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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비밀의 가르침 13: 우리의 세 육신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고대 비밀 가르침(密敎)

비밀의 가르침 13: 우리의 세 육신

柏道 2020. 1. 29. 14:20



비밀의 가르침 13: 우리의 세 육신

        

Chapter 13: 우리의 세 육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의 천막 집이 무너지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죽어 이 육체를 떠나면 하늘에 있는 새로운 몸, 영원한 우리 집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집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입니다.’ (고린도후서 5:1)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게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가 몸으로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고린도후서12:2)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4)

인간이 지니는 생명의 주기란 육신의 주기를 포함한다. 
육신이란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이 단절계 속을 살아가며 경험을 
수집하기 위하여 탑승하는 자가용이다. 
우리는 단절계를 구성하는 각 차원에 상응하는 이지체, 심령체, 
물질체를 지니며, 이 육신들은 에테르 복체라는 생명망에 
의하여 서로 묶여 있다.

깨닫지 못한 자들은 물질만이 이 세상을 이루는 전부라고, 그리고 물질적 존재성만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탐구자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물질계에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더 높은, 더 정교한 차원들 속에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단절계 속에서의 우리의 삶이란 영원한 고향인 절대영원성의 자체완전성의 경계를 단 한 순간도 떠난 적 없는 진아로부터 발산된 
조그마한 빛 줄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간은 물질계 속을 살아가는 동안 그의 세 육신 속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그러하고, 무의식적 유체이탈을 하는 수면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훗날 죽음을 맞이하면 물질체를 버린 후 심령체와 이지체를 지니고 심령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후 제 2의 죽음을 맞이하면 심령체는 이지체에게 동화된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이지체를 지니고 이지계 속을 살아간다. 
그리고 훗날 이지체는 소멸되며, 그의 현재인격은 영구원자 속으로 흡수된다. 그 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곧바로 지상으로 다시 내려와 환생할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이지질, 심령질, 물질을 이용하여 다음 생에서 입기 
위한 새로운 이지체, 심령체, 물질체를 만든다.

우리가 물질계 속을 살아갈 때 우리의 심령체와 이지체는 물질체와 정확하게 포개져서 하나의 육신처럼 존재하지만, 적절한 수련을 하면 자의식의 
경계에서 심령이지체를 물질체로부터 분리시킨 후 그 육신과 동조하는 
심령이지계 속으로 진입하여 그곳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세 육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각기 속해있는 차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물질체는 다른 물질들과 함께 3차원 세계에 머무른다. 반면, 심령체는 4차원 세계에 있으며, 때문에 심령체에게는 물질계를 지배하는 시공간적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심령체는 4차원계를 다스리는 고유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이지체는 심령체, 물질체와 함께하는 동시에 5차원계에 있다. 5차원계는 4차원계의 시공간적 법칙마저 초월한다. 
하지만 이지체는 우리가 물질계와 심령계 속을 살아가는 동안의 모든
 삶의 과정을 함께 한다.

물질체 내에서는 여러가지 물질적 반응들과 현상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의 인격이 물질체를 떠나가는 순간, 그 동안의 모든 생리활동은 중단되고 물질체는 흙으로 환원된다. 심령체나 이지체와 달리 물질체에게는 특별한 물리법칙이 적용되는데, 그것은 특정 물질체가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녀온 본래의 물질체이든, 아니면 물현(초질료 마음이 물질로 형상화 될 때까지 진동수를 낮추는 영적 능력 - 역주)을 사용하여 창조해낸 일시적 물질체이든 그에 상관없이 모든 물질체를 이루는 각각의 물질원자는 하나의 공간만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3차원계의 
법칙이다.

(반면, 4차원 심령계는 공간을 초월하는 세계이다. 심령계에서는 동일한 
공간 내에 수많은 사물들이 여러겹으로 중첩되어 공존할 수 있으며, 
한 사물이 여러 공간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또한 심령계에서는 
다양한 공간 사이를 순식간에 넘나드는 공간여행이 가능하다. 
이보다 상위차원인 5차원 이지계는 공간을 초월하는 심령계의 모든 특성을 지니면서 시간조차 초월하는 세계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며, 여러 시간대 속에 동시에 공존할 수도 있다. 또한, 과거, 현재, 미래로부터의 존재들이 같은 시간대 
안에 한꺼번에 모일 수도 있다. 3차원의 시공간적 통념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심령계와 이지계를 구성하는 시공간적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 역자주)

이제 심령체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자. 한 신비가가 자신의 사념체를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 다른 신비가에게 투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념체는 심령질과 이지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에테르 복체에 의하여 
서로 묶여 있는데, 이는 우리의 육신을 이루는 구조와 동일하다. 
이렇게 사념체가 투사되면 그로부터 수천마일 떨어져 있던 다른 신비가가 이것을 받게 된다. 
그가 받은 사념체는 그것을 창조한 주인의 심령체를 그대로 닮은 하나의 
완전한 심령체이다 (사념체는 그것을 창조한 주인의 분신이다. - 역주). 
이와 같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념체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물질계의 시공간적 제한을 초월하여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텔레파시라고 한다.

