을 터인데. 이래서 제자들이 부인을 책망하기 시작한 때문에, 그 여인은 어리둥절하여, 자기가 한일에 잘잘못 마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마 26:9).

그 때, 예수는 말하기를―여러분은 쓸데없이 이 부인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 부인은 참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연히 가난한 사람을 운운하고 있습니다(마 26:10). 여러분이 만일 가난한 사람에게 선을 하려거든, 하시오.―저들은 항상 여기 있습니다. 어찌 저들의 일을 말합니까? 만일 가난한 이를 불쌍히 여기거든, 가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오. 그러나 저 여인은 나를 가엾이 여겨 참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을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여러분은 내 게 기름을 부은 것이 필요치 않은 것으로 아시오? 저 여인이 내게 기름을 부은 것은 내 육체의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은 필요한 것입니다(마 26:11,12). 저 여인은 정말 아버지의 뜻을 행한 것입니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어, 육의 계산을 생각하지 않고, 가진 것 모두를 내어준 것입니다(마 26:13).

그래서 예수는 말하기를―나의 가르침은 아버지의 뜻의 실행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알맞은 것은, 오직 행동으로 하는 것이며, 말로서가 아닙니다. 만일 한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에 대해 항상, 「네 그렇게 하죠, 네 그렇게 하죠.」하면서, 아버지의 명한 것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마 21:28,30). 그러나, 만약 다른 아들은 처음엔 「난 몰라요.」라고 했지만, 나중에 아버지의 명령대로 가서, 그 일을 하면,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와 같아서―입에 붙은 말로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고 하는 이는 아버지의 뜻에 알맞은 이가 아니고, 아버지의 원하는 것을 실행하는 이라야, 그의 뜻에 알맞은 이입니다(마 21:29,31).

 

 

 

7. 나(우리)와 아버지와는 하나다.

 

영원한 생명의 참 양식은, 아버지의 뜻의 실천이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유대인들이 예수를 사형에 처(處)하려 했기 떄문에 예수는 갈릴리로 가서, 친지들과 함께 생활했다(요 7:1). 유대인의 장막절(帳幕節)이 왔다(요 7:2). 예수의 형제들은 명절에 갈 준비를 하고 예수에게도 함께 가기를 권했다(요 7:3). 저들은 그의 가르침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요 7:5).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항상 말하기를, 유대인의 하나님 섬기는 방법은 틀렸다. 행동으로 하나님께 참 봉사하는 것을 아는 이는 자기뿐이라고. 만일 당신이 정말 당신밖에 하나님께 참으로 봉사하는 방법을 아는 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와 함께 명절에 가는게 좋을 것입니다. 거기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터이므로 거기서 여러 사람에게 모세의 가르침의 거짓임을 주장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믿으면, 그때에는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요 7:3). 무엇 때문에 숨어 있는 것입니까? 당신은 말하기를 여러분의 봉사는 거짓이요, 하나님을 참 섬길 줄 아는 이는 당신뿐이라고. 어디,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시오(요 7:4).

그래서,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너희들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특별한 때와 장소가 있다. 그러나 내게는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특별한 때는 없다. 나는 항상 가는데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요 7:6). 나는 항상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저들의 하나님에의 봉사도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 그것 때문에 저들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요 7:7). 너희들은 명절에 가거라, 나는 내가 가고싶을 때 갈 것이다(요 7:8).

이렇게 해서 형제들은 가고, 그는 남아서 이미 명절의 중간쯤에 이르러서 떠났다(요 7:9,10).

유대인들은 그가 저들의 명절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와서 참례하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이 동요되었다(요 7:11).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에 대해 논란했다. 어떤 이는 그의 말은 진실이라고 말했으나, 어떤 이는 저는 다만 사람들을 홀리게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요 7:12).

