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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을 길러내기 위해 본문

천지인 공부/삼일신고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을 길러내기 위해

柏道 2019. 7. 30. 10:39


제목;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을 길러내기 위해

    세 법(法)을 행하라!




오늘은 단제강세(檀帝降世) 사천사백(四千四百) 칠십(七十) 사년(四年)(4474년),

배달 사천삼백(四千三百) 오십년(五十年)(4350년),

양력(陽曆) 2월 19일, 음력(陰曆) 정월(正月) 스무사흘(1월 23일),

일요일 이 시간은 경일경배시간이다.

이번 주(週)에 한배검께서 주신 말씀은,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을 길러내기 위해 세 법(法)을 행하라.”는

말씀이다. 

우리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보면,

삼일신고(三一誥)의, 첫 번째는

삼일신고(三一神誥)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한울과, 한얼님과, 한울집과, 세계(世界)와, 진리(眞理)에 대한 말씀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삼일신고(三一誥)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리고 우리를 왜? 창조하셨으며,

무엇을 바라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말씀이 나와 있다.

하느님은 대덕(大德)과 대혜(大慧)와 대력(大力)을 가지셨다. 그러셨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 보면,

성명정(性命精)의 완성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성명정(性命精)의 완성을 바라신다는 것을

삼일신고(三一誥)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성명정(性命精)을 완성시켜 나가는 길을 가게하기 위해서,

지구 땅에 우리의 생명을 허락해주시고,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게 하신 것이다.

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성명정(性命精)을 길러서 완성을 이루어 나가야 된다.

우리가 부여받은 이 한 생(生) 동안,

지금의 삶을 통해서, 완성을 이루어 나갈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것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몇 생(生)을 거듭 다시 태어나면서,

성명정(性命精)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성명정(性命精)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는 길을,

삼일신고(三一誥) 진리훈(眞理訓)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이 세상에 성명정(性命精)을 받아서 태어나면,

태어남과 동시에 무엇이 생기느냐면, 심기신(心氣身)이 생긴다.

성명정(性命精)이라고 하는 것은,

성품(性品)과 목숨과 정기(精氣)다.

성품(性品)과 목숨과 정기(精氣)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품(性品)이라는 것은,

우리의 기본 바탕, 우리 마음의 바탕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바탕, 나의 본모습이 성품(性品)이다.

그리고 그 성품(性品)이 이어져 나가는 길이가, 시간이, 바로 목숨이다.

정기(精氣)는 그 성품(性品)이 움직여 나가는 힘이다.

그래서 사실은 성명정(性命精)이라고 하는 것은

셋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세 가지 방향에서 봤을 때,

성명정(性命精)이 되는 것이고, 하나로 보면 그냥 ‘나’다.

다시 말해서 ‘나’라는 존재를 얼마나 성장시키느냐?

얼마나 하느님을 닮아서 성장해 나가게 하느냐?

내가 얼마나 완성되어 나가느냐?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될 일이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명정(性命精)을 받고 태어났다.

태어나서, 우리에게는 심기신(心氣身)이라는 것이 생긴다.

심기신(心氣身)도 세 가지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하나다.

나 자신의 모습을 갖다 놓고, 내 마음으로 보느냐?

기운으로 보느냐? 몸으로 보느냐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몸은 따로 떨어져 있는가?

안 떨어져 있다.

내 마음이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몸이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고,

또 내 몸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따라간다.

그 사이에는 기운(氣運)이 있다.

결국은 ‘나’라는 사람이 움직여, 행하여 쓰는 모든 것이 마음이고,

기운이고, 몸이다.

성명정(性命精)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 바탕이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명정(性命精)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 성명정(性命精)을 쓰는 것이, 마음과 기운(氣運)과 몸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런데, 예를 들어 보자.

내가 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돈을 써야 된다.

그러면 예를 들면, 내가 돈을 50만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50만원의 돈을 가지고, 100만 원짜리 컴퓨터를 사고 싶어 한다.

그런데 50만 원짜리 돈으로, 100만 원짜리 컴퓨터를 사려고 하면,

어려운가? 어렵지 않은가? 어렵다.

