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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비밀의 가르침 16: 잠재의식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고대 비밀 가르침(密敎)

비밀의 가르침 16: 잠재의식

柏道 2020. 1. 29. 14:25



비밀의 가르침(다스칼로스)

비밀의 가르침 16: 잠재의식

        


Chapter 16: 잠재의식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태복음 5:8)

인간의 잠재의식은 사념체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분야이다. 사념체와 함께 잠재의식은 그 탐구의 영역과 깊이가 끝이 없다.
잠재의식은 개개인에 따라서 구성 성분과 질이 다양하며, 우리가 삶 속에서 겪어나가는 모든 경험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바탕이 된다. 잠재의식은 우리의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최악의 적이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잠재의식은 생에서 생으로 상속되며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잠재의식의 구조를 완전하게 이해하여 이 ‘내면의 정글’을 정화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인체 내에 잠재의식이 위치해 있는 곳은 주로 명치 안쪽이며, 
크게 세 구획으로 나뉜다. 각 구획의 크기는 개개인의 심령이지적 
성숙도에 따라 다양하다.

첫 번째 구획은 생체 에너지(에테르 생명력)의 저장고이다. 우리 생명의 
원동력이자 ‘우리가 일용할 양식’인 에테르 생명력은 이 구획 속으로 
흘러 들어가 저장되고, 이곳으로부터 온 인체 내부와 외부로의 에테르 
분배가 이루어진다. 건전한 생활패턴을 유지하며 삶을 둘러싼 환경들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그리하여 다른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즉 진정한 진리탐구자가 됨으로써 우리는 이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우리가 지배당하게 
된다! 우리는 육신(물질체, 심령체, 이지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목적을 위하여, 가령 다른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에테르 생명력을 다양한 형태의 에테르(창조/ 인상/ 감각/ 동적)로 변형시켜 사용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 나올 것이다.’ (요한복음 7:38) 
에테르 생명력을 물에 비유하신 것이다.

잠재의식 속의 또다른 구획은 우리의 현재인격이 생성하고 길러내는 수많은 사념체들을 보관하는 곳으로써, 일명 정글이라고도 불린다. 대부분의 
사념체들은 우리의 잠재의식적 활동에 의해서 생성되는데, 그들은 이 
구획 속에 머무르며 대기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린다. 전 단원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이 대다수의 사념체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이지만, 그 중 일부는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유익하고 건전한 
사념체들이다. 우리는 이 정글 속의 잡목을 제거해내면서 유익한 사념체와 해로운 사념체를 가려내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두 번째 구획은 우리의 현재인격이 머무르는 곳이며, 무절제된 감정과 갈망들의 총체물인 아집(egoism)이 자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 우리의 참 자아Ego는 심장에 거한다.) 이 구획은 우리가 노력하여 청결하게 닦아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우리를 속박하고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도록 할 것이며, 이러한 비극은 여러 생이 거듭되어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분은 더욱더 위대해지고 나는 더욱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 3:30) 친애하는 사도 요한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아집, 이기적 사념체들을 제거하고, 신의 사랑을 향하여 마음을 열 
것을 당부하셨다.

세 번째 구획은 성령과 로고스가 거하는 곳으로써, 그들은 우리에게 감화를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한다. 이 구획은 우리가 성령적 초의식을 어느정도 본능적으로 지닐 수 있도록 해준다. 한 예로써, 운전하는 내내 골똘한 
생각에 빠지면 2톤짜리 쇳덩어리를 수십마일 몰아오고서도 운전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기이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또다른 예로써, 우리는 
위급한 상황 속에선 더욱 신속하고 현명하게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또한, 우리가 직관적으로 선이 무엇인지 알며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 또한 이 신성한 구획으로부터 비롯된다. 만일 잘못을 저지르면 순간적으로 이곳으로부터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게 된다. 우리 육신 속의 고차원 센터들에도 성령과 로고스가 머무르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도 엄연히 이들이 머무르며 우리의 발전과 성숙을 돕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성분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들은 모두 
언젠가 소멸되어 버릴 영원하지 못한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이 물질체가 나라고 착각한다. 또는 현재인격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진아의 그림자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우리의 현재인격의 4분의 3은 잠재의식(마음의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에 의해서 탄생한 표현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가장 낮은 
진동수를 지닌 마음의 파동 속에도 절대영원성의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의 숨결이 온전히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놀랄 것이다.

