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 제 63사 -虛誑(허광)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74
정확하게 순례길 출발 하루 전이다.
준비물 챙기고,
마음 가다듬고 새롭게 펼칠
내일부터의 순례길을 기다린다.
순례길 중에도 참전계경 풀이 할
여유가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가까이 붙여두고 지낼 작정이다.
이번에는 제 63事 信 1團 義 중에서
일곱번째 부분(1團 7部) 虛誑(허광)에 대한 말씀이다.
信 1 團 7 部 (신 1 단 7 부)
제 63사 虛誑(허광)
虛誑者(허광자)는
虛言誑人也(허언광인야)라
正人信我(정인신아)에
我亦信基人(아역신기인)하며
正人義我(정인의아)에
我亦義基人(아역의기인)하며
正人有難(정인유난)에
我當求之(아당구지)나
非誑不可用片言成之
(비광불가용편언성지)라
棄小節而(기소절의)
全身義者(전신의자)는
哲人不咎焉(철인불구언)이니라
'허광이란 헛된 말로 남을 속임이라
올바른 이가 나를 믿으면
나 또한 그 사람을 믿으며
올바른 이가 나를 의로 대하면
나 역시 그를 의로 대하느니라
올바른 이가 어려움을 당하면
마땅히 내가 그를 도우느니라
속이지 않는 일이 불가능하면
말을 줄여 쓸지니
작은 절개를 버리고 신의를 온전케 하는 일을
지혜롭고 밝은 이는 허물치 아니하느니라'
제법 난해한 구절을 만났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이상하게 보인다.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을 비교해 보니 제각각이다.
또 해석해 놓은 내용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몇가지 해석을 비교해 본다.
1. '비록 속이는 것은 아닐지라도
짧은 한마디 말로 남을 도와주는 것은 옳지 않다'
2. '헛됨이 아니라 반쪽 말만 이룸도 불가하니'
3. '속임수가 아니라도 한 쪽말을 함이 옳지 못하나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다면....'
4. '비록 기만함은 아니더라도 짤막한 말 한마디로
일을 이루려 함은 옳지 못하다'
5. '속이는 것은 아닐지라도 치우친 말로 일을 이루려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거의 다 속이는 것이나, 한쪽 말(치우친 말, 짤막한 말 한마디)을
하는 것이다 다 옳지 않다는 식으로 해석을 했다.
그렇데 되면 뒷 부분과 연결이 잘 안된다.
세번째 해석만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다면...'하는 조건을 달았는데
그래도 연결이 반대가 되어 버린다.
한문 지식의 일천함이 여기서 드러나니 좀 답답하다.
그냥 넘기고 갈까 하다가 그래도
무언가 나의 노력을 남겨두어야겠다 싶다.
내가 보기에는 이 부분이 결론과 잘 연결되려면
부정이 아닌 긍정의 소지를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작은 절개를 버리더라도 신의를 이룰 수 있다면
밝은 이는 이를 허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작은 절개를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앞에서도 그런 의미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속이지 않는 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말을 최대한 줄이고 아껴서 작은 허물을 감수하라는
의미로 해석을 했다.
완전히 속이는 일도 안되고, 작은 말로 해도 안된다면서
왜 작은 절개의 희생은 괜찮다고 하는가?
그래서 전문가의 눈에 내 해석에 무리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이런 해석을 해 본다.
해석에 따라 적용도 달라지니
그로 인한 차이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
바른 사람이 나를 믿고 대하면
나도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응하며 의로 대하면 의로 응한다.
그런 자가 어려움을 당하면 마땅히 도와야 한다.
그런데 그 어려움에서 구해내는데
그 방법이 문제다.
바른 사람을 도와 구해야 하는데 정직한 방법만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흔히 인질로 잡힌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편법을
좋은 일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 등이다.
선교사로 가면서 어쩔 수 없이 신분을 속이거나
뇌물을 써서라도 무고한 사람을 구해내든지,
불가피한 협박이나 공갈을 통해서라도 중요한 정보를
얻어 내는 행위 등...
많은 경우에 진정한 '의'가 무엇인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따져보면 예수의 말도 과장이 많고,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본질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아마 여기서도 그를 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올바른 사람이 환란을 당했는데
정직만 주장하고, 의만 내세우면서
그를 돕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불의라는 것이다.
성경의 비유 가운데 가장 난해한 것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다.
불의함이 드러나 해고 위험에 처해지자
그는 신속하게 채무자들을 불러 빚을 감해준다.
그렇게 함으로 해직 후의 삶을 보장 받으려는 것이다.
예수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칭찬을 했다.
물론 불의한 행위를 칭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지혜, 처세를 칭찬한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누가복음 16:9)고 하는 묘한 말을 남겼다.
여전히 이 비유는 난해한 것으로 여겨
아무도 속시원한 해석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말씀들이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때로 좌절감을 느끼게 하지만
오히려 이런 말씀들 때문에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진리를 궁구하도록 이끄니 나쁠 것 없다.
진리는 참 묘하다.
그래서 아무도 큰소리 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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