명절 중간쯤에 예수가 신전에 들어와서, 저들의 하나님에의 봉사가 거짓이라는 것, 하나님을 섬기려면 신전에서 하지 말고, 제물로서 하지말고, 영으로서, 행동으로서 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요 7:14).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배우지도 않고 모든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놀랐다(요 7:15). 예수는 사람들이 그의 지혜에 놀랐다는 말을 듣고, 저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가르침은 내 가르침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이의 가르침입니다(요 7:16). 사람이 만일 당신들을 이 생에 보내신 영의 뜻을 행하려고 한다면, 이 가르침은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요 7:17). 왜냐하면, 스스로 만드는 이는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찾는 것이지만, 저를 보내신 이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찾는 이는 항상 올바르고, 그 속에 부정이 없기 때문입니다(요 7:18).

여러분의 모세의 율법은 아버지의 율법이 아닙니다. 그런고로 그것을 따르는 이는 아버지의 율법을 행하지 않고 악과 거짓을 행하는 것입니다(요 7:19). 나는 여러분에게 아버지의 뜻만을 행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 가르침에 모순은 있을 수 없습니다(요 7:21). 그런데, 여러분의 모세 율법은 철두철미하게 모순에 차 있습니다(요 7:22).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영으로 판단하시오(요 7:24).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저 사람은 거짓 예언자라 하오. 그러면서도 그가 율법을 비난하는데 대해, 누구 한사람 그에게 항의하는 이가 없소(요 7:25). 어쩌면 정말 그는 참 예언자인지도 모르오. 그래서 관원들도 그를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지도 모르지(요 7:26). 다만 한가지 저를 믿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가 올 때에는 그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아는 이가 없다고 그래왔는데, 우리는 저의 출생이며, 그의 육친도 알고 있는 일이요.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그의 증명을 요구해 마지 않았다(요. 7:27).

그때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당신들은 혈육에 의해 나를 알고, 내가 어디로부터 온 것을 압니다. 그러나, 영에 의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모릅니다. 내가 영에 의해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이로부터 온 것인가, 여러분은 먼저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요 7:28). 만약 내가, 나는 그리스도라고 했으면 여러분은 사람인 나를 믿었겠지만 내 속과 여러분의 속에 있는 아버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오직 이 아버지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요 7:29).

나는 내 생명의 잠시를 여러분과 함께 여기에 있으며, 여러분에게 내가 나온 생명의 본원에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요 7:33). 그런데 여러분은 내게서 증거를 찾아서 나를 벌주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 길을 모르면 내가 없어진 다음에는 벌써 아무리해도 그것을 찾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나를 논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기보다 나를 따라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를 알 것입니다(요 7:34). 혈육의 생명을 영의 양식으로 하지 않는 사람과, 목이 마른 이가 물을 찾는 것과 같이 진리를 찾지 않는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갈망하는 이는 내게 와서 마시시오. 그래서 내 가르침을 믿는 이는 참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요 7:37,38). 영의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요 7:39).

이에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을 믿고 말하기를―저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진리다(요 7:40). 어떤 이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도 예언에 의해 저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이인가 아닌가의 증거를 찾아마지 않았다(요 7:41,42). 또 많은 사람은 저와 논쟁을 했으나, 누구하나 저를 논박하는 이는 없었다(요 7:43). 바리새파의 학자들은 그의 조수들을 보내어, 저와 토론케 했다(요 7:44). 그런데 그 조수들은 유대교의 제사장에게 돌아가 말하기를―우리는 저에게 대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장이 말하기를―당신들은 어째서 저의 죄를 헤아리지 않았소?(요 7:45).

저들은 대답하기를―지금까지 아직 한사람도 저와 같이 말 한 사람은 없습니다(요 7:46).

그때 바리새파 교도들은 말하기를―저를 논박할 수가 없고, 백성들이 저의 가르침을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요(요 7:47). 우리는 저를 믿지 않고, 관원은 한 사람도 그를 믿지 않소(요 7:48). 백성들만 저주받은 것이오. 저들은 무지몽매(無知蒙昧)한 까닭에 아무나 믿는 것이오(요 7:49).

그래서 전에 예수가 그의 가르침을 말해 주었던 니고데모가 제사장에게 말하기를(요 7:50),―그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그가 인도하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하게 하지 않고서 사람을 비판할 수는 없소(요 7:51).

