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193사- 怙恩(호은)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05
은혜에 대해서 개념정리를 좀 해야 한다.
은혜(grace)에 대한 뜻 풀이가 여럿이겠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풀이는 '조건 없이 베푸는 호의' 혹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긍휼과 사랑'이 될 것이다. 특히 하늘과 부모의 은혜를 그 예로 드는데 하나같이 '댓가를 바라지 않고 거저 베푸는 사랑'이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저' '조건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하는 말들이다. 그렇다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뜻을 헤아려 거저 받아야 맞다.
만일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갚으려고 하면 되돌려 받는 입장에서는 언짢은 일이요, 서운한 일이 된다. 거저 베푸는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르친다. 물론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이 말이 맞다.
사람이 은혜를 받았으면 그에 감사할 줄 알고 힘을 다하여 갚으려 하는 것이 도리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여기에 아주 섬세한 무언가가 작용하는데 바로 '불신과 교만'이다.
외형적으로는 받은 은혜가 고마워서 갚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내가 왜 당신의 호의를 받아야 해? 나는 그렇게 신세지는 것 싫어'하는 마음과 '나는 이렇게
은혜를 입으면 꼭 갚는 그런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교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절대 안그렇다고 하겠지...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맞다.
다들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고, 받았으면 갚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되갚는 것이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자기 마음 편하고, 떳떳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끼리는 그런 은혜를 주고 받는 것은 그나마 괜찮다. 왜냐하면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은혜를 갚는다는 말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과 성질이 다르다. 절대로 갚으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갚을 수도 없거니와 갚으려
하는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 분이다.
따라서 그저 넘치게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요, 본질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를 모르고 하나님께 은혜를 갚으려 한다면 그 속에는 하나님이 무언가 필요하고, 우리로부터 받아야 만족하는
분이라는 뜻이 들어가 버린다. 그러는 순간 하나님은 우상과 잡신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다.
물론 교육을 위해서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며, 영광을 올리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지만 잘 풀이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은혜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며, 감사할 줄 아는 자로 훈련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를 오해하여 하나님께 갚아야 할 것으로 가르치고 행함으로 심각한 왜곡과 악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것을 이용하여 착복하고 착취하며 강요하고 속여서 취하는 일들이 무수히 발생한 것이 이제까지의 종교 역사이다. 그래서 성경은 절대로 하나님께나 부요한 자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 않는다. 은혜는 받고 누릴 것이요, 그 은혜가 감사하면 자기보다 약하고 없는 자들에게로 돌리라는 것이 성경과 모든 경전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그 베풂이 필요한 자 중에 옛날에는 목사가 있었고, 스님이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그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 본질은 사라지고 부와 권세가 정치와 종교지도자들에게로,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되돌아가고 있다. 요구하는 자들도 엉터리지만 그들에게 갖다 바치는 자들도 댓가를 바라는 속셈이 들어있다. 이렇게 진리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면 끔찍한 왜곡과 뒤틀림이 발생하게 된다.
第 193事 禍 1條 欺 8目
(화 1조 기 8목) 怙恩(호은)
怙倚也(호의야)라
人恩己(인은기)에
宜思報恩(의사보은)이니
恩己之深(은기지심)을
反輕之(반경지)하고
恩人恩衰(은인은쇠)에
又負之又妨之(우부지우방지)하면
其可乎(기가호)아
'호(怙)는 의지함이라
남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면
마땅히 은혜를 갚을 것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내가 받은 깊은 은혜를
도리어 가볍게 여기고
은혜가 줄었다하여
은인을 저버리고 배반한다면
어찌 그것이 옳겠는가'
은혜를 베풀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이 되지 못하면 은혜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 그냥 도움이라고 하든지, 구제라 하든지,
나중에 갚으라고 빌려준다고 해야 한다. 은혜라는 말을 쓰려면 받을 생각없이, 아니 갚지 못하도록 방지를 하면서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의 의미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의 본질이다.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조차 남으면 안되는 것이 바로 은혜를 베푸는 자가 가져야 하는 수준 높은 의식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이 안되는 사람이 은혜를 베푼답시고 나서다가는 오히려 추태만 보이고 난리난다. 격려한답시고 사진을 찍고 홍보를 하고 자랑을 한다. 나쁠 것은 없다. 그것으로
보상을 받은 것이니까...이처럼 베푸는 자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은혜의 속성을 바로알고 바로 베풀어야 한다. 반면 받는 자의 입장은 다르다. 하나님께는 갚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 자체가 불경한 것이요, 무지한 죄다.
하나님께로부터는 거저 감사함으로 받아 즐겁게 사용하는 것이 최고의 예배요 보답이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부요하거나 건강하지 않다. 한 때 여유가 있어서 은혜를 베푼사람이 언제 모르게 곤경에 빠질 수 있고 질병으로 고난을 당할 수 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하고,
과거의 받은 은혜를 경시하면 안된다. 특히 욕심으로 모른체 하고 등을 돌리거나 배신한다면 자기부정이 되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짓밟는 꼴이 된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은인이 어려울 때 몇 배로 되돌려주고 보살피는 일은 참으로 훈훈한 미담이 된다. 만일 은인이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으면 굳이 그에게 되돌릴 필요가 없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억하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자들을 돕는 것이 은혜를 제대로 갚는 것이다.
은혜는 이렇게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데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우리가 반응해야 하는지를 먼저 배우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는 갚으려 하지 말라. 교육과 훈련적인 차원에서 잠시 헌금을 하는
것은 모르지만 깨닫지 못하고 갚으려 하다가는 하나님에 대한 불경의 죄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은혜는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위로 올라가는 물이 없듯이 은혜가 위로 되돌려 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출처] 참전계경 제193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천지인 공부 > 참전계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전계경 제195사-(화 2조 탈) 奪(탈) -몸의 9구멍을 말한다 (0) | 2019.03.31 |
---|---|
참전계경 제194사-恃寵(시총) (0) | 2019.03.31 |
참전계경 제192사-無終(무종) (0) | 2019.03.31 |
참전계경 제191사-假章(가장) (0) | 2019.03.31 |
참전계경 제190사-踢傾(척경) (0) | 2019.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