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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342사 -無厄(무액)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342사 -無厄(무액)

柏道 2019. 4. 20. 15:24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54  
 
자기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겸손한 자는 항상 여지를 남겨두고 진지하게 진리의 말씀을 대한다.
반야심경을 보면 '度一切苦厄' (도일체고액)이라고 하여 모든 괴로움과 액을 벗어난 경지를 말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성경에서도 이 경지를 말한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에베소서 2:6)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 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린도후서 6:9-10)
이러한 말들은 어떤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 괴로움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비록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의미를 알게 되면 이이상 벌이나 저주, 고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수고를 고통 으로 여기며, 승리를 위한 훈련과정을
벌로 여기고 포기하겠는가? 의미를 알지 못하고 당하니 괴롭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무지하니 그저 피하려고 몸부림을 칠 뿐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쓴 것도 약이요, 고난도
축복임을 알아 감사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게 된다. 예수의 십자가는 가장 대표적인
증거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그런데 여전히 어린아이의 의식에 머물게 되면 눈에 보이는 좋은 것과, 감각에 즐거운
것만을 좋게 보고 구하게 되니 이미 그속에 괴로움이 들어 있다. 
 
第 342事 應 3果 淡 3形
(응 3과 담 3형) 無厄(무액) 
 
患難已消故無患難
(환난이소고무환난)이요
困辱已空故無困辱
(곤욕이공고무곤욕)이며
厄會已盡故無厄會
(액회이진고무액회)니라 
 
'환란이 이미 사라진고로
더 이상 환난이 없고
곤욕이 이미 없어졌기에
이 이상 곤욕을 당하지 않으며
액운이 이미 다했기에
이 이상 만날 액이 없느니라' 
 
환난도 사라지고, 곤욕도 없어지며, 액운이 다했다는 말을 해석할 때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의식과 그 의식의 수준이다.
만일 자신의 수준이 얕고 어리며, 의식이 감각적, 물질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이러한 말씀이 이해도 될 수 없고, 풀이도 못하게 된다.
겨우 풀이를 해 봐야 '천국에서 성취되는 일'이라고 밖에 설명을 못한다. 그렇게
가르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입하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그런 가르침을 베푸는 사람이나, 그러한 가르침을 듣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나 수준이 같음을 드러낸다.
아직 종교가 이러한 해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큰 비극이다.
더 큰 비극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서 이런 복을 누리고자 하는 자들은
오히려 자격미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고 소원하는데 정작 그런 천국은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에 그런 천국이 존재하고 그런 천국을 운영하는 신이라면 허접한 귀신이거나
사기꾼 신이기 쉽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를 아는 아이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이런
종교의 가르침에 현혹되어 말 몇마디, 돈 몇푼, 봉사 몇 번으로 들어갈 기대를 하고
있으니 누가 보아도 딱한 모습인데 정작 자신들은 잘 모른다.
잘 살펴보라. 이런 천국을 말하는 자들의 삶을... 그들은 하나같이 약하고, 비겁하며,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하다. 아니라고?
그들은 이런 지적을 들으면 발끈 화를 내고 싸우려고 들 것이다. 바로 그것이 속일 수
없는 증거이다.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면 오히려 대어 들고 화를 내는 자들이 어리석음에 빠진 증거인줄 자기만 모른다. 지혜롭고 겸손하며 신중한 자는 항상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대해 점검
할 줄 알고, 진리의 깨우침이 오면 속히 자기 생각을 버릴 줄 안다.
어디서 주워 들은 교리 몇마디를 가지고 오래 붙들고 있었다고 마치 자신이 깨닫고
체험한 것처럼 떠들고 다니면 그것은 거짓말로 자신과 남을 속이는 자이다.
좋은 천국을 많이 말한다고 천국을 잘알고, 자신은 그런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다는
증거는 결코 아니다.
위와 같은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이 하는지를 들어보면 금방 증명이 된다.
이 가르침은 천국이라는 다른 세계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마음의 세계를
말한다. 그러니까 내 의식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환란으로 생각하는 것을 더이상 환란으로 여기지 않으니 환란이 사라진다.
모든 것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요, 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데
어떻게 우리에게 부정적인 괴로움과 고통을 주시겠는가?
몰라서, 그리고 두려움과 욕심 때문에 이를 알지 못했을 뿐이지 깨닫고 나면 우리의
삶 전체가 축복과 영광이요,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훈련과 연단이 되어 다 감사한
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해석이 되고 풀이가 되며, 삶에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물론 안다고 말처럼 쉽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진리를 바꿀 수는 없다.
더 깊이 깨닫고, 더 분명하게 알며, 더 뜨겁게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이 이치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죽어서 천국으로 피하려고 하는 자는 무지와 어리석음, 욕심에 매인 증거일 뿐 절대로 자랑할 자들이 못된다.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심을 확신하는 자는 다른데서 천국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천국을 만들어 가는 자들이 된다. 고수들은 악한 세상일수록 그 안에서 천국을 누리고, 천국을 확장하며 그 빛과 영광을 드러낸다. 예수가 왜 제일 못된 유대인들에게 왔으며, 가장 악한 세대에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는 최악의 세상에서 최상의 천국으로 바꾸고자 한 것이었고, 그것을 성취한 것이다. 예수를 제대로 알고 믿으며, 그를 따르게 되면 같은 의식으로 바뀌고 같은 삶을 살고자 하게 되어 있다. 부디 죽어서 천국에 가려는 생각일랑 버리고, 지금 자기 속과 주위를 천국으로 만들라. 예수가 계신 곳이 천국이며, 성령이 거하는 곳이 하늘나라인데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가? 더 나쁜 것은 자기도 모르고 보지 못한 세계를 남들에게 전하고, 헛된 소망을 품게 하는 행위이다.
무지와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위는 아무리 아름답고 고상한 말로 치장해도 헛되고 악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
예수가 한 말씀을 예수를 믿는다는 자들이 부정하고 있는 안타까운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곧 그들의 정체가 밝혀지고 진정한 천국복음이 세상에 전파될 날이
멀지 않았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고 강력한 힘으로 그 생명력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