저들은 그에게 말하기를―판단할 것도, 들을 것도 없소. 우리는 알고 있소, 예언자가 갈릴리에서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을(요 7:52).

그 후에 또 예수는 바리새파 교도들과 말할 때, 저는 말하기를―빛에는 등불이 필요 없듯이 내 가르침의 진리에도 증명이 필요는 없습니다. 내 가르침은 참 빛입니다. 사람들은 그에 의해 일의 선악을 판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내 가르침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나의 가르침이야말로, 그 밖의 모든 것의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는 이는 암흑에 빠지지 않고, 생명을 받습니다. 생명과 빛은 같은 것입니다(요 8:12).

그러나 바리새파 교도들은 말하기를―그것을 말하는 이는 당신 한사람이오(요 8:13).

그래서 그는 저들에게 대답하기를―이것을 말하는 것은 나 한사람이라 해도, 어떻든 나는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생에 의미가 있으나 여러분의 가르침에는 그것이 없습니다(요 8:14). 뿐만 아니라 나는 혼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영도 또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요 8:18).

저들이 말하기를―당신의 아버지는 어디 있소?

그는 말하기를―여러분은 내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오(요 8:19). 여러분은 여러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지 않습니까?

나는 여러분을 인도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은 나를 따르는 대신에 내가 누구인가만을 알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을 인도하려고 하는 구원과 생명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요 8:21). 여러분이 이 홀림 속에 머물러 있고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여러분은 드디어 멸망할 것입니다(요 8:24).

그래서 유대인들은 묻기를―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그는 말하기를―나는 맨 처음부터 여러분에게 말하였습니다(요 8:25). 나는 영을 내 아버지로 인정하는 사람의 아들이며, 아버지로부터 깨달은 것을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요 8:26). 그러니 여러분이 자신의 속에 사람의 아들을 존경하고 찬양하면, 그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이 말하고 또 행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하고 또 가르치는 것입니다(요 8:28).

그리고 나를 보내신 이는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는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나는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8:29).

내 말을 지키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이는 참으로 내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에게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암흑을 사랑해서 그쪽으로 가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이는 밝은 빛 쪽으로 갑니다. 이런 까닭으로 내 가르침을 깨달으려면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요 8:31). 선을 행하는 이는 진리를 알고, 악과 사망에서 자유로울 것입니다(요 8:32). 왜 그러냐 하면, 마음에 헤매는 사람은 모두 그 헤매임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요 8:34).

노예는 항상 주인의 집에 살지 못하고, 주인의 아들은 항상 그 집에 사는 것과 같이 사람도 또한 인생길을 잘못 헤매여 그 홀림수의 노에가 되면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오직 진리를 깨닫는 이만은 영원히 살아 남습니다. 그래서 진리 그것은 노예가 되지 않고 아들이 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러분이 만일 홀리게 되면, 노예가 되어 죽을 것입니다(요 8:35). 그러나 진리를 깨달으면, 자유로운 아들이 되어 영원히 살것입니다(요 8:36).

여러분은 나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내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으로 나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요 8:37). 그래서 결과는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깨달은 것을 말하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로부터 깨달은 것을 실행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요 8:38).

저들은 말하기를―우리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만일 당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당신들은 그의 행한 것을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요 8:39).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깨달은 것을 여러분에게 알렸다고 해서, 나를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아브라함은 이런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조상, 다 큰 아버지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요 8:40).

저들은 그에게 말하기를―우리는 모두 한 조상의 자손이요―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요(요 8:41).

그래서 예수는 저들에게 말하기를―만일 여러분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라면, 여러분은 나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난 사람이 아닙니다(요 8:42). 여러분은 나와 같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내 가르침은 여러분의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나도 여러분도 같은 아버지로부터 나왔다면, 여러분은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상 우리는 같은 아버지의 아들은 아닌 것입니다(요 8:43).

