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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 가지 본성(5) 본문
인간의 세 가지 본성(5)
케네스 해긴/인터넷가정교회
제 5장 속 사람 안에 있는 성령님
이 인간의 세 가지 본질 중 하나님과 접촉하는 부분은 인간의 영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사람, 또는 사도들이 말했던 속 사람, 마음에 숨은 사람입니다.
영생을 받은 것은 사람의 영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새 몸을 갖게 될 것이지만 바로 지금부터 새 삶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났을 때, 영생은 그의 영, 즉 그의 속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본질입니다.
그것은 신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6).
예수님은 여기서 그분, 즉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가진 것과 같은 종류의 생명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복음 10장10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영 안에 들어 오시는 이 하나님의 생명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영을 재창조하고
우리를 새 피조물로 만드는 하나님의 본질이며 생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우리가 형제를 사람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4~15)
요한은 여기서 만약 사람이 영적 죽음을 통해 예전의 삶에서 영원하고 풍성한 새로운 생명으로 옮겨졌다면
그는 사랑으로 충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약 영생을 가졌다면, 그에게는 미움이 없을 것이고 그는 사랑을 가질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중재이며,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회개하므로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령의 증거를 마음 속에 갖게 될 것입니다.(롬8:16).
성령께서 우리가 거듭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성령을 받는 것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 후에 성령께서는 위로자, 돕는 자, 그리고 안내자로 우리 안에 살게 되실 것입니다.
최근에 한 여인이 내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사람이 구원 받으므로 성령을 가졌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녀는 결코 회심했을 때 그 이상의 성령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전에 말했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증거를 갖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그 이상의 것을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빌립은 사마리어로 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빌립이 전한 예수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식을 듣고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행8:14~16)
베드로만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듭나기를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고, 베드로가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벧전1:23)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새롭게 믿은 사람들에게 안수 했을 때, 저희가 성령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행8:17).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성령 받는 것이 구원 이후에 오는 경험임을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실 때, 그 분은 우리의 머리가 아닌, 우리의 심령(heart)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머리는 우리가 이런 경험을 체험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왜냐하면 머리는 우리의 혀를 지배해 왔고, 생각이 우리의 혀를 성령께 양보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성령의 되는 단 한가지 이유는 우리의 몸이 우리 영의 전 또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께서 우리는 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성령께서 우리 몸 안에 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스미스 위글스워스는 “나는 외면(on the outside)에서 보다 내면(on the inside)에서 천 배가 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2:4)
이 최초의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서 성경은 “저희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람은 이런 속 사람이고, 우리가 방언을 할 때는 심령(heart)으로부터, 영으로부터,
속 사람으로부터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성 기관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몸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도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14:14)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에 대해 제자들이 말씀하실 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다른 번역에서는 ‘그의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7~39)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그들의 가장 깊은 곳,
즉 그들의 영에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머리 또는 마음(혼:mind)속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심령(heart)에 계십니다.
“하지만 나는 그 분이 느껴지지 않아요. 아마도 그븐이 떠나셨나 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성령은 일단 한 번 오시면, 계속 계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몇 주 동안 머물러 계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이라고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왔다 가는 분이 아닙니다.
한 번 성령을 받기만 하면, 그분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계십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을 하면, 그 분이 나를 떠나지 않을 실까요?”
아닙니다. 그 분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당신을 도우려 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음행과 살인으로 죄를 지은 후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라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성령께서 다윗을 아직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혼:mind) 가운데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마음(혼:mind)과 직접 소통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 영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영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물론 우리의 영은 내부로부터 지적 작용에 영향을 줍니다.
예수께서 약속된 성령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말하신다고 했습니다(요16:13).
예수께서는 이미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24: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방언에 대한 애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바에 따라 방언으로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분이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어떻게 그렇게 하실까요?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서 말씀하시는데, 이는 그 곳이 그 분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은 성령으로부터 정보를 얻습니다. (중략)
만약 우리가 그 분께 더 민감하게 되는 것을 배운다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으며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룻밤만에 배우지 못할 것이고, 또한 그렇지 못했다고 실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루 학교에 가고는 이제 다 배웠다고 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계속 다니면서 계속 배우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배우는 과정 중에 실수 하지 않고 배울 수는 없습니다.
처음으로 운전하다가 보도 위로 타고 올라 갔다고 해서 운전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운전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8).
나를 성령 세례로 인도하는 것도 같은 내면의 음성이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이런 경험에 대한 설교를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잘못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는 귀를 닫았습니다.
마침내 성령께서 동일한 내면의 음성으로 내 영에게 “너는 왜 성경이 말하는 것을 보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 주제에 대한 말씀으로 나를 인도 하셨고, 그 때 나는 받아드렸습니다.
나는 성령께서 내 영에 주신 빛 가운데로 걸었고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시느니라”(잠20:27).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안내 하시고 지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영을 이용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내면의 증거(inward witness)를 통해 우리 영에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우리의 ‘영’ 역시 자신의 음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 인도(guidance), 직관(intuition)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서는 예감(hunch)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든 안 받았든, 그는 여전히 영적인 존재이고, 그 영 안의 일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면의음성은 우리 생각에 길잡이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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