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절대 기도의 비밀 1700년 -두 번째 비밀 - 7 본문
두 번째 비밀 - 7
healing - 두 번째 비밀 - 7
처음 백 년이 가장 힘들다
인간이 오래 살아봐야 100살 언저리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지금은 200살이나 500살을 살지 못할까?
모세 5경과 구약 성경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많은 고대인들은 대개의 경우 백 살을 살지 못하는 현대인에 비해 수백 년을 살았다. 예를 들어,
아담은 930년까지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년,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고 기록은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 남자들은 하루하루 연약한 목숨을 이어가는 껍데기뿐인 노인들이 아니었다.
인생의 후반기에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밀 만큼 정력과 활기가 넘쳤다! 우리라고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인체는 오랫동안 버티도록 만들어졌다. 모세 5경에 따르면 노아는 대홍수 이후에도 무려 350년을 더 살았다. 그가 950살의 나이에 죽었다는 것은
600살의 나이에도 인류 전체의 생존을 확보하는 튼튼한 방주를 건조할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가 넘쳤다는 뜻이다!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게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수 세기를 이어내려 온 수없이 많은 문서들과 영적 전통들은 우리가 신체를 통해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영혼이라고 말한다. 몸은 우주의 요소들로 만들어졌지만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영혼이다.
영혼이 상처를 받으면 그 고통은 몸속으로 이송되고 각 세포마다 스며든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인간의 수명이라고 인정하는 백 년이라는 시간은 신체가 치유받지 못한, 영혼의 상처를 감내할 수 있는 한계라고 보면 어떨까?
모진 세파에 시달리며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이
한 세기라는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끼는 애완동물, 혹은 애착을 느끼는 일들이 인생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때 고통을 느낀다고들 말한다.
상실과 실망과 배신으로 가득한 일생은 가장 강인하고 가장 튼튼한 신체 기관인 심장을 무력화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을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의 상처는 먼 옛날에 시작되었고
그만큼 뿌리가 깊은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근원은 겉으로 드러난 것도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고 뿌리가 깊으며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것도 있다. 문화와 사회를 막론하고 세상의 창조 신화를 살펴보면,
우리의 영혼은 몸을 가진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영혼의 고향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한 뿌리 깊은 두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분리되고 홀로된다는 두려움이다.
모든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고통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영혼이 떠나온 고향을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여기 이 지구상에 그보다는 작지만 자신의 가정을 꾸림으로써 일체감을 회복하고 허탈함을 메우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정을 잃은 상실감이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상실감은 상처와 고통의 심연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삐걱거리는 가족과 인간관계와 지난날의 추억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애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과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영혼의 고통을 무디게 하기 위해 일종의 마취제인 술과 약물에 기대기도 한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지만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을 감사하게 여길 줄 안다면 가장 강력한 치유의 길을 향해 크나큰 발걸음을 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똑같은 원칙을 거꾸로 적용해보면
스스로 자신을 아프게 하고 죽음을 자초할 수도 있다.
쇠퇴와 소멸의 길이냐 치유와 활로의 길이냐는 문제는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와 관련이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생물학적으로 따져볼 때 인체는 더 오랫동안 버티고 유지될 수 있다. 원래 인간은 현대인이 누리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수명 방정식은 신체적인 요소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뭔가 빠진 것이 있다. 그 "뭔가"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인체에 자양분이 되는 영적인 힘일 것이다. 생명을 좌우하는 이 활기를 신체에 불어넣는 비결은 고대인들의 전통 속에 면면이 전해 내려왔다. 고대인의 지혜를 탐색하면 과거의 상처를 치유의 지혜로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더 건강하고 더 활력이 넘치는 인생을 더 오랫동안 살기 위해서는 마음속의 상처를 이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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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느껴라
수많은 고대의 전통이 언급한 아름다움과
기도의 힘은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재발견되고 있다.
여는 글에서도 보았듯이, 나바호 인디언의 지혜는
바깥세상에서 겪는 고통과 마음속에 존재하는 사랑 사이의 관계를 깨닫는 데 핵심이 있다.
상처와 지혜와 사랑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전혀 뜻하지 않은 기묘한 관계를 통해서 긴밀하게 연관되기 마련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픔을 겪으면 자신의 감정 수용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상처가 깊고 고통이 클수록 감정의 농도는 짙어진다.
가장 큰 고통을 느낄 때 가장 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용서도 상처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팀 로렌스는 상처가 클수록 용서로부터 얻는 혜택이 크다
고 설명한다. 따라서 상처는 선택에 따르는 형벌이 아니라
사랑하는 능력을 확인하는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전통들은 사랑의 힘을 세상을 한데 묶는 "접착제"로 표현했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를 둘러보면 도저히 합리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밥벌이를 하고 때로는 상실의 고통을 겪으며 끝내 목숨을 잃기까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한다. "이런 경험을 하고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구실 아래 상상을 초월하는 극악무도한 행위가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서슴없이 죽이고 인간을 지구상에서 아예 말살하려 드는 사람들 곁에서 과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함께 지내던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사라져버리는 상실의 고통은 누구나 경험한다.
어떤 별의 어떤 생명체도 겪지 말았으면 하는 끔찍한 질병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이렇게 자문한다. "그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괴로운데 과연 앞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때때로 우리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과 시련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인생은 묻지만, 우리가 해야 할 대답은 한결같다.
큰 목소리로 "할 수 있어!" 라고 외쳐라.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으니까.
우리가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든, 그저 삶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하며 살아가든 아무런 차이는 없다. 사랑은 우리를 지탱하는 뿌리다. 행복할 때나 힘들 때나 사랑은 우리를 이끄는 힘이며
가장 쓰라린 인생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고대인들은 삶 속에 녹아 흐르는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했다.
우리도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쓰라린 상처를 가장 큰 지혜로 바꾸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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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지혜로 바꾸기
"상처"와 "지혜"는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의 일부로서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상처는 경험을 해석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생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순환 과정상의 초점 역시 바뀌게 된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것을 부정하고 싶거나 도망치거나 어떻게든 정면 대결을 피하고 싶을 때는 그 감정 안에 갇히기 쉽다.
하지만 어디에서 비롯된 상처이든 상처를
치유된 지혜의 형태로 변형시키는 힘이 우리 내부에 있다. 상처를 준 사건은 변하지 않았지만 고통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힘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 서양의 과학은 고대인들이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했던 진리를 재발견했다.
고대인들은 우리 주변의 세상이 살아 있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즉, 세상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감정들을 투영하는 양자망 網
quantum fabric 인 것이다.
건강은 물론이고 가정과 사회와 세계 평화의 양상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믿음들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믿음과 세상의 경험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이제 21세기 최신 이론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긍정적"인 믿음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믿음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감사와 공감과 사랑 같은 생명 친화적인 감정들은 저혈압이나 "좋은" 호르몬의 분비, 혹은 면역력 강화와 같은 건강에 이로운 조건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노여움과 미움, 질투, 분노와 같은 생명에 해로운 감정들은 불규칙한 심장 박동과
면역력 저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 등을 증가시킴으로써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촉진한다.
바로 이런 원리에서 강력한 창조의 힘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인생의 진리를 찾아다니던 구르지예프는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는 외딴곳의 수도원에 이르렀을 때, 마음속의 강력한 힘을 일깨울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으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대의 마음 안에서 그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는 힘을 얻을 때까지 이곳에 계십시오." 그의 스승이 말했다.
그 힘은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과 지혜와 공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마음의 상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평범한 시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상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축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상처를 뛰어넘어 도약할 수 있다.
[출처] 두 번째 비밀 - 7|작성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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