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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 가지 본성(6)/케네스 해긴/인터넷가정교회
인간의 세 가지 본성(6)
케네스 해긴/인터넷가정교회
인간의 세 가지 본성(2부)
제1장.당신의 영을 개발하는 법(How to develop your spirit)
사람의 몸을 연구하는 과학에는 수백만 달러의 돈을 들였습니다.
이에 더하여 수백만 달러의 돈이 혼의 일부인 지적인 과정을 연구하는데 쓰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에 대해서는 우리는 너무나 아는 것이 없고, 노력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혼:mind)을 교육하고 개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도 교육하고 개발할 수 있습니다.
몸을 튼튼하게 하듯이 영도 훈련 받고 튼튼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는 자연적인 능력(마음)으로는 영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오직 심령(영:heart)으로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영에 계시를 받아야만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경을 이해하고, 영적인 것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영적인 것들을 튼튼히 세우는 것, 즉 영을 훈련하는 과정은 매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 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앞에서 우리는 “속 사람”이 진짜 사람, 진정한 당신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였습니다.
몸은 죽어도 속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
이 말씀은 개가 죽는 것과 같이 사람이 죽으면 그의 존재도 끝이라는 이론이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멸망함으로써 죽음이 모든 존재의 종말이라면 죽는 것은 확실히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사람이 죽으면 하늘의 구름처럼 어딘가에 떠돌아다닌다고 믿는
“영혼의 잠듦(soul sleep)”이란 이론도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죽음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죽은 뒤에 사람이 세상에 소나, 파리나, 말이나,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윤회설이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더 낮은 형태의 동물로 되돌아 오는 것도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이론들을 따라 빗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가야 합니다.
왜 바울은 자기가 죽는 것이 유익이 된다고 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여인 우리들에게는 물론 유익이 없지만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유익이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3~24).
바울이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한 이유는 그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생이란 것을 하늘나라에 가서 소유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생은 지금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가지신 생명과 같은 생명(God-kind of life)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우리의 영에 들어와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함으로써
우리의 본성을 바꾸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이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 안에 소유하게 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거듭날 때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영을
더 높은 단계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섬길 수 있도록 개발시킬 수 있습니다.
더 앞으로 나가기 전에 앞에서 배운 영, 혼, 몸으로 되어 있는 사람의 세 가지 본성에 대해서 복습을 합시다.
요약한다면 사람의 세 가지 본성은 이렇습니다.
영 – 영적인 영역을 다루는 사람의 한 부분.
혼 – 생각하는 것과 같이 지적인 능력, 즉 정신 영역을 다루는 사람의 부분.
몸 – 육체의 영역을 다루는 사람의 한 부분.
무엇보다도 먼저 이 셋을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23절에서 이렇게 구분하였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고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목숨)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영과 혼을 같은 것으로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만일 영과 혼이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과 혼을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몸과 다른 두 개를 구분하는 것이 영과 혼을 구분하는 것 보다 더 쉽습니다.
이들을 구분하기 위한 유일한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 무엇보다도 신약 성경입니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된 것을 번역한 것입니다.
한 단어가 열두 개의 다른 단어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예를들면 영, 바람, 태풍, 돌풍, 곰팡이, 호흡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이단 교파에서 출판한 책을 보았습니다.
책 표지에 사람이 죽으면 개처럼 죽는 것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니 그들의 주장은 구약은 동물의 혼에 관해 말하고 있으나
기독교는 영원히 사는 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설명이 필요한 말입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이 동물의 혼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동물도 어느 정도의 생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혼의 기능입니다.
동물도 감정을 표현 하는데 이것도 역시 혼의 기능입니다.
전도서 3장21절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 가고 짐승들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라고 했는데 여기서 혼은 동물의 호흡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영이 아니고 단순한 혼과 몸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물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입니다.
사람은 세 가지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이며, 혼을 가지고 있고, 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거짓 사교에서 나온 책들은 사람의 영과 호흡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일 이 말이 맞는다면 바울이 “내 심령으로(my spirit)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롬1:9)라고
말했을 때 바울은 “나의 호흡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이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14:14)라고 말할 때
그는 “나는 나의 호흡으로 기도하거니와”라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릉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히12:22,23).
만일 “영(spirit)이 “호흡(breath)”을 의미한다면 바울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호흡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호흡을 온전하게 하시려고 죽으셨다는 말이 됩니다.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두 단어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이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설교자들이 그 “혼(souls)”이 구원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구원 받은 것은 그 사람의 혼이 아니라 그 사람의 거듭난 영입니다.
야고보도 죄인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쓴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야고보는 반복해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약 1:21~25)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만일 그들의 혼(마음)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혼:mind)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바울은 야고보가 말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고,
야고보는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 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두 사도는 마음(mind), 즉 혼(soul)을 새롭게 하는 것, 회복 시키는 것, 구원하는 것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시편 23편에서도 봅니다. “내 혼(soul)을 소생시키시고”(3절),
여기서도 “내 영을 소생시키시고”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소생되었다는 것은 이미 있던 것이 다시 회복시킨다는 말입니다.
“소생시킨다”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새롭게 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와 똑 같은 단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회복시키다(restore)”라는 말과 “새롭게 하다(renew)”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가구의 부품을 회복시키거나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혼은 새롭게 하거나 회복 시킴으로써 구원 받게 됩니다.
야고보가 한 말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써 믿는 자가 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심령(heart)에 심어진 말씀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마음(mind) 즉 혼을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구원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말씀을 통해서 합니다.
마음(혼)을 새롭게 하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여러분의 영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한다 하드라도
여러분의 마음(혼)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지 않으면 (야고보의 표현을 따르면 혼이 구원 받지 않으면) 몸과 육체의 감각으로 교육을 받아온 마음(혼)은
여러분이 어린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아 있도록 몸을 편들게 됩니다.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적이며, 몸이 다스리는 그리스도 인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육신적이다…”(고전 3:3)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절을 어떤 번역본은 “너희는 몸이 지배하는 사람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몸은 새롭게 되지 않은 마음(혼)을 통하여 그들의 영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발전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 인들이 영적인 어린 아이로서 살다가 죽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항상 막연합니다.
그들은 믿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보는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지 않고는 그리스도 인으로 온전하게 살 수 없습니다.
육신으로 사는 사람은 불신앙 속에 살며 항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삶은 전쟁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된 적이 없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전쟁을 승리하셨다는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마귀는 실패한 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마귀와 싸우려고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탈진하여 대항할 힘이 없을 때까지 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혼)을 새롭게 하면 새롭게 된 마음(혼)을 통하여
그의 영이 몸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혼)은 이제 영의 편을 들게 될 것입니다.
혼은 말씀으로 새롭게 됩니다. 새롭게 된 혼은 영이 다스리도록 허락할 것입니다.
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영을 통하여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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