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37사 -吉慶(길경)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49
하늘의 이치와 그 흐름은 그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고, 절대로 인간이 바꿀 수 없다.
솔로몬은 이 점을 명확하게 했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라'(전도서 8:17)
그의 판단에 의하면 아무리 노력하고 도를 닦아도 하늘의 이치와 경륜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말이 모든 지혜와 노력을 좌절시키고자 함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로 도전하여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아무리 지혜가 대단하였어도 그의 때는 진리가 온전히 열리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그의 결론을 최종결론으로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그가 깨달은 것보다 훨씬 높고 깊은 지혜를 가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충고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아무리 복음과 진리의 계시가 밝아져도 여전히 우리는 더 높고,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끝이 없는 도전같고 답 없는 질문 같지만 오히려 그것이 축복인 까닭은 그것이 바로 영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두움 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밝음에서 더 밝음으로 나아가는 삶이기 때문에 은혜 위의 은혜가 되는 것이다. 답이 없으면 어떤가? 솔로몬이 심히 고민하고 허무해 하는 중에도 그의 지혜는 빛이 났는데 우리도 그의 충고를 따르면 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답이 없는 것이 답이고, 없는 답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더 좋은 답이다.
第 337事 應 2果 重 6形
(응 2과 중 6형) 吉慶(길경)
凶事去吉事生(흉사거길사생)하니
不求不挽(불구불만)이라도
慶事時至(경사시지)하고
子女滿堂(자녀만당)하며
終身喜悅(종신희열)이니라
흉한 일은 물러나고
좋은 일이 생기며
구하지 않고 끌어 당기지 않아도
경사스러운 일들이
제 때에 일어나며
자녀들이 온 집안에 가득하고
일평생 기쁨이 넘치느니라
선과 덕을 쌓고 쌓으면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흉한 일은 물러가고 길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봄에 싹이 나듯이 풍성하게 피어난다.
실제로 구하지도 않았는데 경사가 생기고,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좋은 일이 계속 머물고 또 증가한다. 자자손손 집안에 가득하여 웃음꽃이 피어나며 죽을 때까지 기쁨이 넘쳐 영광스러운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too good to be true'
너무 좋은 말만하는 것 같아서 의아할 것이다. 과연 어느 인생이 이러하며, 누가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이런 일은 꿈에서나 가능하며, 천국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라고 결론을 지어버린다. 그러면서 이런 일들의 반이라도, 아니 반의 반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를 부정하면 미련하거나 허풍장이가 됨을 잘 안다. 그렇지만 생각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우리 생각에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이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꿈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너무 쉽게 불을 끄지 말자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꺼지는 빛이야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마는 미리 끌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공연히 기대했다가 안되면 실망이 더 크니 차라리 기대를 안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우리가 진리를 우리의 의식의 감옥에 가두는
꼴이 되고 마니 그러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말씀을 대하면 이미 어두워진 마음이라도 밝게 하여 믿음과 소망을 일깨우는 것이 맞다.
'설사 불가능할지라도 소망은 버리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굴복하지 말자'는 말이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내용이라도 내 짧은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한가지 지혜가 나온다.
이미 앞에서 솔로몬이 제시한 지혜다. 늘 길한 일과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 세상 삶의 실상이라면 내가 적극적으로 의미있게 바꾸면 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이것은 어렵지 않다.
다음으로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곤고한 날이 이르면 생각을 하라고 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인가? 바로 이어지는 다음 내용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게 하셨음에 대한 생각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신뢰하는 자는 이 '병행'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이 병행의 신비를 깨닫고 그 신비함을 누리며 산다.
어차피 음양 이원론이 존재하는 세상에 왔는데 여기서 '좋은 것'만 찾고, 그것도
내 생각에 좋은 것만 원한다면 하늘의 이치를 모르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고통과 불행까지도 긍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바라지는 못한다 해도,
그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아름다울 것이며 자신에게 유익한 태도이다.
이 가르침도 자세히 보라. 그저 다 좋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구절에 '종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몸의 마지막, 즉 죽는다는 소리다.
죽음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고, 심지어 그
죽음조차 긍정하고 수용하는 입장이다.이 말 속에는 아무리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이 좋다해도 영원할 수는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이런 복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337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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