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35사 - 賢裔(현예)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47
위대한 사람이 되면 역사도 뒤돌아
가서 출생부터 영광을 입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出生'이라 하지만
위대한 인물은 '誕生'(탄생)이 되고,
심지어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되어
'誕降'(탄강)이 된다.
그래서 예수나 석가모니, 공자 등은
탄생, 탄강, 신현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위대함을 기린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고
위대하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이 하늘이요, 하나님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특히 예수의 경우는 '하나님의
아들'에서 '하나님'으로 영광을
받는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본래 하나님
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
하면서 그를 높이는데 성경의
기록에 근거해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기초 교육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으나 자꾸
그런 교리를 사람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성경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기원론적
입장'만이 아니라 반드시 '증거론적
입장'을 함께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모두가 예수의 신적기원을
말하면서 단지 이론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예수의 말씀과 삶을 통해 그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증명해야
설득력이 있지 이론만 가지고 설명하면
잘 납득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예수의 하나님 아들됨과 하나님 됨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의 십자가이다.
진짜 능력있는 하나님, 최고의 하나님은
높은 자리에서 영광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 존재는 껍데기만 하나님이요,
힘만 센 존재일 뿐이다. 진정 지혜와 능력,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자기 자리를 내어
놓고 낮은데로 내려올 수 있고, 가장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며, 심지어 죽음과 스올의
뱃속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거기서 삼키우고 끝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만 다시 거기서부터
오르기 시작하여 원래 자신의 자리까지
되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가 단순히
자기증명을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인간을 위해, 특히
타락하여 심판을 받아야 할 몹쓸
인간을 위해 대신하여 희생하는 사랑을
보일 때 비로소 참 신이되고, 전능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일을 예수가 했다.
그래서 그가 최고의 신으로 인정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그를 믿고 사랑한다는 예수의
제자들은 어떠해야 할까? 답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第 335事 應 2果 重 4形
(응 2과 중 4형) 賢裔(현예)
賢裔誕降(현예탄강)하여
復興寒門(부흥한문)하고
貴以顯名(귀이현명)하며
富以著世(부이저세)하니
六親和樂(육친화락)하고
族戚感恩(족척감은)이니라
지혜로운 후손이 태어나
기울어진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찬란한 이름으로 귀함을 삼고
세상에 드러남으로 부를 삼으니
부모와 형제들이 화목함과
즐거움을 누리고
친족과 외척이 은혜를 입고
감사하게 되느니라
정말 놀랍다.
정확하게 예수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성경과 한번 비교해 보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
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이사야 11:1-5)
또 한구절 더 보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예수 한 사람을 통하여 이러한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며, 끝이 나서도
안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예수의 사역이
퇴색되며 욕을 먹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예수의 공로만 취할줄
알았지 그가 하신 말씀과 삶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거의 대가 끊어지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예수의 사역은 살아있는 생명의 사역이요,
끊어질 수 없는 영원한 사역이다. 오늘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여 예수의 사역을 이어
가도록 일깨우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스스로 영광을 회복하고,
대대로 그 영광과 행복이 확산되도록
계획되었던 것이다.
진정 예수를 믿고, 그의 영이 자기 안에
거하심을 믿는 자에게서는 이와 같은
'이음'과 '계승'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예수를 통해 혜택만 받으려는 그런
얍삽한 무리들은 오히려 부끄러움에
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자신을 돌아보고 가정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과연 내가 '탄생' 혹은 '탄강'한 자로
불릴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내 집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이 그런 존귀를
받을만한 자질과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하고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면 누누히 말한 것처럼 지금 당장
삶의 태도와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
진리와 선, 덕에 힘을 씀으로 악한고리를
끊고 예수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길은 한마디로 '십자가'이다.
고생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진 것은 자신이 바로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십자가로
자신을 증명한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도 진정 예수의 형제요, 제자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자라면 다른
것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지는 십자가의 길..
그것 만이 자신을 참되게 증거하고,
가족과 세상을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할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선이 바로 사랑의 희생
아니던가? 그리고 가장 큰 덕은 남을 위한
수고를 통해 나타나지 않던가?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평할 때 과연 '탄생'
이란 말을 주저없이 쓸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자신 없으면 지금부터 선과 덕에 힘쓰면
된다. 내가 너무 늦었다면 내 자신과 후손
중에서라도 나오게 해야 한다.
[출처] 참전계경 제335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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