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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329사 -世襲(세습)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329사 -世襲(세습)

柏道 2019. 4. 19. 22:41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41  
 
다시 융합의 흐름이 세상에 흐르기
시작했다. 양면성이 균형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문관과 무관의 구별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모든 학자들은
나름 무술 연마를 겸비했고, 모든 무사들
또한 글공부에 소홀하지 않았다.
거기에 시와 음악, 예술까지 함께
아우르는 인재들이 많았다.
이러한 흐름이 한 단계 의식과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문화의 흐름이 들어와
최근까지 그 흐름이 세상을 주도했다.
각 분야별로 최고의 경지에 오르도록
자극했고, 자기 분야만 잘 알면 상호
협력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기에 인간의
고질적인 문제, 즉 이기적인 욕심과
교만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요소를
간과해 버렸다. 그로 인해 상호존중과
협력보다 대립과 경쟁이라는 분리
현상이 더 강해지고 만 것이다.
물론 그러한 전문적인 분야의 발달과
상호 협력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이룬
분야도 있었다.
하지만 정신이 약한 강한 육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육신이 허약한 강한
정신 또한 어떻게 그 효과를 내겠는가?
다행히도 새로운 물결이 흘러들면서
융합의 지평을 열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협력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이이상 종교와 과학은 대립할 두
반대진영이 아니며, 문과와 이과,
학문과 기술, 논리와 직관, 영혼과
육체, 보수와 진보, 서양과 동양,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협력하고 보완
하지 않고는 둘 다 쓸모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때 유독 무지와 교만에 빠진자
들은 여전히 독선의 자세를 고집하며
시대의 흐름을 저항할 것이다.
특히 종교와 이념은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과
잘못으로 오판하고 더욱 자기 것만
고집하는 현상을 보이기 쉽다.
요즘 한국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대립은
바로 이런 현상의 뚜렷한 증거이다.
좋은 소식은 이러한 극단적인 대립은
곧 무너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극단으로 가 봐야
깨닫고 돌이키는 존재이다.
자신의 생각이 하늘의 이치와 어긋나는
것을 아는 유일한 길은 '망함'을 통해서
이니 자비심을 가지고 기다려 줄 일이다.
탕자가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 망신창이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
올 생각을 못한다. 
 
第 329事 應 1果 積 7形
(응 1과 적 7형) 世襲(세습) 
 
世襲者(세습자)는
爲嗣尊統(위사존통)하여
懷文武之才(회문무지재)하고
受將相之任(수장상지임)하여
功蓋一世(공개일세)하고
名振千秋(명진천추)니라 
 
세습(世襲)이라 함은
존귀한 전통을 계승하여
문무의 재능을 겸비하고
장수와 재상의 소임을 받아
그 공적을 세상에 펼치고
이름을 세세에 떨치는 것이니라 
 
영혼과 육체는 생명의 두 축이며,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지도 않고, 주도권을 쥔다고도
할 수 없다. 영혼은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육체는 영혼을
빛내기 위해 그 역할에 충실한다.
의식과 정신(문)은 건강한 육체(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피어날 수 없고,
육체의 아름다움은 정신이 그를 통해
발휘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
의식의 빛을 밝고 맑게 하고 싶으면
몸을 잘 관리하여 최대한 협력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며, 몸을 잘 관리
하고 싶으면 올바른 정신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예로부터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이 말은 동시에 '건전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를 보존한다'는 말도
된다.
옛날 육체의 강건함을 위해서는 '무술'
혹은 '무예' '무도'라는 것을 통해 가꾸어
왔다. 단순한 육체의 단련이 아니라 그러한
훈련을 통하여 정신을 갈고 닦는 훈련이
병행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전쟁을 전제로
한 훈련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훈련이었다.
오늘날 그 정신을 이어받는다면 극기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두려움과 게으름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는 차원의
육체활동이 필요하지 고작 몸매나 가꾸고
살이나 빼는 차원으로는 그 경지로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학문에 힘을 쓴 자들은 이제 몸을
단련하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머리만 좋고, 지식만 나열하는
자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혹독한 훈련을 통하여 몸을
잘 만든 자들은 지식과 논리를 함양하기
위해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이상 육체미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도를 닦는다며 산 속에 홀로
들어가 수행하는 것도 안 통한다.
이제는 그 도가 현실세상에 적용되어 어떤
효력을 발휘하는지 검증을 요구한다.
가장 영적인 것은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증명되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영적인
세계를 증명해 줄 것이다.
오늘날 양자물리학의 발전은 이미 종교의
영역에 들어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종교는 스스로의 교만과 아집으로 여전히
중세시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땅히 지금쯤 종교가 가장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지혜로 발전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은 하늘의 경륜이기
때문에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경륜을 바로 이해하고
그에 빠르게
세상에 공적을 펼치고 이름을 날리는 것은
원한다고, 또 무작정 힘을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이치와 그 경륜을 바로
이해하고 그에 보조를 정확하고 힘차게
맞추어 나가는 것이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원리요 공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