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38사 -世章(세장) -意識의 準備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50
'학문의 즐거움'을 맛보며 사는 인생이 제대로 된 삶이다.
어려서는 학문의 즐거움을 알기 어렵다. 일단 기초를 닦는 일이 매우 지루하고
힘겹기 때문에 오랜시간을 억지로라도 붙들어 매어 놓아야 된다.
그래서 아직 자아가 강해지기 전, 어릴때 반강제로 공부를 시키는 것이 온 세상에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인생은 답답해 진다.
단순히 공부를 잘 못해서 진학을 못하고, 좋은 직업을 못가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물론 먹고사는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다.
어려서 공부에 등한히 하면 진로가 험해지고 인생이 고달파지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물론 공부를 잘한다고 잘사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돈 버는 것과 공부하는 것, 출세하는 것과 공부가 직접 연관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여러가지 증거를 들고 싶을 것이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많은 청소년들의 가슴을 울릴 때가
있었는데 그렇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밀려나지 않기 위해 억지로 공부를
시키고, 무리하게 공부에 부담을 주게 되면 오히려 그 인생이 굽어지기 쉽고
불행해지기 쉽다. 특히 이렇게 무리하게 공부를 시키는 것이 해로운 이유는 그렇게 해서는
'학문의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얻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압적인 입시제도와 경쟁으로 인해 공부하는 것이 싫증이 날 뿐 아니라
혐오까지 하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인생의 대부분이 '배우는
즐거움' '깨우치는 기쁨'에 있기 때문에 학문의 즐거움을 막게 되면 인생 행복의
문이 닫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깨우침은 학문과 깊은 연관이 있다.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깨우칠 확률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혹자는
예수의 제자들이 무식한 자들이라고 폄하하는데 크게 오해한 것이다.
성경에 그들이 쓴 서신서들을 보라. 물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혜를 얻어
그런 멋진 글을 썼다고 할지 모르나 성령이 받아쓰기를 시킨 것이 아님을
알면 그들은 한결같이 지적인 훈련이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비판하는 지식은 쓸데없는 변론과 다툼만 일으키는 철학적 궤변과
부질없은 사상 따위를 말한다. 영혼없는 지식, 깨달음 없는 알음알이가 천한지식
이요, 헛된 정보이다.
12명의 제자들은 예수의 어려운 하늘나라 말씀을 듣고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까지 내게 공부는 싫고 무의미한 일이었다. 창피해서 낙제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학까지 마쳤다. 그러다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비로소
학문의 파워와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공부하고 배우는 재미로 산다.
특히 가르치는 것은 공부에 대한 자극을 주는 것이기에 가르침에도 힘쓰고 있고,
요즘은 글을 쓰는 일이 주 업무가 되고 있다. 아이들이 '아빠는 요즘 뭐해?'하면
'응, 글쓰고 있어'라고 답을 한다.
목회의 본질이 가르침에 있다면, 내가 배우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깨우친 것을
나누기를 힘쓰지 않으면서 목회를 제대로 하겠다는 자체가 엉터리다.
그래서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이 최고의 공부요, 또 공부에 큰 재미를 붙이는
비결임을 알고 주위 사람들에게 열심히 글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배우기를 싫어하고 공부를 꺼리는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第 338事 應 2果 重 7形
(응 2과 중 7형) 世章(세장)
世修學業(세수학업)하여
翰墨相接(한묵상접)하고
淸安得祿(청안득록)하여
優雅自居(우아자거)하며
不與塵聒(불여진괄)하여
物外逍遙(물외소요)니라
열심히 학문을 닦아
문필에 통달하고
청렴하게 복록을 얻어
우아하게 살아가며
속세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물욕에 매이지 않고
고요하게 지내느니라
학문이 힘겨운 일이고 재미없는 일이라면 이 '크고 중한 복'의 주제에 이런 글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세에, 혹은 대대로 학문을 직업으로 삼아 문필에 통달하게 되는 것이 엄청난 축복 속에 들어간다. 아예 글과 먹이 서로 접할 정도로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예로부터 모든 직업 위에 뛰어난 것이 '학문'이었다. 물론 이 학문은 세속적 처세술이나 기능을 가르치는 그런류가 아니라 하늘의 이치를 가르치는, 즉 종교적 영적인 경전공부였다. 그리고
경전으로부터 시와 문학, 지혜와 도리 등이 다 나와서 인간에게 특별한 기쁨과 영광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대학은 진리 탐구의 장으로 하나같이 '철학(신학)'이 최고의 자리를 잡았고, 그 다음에 문학과 법학, 농학, 의학, 공학, 상학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물질문명에 빠져 이 순서가 완전히 뒤집어졌는데 세상도 그 꼴이 나 버렸다. 물론 이렇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면 최고의 학문인 철학(신학)이 그 생명성을 잃음으로 인해 학문 전반을 약화시킨 책임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알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다행히도 오늘날 각 대학과 사회에서 다시금 인문학과 철학 등 인간의 도리와 인성을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급격하게 질서를 다시 잡아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학문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기 이전에 개인의 문제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생존의 필수적인 떡까지도 멀리할 수 있어야 진정한 생명을 얻고 누릴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후문제를 많이 걱정하는데 분명한 것은 환경적인 문제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좋은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으면 노후대책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떤 이유로 노인들과 많이 접하면서 그들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내가 확인한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의식'의 문제였다.
'의식주'가 아니라 '의식'이다.
물론 생존의 필수적인 '의식주'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그보다 더 불안하고 비참할 수 없다.
하지만 의식주를 완전히 해결해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늙고 병이들게 되면 먹고 마시는 문제는 기본적인 요소가 되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결국 걷고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 에서 자신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의식'뿐이다. 대개 나이가 들면 의식이 흐려진다고 하여 이에 대해서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경향이 강한데 그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의식 훈련은 다른 말로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방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뇌는 여전히 미스테리요, 무한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만일 학문의 즐거움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부에 힘써 일찌기 영적세계까지 들고
나오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는 노후와 죽음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후와 죽음이 그렇게 불안한 이유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바로 이러한 '공부'를 등한히 한 때문이다.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우주와 영혼에 대해,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묵상하는 자는 늙어감도 잊고, 심지어 죽는 것도 초월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훈련기간이 짧지 않다는 것이고, 또 부단하게 힘쓰지 않으면 어느새 쇠하고
만다는 것이다.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지금부터 노후준비를 해야 하는데,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것이 바로 '意識의 準備'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출처] 참전계경 제338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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