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17사 -참전계경 제317사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29
어느 누가 편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을 마다 하겠는가?
맛난 것, 좋은 옷, 멋진 물건...
모두 다 하늘이 내린 복이요, 은혜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고린도전서 10:23)는 말씀처럼
좋아 보인다고 해서 실제로 다 좋은 것이
아니며, 아름다와 보인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오히려 선이
악으로 변하고, 심지어 악해 보이는 것도
선으로 화할 수 있는 것이 만물이다.
따라서 만물은 그 자체로 선하고 악한
것이 없다. 중립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무죄' '무악'으로 보아 선하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진정한 선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의
의식과 태도요, 무악한 것을 악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달려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만물이 우리의 뜻에
따라 악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악한 것을 악이 되도록 잘못 대하고 취급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만물은 항상
무악한 상태로 남아있는데 내가 잘못함으로
악으로 잘못 인식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이러한 자각이 없는 사람은 늘 만물을
탓하고, 환경과 세상을 비난하며, 하늘을
원망한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악해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사과하고
바뀔 것도 아닌데 무지와 교만이 스스로를
더 악하고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그 누가 이를 교정해 줄 수 있겠는가?
스스로 깨닫고 자기의 잘못된 의식과 눈을
수술하는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다만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진리의
말씀이요, 하늘의 빛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빛인 진리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깨우쳐서 자신의 생각과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행복해질 길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바꾸어 주소서'라는
기도는 이이상 무효하다. 그런 기도를
아무리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러기를 원치도 않으시고,
그러실 수도 없게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미 본성 속에 답을 담아 두셨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 빛을 비추어
주고 계신다. 눈을 뜨고 일어나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다.
해 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기다리게 되면
점점 지치고 낙담만 커지게 된다. 자연히
불평과 원망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분노만
점점 커지게 되어 불행을 키워가게 된다.
이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책임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
第 317事 報 6階 小 1及
(보 6계 소 1급) 背性(배성)
背性者(배성자)는
捨本性也(사본성야)라
捨狹便闊(사협편활)하며
捨拙便豪(사졸편호)라
試惡成利(시악성리)하여
認作良方(인작양방)하고
奔身買惡(분신매악)은
跳惡也(도악야)니
可領其禍(가령기화)니라
배성(背性)이란
본성을 저버림을 말하느니라
좁은 것을 버리니
넓은 것이 편해지고
옹졸함을 버리니
호탕함이 편해지느니라
악을 시험해 보고 이익을 얻으면
좋은 방도를 짜내고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악을 마구 사들이게 되나니
이는 악이 뛰어다는 것과 같으니라
가히 그 화를 받게 되느니라
좁은 것을 버리고 넓음으로 나아가면
편하고 좋다. 누구나 다 그러기를 원한다.
옹졸한 마음을 버리고 호연지기를
기르면 당당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것이 하늘의
정한 이치요, 인간의 도리이다.
그러나 문제는 '편함'을 지향하는
자아의 욕심이다.
넓음이나 호탕함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목적을
잊게 되면 편함과 즐거움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니까 편함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본성에서 이탈하게 된다는 말이다.
넓음을 향하여 나아가고, 호연지기를
얻기 위해서는 편함을 버리고 도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넓다고, 호탕하다고
좋아하여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하면
'도전과 변화'라는 본성을 저버리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위 성공하자
타락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서 게으름을
극복하고, 인내를 갈고 닦아 왔다.
바로 그 과정 자체는 본성을 따른
것이요, 하늘의 이치와 맞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 본성을 잊어버리고
편안함에 익숙하고, 누림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 순간부터
위험해지고 본성과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본성에서 이탈하여 자아의 욕심을
따라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게
되는데 당연히 그 자체가 악이며,
반드시 악한 방법이 동원되게 되어있다.
이제껏 쌓은 지혜와 능력으로 악을
시험해 보니 원하는 편함과 즐거움의
이익이 크다. 그렇게 되면 온 몸을
다 바치고, 온 지혜를 따 짜내어
그 일에 힘을 쓰게 된다.
나아가 온갖 종류의 악을 다 사들이게
되고 그렇게 구매한 악은 마구 날 뛰어
악으로 들끓는 삶으로 만들고 만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작은 악들 같지만
그것들이 모이니 엄청난 양의 악이
되고 결국은 그 악에 묻혀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317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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