그냥 막무가내로 사려고 하면 불가능 할 것이고,

내가 가진 50만원을 기준으로 해서,

누군가에게 50만원을 빌려서, 100만원을 만들면, 컴퓨터를 살 수 있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판매하는 사람에게,

“지금 50만원을 드리고,

앞으로 50만원을 차츰차츰 갚아서 드리겠습니다.”

요렇게 할부(割賦)로 사면 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냥 50만원으로 바로 100만 원짜리 컴퓨터를 살 수는 없다.

거기서 내가 가진 50만원이, 내 성명정(性命精)이다.

내가 사고 싶어 하는 컴퓨터, 100만 원짜리는,

내가 쓰는 마음이고, 기운이고, 몸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러면 예를 들어서, 내가 200만원을 갖고 있다.

200만원을 갖고 있는데, 100만 원짜리 컴퓨터를 사야 된다.

쉬운가? 어려운가? 쉽다.

내가 가진 돈에서 100만원을 써도, 100만원이 남는다.

우리의 성품(性品)이 크면, 마음을 쓰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의 성품(性品)이 작으면, 마음을 쓰는 것이 어렵다.

이해가 되는가?

성명정(性命精)과 심기신(心氣身)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성명정(性命精)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내가 통장에 돈을 얼마를 가지고 있다는 뜻과 마찬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심기신(心氣身) 삼망(三妄)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제 그것으로 써야 된다는 뜻을 얘기하시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성명정(性命精)을 가지고,

심기신(心氣身)이라는 삼망(三妄)이 생겨나서,

그 심기신(心氣身)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가진 50만원이 진짜인가?

내가 사야 되는 컴퓨터 100만원이 진짜인가?

50만원이 진짜다. 100만원은 내가 사고 싶을 뿐이지,

내가 살 수도 있고,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냥 가상(假想)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진짜다.

그래서 내 성명정(性命精)이 진짜고, 심기신(心氣身)은 가짜다.

그래서 성명정(性命精)은 삼진(三眞)이고

심기신(心氣身)은 삼망(三妄)이다. 그러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면 우리가 심기신(心氣身)을 잘 쓰려면, 무엇을 길러야 되는가?

성명정(性命精)을 길러야 된다.

우리가 내가 가진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사려면,

컴퓨터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내가 옷도 사고,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내 통장에 돈이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런 것처럼, 내가 가진 성명정(性命精)이 커져야지,

내가 살아가는 길이 환하고, 좋고, 행복하다.

그래서 내가 성명정(性命精)을 길러냈을 때,

성품(性品)이 커져 나갈 때, 그것을 마음이 착하다. 라고 하는 것이다.

왜? 내가 200만원을 갖고, 100만 원짜리를 사면 무리가 없다.

그러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착한 것이다.

내 마음이 착한 것이다.

성품(性品)이 큰데, 내 그 성품(性品) 안에서 마음을 쓰게 되면,

마음이 착하다. 마음에는 착하면 복(福)이 된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렇데 내 성품(性品)은 작은데, 마음은 더 써야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더 많다.

쉽게 말해서, 욕심(慾心)이라고 한다. 마음을 더 써야 된다.

이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서, 하려고 하는데,

내가 가진 것은 얼마 없어.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어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은 작은데, 성품(性品)은 작은데,

내 마음은 더 써야 되니까, 그것 때문에 마음이 어떻게 되는가?

악함으로 가게 된다.

내 성품(性品)의 한계를 넘어서면, 내 마음이 악해진다.

내가 성품(性品)으로 받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면, 내 마음이 그것만큼 악해진다.

그래서 악(惡)하면 재앙(災殃)이 된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내가 밑천을 가지고 있으면, 쉽게 살 수 있지만,

밑천이 없으면 어려워진다. 그것을 하려면 애를 먹게 된다.

그러면 내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하나는 내가 마음을 쓰는 그 욕심을 접든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접든지,

아니면 내가 가진 밑천을 늘이든지,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너희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받아주겠다. 그러시는 것이다.

