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노자 도덕경 16장 본문
老子 道德經 노자 도덕경 16장
제16장
致虛極
비움의 극에 이르고
守靜篤
고요함을 두텁케 지키라.
萬物竝作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吾以觀其復
나는 그 되돌아감을 눈여겨본다.
夫物芸芸
온갖 것 무성하게 뻗어 가나 *夫: 저, 많다 *평지(십자화과 두해살이풀)
各復歸其根
저마다 그 뿌리로 돌아가게 된다.
歸根曰靜
그 뿌리로 돌아감은 고요함이다.
靜曰復命
고요함은 제 명을 회복하는 것이다.
復命曰常
제 명을 찾아감이 영원한 것이다.
知常曰明
영원한 것을 아는 것이 밝아짐이다.
不知常
영원한 것을 알지 못하면
妄作凶
거짓되어 재앙을 일으킨다.
知常容
영원한 것을 알면 너그러워진다.
*容: 용서하다, 받아들이다. 누긋하다, 어렵지 아니하다.
容乃公 公乃全
너그러워지면 공(공평, 공정)해진다. 공해지면 널리 미치고
全乃天 天乃道
널리 미치는 것은 하늘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道乃久
도는 영원하니,
沒身不殆
몸이 다하는 날...
개인감상
14장에서는 도의 실마리를
15장에서는 도를 통하는 사람을 애써 보이는 모습만으로 표현하였고
드디어 16장에서는 도를 아는 방법을, 그것도 더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움의 극에 이를 수 있게 되고,
고요함을 두텁게 지킬 수 있게 될때,
온갖것의 되돌아감을 관찰합니다.
내면을 비우려면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속속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냥 내보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온갖 방해와 유혹을 견디고 이기고 또 그것들과 한몸이 되어 조정할 수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비움의 극입니다. 나 자신이라는 최후의 틀조차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하지 않는 극의 상태에서 그 고요를 지킨 채로 외부세계의 돌아감을 봅니다. 내가,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사사로운 지켜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맑고 고요히 볼 수 있어야만 그것의 근원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은 번민할 정도로 너무나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근원은 고요하고 영원합니다. 하나의 근원만을 봐서도 안됩니다. 온갖것의 근원을 봅니다.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 그것도 그냥 관찰이 아닌 본질로 파고드는 관찰을 말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근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와 존재 뿐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든 인과든 법칙이든 관계든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근원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이상하리만치 그것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같은 근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근원들의 근원은 우리가 이름짓지 못하는 그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도 겨우 어렴풋이, 언뜻 깨달을 수 있을뿐인데, 보이지 않는 것들의 근원은 더욱이 멀어서 마치 없는 것처럼 대합니다. 그러나 감히 존재가 알 수 없다고한들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이며, 모든 번다한 것들도 결국은 다시 돌아가며 고요를 찾고, 그것은 영원해집니다.
인간이 알든 모르든 진리는 진리입니다.
'영원한 것을 아는 것은 밝아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있고
모든 것의 근원을 안다는 것은
현존재에서 근원의 근원까지 모든 과정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그것을 향해 조명을 비춘다는 것.
밝아진다는 것.
자신이 나온 곳, 자신이 앞으로 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하는 존재는 어둡습니다. 늘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진실로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니 없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거짓됨은 진실된 세상에서는 재앙을 일으킵니다. 거짓은 눈에 보이는 존재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사람들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나를 속이고 진실된 것들을 속입니다. 거짓에 능숙해질수록 진실은 멀어집니다. 점점 밝아질 수 없게 됩니다. 거짓은 그 자체가 재앙이 됩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을 알면 너그러워지고 받아들이게 되며 어렵지 않아 지고 공평지고 치우치지 않으며 널리 미칩니다. 이는 곧 하늘을 비롯한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통함입니다.
道乃久
이 영원한 것은 도입니다.
이를 알면 더이상 불안함도 두려움도 초조함도 그 어떤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서의 거짓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첫행, 비움의 극에 이르고 고요함을 두텁게 지키는 것은, 도로 돌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가지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를 만들고 지켜야 도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나고 살아가는 존재가 그 상태를 지키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허나 스스로와 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비움의 극을 실천했던 그 노력이 빛을 발해 궁극에 도를 알게 되면,
더이상 그것을 일부러 지킬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저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온갖 무성한 것들의 뿌리" "되돌아감을 눈여겨본다" "비움의 극" "고요함을 지킴" "안다는 것은 밝아짐"
이보다 더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출처]|작성자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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