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기적 수업 인간의 영과 에고의 사고 체계에 대해서 (2) 본문

영성수행 비전/초인생활. 기적수업

기적 수업 인간의 영과 에고의 사고 체계에 대해서 (2)

柏道 2020. 2. 16. 23:09

기적 수업

인간의 영과 에고의 사고 체계에 대해서 (2)


구원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교리나 신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고 이를 통해 삶의 행복과 평화를 누리면서 창조하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일이 된다. 즉 구원은 사고체계를 바꾸는 일이며, 양립할 수 없는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지식과 지각, 에고와 영에서 오직 실재만을 선택하고 이를 살아가는 일이 된다. 

 

네가 하나님의 평화 속에 거하게 되면 그것이 실재라는 것이 기적수업이 가르치는 지식이다. 이를 발견하는 것이 영혼의 안식이고, 이는 어떠한 다른 해석이 필요 없는 실재라고 기적수업은 가르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영리한 사고나 방법이 전혀 필요 없음을 아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영리한 사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영의 지식은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 것이다.

 

 

“지식은 영리함이 필요 없기에, 영리함은 지식과 완전히 별개다. 영리한 사고는 너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가 아니다. 그러한 사고를 내려 놓을 용의를 낼 때 영리하게 사고할 필요가 없어진다.” (기적수업 p. 46 -5)

 

 

지각이 영리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라면, 지식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적은 인간이 지각 세계에서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게 기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창조 행위이기에 지식을 택한다는 것은 인간이 아버지를 닮아서 일상적인 기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지각 세계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적으로 체험하는데,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서 창조하는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조는 실재로 너의 근거이고, 너의 실재 기능이기 때문에, 너 자체가 바로 기적의 주체라고 기적수업은 가르친다.

 

 

“지식 대신 지각을 택했을 때, 너는 너 자신을 오직 기적적인 지각에 의해서만 아버지를 닮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하였다. 너는 네가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지식을 잃어버렸다. 창조는 너의 근원이며 네가 가진 유일한 실재 기능이다.” ( 기적수업 p.46-6)

 

 

이처럼 지각과 지식은 완전히 서로 다른 체계로서 두 체계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지각에 근거한 사고체계를 받아들이면, 지식에 근거한 사고체계를 상상할 수도 없고, 역으로 지식에 근거한 사고체계는 지각의 사고체계를 단지 쓸데없는 것으로 볼 뿐이다. 그러므로 기적수업은 영은 에고의 존재를 모르고, 에고는 영의 존재를 모른다고 한다. 왜냐하면 영에게 에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에고는 영의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에고의 존재를 모르고, 에고는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에고는 창조된 것이 아닌 허상이기에 하나님이 알지 못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에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에고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마음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을 인식해야 한다고 기적수업은 가르친다. 인간의 마음이 연약하고 무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 대신 에고의 왜소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강하고 힘이 있기 때문에 에고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실재로 경험하는 것이라 한다.

 

 

기적수업은 ‘악마’라는 개념은 실질적으로 ‘에고’의 한 형태라고 본다. 악마는 강력하고 활동적이며 인간의 마음을 빼앗는 힘이다. 악마는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부정하고,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존재라고 속삭인다. 이러한 거짓은 인간의 삶 자체를 완전한 악몽으로 바꾸어 버린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선악과로 타락시킨 사탄은 다시 이 신화를 이용하여,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버린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에고로 다시 말해서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가르친다. 기적수업은 이러한 원죄 또는 분리 신념을 거짓된 것이라 하는데, 이 거짓 개념이 실재로 ‘악마’라 지칭되는 것이라 한다.

 

 

“마음은 분리에 대한 신념을 매우 실제적이며 대단히 두려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바로 이 신념이 ‘악마’다. 악마는 강하고, 활동적이고, 파괴적이며,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임을 부인하기에 하나님과 정반대다. 악마가 너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보라. 하지만 악마가 한 것은 그 근본이 거짓이므로 진리의 빛 속에서 완전히 사라짐을 깨달으라. 하나님께서 너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흔들릴 수 없는 유일한 기반이니, 빛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너는 진리에서 출발했고, 이제 너의 시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후로 너는 많은 것을 보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의 자아는 너의 마음이 갈등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평화에 머문다. 너는 아직 그다지 많이 되돌아가지 못했고 그래서 그토록 두려워하게 되었다. 시작에 가까워질수록 너는 너의 사고체계가 파멸되는 것을 마치 죽음인 양 두려워한다. 죽음은 없다. 그러나 죽음이 있다는 믿음은 있다.” ( 기적수업 p. 52-5 )

 

 

‘악마’의 말을 듣는 것은 네가 하나님이 계시한 진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에고가 설파하는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결국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서 하나님과 악마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듣는 가의 문제 앞에 서있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악마의 속삭임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먼저 자신의 마음이 갖고 있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의 힘으로 에고의 거짓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선택함으로써 네 마음 속의 악마를 물리치기 때문이다.

