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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315사 -外善(외선)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315사 -外善(외선)

柏道 2019. 4. 19. 07:48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27  
 
'죄(sin)'와 '악(evil)'은 다른 개념이다.
모든 죄는 악하지만, 모든 악이라고 해서
죄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근본 속성 때문에 그렇다.
죄의 본질은 '방향'에 있다.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난 것과 같이
방향이 잘못된 것이 죄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율법)에 응하지 못하고
방향이 어긋나는 것을 죄라고 한다.
조금 어긋나도 죄요, 완전히 방향이
달라도 죄다. 그래서 그 누구도 죄인
이라는 율법의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방향이 조금 틀리든, 크게  
틀리는 상관없이 그 방향이 맞지
않게 되면 모두가 죄가 되고, 죄인이
된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행하는 것도
죄지만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된다.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은 것도
죄이지만, 먹으라고 한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지 않는 것도 죄다.
미워하는 것도 죄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다. 나쁘게 하는 것도
죄라면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다.
이렇게 죄의 개념은 광범위하고 포괄적
이기 때문에 누구도 율법의 판단하에서는
다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악은 좀 다른 개념이다.  
악은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것, 온전함에서 뒤떨어지는
것이 악의 본질이다.
그러니까 신체의 장애나 추한 것은
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죄는 아니다.
그래서 모든 죄는 악하지만, 악이라고
모두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第 315事 報 5階 大 4及
(보 5계 대 4급) 外善(외선) 
 
外善者(외선자)는
外善而內惡也(외선이내악야)라
言正而行不合(언정이행불합)하며
行合而事不孚(행합이사불부)니라
雪下陷穽(설하함정)에
惡胎産滿(악태산만)은
盲惡也(맹악야)라
可領其禍(가령기화)니라 
 
외선(外善)이란
겉은 선한데 속은 악함을 이르느니라
말은 바르나 행실이
그 말에 합당하지 아니하고
행실은 합당하나 일이 미덥지 않느니라
이는 눈 아래 숨긴 함정과 같이
악의 태아가 태어날 때가
다 된 것과 같으니
악이 보이지 않을 뿐이라
가히 그 벌을 받게 되느니라 
 
기독교에서는 '죄'의 개념이 강한반면
동양의 경전에서는 '악'의 개념이 더
강조된다. 죄는 벌을 통하여 해결되지만
악은 개선과 변화를 통하여 해결된다.
죄는 곧바로 죄에대한 책임과 형벌을
요구하지만, 악은 시간을 두고 개선하고
발전을 요구한다.
죄에 대한 해결은 시기를 정할 수 있지만
악에 대한 해결은 시간을 정할 수 없다.
죄는 '옳고 그름'으로 판단이 단숨에
나지만 악은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이
요구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동양이 오히려 여유가 있다.
말은 바른데 행동이 그에 따르지 못한
것을 악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행동을 말에 합하도록
노력하여 개선하면 된다. 그러나 그
개선은 끝이 없다.
만일 행동에 말이 부합되어도 끝이
아니다. 다음 단계가 또 있는데 일이
미더운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이 미더운데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여전히 악에 머물러 있는 것이 된다.
그럼 일이 미더우면 끝인가?
아니다. 그 미더운 일이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게 하지
못하면 또 다시 악으로 변하게 된다.
이루었을 때는 선이 되지만, 다음으로
또 나아가지 못하면 그 선도 다시
악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성장과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악의 개선이다.
겉으로 보기에 선한 것으로는 진정한
선이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면의 선도 온전함으로 완성되지
않으면 그 변화와 성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진리의 일깨움이다.
또한 한 순간 선하다고 해서 항상
선한 것도 아니고, 한 동안 선을 유지
한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온전한
선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는
노력과 성장이 뒤따라야 한다.
죄는 그 대가를 치르거나 사함 받으면
의인이 된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선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오직 선하다고 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고, 모든 육체를
입고,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항상 선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더 나은 선, 더 온전한 선을 향하여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어야 비로소
그는 선한 자로 불릴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상대적인 개념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