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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250사- 隱愆(은건)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50사- 隱愆(은건)

柏道 2019. 4. 15. 21:58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62  
 


남의 허물을 보고 즐거워하며,
그것을 신속하게 퍼뜨리는 일을 일삼는
자는 '악한 자'이기 이전에 '무지한 자'이다.
악한 자로 보면 벌을 내려야 하지만,
무지한 자로 보면 깨우쳐야 한다.
그래서 벌을 주어 두렵게 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깨닫게 하여 스스로
부끄럽고 파괴적인 일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율법은 할 수 없다.
이원론에 매여 있는 자는 이런 지혜가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먼저 하늘의 이치와 은혜를
깨달아야만이 이러한 무지와 악함은
물러가고 지혜로 아름다운 사랑과 선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의식수준이 낮아 깨달을 가능성이 적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율법을
적용하여 악을 일시 억제할 수는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도 않고,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좋은 지혜가 아니다.
지혜로 일깨우고 사랑으로 그 의식을
부드럽게 해 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자신부터 먼저
깨닫고 이원론을 극복해야만이 베풀 수
있는 지혜요 사랑이다.
 
第 250事 福 2門 善 9戶
(복 2문 선 9호) 隱愆(은건) 
 
隱愆者(은건자)는
隱人之做愆也(은인지주건야)라
哲人聞人之愆(철인문인지건)하면
直隱而不泄者(직은이불설자)하여
先自愧焉(선자괴언)하고
先自警焉(선자경언)하며
又恐聯於人(우공련어인)하여
失一人(실일인)을
如失天下之人(여실천하지인)니라 
 
은건(隱愆)이란
남이 지은 허물을 숨기는
것을 이르느니라
깨달은 이가 남의 허물을 들으면
바로 숨겨 새나가지 않게 하는 것은
먼저 스스로 부끄러워 하고
먼저 자신을 경계하며
또한 다른 사람도 연관될까
염려함이니
이는 한사람을 잃는 것을
천하사람을 다 잃는 것 같이
여기기 때문이니라 
 
정확하게 성경의 교훈과 일치한다.
적어도 세가지 교훈이 그대로 연결되는데
그냥 옮겨 본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허물)을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는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라디아서 6:1)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태복음 18:14)
놀랍도록 성경의 맥과 일치한다.
사랑이 남의 죄(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은
불의를 용납하거나 눈감아 준다는 의미가
아님은 모두가 다 안다.
초점이 '죄와 허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있고, 사람에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죄를 없애고 해결하려면 덮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자신을 비롯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가 사람보다 더
중히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죄를 취급하는 이유도 다 사람을 위함이지,
죄 자체를 위함이 아니다.
마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죄와 허물에 관련해서 어떻게 사람을 구할지,
그러니까 죄도 해결할 뿐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사람에게서 죄와 허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지, 그리고 두려움과 욕심'때문이다.
일단 죄와 허물이 나타나게 되면 상황이
악해지고 위험해진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리고 인간의 도리를 어겼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공의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럴 때 그 범죄한 당사자에 대해 남이나
적으로 의식하게 되면 신속하게 피하거나,
그를 멀리해야 한다.
그러나 형제와 동료로 의식하게 되면
슬픔이 먼저 일어나게 되고, 당사자에 대한
걱정이 앞서게 된다.
그래서 일단 죄를 짓는 것을 보거나
듣게 되면 그의 인격과 감정을 배려하여
최대한 확산되는 것을 막아선다.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해서, 그로 인해 일어날
위험과 고통에 대해서 먼저 아파하고
그를 구원할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온유한 심령'을 먼저 앞세운
이유가 이것이다. 내가 먼저 온유한 심령이
되어 그를 불쌍히 여기고 염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범죄한 자를 깨우쳐 돌이키게
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필요하다면 고통이나
형벌도 나누어질 각오를 한다.
특히 이러한 악행의 소문이 돌아서 비난이나
정죄의 죄가 발생할까 매우 조심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가 가지는 마음 자세이다.
이렇게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함으로
그 당사자를 구원해 내게 되면 
마치 온 세상을 구원한 것과 같은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그를 깨우쳐 돌이키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내게 돌아올 화를
두려워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제거대상이 되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하늘이 죄인 하나 변화되어 돌아오고,
잃은 자 하나를 구원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를 구원하는 것이 천하를 구원하는 것이요,
하나를 잃는 것은 천하를 잃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