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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206사-流胎(유태)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06사-流胎(유태)

柏道 2019. 4. 6. 06:34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18 
 


미국의 주요 정치적 이슈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낙태 문제다. 
기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적 보수주의 정당인 공화당은 이를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반면 개인의 사생활과 산모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은 낙태가 선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편은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는 입장이고, 다른 한편은 산모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입장이다.
사실 양쪽 다 일리가 있으면서 동시에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이 문제로 아무리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해도 결론을 내기 어려워 양분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로 들어가면 답을 내기 어렵다.
이 상황은 양자택일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로 접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제법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와 토론 등을 통하여 개인과 집단의 
의식이 성숙해지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비단 낙태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발생하는 이분법적인 대립에 대한 답은 공히 이와 같다.
미숙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답으로 확신이 되지만, 성숙한 사람에게는 저것이 답이 되며
더 나아간 의식은 적절한 결정을 내릴 지혜와 능력을 갖추게 된다.
206사에 낙태 문제가 등장한다. 물론 여기서는 '음행'이라는 부정을 통한 잉태로 한정을

하는데 본질을 밝히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어떤 입장인지 주목해 보자. 
 
第 206 事 禍 3條 淫 4目
(화 3조 음 4목) 流胎(유태) 
 
流胎者(유태자)는
藥於淫孕也(약어음잉야)라
天落惡種(천락악종)이라도
地必受生(지필수생)하고
雨露長之(우로장지)하니
猶以薰傍(유이훈방)이라
若違天理(약위천리)하면
理有所歸(이유소귀)니라 
 
'유태(流胎)란
음행으로 밴 아기를 약으로
지워버림이라
하늘이 악한 종자를 내려도
땅은 반드시 이를 받아 나게하고
비와 이슬은 이를 자라게하니
향기로운 풀 곁에
악취나는 풀도 있음과 같으니라
만약 하늘의 이치를 어기면
반드시 이치대로 돌아가느니라' 
 
정당한 관계에서 얻어지는 자식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지만 부정한 관계로 임신을 하게 되면 엄청난 재앙이 된다.
위험을 알면서도 통제를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성적 욕구이다. 그만큼 생존과 종족번식의 본능이 강하기 때문임을 확인해 보았다. 욕구에 끌려 정신없이 관계를 맺고나면 반드시 따르는 결과가 있는데 바로 임신이라는 하늘의 이치이다.
물론 항상 임신이 되거나 누구나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상정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하면 임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문제는 원치않는 임신은 엄청난 책임을 요구하게 된다. 양육의 문제는 둘째치고 당장 가족으로부터의 눈총과 사회적 비난 등이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급하게 취하는 길이 낙태라는 방법이다. 오늘날과 달리
과거에는 낙태가 쉽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해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와 부담은 낙태라는 극단적인 행위로 몰고가기 쉽다. 오늘날 여러가지 제도 등을 통하여 낙태를 막거나 미혼모 등을 보호하는 기관들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그 도움은
미미한 수준이고 해마다 한국에서는 100만건 이상 낙태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1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가운데 2.5명의 아기는 낙태를 당한다는 통계도 있다.
낙태는 단순히 살인이냐 아니냐의 형법적 문제로 따질 것이 아니다.
낙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당사자와 주위 사람들의 신체적, 정신적 황폐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이 정한 이치를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보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보호하거나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에게 무조건 낳으라고 할 수도 없다.
국가가 이 문제에 전적으로 개입하기도 어렵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인류종이 스스로의 수치와 죄책감으로 인해 파멸의 길을 가기 원치 않는다면
가장 시급하게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건 법과 제도가 앞서서는
안된다. 의식의 성숙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낙태문제는 단순한 인권이나 사생활, 선택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만일 하늘의 뜻에 어긋난 행위를 계속하게 되면 인간종의 존속은 결코 보장 받지 못한다.


참전계경의 지혜는 인간의 입장에 우선하여 하늘의 이치를 생각하라고 권한다.

하늘이 비록 좋지 않은 종자를 내려 보내도 땅은 이를 받아 비와 이슬로 정성껏
자라게 하듯이 비록 원치 않는 임신이나 부정한 관계로 아이를 배더라도
하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를 낳아 길르라는 것이다.
물론 수준도 안되고 결코 용납이 안되는데 억지로 그러라는 것이 아니다.
경전의 지혜를 통해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선택보다 하늘에 순종한다는
마음으로 그 뜻을 따르게 되면 비록 그 과정은 고통스럽겠지만 하늘의 위로와 힘을 얻게 된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늘을 경외하여 하늘의 뜻에 순종한다는 보람이 모든 것을 감내하게 하고,
결국에는 영광스러움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수준에 이르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피하거나 뒤집을 수 없다.
하늘이 기대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니 개인이나 인류 전체가 하늘의 은혜를 입어 생존하고 번성하려면 이 이치를 따라야 한다. 여기에서  왜 그렇게 성에 대해 엄격하고 위험하게 여기게 되었는지 또 한가지 큰 이유가 드러난다.
자유와 인권도 존재한 후에 따질 일이다. 존재가 없으면 자유도 인권도 없다.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것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