나는 선한 아버지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여러분은 악의 아버지인 악마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인 악마의 육욕을 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살인자이고, 거짓말쟁이여서 그의 속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만일 그 악마가 무엇을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 개인의 일로서 만인에게 공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거짓의 아버지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당신들은 악마의 노예이며, 그의 아들입니다(요 8:44).

보시오. 당신들의 과오를 들어 헤아리기가 얼마나 쉬운가를 만일 내게 과오가 있으면, 나를 죄주시오. 만일 내게 잘못이 없다면, 어째서 나를 믿지 않습니까?(요 8:46).

그래서 유대인들은 저를 꾸짖기 시작하고, 저를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요 8:48).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친 사람이 아니요, 나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사람인데, 당신들은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들은 내 형제가 아니고 다른 아버지의 아들입니다(요 8:49).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는 내가 아니고 진리가 나를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요 8:50). 그런 까닭에 다시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내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것을 행하는 이는 죽음을 보는 일이 없다고(요 8:51).

그래서 유대인들은 말하기를―우리는 당신을 미친 사마리아 사람이라 하는데 이는 과연 잘못된 말이요? 당신자신이 죄증을 들어내고 있지 않소. 예언자들은 죽고 아브라함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가르침을 행하는 이는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소(요 8:52). 아브라함은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죽지 않소? 아니면 당신은 아브라함보다 위대하단 말이요?(요 8:53).

유대인들은 아직도 갈릴리 태생의 저 예수가 중요한 예언자냐 아니냐에 대해 논할 따름이고, 그가 저들에게 한말은 저는 사람으로서의 자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오직 그의 속에 잇는 영에 대해서만 말하고 잇는 것을 전연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말하기를―나는 나 자신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만일 내가 내 한 몸에 대해 스스로 느낀 것에 대하여 말한다면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아무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여러분이 이름하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만물의 본원이 잇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요 8:54). 그런데 여러분은 참 하나님을 안 적이 없고 지금도 아직 모릅니다. 허나, 나는 그를 알고 잇습니다. 나는 그를 모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또한 여러분과 같은 거짓말장이가 될 것입니다. 나는 그를 알며, 그 뜻을 알아 그것을 행하고 잇는 사람입니다(요 8:55). 여러분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내 가르침을 보고 기뻐했던 것입니다(요 8:56).

유대인들은 말하기를―당신은 나이 30이오. 어떻게 아브라함의 시대에 살아 있을 수가 있었소?(요 8:57).

그는 말하기를―아브라함이 있기 이전부터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선의 가르침은 있었던 것입니다(요 8:58).

유대인들은 그를 처 죽이려고 돌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를 떠나버렸다(요 9:1).

제자들이 묻기를―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그 자신입니까, 그의 집안 사람들이 그를 가르치지 않은 까닭입니까?(요 9:2)

예수는 대답하기를―저의 양친의 죄도 아니고 저 자신의 죄도 아니오. 다만 그 안에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이 있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는 것입니다(요 9:3). 만일 내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빛입니다(요 9:5).

그래서 예수는 앞 못 보는 사람앞에 그가 영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밝히 일러 주었다. 이 가르침을 알게 됨과 함께, 맹인은 빛을 알았다(요 9:6,7). 그래서 이전에 이 사람을 알고 있던 사람은 저를 좀체로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저는 이전에 그 사람과 비슷은 하나,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요 9:8,9). 저는 말하기를―나는 그 사람입니다. 다만, 예수가 나에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주고 나서부터 빛이 열리고, 나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기에 이른것입니다(요 9:11).

사람들은 이 사람을 바리새파의 교사에게 데리고 갔다(요 9:13).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다(요 9:14).

바리새파 교도들은 저에게 이전에는 앞을 못 보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저는 말하기를―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지금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요 9:15).

저들은 말하기를―당신은 그것을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서 깨달은 것이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는 그것을 안식일에 했기 때문이요. 뿐만 아니라, 세상의 보통사람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저들은 다투기 시작했다(요 9:16). 그리고 눈을 뜨게된 사람에게 물었다.―당신은 그 사람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오?

