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비밀의 가르침 15: 사념체 본문
Chapter 15: 사념체
이 단원에서는 초질료 마음을 사용하여 심령이지적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심령이지적 이미지는 무형의 마음을 ‘사념체’라는 유형물로 빚어냄으로써 생성된다.
의식은 물질을 탄생시킨다. 존재하는 모든 물질, 초물질은 다양한 진동수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전에 배웠다. 로고스, 성령,
그리고 원소의 대천사들은 성스러운 절대지혜, 절대사랑, 절대생명을
머금고 에테르를 사용하여 광활한 대우주를 창조하였다.
전적사랑, 전적권능, 전적지혜의 화현인 대천사들은 우리에게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라는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용할 양식으로써 동물계, 식물계, 광물계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서 천사들과 자연의 정령들을 동반자로써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낙원은 우리의 형제인
대천사들이 발산해낸 의식적 사념체들의 결정체이다. 대천사들은 끊임없는 사색과 명상을 통하여 신성한 마음을 물질로 빚어내고 결정화하여
오늘날의 물질계를 창조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그리고 장차
알게 될 물질계의 모든 표현물들은 이러한 원리로써 탄생되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의식(마음)이 물질의 어머니라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심령계, 이지계가 창조된 원리 또한 마찬가지다. - 역주)
우리 내면의 정신세계는 어떠한 원리로써 형성되었을까? 우리는 과연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단지 물질사회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일까? 만일 사념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현재인격,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현상계 속을 살아가며
경험을 수집하고 해석하기 위해 탑승하는 이 자가용은 잠재의식적, 또는
자의식적, 초의식적으로 생성된 다양한 사념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혼합물이다. 사념체는 최초로 생성되어 발산되는 순간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성을 지니게 된다. 각각의 사념체는 심령질과 이지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심령이지질은 그 사념체의 주인이 품고 있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물질계 속에서의 삶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특정한 시대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초질료 마음을 사용하여 자신을 치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만의 환경을 내면에,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조성해나가게 되는데, 이는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아니면 그
중간인 가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껍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체가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 각자의 활동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온 육신의 전체성이 유지되듯이, 우리의 현재인격 또한 수많은 심령이지적 이미지들의 상호의존적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품는 갈망, 두려움, 용기, 선으로부터 생성되고 발산되는
하나하나의 사념체가 곧 우리의 현재인격을 구성하는 세포인 것이다.
우리에게 스쳐가는 하나하나의 생각, 느낌, 아이디어들이 곧 사념체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심지어 잠자는 동안에도 우리는 사념체들을 생성해내며, 그 사념체들은 우리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우리가 지녀온 다른
사념체들에게 영향을 준다.
발산된 각 사념체는 자신이 생성되었을 때 투여된 감정의 강도만큼의 힘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주인에게
복귀한 후 전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재발산된다. 현재인격이 지니는
사념체들은 이러한 발산과 복귀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해당
사념체가 진동수가 낮고 둔탁한 갈망적 사념체라면 결과적으로 끔찍하게 어두운 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반대로 진동수가 높고 정교한 지적
사념체라면 사랑이 흘러 넘치는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우리가 해로운 음식을 섭취하여 육체의 건강을 해칠 수도, 또는 몸을
조심스럽게 돌보고 관리하여 건강을 회복할 수도 있듯이, 우리의 현재인격 또한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타락할 수도, 정화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격이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체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물질이 들어와 새 세포가 형성되고 기존의 세포는 죽어서 노폐물로 빠져나간다. 전통 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인체는 7년의 기간이 지나면 단 하나의
세포도 남김없이 전부 교체된다고 한다. 인체는 끊임없는 생성과 교체를
통하여 유지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인격도 이와 같다. 새로운 사념체가 생성되어 투입되고,
기존의 사념체는 버려지고 해체된다. 사념체들을 생산하고 번식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현재인격을 생성해내고, 또 새롭게 개조한다.
그 결과는 행복 또는 고통, 평온함 또는 불안함, 건강 또는 질병으로
나타난다.
우리들 대부분은 현재인격을 잠재의식적(무의식적)으로 관리한다.
대개 갈망과 감정에게 자신을 맡겨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신성한 초질료 마음을 창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의 뜻대로 천국 또는 지옥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능력은 대천사들과는
독립적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능이자 책임이다.
외부의 천국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몫이지만,
내면의 천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사념체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일부 사념체들은 현재인격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고, 다른 일부는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유입된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생성해내는 사념체는 갈망적 감정에 의해, 또는 지적
감정에 의해 생성된다. 외부로부터 사념체를 유입해오는 경우에는 우리의 현재인격이 외부의 특정한 ‘사념체군’(비슷한 사념체들이 서로 모여서 형성된 사념체집단)과 동조하여 그곳으로부터 일부 사념체를 끌어온다. 사념체군은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고수해온 사회적
사상들과 행동들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한 사념체군들 중에는 선한
것들도 있고 악한 것들도 있다. 우리의 현재인격이 약하던지, 강하던지,
사악하든지, 선량하든지를 떠나서 모든 현재인격은 항상 자신과 동조하는 특정한 사념체군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그 사념체군을 활성화하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사념체군은 자신과 동조하는 현재인격들의
감정, 생각, 행동들에 영향을 준다.