초자의식을 지닌 신비가는 하나가 아닌 수많은 사념체들을 동시에 투사할 수 있다. 그는 각 사념체들에게 고유한 임무를 주어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 지구의 곳곳으로 한꺼번에 투사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투사한 
모든 사념체들을 동시적으로 감독할 수 있다. 투사된 모든 사념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그의 창조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지질을 사용하여 위와 같은 사념체 투사를 할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선 자의식을 일정 수준만큼 계발하여야 한다. 5차원계에서는 모든 것이 
훨씬 명료해진다. 4차원계와 5차원계의 차이는 3차원계와 4차원계의 
차이만큼 엄청나다. 각 차원들의 구조는 판이하게 다르다. 
4차원계와 5차원계를 물질계의 연대기적 개념과 같은 제한된 시공간적 
통념으로 이해하려 해선 안된다.

우리의 심령체는 우리 스스로가 대천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만든다. 
심령체는 영구원자 속의 전생의 기록들과 상응하는 심령질의 재료로 빚어진다. 물론, 영혼의 투영물인 영구인격은 항상 순백하다. 다만, 그 영구인격이 입고 있는 옷의 청결도가 변할 뿐이다. 이 옷을 구성하는 성분은 
이생과 전생들로부터 수집되어온 경험들이다.

영구인격은 세 육신 속에 현재인격을 창조한다. 현재인격이란 인간이 
기나긴 세월 속에서 수없이 발산하며 되돌려받은 지적 사념체들과 
갈망적 사념체들이 합산되어 형성된 총체물이다. 한 인간이 지니는 
현재인격의 질은 그의 심령이지적 성숙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죽음’이란 인간이 물질체를 버리는 현상이다. 인격이 물질체를 떠나가면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가 해체되기 시작한다. 에테르 복체는 원래 물질체가 부식하면서 서서히 해체되지만, 시체를 화장을 할 경우에는 급속히 해체된다 (사람이 죽고 난 후에도 물질체의 머리카락과 손톱은 며칠간 계속 자란다고 한다. 이는 아직 물질체 속에 에테르 복체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생체활동이 완전히 정지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 역자주). 해체된 에테르 복체는 우주의식 속으로 환원된다. 에테르 복체는 진아단을 직접적으로 싣고 있는 육신들을 간접적으로 조력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복체는 해체되는데, 이는 마치 뱀이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반면, 우리의 영구인격은 수많은 생을 거쳐도 결코 해체되는 일이 없으며 항상 완전하게 보존된다. (영구인격은 윤회 속에서 깨닫고 
성숙할수록 더욱 밝아지고 정교해진다. - 역주)

우리의 심령체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심령체는 성령과 우리의 영구인격, 그리고 수호대천사의 감독 하에 심령질로써 빚어졌다. 심령체는 미세한 심령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령적 에테르 복체를 주형틀로 하여 하나하나의 세포 단위로 생성되었다. 심령체의 형상은 물질체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물질체의 모든 물리적 세부사항은 심령체에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이 심령체를 지니고 수면 중 무의식적 유체이탈을 하거나 죽음을 맞이하여 의식적 유체이탈을 하게 되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 또는 유체이탈을 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의 심령체는 그가 지녀온 물질체와 완벽하게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물질체가 파손되었거나 절단된 부분이 있다면, 그의 심령체는 파손되거나 절단되기 않은 온전한 육신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심령체와 이지체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이 옷은 우리가 지녀온 생각들과 갈망들로 짜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지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내면에 조성해온 심령이지적 환경에 상응하는 부류의 옷을 
입고 있다.

옷을 일일이 갈아입어야 하는 불편함은 물질계에서만 존재한다. 
심령계에서는 이러한 수고가 전혀 필요 없다. 심령체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입고자 하는 심령옷을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심령체는 그 생각과 상응하는 심령질로 순식간에 갈아입혀진다. 
물론 물질계에서도 옷을 갈아입는 작업은 새 옷을 입고자 하는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실제로 그 옷을 구하고 입는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심령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물질계에 살고 있는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잠자고 있는 인간과 깨어있는 인간이 서로 다르지 않듯이 말이다. 
심령계에서의 삶과 물질계에서의 삶을 구분짓는 잣대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젯밤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잠자는 동안 꿈 속에서 겪었던 경험을 잠자기 이전에 깨어있는 동안 겪었던 경험과 비교해보자. 우리는 잠들기 이전에 겪었던 경험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대적 관념일 뿐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모든 순간들은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되어버리고, 결국 그 속에서 겪었던 경험은 특정한 인상으로 남겨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생생한 꿈 속에서 겪었던 경험 
또한 결국 하나의 인상으로 남겨진다. 그렇다면 결국 이 두 경험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없다. 꿈이었는가, 현실이었는가에 상관없이 이 둘은 
우리 인격에게 있어서 과거에 겪은 특정한 시공간적 인상으로써 남겨질 
뿐이다. 그렇기에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잣대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두 경험 중 무엇이 더 진짜일까? 
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다.