저는 말하기를―나는 그 사람이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요 9:17). 유대인들은 저의 양친을 불러서 그들에게서 듣기까지 저가 전에는 맹인이었으나, 지금은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요 9:18). 저들은 묻기를― 이 사람이 그,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던 당신들의 아들이요? 어떻게 해서, 지금은 이렇게 눈을 뜰 수 있게 된 것이오?(요 9:19).

양친은 말하기를―우리는 저가 우리의 아들이고,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요 9:20). 그러나, 어떻게 해서 눈을 떴는지 그것은 모릅니다. 저는 이미 성인입니다. 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요 9:21).

바리새파 교도들은 다시 그 사람을 불러서 말하기를―참인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시오. 당신의 눈을 뜨게 한 그 사람은 그건 세상에 보통 사람이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가 아니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소(요 9:24).

그러니까, 눈을 뜨게된 사람이 말하기를―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인지 아닌지, 나는 그것을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전에는 빛을 못보던 내가 지금은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 뿐입니다(요 9:25).

바리새파 교도들은 다시 묻기를―그 사람은 당신에게 무엇을 했소?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했소?(요 9:26).

저가 말하기를―나는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했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믿지 않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만일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다시 그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 하겠습니다(요 9:27).

이에 저들은 그 사람을 꾸짖기 시작했다.―당신은 그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요 9:28). 모세와 말한 이는 하나님 바로 그 분이오. 그러나 저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조차 알지 못하오(요 9:29).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그 사람은,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여러분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요 9:30). 하나님은 죄인의 말은 듣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행하는 사람들만의 소원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요 9:31).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앞 못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세대에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요 9:33).

그래서 바리새파 교도들은 노하여 말하기를―당신은 신이 홀림수에 빠져 잇으면서, 오히려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가,―그리고 저를 쫓아내고 말았다(요 9:34).

예수는 말하기를 나의 가르침은 생명의 각성입니다. 내 가르침을 믿는 사람은 육에서는 죽더라도 산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이는 죽는 일이 없습니다(요 11:25).

그래서 예수는 세 번째로 백성들을 가르쳤다. 저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내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나 스스로가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진리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는 그 외에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가르침에 따르는 것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일한 것이고, 그들에게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0:2).

나의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치 목자가 문을 열고 양의 무리에게 들어와서 목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저들을 모을 때에, 양에게 들리는 목자의 친숙한 목소리와 같은 것입니다(요 10:3,4). 그런데 여러분의 가르침은 아무도 믿는 이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이고, 사람들은 그 안에 당신들의 육욕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치 양에게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온 사람의 얼굴과 같은 것입니다. 양들은 저를 모릅니다. 그래서 저를 도적이라고 눈치채게 됩니다(요 10:5). 내 가르침은 양에게 오직 하나인 문과 같이 오직 하나이고 진실한 것입니다(요 10:7). 모세의 율법인 여러분의 가르침은 모두가 거짓입니다. 양에게는 도적이나, 강도와 같은 것입니다(요 10:8). 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참 생명을 발견합니다. 마치 양이 목자의 뒤만 따라가면 먹을 것을 찾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요 10:9). 왜 그러냐 하면, 도적은 다만, 훔치고, 빼앗고, 죽이기 위해서만 오는 것이지만 목자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가르침만이 홀로, 참 생명을 약속하고, 그것을 제공합니다(요 10:10).

목자들 중에는 양을 목숨과 같이 생각하고, 양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주어도 아까워하지 않는 목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목자입니다(요 10:11). 또 자기는 품팔이 이고, 양은 자기들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양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날 그날의 날품팔이 목자도 있습니다. 그런 목자는 만약 늑대의 습격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양을 버리고 도망가버려, 양을 늑대의 먹이가 되게 하고 맙니다(요 10:12). 이것은 진정한 목자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사람들의 생명에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짓교사도 있습니다. 허나, 진정한 교사란,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자신의 영을 제공해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요 10:13,15).