일부 공격적인 사념체군들은 우리 육신의 에너지 센터들을 장악하여
일종의 빙의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선량하고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사념체군들은 우리에게 영감과 큰 감화를 주고, 더 나아가
황홀경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대다수의 사념체들은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힘들다. 사념체들은 우리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게끔 만들고 더 강렬한 진동을 발생시키게 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부추긴다. 만일 우리가 욕심, 질투, 혐오의 사념체들을 잔뜩 지니고
있다면, 이들은 우리의 심리를 장악하여서 반감을 갖게 하고 불화를
일으키도록 하여 내면에 지옥과 같은 불쾌한 환경을 조성하게끔 만든다.
반면, 선량하고 평화로운 사념체들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선을 베풀도록 유도한다.
물질체 내에는 우리가 직접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현재인격만큼은 이를 만들고 다스리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현재인격이 허약하면 불가피하게도 심령이지공간을 떠도는 다른 사념체들에게 표적의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서조차도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왜냐하면 그 사념체들과 같은 진동수로 동조하여 그들을 끌어오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탓하여선 안된다. 외부의 사념체들과 동조하고 동화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주변에는 무지의 어둠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며, 의식적으로 초질료 마음을 사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심령이지 공간 안에는 선한 사념체들도 있으며 악한 사념체들도 있다. 천사들도 있으며, 악마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자성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어떠한 악마도 자신과
같은 진동수로 동조하지 않는 인간은 괴롭힐 수 없다.
반면, 죄의식 속에서 괴로워하며 방황하는 사람은 천사에 의해서, 아니면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명상에 의해서, 또는 성스러운
자비의 손길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도란 사랑의
사념체를 빚어내고 발산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대상자의 심령이지적 성숙도가 낮으면 이러한 도움은 일시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도움이 영구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도움을 받는 자는 자신이 받은 유익한 사념체들을 바탕으로 하여 진리적
사고와 자기 계발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주변 환경을 탓해선 안된다. 우리는 수많은 사념체들 속에
둘러싸여서 살아간다. 가령 알코올 중독자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그러한 강렬한 사념체들을 생성해내거나 외부로부터 끌어온 것은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념체들을 해체하기 위해선 엄청난
의지력이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념체들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 심리학에서는 잘못된 통념이 성행하고 있다. 많은 심리치료사들은 환자가 치유되기 위해선 그에게 고통을 주고 좌절시키는 특정한 감정들, 사건들, 기억들을 터뜨리듯이 분출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증기 폭발’의 방법을 사용하면 문제의 사념체들을 약화시키기는 커녕
그들에게 강하게 동조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힘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치료법은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우 역효과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사태는 전보다 더욱 심각해진다.
사념체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한번 탄생한 사념체는 주인으로부터
에테르 생명력을 제공받으며 활동상태에 있다가,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리면 우주의식 속으로 환원되어 잠재상태에 머물게 된다.
우리의 현재인격은 일정량의 사념체들을 자신의 인격을 구성하는 세포로써 사용하기 때문에, 특정한 사념체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 문제의
사념체와 교체하기 위한 새로운 유익한 사념체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한 사념체가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는 다른 새로운 사념체가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긴다. 우리는 이러한 빈 공간을 전보다 더욱
건설적인 목적을 지닌 사념체들로 메우도록 해야 한다.
현재인격이란 수많은 사념체들의 상호의존적인 복잡한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격을 짧은 기간 안에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많은 양의 사념체들, 또는 비슷한 부류의 사념체 무리들을
갑자기 제거해버리면 현재인격이 심각하게 불안정해지게 되며, 심하면
미쳐버릴 수도 있다. 사념체들을 해체하는 작업은 천천히 꾸준한 인내를
가지고 진행해나가야 한다.
사념체들과 전면전을 벌이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과거의 사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성적 사고를 통하여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사념체들을 교체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미련을 두어도 그것들은 바뀌지 않는다. 과거를 홀연히
떠나 보냄으로써 우리를 짓누르던 사념체들에게 더 이상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게 되고, 그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연히 해체되어 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어떠한 속박도 없는 오늘을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오늘을 오늘로써 받아들여라. 어제의 잔여물도, 내일의
예고편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심령이지공간은 과거로부터 인류가 저질러온 온갖
악취들로 가득하며, 그 만행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태고적부터 인류가 베풀어온 선의 향기 또한 가득하며,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신성한 초질료 마음은 우리의 모든 주변에,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가득하다. 이것은 현재인격이 스스로를 계발해나가도록 그의 손에 쥐어진 선물이다. 하지만 현재인격은 이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종종 헛되이
낭비해버린다. 그리하여 청정수와 같던 마음을 아집, 악의, 혐오, 거짓을
비롯한 온갖 해로운 공상으로 가득한 오물로 변질시켜 버린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내가
어떻게 나를 속이겠는가?