물질체는 절대원리와 절대법칙에 의하여 설계된 인격의 이데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물질체는 성령의 감독 하에 창조에테르를 사용하여 성장해나가기 시작한다. 비록 물질체 속에는 현재인격이 머물지만, 물질체의 성장은 현재인격의 도움 없이도 물질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인격이란 무엇일까?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의 육체적 성장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체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상 그들의 육체적 성장은 모두 동일한 물리적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어째서일까? 인격은 섭취된 음식물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인격을 형성하는 근원은 수많은 전생이다.

새로 태어날 아기의 육신이 형성될 때는 그의 영구원자를 중심으로 하여 
이지원자, 심령원자, 물질원자들이 차례로 생성된다. 그리고 운명의 신령은 새롭게 생성되는 육신의 모든 원자들 속에 아기가 장차 겪어나갈 삶의 운로를 새긴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운명을 바꾸고 개선하고 개척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자유가 주어진다.

인간이 타고날 운명은 그의 육신을 빚어내기 위한 재료로 쓰일 무형의 
이지질, 심령질, 물질 속에 새겨진다. 더불어 그의 과거의 모든 빛, 모든 
경험, 모든 베품과 받음의 정보들이 함께 기록된다. (물질세포의 DNA 속에는 그 사람의 모든 유전정보가 새겨져 있다. 물질세포 속 유전정보의 
근원은 심령세포, 이지세포이며 궁극적으로 영구원자 속 전생의 기록이다. - 역주)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심령이지체를 구성하는 심령이지질은 
그가 겪어온 모든 전생의 질을 그대로 반영한다. 절대지혜로 충만한 영구
인격은 심령이지질 속에 기록된 정보들을 참조하여 성숙과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현재인격을 창조한다. 이렇게 하여 현재인격이 
탄생되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배우고자 하는 나(현재인격)와 이미 해답을 알고 있는 나
(영구인격)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인격이 영구인격과 하나되고, 영구인격이 완성되어 영혼과 일체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아실현을 이루어낸 
성스러운 실재로써 거듭나게 된다.

진아단이란 한 가닥의 밧줄에 비유할 수 있다. 한쪽 끝에는 절대영원성과의 일체의 경계에 머무르는 성원소가 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종종 고삐 
풀린 채로 이리저리 날뛰며 고군분투하는 현재인격이 있다. 그리고 밧줄의 중간 지점에는 영구인격이 있다. 진아단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여럿으로 표현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밧줄의 분리된 양 끝을 붙여서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원을 만드는 것이다. 진아단을 구성하는 
모든 표현물들은 원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원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원이 완성되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는 땅 위의 몸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하늘의 몸으로 변화’(고린도전서 15:54)되리라.

조각가는 양 손에 진흙을 쥐고 그의 창의력을 동원하여 작품을 빚어낸다. 이것은 우리가 무형의 심령질을 재료로써 사용하여 심령체를 빚어내는 과정이다. 이 심령질을 사용하여 작품을 빚어내는 창의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지체이다. 심령질은 이지적 모형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이지체는 심령체를 만들기 위한 모델이다.

우리가 심령계로부터 어떠한 인상을 받게 되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심령이지영역 안에서 심령이지적 진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 진동이 바로 우리의 생각, 갈망, 감정, 반응이다. 이것들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선 이러한 진동들을 이성적인 진리적 사고로써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갈망이란 강렬한 심령이지적 진동인데, 이것은 더욱 높은 차원의 지적 
사고를 통하여 다스려질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큰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놓치면 안된다. 우리의 현재인격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통제해야 한다. 여기서의 통제란 자기학대가 아닌, 
이치적 이해를 바탕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욕심과 집착의 본질을 이해하면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그것들을 쉽게 길들이고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심령이지질을 사용하여 영구인격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성숙시켜 궁극적으로 영혼과 일체될 수 있다.

성 조지(영국의 수호성인 - 역주)의 성화에는 백마를 탄 그가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출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이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상징들을 살펴보자. 백마는 우리의 물질체이다. 성 조지는 우리의 영혼을 상징한다. 그의 창은 마음의 진동으로써 지성, 사고, 의지력을 
상징한다. 용은 욕망과 분노를 상징한다. 물은 에테르 생명력을 상징하는데, 창조를 위해서 필수적인 이 물은 분노와 욕망으로 가득 찬 용에 의해서 모두 증발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주는 우리의 현재인격이며, 그녀는 우리의 영혼에 의해서 구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