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19사 -不改(불개)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31
악한 말이나 행실을 고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나쁜지 몰라서 고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알지만 의지가 약해서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내린 답에 대해 평가를 제대로 내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찾아 확인할 뿐 아니라 적용하겠다는 의지까지 보여야 한다. 이것이 진정 자신을 위함이요, 주위 사람들을 위하는 지혜롭고 성숙한 자세이다.
만일 무지함이 원인이라면 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답이 나올 때까지 따져 보아야 할 일이고, 연약함이 원인이라면 그 연약함을 고칠 방도를 찾아 적용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확실하지 못하면 항상 핑계를 대면서 이쪽 저쪽을 왔다갔다 하게 될 것인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 악행이나 잘못애 대해 책임을 추궁하면 둘 중의 하나로 빠져 나간다.
'그게 나쁜 일인지 모르고 그랬다'거나 '나쁜 줄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면서 변명을 하는데 여기에는 지위의 고하도 없고, 배움의 다소나 연령의 많고 적음도 상관없다. 그렇게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던 자들이 소위 '기름장어'처럼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허망함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말이야 쉽지... 남들에게는 쉽게 비겁하다, 뻔뻔하다 는 등 욕을 하겠지만
정작 그러는 자신은 어떤가? 그렇게 책임을 추궁당하고, 잘못에 대한 벌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떳떳하게 받아 들이겠는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비겁하게 아내에게 전가하고,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던 아담과 하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져 내려와 본능적으로 책임을 면하고 남에게 그 탓을 돌리려 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비굴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으면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악에 대해 명확한 지식을 가지든지, 아니면 의지를 강화하여 그 악을 극복 하든지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도 부끄럽고, 다른 사람들과 하늘에 대해서도 수치스러워 삶 자체가 슬퍼지게 된다.
第 319事 報 6階 小 3及
(보 6계 소 3급) 不改(불개)
不改者(불개자)는
知惡人當改而不忍改也
(지악인당개이불인개야)라
知其當改不忍改者
(지기당개불인개자)는
爲欲利也(위욕리야)라
浮於昧惡(부어매악)이니
可領其禍(가령기화)니라
불개(不改)라 함은
악을 아는 자가 마땅히 고쳐야 할
악을 차마 고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마땅히 고쳐야 함을 알면서도
차마 고치지 못하는 것은
이익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
이는 악에 대해 우매하여
물에 뜬 것 같은 마음이니
가히 그 재앙을 받게 되느니라
악임을 알고 고쳐야 함을 아는데도 욕심 때문에 차마 고치지 못하고 계속 악에 머물고 있는 자에 대한 경계이다. 악이 나쁜 것은 안다. 그러나 악을 통해 돌아올 이익에 대한 욕심이 악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단순히 욕심이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이런 사람이 정말 모르는 것은 '악의 결과'에 대한 것이다.
악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악을 짓고도 벌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하면 주위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많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판단에 많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큰 오판이다. 물론 하나님이 반드시 그 악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그러나 이이상 나중에, 죽은 후에 심판하신다는 말은 이이상 안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들 머리가 잘 돌아가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시다는 것을 이미 파악해 버렸다. 맞다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악에 대해서 사실 관심도 없으시고 굳이 심판의 칼을 가시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분들이 제법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묵상해 보라. 그러면 당연히 이런 답이 나올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시시한 일을 안하신다. 인간이 죄를 짓는다고 하나님이 화낼 일도
없으시고, 인간이 잘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할 일도 사실은 없다.
성경이나 다른 경전에서 그렇게 표현된 것은 철저히 인간을 위한 교훈의 차원에서 그런
것이지 진짜 하나님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아직 뭘 모르는 수준이다.
굳이 하나님을 그러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런 하나님은 최고 절대자는 못된다.
논리적으로나 진리의 증거나 모두가 이를 말하고 있다.
최고의 절대자는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스스로 완전하시며, 영원한 지혜와 능력,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이 뭐가 답답해서 인간의 행동 때문에 분노하고, 벌을 내리며 또 기뻐하고 상을 주고 할 일이 있겠는가?
그런 일은 졸병들이나 시킬 일이지...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자기 수준에 맞추어 놓고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데 둘 다 애처롭고 안됐다.
더 웃기는 것은 자기 편에 안들고, 자기 생각과 안맞으면 자기 하나님이 지옥에 던져 영원한 고통을 준단다.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 그 딴 하나님이 다 있나? 그러면서 그 하나님을 믿으라고 자랑하거나 위협을 일삼고 있으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
잘 생각해 보라. 지금 불신자들은 대놓고 하나님을 욕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하나님은 지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두고보자'는
소리만 당신을 통해 대신 하고 있다. 마치 바알과 비슷한 꼴이 아닌가?
엘리야가 실실 약을 올려도 꼼짝 못하는 그 헛된 바알신의 모습을 지금 종교인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떠드는 하나님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이론만 가지고 큰소리 치는 사람들은 이제 그 수명이 다했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기꾼이라고 욕을 할 때가 멀지 않았다. 삶으로 증거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능력으로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은 100%가짜들이다.
옛날에는 이런 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멀쩡하게 잘들 지내고 있다.
지금이야 조직에 숨어서, 혹은 조직을 이용해서 안전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곧 그 보호막이 거두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걷혀지기 시작했다.
속히 양심선언을 하든지, 아니면 진짜 능력을 보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증거로
내어 놓아야 한다. 그럼 도대체 이런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악의 결과는 어떻다는 말인가?
답은 '아무 일 없다'는 것이다. 이 답이 마음에 들지 않고 화가 난다면 지금 당신의 마음에는 불안과 교만이 들어 있다는 증거다. 불안한 것은 악한 자들이 벌도 안받고 평안히 살다가 잘 죽을까봐 불안한 것이고, 교만한 것은 마치 자기는 그런 심판과 형벌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진다고? 누가 하나님 걱정을 하랬는가? 본인이나 걱정할 일이다. 아무 일 없다고 답한 이유는 외적인 그런 현상이 꼭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이미 악을 행하면 그 자체로 심판과 벌이 동시에 역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외적인 현상이 없다고 안절부절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그렇게 어리석고 무능할까? 만일 지금 악을 짓는데도 두고 보고 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벌을 주고...
진리를 깨닫게 되면 아주 간단한 이치가 드러난다. '죄와 벌'은 공존한다.
마찬가지다. '선과 보상'도 공존한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하면 '죄=벌,'이요 '선=상'이다.
그러니 죄를 지은 자를 보고 벌을 주어야 한다고 답답해 하지도 말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려고도 하지 말라. 물론 이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형적인
상과 벌이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진짜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직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실체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그 능력과 지혜 사랑을 깊이 아는 자는 외적인 현상에 별 관심이 없다.
죄나 악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대항하여 서는 일이다. 그러면 그 자체가 벌이고, 고통이지 뭐가 더 필요한가? 마찬가지로 의와 선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고, 사랑의 표현이다. 그런데 거기다 무엇을 더하겠는가?
[출처] 참전계경 제319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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