인간의 현재인격은 독자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자신의 내면 또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전해지는 인상들에 대하여 우리의 인격은 다양한 생각, 갈망, 욕망 등으로 반응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잠재의식으로부터 튀어 오른다.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우리의 잠재의식과 현재인격은 세 육신(이지체, 
심령체, 물질체) 속에 동시에 자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이들이 물질체 속에만 머무른다면, 우리의 물질체가 소멸되는 순간 우리는 인격을 잃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유체이탈을 
하여 물질체를 떠나가는 순간 우리는 개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현재인격의 4분의 3을 구성하며, 이지체와 심령체, 
물질체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세 육신이 포개져서 존재한다. 비록 이지체는 다른 두 육신들과는 다른 형상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반면, 영적 능력을 
계발한 자들은 심령체와 이지체를 물질체로부터 분리시켜서 각 육신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더 높은 차원들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인간의 인격은 시공간적 인상을 수집하는 수신기로써, 물질체를 버린 이후(제 1의 죽음)에도, 그리고 심령체를 이지체에게 동화시킨 이후(제 2의 죽음)에도 여전히 인격을 지니고 현상계 속에서 표현된 생명으로써의 삶을 이어나간다.

무의식적으로 삶을 사는 인격은 대체로 불결한 감정들의 격렬한 진동으로 가득하며, 심령계의 가장 낮은 차원들과 동조하여 부정적인 인상들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인상들은 유입되고 중단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심령계로부터 받았던 인상들이 스스로의 환상이 
지어낸 공상인줄로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의식적으로 시공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야만 심령계에 떠다니는 잡다한 인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상응하는 심령계의 차원 속에 굳건히 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전에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의 에테르 복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고, 이들 각각은 에테르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이 복체들은 인상에테르, 동적에테르, 감각에테르, 창조에테르를 보유하는 저장고이며, 이 모든 것은 대천사들과 성령, 그리고 우리의 영구인격에 의해 관리된다는 것을 배웠다.

태초에 성원소였던 우리는 경험을 수집하기 위하여 진아로부터 분리되어 단절계로 내려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양한 시공간적 법칙의 지배 
하에 살아가게 되었다. 그 법칙은 비단 물질계 뿐이 아닌, 심령계, 이지계를 지배하는 모든 법칙들을 포함한다. 이들 중 많은 법칙들은 서로 닮은 
반면, 일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든 시공간적 법칙들의 근본
목적은 현상계 속의 만유생명을 ‘공평무사하게’ 창조하고 길러내는 것이다. 수없이 강조하지만, 그 어떤 것도 성스러운 계획을 벗어나지 않는다.

단절계 속의 물질적, 심령적, 이지적 진동들이 이루어내는 수많은 격돌과 부조화를 극복하며 우리의 영구인격은 현재인격과 함께 성숙해나간다. 인간 영혼이 최초로 탄생되면 그는 환생을 위하여 단절계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예정된 부모의 에테르 복체 속에 머문다. 만일 이 환생이 첫 번째가 아니라면, 그는 전생들로부터 수집해온 모든 기록들을 함께 소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기가 태어나면, 그가 받는 최초의 
인상은 호흡과 젖의 필요성이다. 아기는 첫 숨을 들이쉰 후 울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한 인간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기의 심령체의 원소들은 아기에게 이러한 
느낌을 품도록 한다: ‘원한다.’ ‘갈망한다.’ 이때 아기의 원함, 갈망은 
우리 성인들이 무언가를 원할 때 느끼는 감정과는 매우 다르다. 왜냐하면 아기가 최초에 품은 이 감정은 생존을 위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필사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원함, 갈망이라는 인상에 대하여 
연구해보자.

