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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5] 본문
역사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5]
* 홍수와 전쟁과 한민족 대이동
단군한검 초기에 세계적인 큰 홍수가 있었는데 홍수대책은 물론 홍수로 인한 국경충돌과 중앙왕권의 교체를 둘러싸고 삼묘, 구려, 단주(丹朱), 관두(鸛兜), 공공(共工:염제의 일파), 곤(鯀:황제의 일파), 등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공공은 유릉(幽陵:지금의 북경시 하북성, 동북삼성)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노아 홍수일 수도 있다. 우리 한민족은 이때 세계 각 곳으로 이동했다.
일부는 알타이 산맥을 넘어 유럽 쪽으로 또 다른 일부는 이란, 이락, 터키 쪽으로, 그리고 일부는 북미대륙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Hopi-Navaja족이다. 그들이 세세 대대로 전하는 그림이 바로 공공씨의 족휘(族徽)인 것이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하여 영남구릉(嶺南丘陵)으로 쫓겨났으며, 삼묘는 감숙성(甘肅省) 삼위산(三危山)까지 쫓겨 갔고, 곤은 산동성 임기(臨沂)부근에서 피살되었다. 당시 삼묘의 주요 분포는 하남, 호북 이었는데,「전국책(戰國策)」이나「한시외전韓時外傳 권3」에서 말하는 “형산(衡山)이 남쪽에 있고, 기산(岐山)이 북쪽에 있으며, 좌축은 동정호(洞庭湖 )이고, 우측은 팽택지수(彭澤之水)이다”라는 것인데, 굴가령(屈家岭)문화와 대계(大溪)문화(지금부터5000-4500년전)가 바로 그 유적이다.
단주와 관두의 주요 분포는 단수(丹水), 화산(華山), 정주(鄭州), 신정(新鄭), 노산(魯山), 개봉(開封), 숭산(嵩山) 일대인데 대하촌문화가 그 유적이다. 공공씨의 주요 인사들은 태행산(太行山), 남쪽, 녹공현(簏共縣)과 휘현(輝縣)일대로 이동했다.
이때의 이동은「산해경․ 대황남경」의 기록을 보면 요․ 순․ 우가 반복적으로 무력행사의 전쟁 때문인데, 단주, 관두, 삼묘, 구려로 하여금 남방으로 쫓겨 가서 백박, 백월로 나우어지게 하였고, 삼묘, 구려의 주된 종족은 묘(苗), 려(黎), 여(畬), 동(侗)등이다 그리고 관두씨, 치우씨, 희화씨, 척우(鶺宇)씨 등은 하남으로부터 호북으로 들어가서 악서(卾西)에서 염제씨, 신농씨 일파와 합쳐져서 호남, 연상(沿湘), 자(資), 원(沅), 예(禮)를 향해 방향을 바꾸어 운남성과 귀주로 들어갔다.
호북성의 악서의 염제축융(굴가령문화)와 호남 안향현(安鄕縣) 탕안강(湯安崗)(대계문화)은 치우․ 강영․ 염제․ 연맹문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의 한줄기는 남쪽 경애(지금의 해남도)로 내려가서 려족이 되었는데, 광서와 함께 삼묘족으로 융화되었다. 삼위로 들어간 묘족은 강융장적(羌戎長翟)씨, 적적(赤狄)이 되었는데 모두 강강(姜羌)의 후손이다.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상의 모든 죄악을 말끔히 씻어내어 과거의 모든 행위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사건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한민족 단군한검 초기에 있었던 9년 대홍수 역사기록과 성경의 노아홍수 시기와 일치된다. 더욱이 베링해협의 얼음이 녹아서 홍수가 되었다면 아세아 전역이 홍수와 그로 인한 전쟁으로 민족의 대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아세아 지역 사람들이 대거 홍수와 전쟁을 피하여 서방으로 이동하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집단들 가운데 「노아」라는 대표적 인물이 있었음을 가정할 수도 있게 된다.
슈메루 인들의 홍수의 주인공을 ‘지우수드라’라고 불렀다. 이 별명은 ‘장수(長壽)’로 번역이 되었다. 이 이름은 니푸르에서 발굴된 기원전1700년경의 설형문자 문헌으로 입증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아무르 족 전설에서는 ‘지나치게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의 ‘아트라하시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버풀대학의 앨런 밀러드(Alan Millard)교수가 지적했듯이, 이 이름은 노아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지나치게 경건한 사람’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즉 창세기 6장9절에는 그렇게 번역하였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완벽한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창세기 6:9)
나중에「길가메시 서사시」가 아카드어(아무르족 언어 당시 세계 공용어)로 번역되었을 때, 메소포타미아홍수의 주인공 ‘그는 (영원한) 생명을 발견했다’를 뜻하는 ‘우트나피쉬팀’으로 불렸다.
우리 한민족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많이 있다.「술이기」에는 「노반」이 나무로 학을 만들어 700리를 이주했다는 기록이 되어 있으며 치우장군에 패배하여 도망한 「소호금천」 종족 중에는「노동(老童)」이라는 족장이 있었다.「노동」은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자」라 하였다.
2001년 9월 8일 소피아 발 AP통신에 의하면,
〈대홍수 이전에 메소포다미아 보다 앞선 문명이 존재하였다. 빙하 말기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 넘쳐 ― 동방의 문화민족들이 슈메루로 진입거주하며 동방문화가 자연 이입되었다〉
고 하였다.
중국(中國)고대 신화에도 “뽕밭이 바다가 되었다(桑田碧海 상전벽해) 즉 하늘까지 오르는 홍수 때문에 세상 이난들이 다 죽고 「복회」와「여와」만 살아서 인류시조가 되었다”는 홍수기록이 있다. ”(풍속통의)
이와 같이「노아홍수」는 동서양역사에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홍수이던 그렇지 않으면 기후의 변화에 의한 자연적 현상이던 역사적 대홍수에 의하여 세상의 지배구도는 끝없이 변화되었다.
한 때 12분국을 거느리고 아세아 전 대륙을 통치하였던 한민족이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이때부터 단군조선은 힘을 잃고 쇠약의 길로 들어서 동북아 일부의 영토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노아홍수」는 동서 2만 리, 남북 5만 리 영토를 확장하며 위세를 떨치고 타민족을 지배하였던 우리 민족이 한꺼번에 바벨탑이 무너지고 언어가 흩어지는 하나님신앙의 종주국의 위상이 무너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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