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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45사 -(응 4과 영) 盈(영) -'혈구지도(絜矩之道)'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345사 -(응 4과 영) 盈(영) -'혈구지도(絜矩之道)'

柏道 2019. 4. 20. 15:47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57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뒷사람에게 힘을 가하지 말고,
뒷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왼쪽 사람을 사귀지 말고,
왼쪽 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처럼
오른쪽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혈구지도(絜矩之道)'라 한다'
혈구(絜矩)란 '헤아릴 혈(絜)'에
'네모 자 구(矩)'를 써서 '네모난 자로
재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악한 행동을
보고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
그러한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345사의
가르침에 바로 이 '혈구지도'가 나오기
때문에 미리 공부를 해 두기 위해서다.
나도 오늘 처음 알게 된 말이다.
그러니까 알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 가면서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의 내용은 황금율과
맥이 통한다.
황금율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여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지만, '대학'에서는 '남에게서
받은 좋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말라'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말한 것만 다를 뿐
본질적 의미는 같은 것이다.
이 말을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해도 좋고, '내가 싫으면 남도
싫다' '남이 하는 것이 내게 좋아보이지
않으면 그 일을 나 자신에게도 하지말라'
는 등 다양한 표현으로 바꾸어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일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고 평가해 줄 바른 권위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어리석고 교만하여
그러한 권위를 거부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게 되면 그의 삶은
고삐 풀린 소가 되고 길 잃은 양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결코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고 권위를 곁에 두는데
바로 그 권위가 '경전'이다.
양심의 소리나, 어떤 신비체험은 자칫
자기 주관과 감정에 따라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옳을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자기 생각
따라 합리화와 왜곡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객관적인 권위를
가져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성경과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경전이다. 그렇다고 성경만이 진리다며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자기 주관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조심
해야 한다.
한 번 위의 지혜를 그대로 적용해 보자.
남들이 만약 자기 종교의 경전만이
진리라고 한다면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남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좋아서 나의 삶을 이끄는 권위로
성경을 존중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지나쳐서 남들을
비난하고 다른 종교를 비난하면서 자기와
자기 종교를 주장한다면 꼭 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성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런 식의
편가름에 현혹되지 않는다. 누가 읽고
들어도 선하고 지혜로운 말씀으로 여겨
지는 경전이라면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결국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경전이 존중받게 하는 지혜가 된다.
 
第 345事 應 4果 盈
(응 4과 영) 盈(영) 
 
戒盈者哲(계영자철)이요
否者爲衆(부자위중)이라
去惡莫怠(거악막태)하고
守善不遷(수선불천)하면
是爲戒盈(시위계영)이요
絜矩以安(혈구이안)이니라 
 
가득참을 경계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
그렇지 못한 이는 어리석은 자라
악을 제거함에 게으르지 않고
선을 지키는 일에서 떠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가득참을 경계함이니
자신을 살핌으로 편안하느니라 
 
노아 홍수의 심판은 사람의 죄가 땅에
가득참으로 인해 발생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
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창세기 6:5-7)
개인도 악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반드시
심판이 임하게 되어 있고, 나라도 그러하며
세상도 그러하다.
욕심이든, 악이든, 무지든, 교만이든,
게으름이든, 시기든, 분노든...
어떤 종류든지 자신의 몸과 마음에 그런
악을 가득 채우게 되면 곧바로 심판이
임하게 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어떤 종류든 그 악에
자신이 매이는 것을 경계한다.
악에 매인다는 말은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에
악한 생각으로 가득차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악으로 가득차면 쌓은 악에서
악이 입으로 나오고 행동으로 표출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초대교회에서
대단한 결단과 헌신을 하여 밭을 팔아
하나님의 교회에 바칠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순간 미혹을 받아
땅 판 돈을 감추고 일부만 내려고 하다가
그 자리에서 심판을 받아 죽었다.
그들의 문제는 단순한 거짓이나 속임의
문제가 아니었다. 베드로는 그들의
중심을 꿰뚫어보고 심판이 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선언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사도행전 5:3)
그들은 단순한 욕심과 실수가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성령을 거부하고 사단을
마음에 끌어들여 자기 속을 가득차게
해 버렸다.
그러니 어찌 심판이 임하지 않겠으며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겠는가?
베드로는 또 한번 이러한 심판을
선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성령의
은사를 돈으로 주고 사려고 한 마술사
시몬에 대해서다.
그에게도 베드로는 중심을 꿰뚫어보고
심판을 선언한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사도행전 8:23)
그는 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도 그는 두려워하며 용서를 구했고
돌이키는 태도를 보였는데 진정 회개를
하였는지 그 이후의 기록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전설과 역사 기록에  의하면 결국
이 마술사 시몬, 즉 시몬 마구스는 모든
이단의 교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악의 가득참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물질로 어떤 공간을 채우는 것은 시간과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그러나 마음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악으로 가득차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사용
되지 않는다. 한 순간 어느 한계를 넘으면
악마화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따라서 항상 그 근원을 제거하기 힘쓰고,
발화할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에 냉각수가 항상 공급되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진리와 선이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느새 악이 관영하여 큰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다시한번 '혈구지도'의 지혜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
악에 사로잡히고, 악이 가득하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 누구도 이러한 일에 대해 자신할 만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경전의
말씀을 늘 품고 묵상하여 악의 근거를
제거하고, 항상 선과 덕을 행하기에
힘씀으로 악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