나는 이런 유의 교사입니다(요 10:14). 내 가르침은 자신의 생명을,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제공하기를 아까워하지 않는데 있습니다(요 10:11). 아무도 내게서 내 생명을 빼앗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진해서, 참 생명을 얻으려고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았습니다(요 10:18).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아시는 것과 같이 나도 그를 압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을 위해 버리는 것입니다(요 10:15). 나는 아버지의 계명을 행하기 때문에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요 10:17).

머지 않아서 지금 여기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인이 내 목소리를 깨닫고 나와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이 일치해서 저들의 가르침도 하나가 될 때가 올 것입니다(요 10:16).

유대인들은 저를 둘러싸고 말하기를―당신의 하는 말은 모두 알아듣기 어렵고, 우리의 성경과 일치하지 않소. 우리를 헤매게 하지말고 단순하게 적절하게, 당신은 우리의 성경에 있는 언젠가는 세상에 와야할 그 메시야인가 아닌가를 말하시오(요 10:24).

그래서 예수는 저들에게 대답했다.―내가 누구라는 것은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내 말을 못 믿으면, 내 행하는 것을 믿으시오.―그것으로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깨달으시오(요 10:26).

그러나 여러분은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따라오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10:26).

나를 따르며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는 이는 나를 아는 사람입니다(요 10:27). 그래서 내 가르침을 깨닫고 그것을 행하는 이는, 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요 10:28). 내 아버지가 저들을 나와 하나가 되게 하셨으니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가 없습니다(요 10:29). 나와 아버지는 한 몸입니다(요 10:30).

유대인들은 이 말로 말미암아 노하여 저를 처 죽이려고 돌을 들었다(요 10:31).

그러나 저는 그들에게 말하기를―나는 여러분에게 많은 좋은 일을 보여주었고, 내 아버지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런 선한 행동의 어떤 것에 대해 여러분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요 10:32).

저들은 말하기를―우리는 당신을 선할 일 때문에 죽이려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사람의 몸으로서 자신을 하나님과 같다고 하는 까닭이오(요 10:33).

그래서 에수는 저들에게 대답하기를―보시오, 이와 같은 일이 여러분의 경서에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 자신이 다른 지배자들에게 대하여, 너희는 신이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요 10:34). 저가 만일 이미 타락한 사람들마저 신이라 부르셨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여 이 세상에 보내신 이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여러분은 어째서 독신이라고 합니까? 모든 사람은 다같이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요 10:35,36). 만일 내가 하나님의 도리대로 살지 않는다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어서는 안됩니다(요 10:37).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도리대로 살면, 내 생명에 의해 내가 하나님의 안에 있는 사람임을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요 10:38).

그래서 유대인들은 논쟁하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말하기를―저 사람은 미쳤다고,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요 10:19,20) 미친 사람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다고(요 10:21).

이래서 유대인들은 저를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를 심판할 수가 없었다(요 10:39). 그래서 예수는 또 요단강 건너편에 건너가서 거기에 머물렀다(요 10:40).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믿고서 이야말로 요한의 가르침과 같이 진실한 것이라고 말했다(요 10:41).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믿었다(요 10:42).

어느 때,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묻기를―사람들이 나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에 대한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디까?(마 16:13).

저들은 말하기를―어떤 이는 요한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사람은 예레미야의 가르침과 흡사한 것이라고 하며, 선생님을 예언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마 16:14).

그러면 여러분은 나의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하시오?(마 16:15).

그러자 시몬․베드로가 저에게 말하기를―제 생각으로는, 선생님의 가르침은 당신이 생명의 하나님에게 선택된 아들이라고 하는 그 한가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란, 사람의 속에 있는 생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마 16:16).

예수는 저에게 말하기를―시몬, 이것을 깨달은 당신은 행복합니다. 사람은 당신에게 이것을 가르쳐 보일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깨달은 것은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것을 보여 주신 것은 육의 생각에서도 아니고 내 말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직접 이것을 당신에게 보여준 것입니다(마 16:17).   그래서 이런 바탕 위에야말로 죽음을 모르는 사람들의 모임의 기초가 놓여지는 것입니다(마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