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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316사 -(보 6계 소) 小(소)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316사 -(보 6계 소) 小(소)

柏道 2019. 4. 19. 07:50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28  
 
제 7강령 '보(갚음)'의 마지막 계단
'소'(작음)에 대한 교훈이 이어진다.
말 그대로 크고 중한 악에 대비되는
작고 사소한 악에 대한 정의와 경계이다.
흔히 작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근원은 같기 때문에
크고 작은 것은 나타난 양상과 그
끼치는 범위만 작을 뿐 그 본질은
같다.
그러니까 크고 작다는 것은 결과를 두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평가가
되지 못한다.
법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법을 적용하려면 먼저 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죄의 영향력이 어떠한지 그
결과가 나와야 큰 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또 더 심각한 문제는 작은 행위가 어떤
연쇄작용을 일으켜 어마어마한 참사를
가져온다 해도 법은 그 모든 책임을 다
물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사람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가함으로 그 사람이 좌절하여 직장을
그만두거나 의욕을 상실하게 되면
그로 인한 피해가 주위로 크게 확산이
된다. 가정이 불안해 지고 배우자나
아이들이 영향을 받아 탈선하거나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그러나 정작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를
처벌할 법은 겨우 모욕죄 정도 이상을
적용할 수 없다.
실제로 오래 전 국민배우로 불리는
최 모씨 가족의 비극의 시작은 한
못된 여성의 악성댓글로 시작되었음을
안다. 그러나 법은 그녀에게 드러난
행위 이상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넘어 본질을 
발견하고 경계하지 못하면 언제나
뒷북을 치게 되어 있고, 뻔히 예측을
하면서도 막을 수 없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얼마든지 죄를 범할 위험이 있는 자도
죄를 실제적으로 저지르기까지 통제할
수 없는 실정법은 오히려 간사한 자로
하여금 악용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법으로는 최소한의 질서와 
공의를 세울 수 밖에 없다.
법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법보다
뛰어난 효과를 내는 도덕과 윤리가
더 중요하며, 이러한 가치를 깨닫고
적용할 줄 아는 성숙한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보다 시급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원과 본질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일깨우는 영적의식훈련도 속히
도입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그럼으로 악의 근원을 제대로 이해하고,
악은 크고 작든 공히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위험한 것임을 자각하게 되면
모든 악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특히 작은 악에 더 주의를
하게 된다.
메르스나 조류독감 사태를 보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사전에 경계하여 제대로 방지하지
못하게 되면 그 피해는 상상이상이
되고 만다. 
항상 보이는 것, 나타난 것보다 잘
보이지 않는 것, 나타나지 않은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第 316事 報 6階 小
(보 6계 소) 小(소) 
 
小小惡也(소소악야)라
過愆過曰惡(과건과왈악)이니
大愆大惡(대건대악)은
出自昧智(출자매지)나
小惡如所做(소악여소주)니
可領其禍(가령기화)니라 
 
소(小)는 작은 악을 이름이라
허물이 지나치면
그 지나침을 악이라 하나니
큰 허물과 큰 악은
스스로 지혜가 어두운데서
나오는 것이나
작은 악도 짓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은즉
가히 그 벌을 받게 되느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악은 크고
작음의 구별이 없다.
근원을 짚어보면 모든 악은 같기
때문이다. 같은 씨앗이 뿌려져도
씨가 잘 자랄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마련되지 못하면 크게 번성할 수
없다. 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산소와
연소할 물질이 공급만 되면 문자
그대로 온 세상을 다 태울 수 있다.
따라서 크다, 작다는 것은 결과를
보고 평가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씨앗'이요
'불씨'와 같은 것이다.
허물에서 그치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허물은 깨닫기만 해도 바로잡고
돌이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허물로 인해 남에게
주는 피해는 '불쾌함' 혹은 '불편함'
정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과와
보상을 통하여 해결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사소하게 여겨 방치를
하게 되면 허물은 과해지게 되고,
결국 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방치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에서보다 오히려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서 쉽게 일어난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과대평가
하는 교만이 방심을 낳게 되고,
그로 인해 허물이 죄와 악으로
확장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가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절감할 수 있는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이다.
한순간의 방심, 말실수로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과거 같았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반짝하다가 스러질
것들이 최근에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번져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선한 일도 이렇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기회로 활용
할 수 있는 것이다.
큰 악을 짓는 자는 지혜가 어두워서,
무지해서 일으키는 악이다. 이들은
지혜를 일깨우고, 수행을 훈련하면
오히려 교정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지혜롭다고 하며, 스스로 안다고
하는 자들이 교만함으로 발생하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악들은 교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지혜를 믿고 '그 정도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어'하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오히려 바꾸려
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이다.
그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점점 커져
눈에 보이는 정도가 되면 이미 돌이키기에
늦은 상황이 되고 만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큰 악이든, 적은 악이든 악은 악이며
둘 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짓는 능동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