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98사 -廣佈(광포)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10
무엇에 몰입을 하게 되면 자신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자신이
사라진 것을 아는 것은 다시 의식이
되돌아 왔을 때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자신에
대한 의식이 없어야 제대로 몰입한 것이
되고 그것이 진실이 된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잊고 상대방만
존재하는 경험이다. '이렇게 하면 나한테
잘해 주겠지' 심지어 '이렇게 해 주면
좋아하겠지'하는 생각도 사실 사랑에
몰입된 상황이 아니다. 모두 계산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는 두려움과 욕심이 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를
잊는다. 나중에 정신이 돌아와 자신을 보게
되는 순간, 다시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의식이 되는 순간 사랑은
물러가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 자기에
대한 의식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과의 사랑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직 하나님에 몰두하여 시간과 공간,
심지어 자신까지 잊어버리는 경지로
들어가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받고 싶어하는 의식이 존재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례가 되고
사랑에 대한 모독이 된다.
진정한 사랑으로 들어가기를 애를 쓴다면
그 태도는 좋지만 함부로 이런 수준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느니 하는 소리를 하게
되면 건방이요 교만이며 무지에 빠진
증거다.
진리도 그러하고, 선도 마찬가지며,
아름다움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속성이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일찌기 모든 경전에서 이 경지를 말씀해
왔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나 '베푼다는 생각이 있으면
이미 그 베풂은 참 베풂이 아니다'는
깨우침 등이 다 이러한 경지를 의미한다.
공자가 말한 군자의 경지, 즉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한다 해도 노하지 않는'
경지 또한 의식과 관심이 거기에 없다는
뜻이지 애써 분노와 섭섭함을 누르는
것이 아니다.
바울도 이 경지를 줄곧 체험하며 살았다.
그에게는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일만
의식되었다. 그래서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이나 손해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오직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만
집중함으로 모든 것을 다 잊고 살았다.
이런 경지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만사 제쳐놓고 이 경지로 들어가도록
애를 써야 한다.
제일 웃기는 것은 자신이 소경이면서도,
소경인줄 모르고, 소경을 인도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第 298事 報 2階 重 6及
(보 2계 중 6급) 廣佈(광포)
廣佈者(광포자)는
廣佈善也(광포선야)라
擧善事聞人(거선사문인)하며
說善言揚人(설선언양인)하면
不知善人之從己
(부지선인지종기)하고
惡人之戲己(악인지희기)하나니
天性之純也(천성지순야)라
可領其福(가령기복)이니라
광포(廣佈)란
선행을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이니라
선한 일을 들어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선한 말로 전하여
사람들을 일깨워주면
선한 사람들이 나를 따르거나
악한 자들이 나를 희롱하는 것을
개의치 않게 되나니
이는 천성이 순수하기 때문이라
가히 그 복을 받게 되느니라
선에 온전히 몰입을 하게 되면
선한 일에 관심이 집중되고, 그 선한 일을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가득차게 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이런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는
것이다.
자신이 행하는 선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선행은 감추고 남의 선행을 드러내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선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선한 소식에
관심을 두어야 정보가 수집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매스컴과 정보는 모두 어둡고 악한
소식들이 '톱뉴스'가 되고, '특종'이 된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듣고, 어두운 이야기를
접해야 그나마 위로가 되는 아주 가난하고
천박한 의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근히 불행과 비극소식을
좋아하면서 속으로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다'
면서 위로를 받는다.
참 가난하고 천한 의식이다.
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큰 사람은 남의
불행이나 슬픈 소식을 보고 듣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여 나누고
선을 더 확장하여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알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그런 안좋은 소식을
접하면서 고통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스스로 교만과 착각에 빠진
증거일 뿐 결코 정의로움도 아니고 용기도
아니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사무엘은 사울의 버림받은 말씀을 전하기
전에 밤새도록 사울을 위해 부르짖는
기도를 한 후에 준엄한 심판을 선언했다.
하나님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는 자들에게
그들이 그 전에 흘린 '눈물병'을 증거물로
제시하라고 요구하실 것이다.
선한 일을 알리는데는 마찬가지로
'선한 말'이 사용되어야 한다.
강한 것은 아름다우나 거친 말은 선하지
않다. 부드러운 것은 선하나 약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선함을 드러내는 방식도 선해야지, 악한
것으로 선을 드러내려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이 아니다.
이처럼 오직 선에 집중하게 되면 놀라운
현상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좋다고 따르는
것도, 밉다고 조롱하고 비웃는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게 되어 모르게 된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한가지에 집중해 있는데 다른 것이 어떻게
눈과 귀에 들어오겠는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의 칭찬에 민감하고,
남들의 비방이나 조롱에 쉽게 반응을
하고 산다면 이미 진리와 선, 사랑에서
이탈되어 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이럴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것들을 부정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진리와 선, 사랑, 하나님에 다시 집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다시 모든 것을 잊고 진리 안에서
행하게 되며, 사람이나 자연을 볼 때
그들에게서 선을 찾고, 선을 증거하며,
사랑을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경지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어린아이'의 순수함에 이른 것이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마음의
청결함을 가진 수준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298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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