우리에게 갈망들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의 오감인데, 메이슨들은 
이를 ‘다섯 살인자’라고 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은 단절계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진아를 잃는다. 그 후 우리는 태어나서 눈을 통하여 다양한 사물들을 보게 된다. 마음의 표현물인 물질빛이 다양한 물체들의 표면에 부딪히고 반사되어 그 표면의 물질적 정보를 싣고 우리의 눈으로 들어
오면, 그 정보는 우리 두뇌의 특정 부분으로 전달된다. 이때 우리는 수집된 정보들을 해석하면서 ‘나는 본다’, ‘나는 안다’ 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나’란 누구일까? 물론 현재인격이다. 그의 해석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종종 오역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갈망에게 지배된 상태에서는 특히 그렇다. 반면, 갈망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는 대상의 단순한 외면적 요소들을 초월하여 그것의 내면적 본질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본다’ 라는 느낌에 이어 일어나는 또 하나의 감정이 있다. 그것은 ‘나는 원한다’이다! 하지만, 모든 만물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 우리의 것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할까? 성스러운 일체성으로부터 분리되어 단절계로 떠나온 인격이 지니는 본능적 불안함 때문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진실에 대한 무지이다.

단절계 속에 들어선 순간부터 현재인격은 영구인격을 위하여 인상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현재인격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삶의 
바닷속으로 능숙하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갈망의 파도들에게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허우적댈 뿐이다. 그 갈망들은 충족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절망, 즐거움, 싫증, 또는 
새로운 갈망과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일어난다.

우리의 내면에는 감정 이외에도 또다른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생각이다. 생각은 심령체와 이지체가 제공하는 에너지에 의해서 생성된다. 생각과 감정이 섞여서 사념체가 탄생되며, 이러한 사념체들은 우리의 현재인격과 잠재의식을 구성하는 주성분이 된다.

자신이 사념체들로 조성해온 내면의 세계는 자신에게 마치 궁전인 것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다. 자신의 성격, 잠재의식, 현재인격을 만드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며,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에게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잠재의식적으로 사념체들을 생성해내며, 그 사념체들 
속에 갇혀 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본성을 
깨달으면 잠재의식을 통제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심령체와 이지체의 온전한 주인이 됨으로써 자신의 잠재의식을 정화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작업은 항상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서 낮은 단계로 내려가며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질병이란,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두 불안정한 잠재의식 속에서 파괴적인 심령이지적 에너지가 발생하고 증폭되는 데에 원인이 있다. 
반대의 원리로, 이러한 병은 문제의 원인이 되는 사념체들을 약화시키고 
해체시킴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병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고 그것을 치유하는 법을 배워나가게끔 유도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유의 작업은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 
속에서만이 아니라 심령체와 이지체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에테르 복체 
속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인격은 이 모든 것의 총체물이기 때문이다.

현재인격이란 갈망, 욕망, 생각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이 갈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폭군과도 같은 난폭한 사념체들에게 지배되어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버릴 때도 있다. 반면, 이성이 주도하는 경우에는 진리에 바탕을 둔 사고로써 갈망을 다스릴 수 있으며, 내적 성장을 
향한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이 잠재의식적으로 생성해내는 사념체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사념체들이 자신의 잠재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유감이지만, 우리가 생성해내는 사념체의 80%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오염시키는 갈망적 사념체다.

우리의 잠재의식, 성격, 현재인격을 다듬고 계발하기 위해서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과 갈망들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사고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세상을 더욱 지혜롭고 건설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언젠간 심령계와 이지계 속에서도 생생하게 깨어있는 의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