너희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받아주는 대신에,

너희들이 가진 밑천을 늘여라. 성명정(性命精)을 키워라. 그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느님께 무엇을 약속하면서 태어났을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을 때는,

가진 밑천을 늘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분명히 하느님께 약속을 했을 것이다.

“가진 밑천을 늘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열심히 노력해서 밑천을 늘이겠습니다.

밑천을 늘여서 성명정(性命精)을 기르겠습니다.”

그랬으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무슨 얘긴지 이해가 되는가?

그래서 열심히 이 세상에서는 그 밑천을 늘여 나아가야 된다.

그래야지 우리의 삶이, 이번 생(生)이든, 다음 생(生)이든,

또, 영원히 이어지는 그 삶속에서, 행복한 삶을 나아갈 수가 있다.

밑천이 있어야 행복(幸福)하지, 밑천이 없는데 행복(幸福)할 수가 없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의 현실 속에서 펼쳐져서 자꾸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치 가상(假想)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시는 것처럼,

이 세상의 삶을 통해서, 돈이, 밑천이 있으면,

어려움이 없고, 밑천이 적으면, 어려움이 있고, 막 그렇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보아야 되느냐면,

그 돈에 매달려서 살면, 진짜 우리가 늘여야 되는 것을 늘일 수가 없다.

진짜 우리가 늘여야 될 것,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될 일은,

바로 진짜 밑천인 성명정(性命精)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명정(性命精)을 늘여 나아가야 된다.

성명정(性命精)을 길러 나아가야 된다.

그래서 성명정(性命精)이라는 돈을 충분히,

성명정(性命精)이라는 밑천을 내가 충분히 가진 다음에,

어떤 삶을 나에게 주신다 할지라도,

그 삶 속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성명정(性命精)이라는 내 밑천을 제대로 늘여 놓지 못하면,

어떤 삶을 나한테 주셔도, 나는 행복하기가 어렵다.

한계에 부딪치면, 그때마다 고통을 받게 돼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기회의 시간이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을 통해서, 성명정(性命精)을 길러서,

그것으로 영원한 행복(幸福)의 길로 나가라.

그래서 성명정(性命精)을 길러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영원한 쾌락의 길, 조영득쾌락(朝永得快樂),

영원한 쾌락의 길로 나가라. 그런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을 길러내어 나가는 길,

성명정(性命精)이 사실은 셋이 아니고 하나라 그랬다.

심기신(心氣身)도 셋이 아니라, 하나다.

그러면 성명정(性命精)을 길러 나가는 길은,

우리가 쉽게 생각했을 때,

심기신(心氣身)은 내가 사고 싶어 하는 100만 원짜리 컴퓨터이고,

성명정(性命精)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50만원이다.

그러면 이 50만원을 불리려면,

이 50만원을 키워서 100만원을 만들고,

200만원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안 쓰고 자꾸 저축하면 된다.

쓸 것을 아끼고, 자꾸 저축하면 된다. 어려운가? 안 어렵다.

그래서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 마음을 함부로 쓰지 말고,

기운(氣運)을 망령(妄靈)되게 쓰지 말고,

몸을 함부로 망령(妄靈)되게 쓰지 말고,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고, 자꾸 모아라. 쌓아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음을 참고 쌓아라. 기운(氣運)을 참고 쌓아라.

몸을 참고 쌓아라. 그런 말씀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래서 감정(感情)을 그치고, 감정(感情)은, 내가 내 마음을,

막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내 마음을 마음대로 쓰려면, 내 밑천이 있어야 되는데,

밑천도 없으면서, 막 마음대로 쓰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온갖 고통이 발생하게 돼 있다.

그러니 그렇게 하려면, 일단은 멈추고, 지나친 소비와 지출을 줄이고,

그리고 거기서 일의화행(一意化行) 자꾸 원도(願禱)해라.

참고 원도(願禱)해라. 그 말씀이다.

마음으로 참고 원도(願禱)하고, 기운(氣運)으로 참고 원도(願禱)하고,

몸으로 참고 원도(願禱)해라.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 일의화행(一意化行)이다.

자꾸 참고 원도(願禱)해라.

마음에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원도(願禱)해라.

