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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13]신시 백두산과 성경의 에덴동산 비교 본문

천지인 공부/단군과 한민족

역사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13]신시 백두산과 성경의 에덴동산 비교

柏道 2019. 8. 29. 03:32



역사는 한국에서 [13]

신시 백두산과 성경의 에덴동산 비교.

 

작성자  권천문|

 

역사는 한국에서 [13]

 

 

신시 백두산과 에덴동산

 

 

에덴동산의 위치에 관한 연구내용은 다양하다.

 

 

첫째, 에덴이 극동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학설은 기독교 교부들의 주장이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비손 강을 인도의 인더스 강 또는 갠지스 강으로, 기혼 강을 이집트 나일 강으로 본다.

 

 

둘째, 에덴이 남 바벨론의 에리두(Eridu) 부근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E, 그레이의 탐사를 근거로 한다. 그는 비손강, 기혼강, 힛데겔 강을 북 아라비아의 다와진, 시르한, 룸마의 강줄기였다고 한다.

 

 

셋째, 에덴이 북 바벨론 지역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학설은 1881년 독일의 앗시리아 연구학자 델리취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는 에덴을 바벨론평야 전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는 비손과 기흔을 베벨론에 있는 두 운하, 곧 팔라코파스(Pallakopas)운하와 샤트-엔-닐 (Sjatt-en-nil)운하로 보았다.

 

 

 

이처럼 에덴동산의 위치에 대한 지리적 재구성은 여러 갈래로 시도되었으나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지명 단일 지역만을 의미하는 명칭을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지구상의 지형 변화가 계속되었다는 난점 때문이다. 위의 내용은 E. 그래이 의 탐사내용과 아시리아 연구학자 델리취의 주장이다. 위의 내용은 지나치게 유대교 위주의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류문명을 창시한 조상들의 열정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서방 적 주관과 잣대에서 폭을 넓혀 동방의 역사를 비롯하여 전체 지구적 관점에서 역사적 종교적 시원을 찾아야 에덴동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필자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늘 성경은 동양에 뿌리를 둔 서양문화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성경해석이 지나치게 서방 우위적이면 유대나라의 경전일 뿐 전 세계적 성경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경해석이 유대나라적일 뿐만 아니라 위의 주석 또한 E. 글래이 탐사보고서와 델리취의 보고서에만 의존한 해석이었다.

 

 

성경해석은 동서양의 상고 역사적 유적을 찾아 세계 문명발달사에 관심을 두고 인류 기원사 및 종교발달사 등을 포괄한 성경해석이 되어야 한다. 성경 창세기의 에덴동산이 단순히 인류탄생의 지명 적 의미만 가지는 것인가? 종교적 발상지를 뜻하는가? 후천 세계를 강조한 미래적 예언인가? 다 방면의 검토가 있어야 한다.

 

 

특히 창세기 2장 8-9절에는 하나님께서

 

 

 

동방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은

 

 

(1) 동방에서「에덴」이란 지역을 찾고 그곳에서「동산」을 찾아야 할 것이다.

 

(2) 생명 및 선악을 알게 하는 종교적 시원도 동시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3) 메소포타미아(슈메르) 문명은 에덴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남긴 문화의 이전 적 역사 추적에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4) 노아 홍수사건도 세계민족의 대 이동역사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실제 역사상 추적할 수 있는 종교적 입장에서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기에 묘사된 비현실적인 사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되겠지만 지금까지 밝히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들과 우리들이 신화 또는 설화로만 취급했던 내용들이 고고학자들의 꾸준한 발굴성과에 의하여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세계 4대 문명 (황하, 나일 강, 인더스 강, 유프라데스 강 문명) 보다 2천년에서 4천년이 앞선 극동의 요하(홍산)문화가 발굴되므로 세계문명의 시원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1986. 8. 1 공식 발굴발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