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 제 62사 捨己(사기)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 제 62사 捨己(사기)

柏道 2019. 3. 16. 07:49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73 
 
순풍에 돛 단듯 매끄럽게 잘 나간다.
이건 내가 봐도 신기하다.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다.
그냥 내가 좋고, 내가 감격한다.
도움이 되면 감사하지만 안되도 할 수 없다.
거기 신경쓰면 중심이 흩어진다.
나는 그냥 떠오르는대로 간다.
멋진 말씀을 기대하고 또 한 걸음...
이번에는 제 62事 信 1團 義 중에서
여섯번째 부분(1團 2部) 捨己(사기) 대한 말씀이다.
 
信 1 團 6 部 (신 1 단 6 부)
제 62사 捨己(사기) 
 
捨己者(사기자)는
不分基身也(불분기신야)라
旣許心於人(기허심어인)하고
仍蹈患難(잉도환란)이면
身義不可俱全(신의불가구전)하니
衆人捨義而全身(중인사의이전신)하고
哲人捨身而全義(철인사신이전의)니라 
 
'사기란 몸을 나누지 않는 것이라
이미 남에게 마음을 허락한 후에
그로 인한 근심과 어려움을 겪게되면
의와 내 몸을 함께 다 지킬 수 없느니라
어리석은 이는 의를 버리고
자기 몸을 간수하나
지혜롭고 밝은 자는 몸을 버리고
의를 지키느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게 되면
거기에는 후회나 원망이 없다.
그냥 갈 뿐이다.
바울의 길은 풍랑도, 독사도 막지 못했다.
그가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는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그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확신했다.


천명을 받아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의다.
의를 간직하면 자기에게 돌아올 유익이나 손해에
별 관심이 없어지게 된다.

인간인지라 때로는 욕심도 나고, 두렵기도 하겠지만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것 뿐,
금방 영의 지시를 받고 중심을 잡는다.
본문에서는 남에게 마음을 허락한 후에
환란이나 근심이 와서 선택을 해야 할 때
의를 택하고, 자기 몸을 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마음을 허락' 문제이다.
자기 눈에 좋아 보인다고 덜컥 허락했다가
스스로 진퇴양난에 빠지면 안된다.


사울을 볼 때 준수하고, 겸손해서 왕으로 세울만 했다.
그러나 그는 허우대만 멀쩡했을 뿐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중 큰 아들 엘리압을 보고는
덜렁 기름을 부으려고 했다.
그 때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말라고 책망하시며
그도 사울과 같다고 했다.
결국 막내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셨고,
다윗은 의를 택할 줄 아는 자였다.

양들을 돌보면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사자와 곰의 입에서 건져낸 체험과 증거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일생을 붙들었다.
비록 일시 유혹으로 넘어졌지만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의로 돌아와
더 굳건하게 섰다.
남에게 마음을 허락한다는 것은
매우 신중한 일이다.
결혼이든, 친구든, 동업이든, 동역이든...
단순히 자기 생각에 좋아 보인다고,
착해 보이고, 능력있어 보인다고 택하여
마음을 주면 그로 인해 큰 고난에 빠지게 된다.
물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확인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인지,


그 다음에 그의 처신이 의를 택하는 증거가 있는지
그를 확인한 후에 선택을 하면 그 뒤로는 문제가 없다.
바울이 맺은 동역자들 즉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에바브로 디도 등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관심과 뜻을 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목숨을 서로 내어 놓을 수 있었다.


먼저 자신을 점검하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내가 이익보다 의를 택하는 자인지 확인하고
그 훈련에 힘써야 하며,
내가 택한 자가 그런 부류인지 점검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아니고 욕심이나 두려움 때문에
섣부른 결정을 내려 마음을 주었다면
회개함으로 돌이킬 수 있고,
그에게도 진실을 고백함으로 새로운 관계로 들어갈 수 있다.
목회를 하면서 분명한 지침을 세웠다.


그 누구라도 진리에 관심이 없으면
과감하게 제쳤다.
진리에 반응하는 자만 교제를 하고
마음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나와 그들이 점점 그 진리로 인한 생명이
자라나는지를 점검하면서 신중하게 교제를 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인간적으로 냉정하다는 말도
들어야 하고, 무심하다, 사랑이 없다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나는 그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다만 맞지 않는 것 뿐이요, 함께 갈 수 없을 뿐이다.
무조건 사람을 많이 모으고,
일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진리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고
그 진리 안에 행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그러니 자신부터, 그리고 가까운 자들부터
그처럼 분명한 중심을 잡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보호 못하는데
남을 어떻게 구하겠는가?
지금 우리 교회는 그 기강이 확실하게 섰다.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오직 하나님의 의,
진리에만 집중한다.

수는 상관 없고, 오래 교제 나눈 경력도 안 따진다.
서로를 향한 도움은 진리를 향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경계하고, 권면하며, 격려하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도 잊고, 욕심과 두려움도 잊고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수준이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 의와 나라를 위하여 쓰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도를 닦는다.
사람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의에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리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의에 밀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도리어 의를 위하여 몸이 손해와 고난을 당하면
몸은 그를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몸을 더러운 이익을 위해 내어주는 짓은
자기 몸을 매춘부로 취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