인간이 진정으로 완성되기 위해선 첫째로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둘째로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 대부분 인간의 의식은 거짓된 환상의
바닷속에 빠져 있다. 그리고는 종종 남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을 즐긴다.
그것이 곧 자신에게 두 배의 고통을 주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우주의식 속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념체들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절대이성, 성령과 함께 공동창조자로써 다양한 생각, 갈망,
감정으로 이루어진 사념체들을 낳고 길러내면서 우주의식을 형성하는
데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비옥하고 생명력 넘치는 사념체들을
생산해냄으로써 온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천지창조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완성을 향한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우리는 혐오와 갈등의 사념체 대신 사랑과 조화의 사념체를 낳고 길러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치유가이며,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료들이다.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심령상처를 찾아주고 치유해주어 본래의 온전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것, 이것만이 선의 사념체를 길러내는 유일한 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속을 헤매인다.
이미 길을 잃어버린 상태에서조차 말이다. 심지어 독선적인 일부는 자신의 잣대로 세상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사고의 시작이 그릇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침묵의 가치를 알
필요가 있다. 침묵은 진리의 바탕이자 올바른 사고의 어머니이다. 말을 꺼내기 이전에 먼저 침묵 속에서 생각하라. 침묵 후의 말은 더욱 큰 무게를
갖게 된다.
사념체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물질계 속에서의 어떤 동기로부터 시작된다.
첫 번째는 어떠한 인상을 접하고 느끼면서 그로부터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감독이 전혀 없는 경우이다. 그 결과 무수히 많은 강렬한
사념체들이 생성되는데, 그들의 존재목적은 특정한 갈망과 감정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념체들은 갈망적 사념체라고 불리며,
아래와 같은 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
물질적 대상 → 즉흥적 반응 → 갈망의 생성 → 갈망을 충족해내기 위한
환경 조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념체들을 ‘더러운 귀신’, ‘악마’(마가복음 5:2)라고 일컬으셨다. 이들은 인간의 삶의 질을 타락시킨다.
행동이나 내뱉은 말을 통하여서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심령이지적 활동은 주먹만큼이나 강력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예수께서는 ‘간음’에 대한 고대 율법을 예로 들으시며 이와 관련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모세의 율법에 “간음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음욕의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마음속에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마태복음 5:27-28)
‘간음하지 말라’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아내와 함께 하는 상상을 하는 것 조차도 이미 성스러운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자는 동안, 제재의 울타리가 모두 내려진 꿈의 세계 속에서
성스러운 법칙을 위배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꿈 속에서도 항상 이성적 사고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제껏 설명한 것은 사념체를 무절제하게 생산해내는 방법이며, 이는
자신의 카르마를 두껍게 얽어매어 물질계 속에서의 윤회의 기간을
연장시킨다.
사념체를 만들어내는 또다른 방법은 지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갈망을 품는 것이다. 인간은 삶 속에서 직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느긋하고
여유있게 반응하는 법을 매 생에 걸쳐서 조금씩 배워나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삶의 환경, 삶의 패턴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동일한 환경, 동일한 사건을 직면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반응하는
양상이 모두 제각각이다. 격렬한 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분한 이성으로 대처해나가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 의해 생성된
사념체를 갈망적 사념체라고 하며, 후자가 생성하는 사념체를 지적
사념체라고 한다. 후자의 사념체는 우리의 내면을 비롯한 주위의 환경을
깨끗하게 정화하며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어 내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질과 쾌락에 중독된 인간은 유감스럽게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게
주체성을 빼앗겨 버린다. 불결한 심령이지적 환경들 대부분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타락한 감정들과 갈망들이 뭉쳐져서 생성된다. 우리는 단순한
시공간적 환경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이 뜻하는 대로 얼마든지 스스로를 창조하고 계발해나갈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념체에 대하여 매우 강조하셨다. 부정적인 사념체들을
‘벙어리 귀머거리 귀신’(마가복음 9:25) 이라고까지 말씀하시며 공개적
으로 꾸짖으셨다. 이러한 심령이지적 찌꺼기들 자체를 질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분께서는 그릇된 공상을 일으켜서 해로운 갈망적
사념체들로 발전하게 하는 갈망 자체를 애초부터 품지 않도록 우리에게
당부하셨다.
반면, 우리에게 유익한 지적 사념체들을 꾸준히 생성해내도록 격려하셨다. 지적 사념체는 인간을 물질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해주고
진아실현을 향한 참된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출처] 비밀의 가르침 15: 사념체|작성자 곡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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