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34사 -節化(절화)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46
화엄경을 보면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인연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부부연을 맺기 위해서는 팔천생의
윤회가 필요하고, 동기간으로
형제자매의 연은 구천생의 인연이
있어야 하지만 사제지간의 연은
일만생의 인연이 요구된다고 한다.
그것도 같은 종류의 선한 뿌리
(동종선근)를 기초로 말이다.
굳이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 의미는 깊이 새겨볼만 하다.
오늘날의 사제는 학교나 종교단체
등을 통해 수동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대부분이다 보니 이런 말의 의미가
제대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예수를 스승으로 만난 제자들을 생각해
보면 그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나 형제의 연은 서로 사랑하고
돕는 인연이겠지만 사제의 인연은
삶을 변화시키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위대한 관계가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참된 스승을 찾기
위해 온 세게를 다니며 이름난 위인들을
만나보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스승을 만나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로 삶을 완전히 망친
사례도 많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려고 하면
자신을 제자로 인정하고 자신도 그를
스승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보면 그
수준과 역량, 가능성 등을 알 수 있다.
위대한 스승들은 한결같이 종교의 시조가
되어 오랜 기간동안 조직을 유지하고
확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후계자들이 서로 자신의 스승이
최고라고 주장하며 다른 종교와 다투는
추태와 함께 스승의 영광과 권력을 서로
이어 받으려고 싸우는 일 때문에 그
빛이 많이 흐려지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과
삶은 많은 사람들의 지침과 본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第 334事 應 2果 重 3形
(응 2과 중 3형) 節化(절화)
著名學士(저명학사)로
人皆師事(인개사사)하니
生有淸德(생유천덕)하고
死有令節(사유영절)이니라
이름난 학자가 되어
모든 사람의 스승으로 행하니
살아서는 맑은 덕이 있으며
죽어서는 아름다운 기림을 받느니라
인생의 목적이 선과 덕을 쌓고 베푸는
것이니 이런 일에 힘쓰게 되면 자연히
스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예로부터 학문은 반드시 삶으로 증거
되어야 만이 제대로 된 학문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니까 아는 만큼 선해지고,
아는 만큼 덕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어떤 스펙을 쌓고, 자격을
얻기 위해 정보나 지식 등을 많이 얻는
것을 학문이라고 하지 않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하기를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 공부를
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며 탄식한
내용이 나온다.
그 옛날에도 지식을 인정받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출세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소인배들이 많았던 가 보다.
그 옛날 공자의 말씀이 오늘날에 더
분명하게 적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목표와 방향이 틀리니 이러한 현상은
늘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시금 잘 생각해 보라. 사람이 현명해
지고 유능해지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선을 행하고 덕을 베풀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선과 덕에 힘을 쓰지 않는데
어떻게 그를 키우는 학문이 그를
따르겠는가?
예수는 함부로 스승이 되지 말라고 했다.
특히 바리새인들 같이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차 선과 덕은 멀리하고, 인정과
존경을 받는데만 급급했던 자들을 향해
엄청난 독설을 퍼부은 것을 기억하라.
선을 행하는 일에 힘쓰고, 덕을 베푸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늘이 지혜를 줄 것이며, 삶의 증거로
온 세상에 빛을 밝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일부러 스승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 남들이 안알아주고 따르지
않는다고 속상해 할 이유도 없다.
삶의 목표가 선과 덕이니 가르침과
삶이 둘이 아닌 것이다.
마땅히 살아서는 맑은 덕으로 나타나고
죽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두고 두고
그 아름다운 덕을 기리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스승을 따로 둘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 안에 성령이 스승으로
거하시면서 선과 덕으로 이끄신다.
굳이 이 용어가 싫다면 '신성'이나
혹 '양심'으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그리스도라고 한들 다르겠으며, 다른
종교의 스승을 이름든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공연히 자기 스승이 최고다는 식으로
남들과 다투기나 하게 되면 그 자체로
선과 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스승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되고 만다.
오늘날 예수를 스승으로, 주로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짓들을 하는데 바쁜 자들이
많다. 예수를 자랑한다면서 오히려
예수를 가장 욕되게 하는 자들이다.
예수를 자랑하고 싶으면 말로만 떠들지
말고 선과 덕에 힘쓰는 삶을 통해서
자랑하라. 특히 예수의 제자는 십자가를
지는 삶이 그 기본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자기 희생을 통한 선과 덕을
행하는 삶이 없거든 차라리 입을
다물든지 나가 주는 것이 낫다.
그래도 예수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말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334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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