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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 가지 본성(4) 본문
인간의 세 가지 본성(4)/케네스 해긴/인터넷가정교회
인간의 세 가지 본성(4)
케네스 해긴/인터넷가정교회
제 4장 인간의 세 번째 차원 – 몸
몸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살펴 봅시다.
말했던 대로, 사람의 영은 속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는 부분입니다.
몸은 겉 사람이고 물질적이며, 우리가 사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이 글은 바울이 죄인들을 향하여 썼던 글이 아닙니다.
그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쓴 것인데, 이는 “…형제들에게”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편지에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롬1:7)라고 썼습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그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당신 자신을 드리라고 말한 것이 아님을 또한 주목하십시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신은 이미 그 분께 속한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이미 속한 것을 그 사람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하나님께 속한 어떤 것을 그분께 다시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분의 것입니다.
바울은 “…너의(속 사람) 몸을(이 땅에 사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리가 그 집의 관리자입니다.
우리 자신은 우리의 몸을 “산 제사,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즉 온전한 예배”로 드려야 합니다.
저는 “영의 예배”라는 다른 번역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몸으로 행하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어쨌든 아무리 해도 이 늙은 몸이
천국에 가지는 않을 것이니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의 몸으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분은 성화된 몸을 원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산제사….온전한 예배”로 드리길 원하십니다.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했습니다.
많은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보다 나은 행동을 원하며, 의롭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저는 한 번도 의롭게 살려고 애쓴 적이 없습니다.
저는 거듭났고, 그 때 이후로 저는 계속 의롭습니다.
의롭게 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차고에 앉아 있는다고 자동차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로,
주일 아침 당신의 교회에 앉아 있는다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도 없습니다.
오직 거듭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선해지려고 애쓰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단지 종교일 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영생의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며 생명인 영생이 당신의 영에 주어 졌을 때 그것은 당신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의 심령(heart)에 들어 온 이 하나님의 생명은 이러한 속 사람(진정한 인간)을 새 사람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해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듭났고 새 본성을 가진 새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이전 것(우리의 옛 죄의 성질)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 인간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옛 자아를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 났을 때, 옛 자아는 이미 죽었고 그 대신 새 자아를 가졌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육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육신의 옛 자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육신은 구원 받기 전과 같은 몸, 같은 육신입니다.
그러나 속 사람(예 사람, 옛 자아였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 새 자아로 변화 됩니다.
이 속 사람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된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몸은 새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새몸을 가질 것입니다.
지금 현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무언가 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곧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조절하고 몸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육신적인 그리스도 인이 되거나 금욕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바울이 고린도 전서 9장27절에서 말한 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 까 두려워 함이로다”
여기서 바울은 또 다시 우리가 몸에 대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속 사람입니다.
만약 몸이 진정한 당신이라면 바울은 “내가 내 자신을 쳐 복종하게…”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나”는 진정한 사람, 속 사람, 마음에 숨은 사람, 영원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무엇에 몸을 복종시킵니까?”
속 사람에게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몸을 지배합니다.
속 사람이 몸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몸이 그들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아기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게 합니다.
이것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이 편지 앞 부분에서, 바울은 그들이 여전히 아기 그리스도인인 것을 훈계했습니다.
그 때 그는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고전 3:3)라고 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여기서 “육신에 속한”이라고 한 번역이, “몸이 지배하는 “으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몸이 지배하는 그리스도 인입니다.
그들은 몸이 그들을 지배하게 합니다.
바울은 “너희들이 사람을 따라 행한다”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사는 초자연적으로 변화된 사람 대신
이전 그대로의 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이 계속 우리를 지배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몸은 해오던 대로 계속하기를 원 할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는 우리 몸을 우리의 통제하에 두고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속 사람이 몸을 지배하고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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