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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복음14:6>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복음14:6>

柏道 2020. 1. 14. 07:26



蘧然覺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복음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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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진리, 생명 이것은 한말을 셋으로 달리 표현한 말이다.

 

한말은 곧 예수를 말함이다.

 

썩을 몸의 예수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란 말로 알면 정말 잘못 아는 것이다.

 

독생자는 예수만이 독생자가 아니다.

 

몸을 입은 血(혈)과 肉(육)으로는 예수나 우리나 다름없이 하나같이 밥먹고 똥누고 오줌누는 무너질 멸망의 몸이 었지만 예수가 우리와 다른 것은 육신의 몸삶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얼이 하나님의 성령인 하나님의 얼과 交通(교통)한 성령의 사람이었단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과 교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독생자인 것이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생각인 肉身(육신)의 所慾(소욕)대로 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이르심을 따라서 산 영의 사람이 었지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은 아닌 것이다.

 

해서 예수님의 영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았을때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을 주관 하심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 그 얼의 예수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나라고 내세우며 거들먹 거리는 그 나란 것이 세겹으로 나타나는데 그 하나가 마음의 나요.

 

그 둘이 몸뚱이의 나요.

 

그 셋이 얼의 나인데

 

마음 나, 몸의 나는 自我(자아)인 ego의 나로 몸의 어버이로 부터 받아 한바탕 잠깐 살다가 죽어 없어질 거짓 생명의 假我(가아)의 나이고 얼의 나는 하나님 (絶對存在절대존재)의 성령의 한 끄트머리로 이어져 있어 남도 죽음도 없는 영원절대한 생명의 나인 眞我(진아)참 나이다. 자신을 正觀(정관)하여 바로보면 이것을 알수가 있다.

 

나 자신을 바로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나를 의심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

 

이 나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 자신이 의심스러워 내 속으로 자꾸 자꾸 파고들어간다는 것이다.

 

때로는 내 자신도 알수 없어 어찌할 수 없는 이몸뚱이며 마음이란 것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이기고 다스려야지 마음과 타협하여 그 마음에 질질 끌려 다녀서는 되질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같은 사람의 마음이 내 임자가 되어 주인 노릇하게 되면 그게 죄의 종이 되는 길이고 禽獸(금수)인 짐승보다 못한 망나니로 타락하고 마는 탕아가 되는 길로서 종내 하나님을 만날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

 

이 나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가?

 

석가가 돌산에서 예수가 광야에서 바로 이것을 깊이 깊이 목숨걸고 苦惱(고뇌)했던 것이 이것이리라.

 

이렇게 나를 의심하다가 이 나라는 것이 참나가 아니라는 것을 석가나 예수가 깨달았던 것처럼 영원 절대의 참나를 깨닫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영생을 얻은것이고 成佛(성불)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眞理把持(진리파지)다.

 

깨달아 성령으로 거듭나고 成佛(성불)하는 이치가 있으면 그것을 마음에 꼭물고 기어코 깨닫고야 말겠다고 목숨을 내놓고 念願(염원)하는 것이 祈禱(기도)요 念佛(염불)이다. 염불은 붓다의 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리는게 염불이 아니다. 만일 깨닫는 이치가 있으면 마음에 꼭물고 그 이치의 자리에까지 가는것이 祈禱(기도)이며 念佛(염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