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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60사 -(응 6과 소) 小(소)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360사 -(응 6과 소) 小(소)

柏道 2019. 4. 20. 16:34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72  
 
하나 하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
엇그제 같은데 이제 하나 하나 문을
닫으며 마무리 단계로 들어간다.
얼마 전에 8강령 중에 마지막 강령으로
들어갔고, 8강령 '응함'의 6 열매 중
이제 마지막 '작음'의 주제로 들어간다.
앞으로 7개의 교훈만 더 풀이하면
366사 공부가 마무리 된다.
그렇게 시작과 끝의 간격이 점점 좁아
지고 있는데 1사와 366사의 거리가
그렇게 멀어 보였어도, 한걸음 한걸음
걷는 중에 어느새 목표지점이 눈 앞에
보이는 감격을 맛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요, 은혜이며, 감격이다.
며칠 전 당시의 경험을 회상하며 wix
블로그(www.greenlanevillage.org)에
다시 산티아고 순례기를 약 215개의
스토리로 나누어 올리는 일을 시작 
하였는데 그 일도 오늘, 내일 마무리
될 것 같다. 차근차근 당시를 되새겨보니
감회가 새롭고, 감사와 감격이 넘친다.
참전 계경 풀이를 시작하고 약 1/5정도
지점(75사)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게 되었고, 약 40일간의 산티아고와
파리 순례를 마친 후 다시 시작하여
마침내 오늘 그 마무리를 하는 자리에
이른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몸과 마음의 인내력을 키우도록 하여
참전계경 풀이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특별히 배려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가만 보니 오늘이 양력으로 1월 27일,
음력으로 2016년 마지막 날이다.
일부러 이렇게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닌데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것을 보니 이 또한
신기하다. 
마지막 '작음'에 대한 교훈을 연구함으로
참전계경 풀이 대미를 장식해 보려한다. 
 
第 360事 應 6果 小
(응 6과 소) 小(소) 
 
雖善以其小不爲
(소선이기소불위)하고
雖惡以其不大爲之
(수악이기불대위지)는
此亦應之小者(차역응지소자)라
可不戒哉(가불계재)아 
 
비록 선한 일이라 해도
작다고 하여 행하지 않고
비록 악한 일이라 해도
크지 않다고 하여 행하는 것은
이 또한 하늘의 응함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으리요 
 
자아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그 어리석은 욕심을 포장하기
위하여 '큰 선행, 큰 도움'을 위해서는
높아지고, 유명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세운다.
최근 30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교회 건물을 세우면서 이런 논리를
내세우는 것을 보았다.
'크고 많아야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맞고 외형적으로는
그런 양상을 띠게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하는 일의 규모도
크고 하니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많이
모이며, 무슨 일을 크게 한다는 것인가?
허영과 욕심으로 가득찬 자들이 아무리
많이 모인들 무슨 거기서 좋은 일이 일어
나겠으며,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선행과
드러나는 사업으로 가득찬 일들에
힘쓰면서 어떻게 거기서 생명의 역사와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이미 내부싸움으로 망신창이가 되어 된
상태이고, 본이 되고 이끌어야 할 사회에
도리어 비난과 지탄,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으니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가?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영적인 일은 세상법
위에 있다'는 상식에도 맞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보수적이고 건전한 교회로 교계와
세상의 자랑거리였던 교회가 불과 몇년
만에 이렇게 비참하게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너져야 어리석음이 폭로되고,
그나마 새롭게 될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속히 그 교회가 무너지기를 소망하고,
무너짐을 축하한다. 그래야 그들이나
우리나, 사회와 국가 모두가 소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대 변혁의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으로 슬퍼하면서도 소망의 얼굴을
들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일들이 모두
살리기 위한 특별한 하늘의 섭리속에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아예 망해 없어
지려고 하면 이런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
나지 않고 소리 소문없이 조용히 없어진다.
더 놀랍게 여겨지는 것은 올해가 바로
종교개혁 500년을 맞이하는 해라는
사실이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참된 개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씀하고 있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예레미야 1:10)
500년 전 종교개혁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개혁의 후예라고 하는 자들이
이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말씀대로 뽑고 파괴하며 파멸과 무너
뜨림이 먼저 시행될 것임을 왜 모를까?
큰 일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교만과 어리석음의 자아가 하는 짓이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지극히 작은 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한 일이 주님에게
한 일이라 말하고 있고,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고 말씀한다. 사실 제대로 진리에 서있게
되면 큰 일, 작은 일이 따로 없고,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선이라면 가장 작은 일이라도 힘쓰고,
악이라면 가장 작은 악이라도 미워한다.
오늘 교훈처럼 선이 작다고 행하지 않고,
악이 작다고 겁없이 행하는 태도는
이미 하늘의 뜻에 이탈한 모습이다.
거짓으로 학위를 받아도 상관없고, 
규모와 수만 크게 하면 성공한 것으로
여기며, 외모와 말을 번지르하게 한다고
그것에 끌려 세웠으니 어디 하나 진리와
맞는 것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사
정치와 경제, 종교 등 전반에 걸쳐 강력한
심판을 시행하시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
슬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큰 감사와 소망이
솟구친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감사한 것은 그러한
무리 속에 들지 않고 그래도 늘 진리의
말씀과 더불어 은혜와 감격속에 지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렇게 천부경, 삼일신고, 그리고 
이 참전계경을 자세히 연구하고 풀이할
수 있는 기회와 특권을 받은 것을 생각
하면 그렇게 행복하고 감사할 수 없다.
바울처럼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내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사도행전 2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