 

 

“네 마음의 힘을 약한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권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며, 사실 너는 마음의 힘을 알고 있기에 너에게 상처가 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약하게 할 수 없듯이 마음의 힘도 약하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악마’라는 개념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악마가 지극히 강력하고 활동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두고 하나님과 소유권을 다투는 세력으로 지각된다. 악마는 거짓말로 속이고 모든 점에서 하나님과 정반대인 왕국을 세운다. 그렇지만 악마는 사람들을 내쫓기보다는 끌어당기고, 사람들은 가치 없는 선물을 얻기 위해 자기 영혼을 기꺼이 악마에게 팔아버린다.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 기적수업 p.51-2)

 

 

인간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버린다는 의미는 에고의 거짓말을 믿어서 분리되고 저주받은 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된다. 하지만 악마는 이 거짓말을 하나님처럼 너 자신을 멋지게 네가 원하는 대로 창조할 수 있다는 거부하기 힘든 믿음으로 포장하는데, 이것이 에고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기적 수업에 따르면, “에고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네가 원하는 너를 너로 지각하려는 그른 마음의 시도이다.” ( 기적수업 p. 43-2)

 

 

네가 너 자신을 네가 원하는 대로 지각하고 싶어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네가 알기보다는 판단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판단한다는 것은 네가 실재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행위라고 한다. 네가 긍정적으로 판단하건, 부정적으로 판단하건 간에 너의 판단은 네가 바라보는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판단하지 않고 단지 바라보는 데 국한하는 일은 네가 보는 것을 하나의 비 실재로서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게 한다.

 

 

“알기보다는 판단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평화를 잃는 원인이다. 판단이란 과정은 지식이 아니라 지각의 기반이다. 나는 앞에서 지각은 선택이라는 비슷한 주제로 이 점을 다루었고, 지각의 선택에는 평가가 당연히 그 전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판단은 언제나 거부를 수반한다. 판단은 그 대상이 네가 되는 남이 되든 결코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우는 없다. 지각해서 거부하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은 일단 네가 지각했기에 네 마음에 남는다. 네가 시달리는 허상 중 하나는 네가 거부하기로 판단한 것은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네가 거부하기로 판단한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한 그것이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일 수 없다. 너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거부하기로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너의 판단이 옳고 그른 지는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너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믿고 있다. 네가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이를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판단은 무엇이 실재가 될지 네가 고를 수 있다는 믿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기적수업 p. 48-2)

 

 

에고는 네가 너 자신이라고 판단한 것이 실재한다고 하는 믿음이다. 즉 너에 대해서 네가 판단한 것이 에고이다. 네가 마음으로 확신하고 있는 너에 대한 생각 자체가 곧 에고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는 실재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너의 생각 그 자체일 뿐이다. 하지만 너는 마음에 확신함으로 에고는 생생한 실재로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에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네가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너에 대해 판단을 멈춘다는 것은 네 삶의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판단하지 말고, 어떠한 준비나 계획을 가지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주어지고 만들어지는 현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너는 모른다. 아무런 판단 없이 자신과 형제를 만나는 데서 오는 그 엄청난 해방과 깊은 평화를네가 너 자신과 형제의 정체를 알아볼 때, 그들에 대한 그 어떤 판단도 의미가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사실 너는 그들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의미를 놓치는 것이다. 모든 불확실성은 네가 판단을 강요 받고 있다는 믿음에서 온다. 네가 삶을 영위하거나 너 자신을 체계화하기 위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식 앞에서 모든 판단은 저절로 멈추며, 이 과정에서 너는 지각하는 대신 인식하게 된다. ( 기적수업 p.48-3)

 

 

기적수업이 가르치는 지각과 지식, 에고와 성령은 실재와 비실재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구도이다. 이 세상을 살 것이냐? 아니면 세상을 벗어나서 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살 것이냐?, 판단하며 영리하게 준비하고 계획하며 살 것이냐? 아니면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데 그칠 것이냐? 에고를 따라 살 것이냐? 성령의 인도를 따를 것이냐? 이는 모두 실재를 선택하느냐? 비 실재를 선택하느냐? 의 양자 택일의 구도이다.

 

 

기적수업은 본질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친다. 이 세상은 단지 지각이고, 에고이고, 비 실재이므로 부정하고 벗어나야만 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안에 초월적인 존재처럼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에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에 구원을 이해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수긍이 간다. 또한 세상을 벗어나는 일은 체험으로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지 단지 지식으로 세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도 지각, 에고, 세상과 같은 비실재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이해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적수업 텍스트가 31장이나 되고, 기적수업 훈련서가 365장이 되고, 기적수업 교사용까지 하면 12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이는 모두 에고를 버리고 영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에고를 벗어나는 일이 단순한 이해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습득하게 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구원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교리나 신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고 이를 통해 삶의 행복과 평화를 누리면서 창조하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일이 된다. 즉 구원은 사고체계를 바꾸는 일이며, 양립할 수 없는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지식과 지각, 에고와 영에서 오직 실재만을 선택하고 이를 살아가는 일이 된다. 기적수업은 인간은 죽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우쳐 떠나게 된다고 한다. 깨우침은 내가 이미 하나님과 하나이며, 하나님의 한 부분으로서 세상 너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이것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된다.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잘려서 시들어 버릴 것이다. 기뻐하라. 생명의 참 기반에서 빛이 비추고 너의 사고체계는 바르게 설 것이다. 다르게 설 수 없다. 구원을 두려워하는 너는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지식과 지각은 양립할 수 없다. 그것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 양립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지식의 하나됨만이 갈등이 없다. 너의 왕국은 이 세상을 초월한 곳에서 주어졌기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권위 문제라는 개념은 오직 이 세상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우리는 죽어서가 아니라 진리를 깨쳐 세상을 떠난다. 또는 진리는 누구나 알 수 있고 그들을 위해 창조된 왕국은 그들을 기다린다. ( 기적수업 p.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