마음에 어떤 일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가지고,

마음으로 자꾸 욕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싸우고 하면,

내가 마음을 쓰는 것인가? 안 쓰는 것인가?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성품(性品)의 밑천이 있어야 되는데,

성품(性品)의 밑천이 제대로 안 돼 있으면,

마음을 쓰면 쓸수록, 성품(性品)이 어떻게 되겠는가?

달아서 없어지는 것이다.

성품(性品)이 자꾸 쭈그러드는 것이다.

그런가? 안 그런가?

내 마음을 악하게 쓰고, 내 마음을 함부로 쓰면,

내 성품(性品)이 자꾸 찌그러든다.

마음 편한 것만 바라고, 기분 좋은 것만 바라고,

몸 편한 것만 자꾸 바라니까, 내 성명정(性命精)이 자꾸 쭈그러든다.

다시 말해서 내 통장에 돈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다.

벌지는 않고, 자꾸 소비만 하니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가 성명정(性命精)을 길러내는 것,

버는 길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아껴야 될 것이고, 두 번째는 쌓아야 된다.

무엇을 쌓아야 되는가?

착한 마음을 쌓아야 되고, 맑은 기운(氣運)을 쌓아야 되고,

후(厚)한 몸을 쌓아야 된다.

그렇지 않은가?

덕(德)을 자꾸 넓히고, 착한 마음을 가지려고 하고, 그래야지,

성품(性品)이 커진다.

그리고 기운을 맑게 가지고, 자꾸 도리(道理)를 지키려고 하고,

그리고 매사(每事)에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만나면 정성(精誠)을 들이려고 하고,

그렇게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을 해서,

내가 망령(妄靈)된 길이 아니라, 참된 길로 자꾸 나가려고 했을 때,

그것은 우리가 자꾸 벌어들이는 것이다.

우리 성명정(性命精)을 길러낼 수 있도록 자꾸 벌어들이는 것이다.

내 통장에 성명정(性命精)이 쌓이도록 자꾸 길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길러내고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

느낌을 그치고, 숨 쉼을 고루하고, 부딪침을 금(禁)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지출을 줄여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근본적인, 내 본질적인,

내 삶의 통장에 성명정(性命精)이 쌓이도록 하는 것이다.

성명정(性命精)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길러내는 것을 말씀하셨는가?

성명정(性命精)으로 최고 부자(富者)가 누구인가?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성명정(性命精) 최고 부자(富者)다.

그 하느님과 같은 수준의 성명정(性命精) 부자(富者)가 되라.

그런 말씀이다.

그것이 반진일신(返眞一神),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조영득쾌락(朝永得快樂), 

하느님의 천궁(天宮)에 조회(朝會)해서 영원한 쾌락을 얻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 세상에서 자꾸 그것을 이루어내려고 한다.

이 세상은 우리가 성명정(性命精)을 길러내는 곳이지,

이 성명정(性命精)을 이 세상에서, 써서 부려먹는 곳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배검께서는, 이 세상의 삶을 통해서,

단편적인 걸 보여주신다. 사람들은 자꾸 추구한다.
많은 재산을,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모아서,

평생 동안 근심걱정 없이 떵떵거리고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 나한테 수백억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십억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수십억 가지고도 안 된다.

수백억은 있어야, 그것으로 집도 사고, 평생 동안 은행에 돈 넣어놓고,

그것으로 평생 동안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면서 산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성명정(性命精)을 길러서,

성명정(性命精)의 밑천으로 그렇게 살면 문제가 안 되는데,

우리가 성명정(性命精)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재물(財物)을 가지고 그렇게 살려고 하면 문제가 된다.

어떤 문제가 되느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길러야 하는 성명정(性命精)을 기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이 딱 끝나고 나면, 허망(虛妄)하기 짝이 없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러니 이 세상의 삶이 무엇인지 바르게 깨닫고,

이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을 바르게 행하여 나가는,

이 세상의 삶의 가치를 발휘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이번 주(週) 말씀이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을 길러내기 위해 세 법(法)을 행하라.”

그러신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마치도록 하겠다.


한얼님 신()의 글자 뜻 ☞


[제()=제(帝)], [촉(燭)=촉(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