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60사 不貳(불이)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71
이제 60사를 지난다.
언제 이만큼 왔나 싶은데
지루한 줄 모르고, 힘든 줄 모르고
달려왔다.
진리는 그렇다.
성경이 재미 없고, 경전이 딱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의식 수준이 낮거나
엉뚱한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진리에 맛을 들이려면
다른 욕망의 맛들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먼저 체험해야 일어나는 일이다.
아직 세상의 것이 좋다면
더 열심히 빠져보도록 권하고 싶다.
어정쩡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내니
아예 끝장을 보려는 마음으로
대 들어볼 필요가 있다.
목숨 걸고 대들면 아마 그 욕망이
손을 들고 우리로 진리에로 인도해
줄지도 모른다.
재미 있고 없고 문제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내 즐거움을
그저 나눌 뿐이다.
이번에는 제 60事 信 1團 義 중에서
네번째 부분(1團 4部) 不貳(불이)에
대한 말씀이다.
信 1 團 4 部 (신 1 단 4 부)
제 60사 不貳(불이)
不貳者(불이자)는
不貳於人也(불이어인야)라
流水一去而不返(유수일거이불반)하고
義人一諾而不改(의인일락이불개)라
故不重基克終(고부중기극종)이지만
重基有始(중기유시)니라
'불이란 사람에 대해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흐르는 물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의인은 한 번 허락한 마음을
다시 바꾸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끝맺기를 잘하려 하지 않고
첫 마음을 소중히 지켜 나가느니라'
의는 흐릿하지 않다.
하늘의 뜻을 알고 거기에 맞추게 되면
의심이나 흔들림이 없다.
계산할 필요도 없고, 원망도 없다.
믿음으로 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가능하면 자주 바꾸거나 바꿀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그 때 버티고 있다가는 어리석은 고집이
되어 영원히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서게 되면 바꿀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사실상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너무나 강력한 확신으로 빛을 비추는데
어떻게 그것을 거부하고 어둠을 따라
가겠는가?
진리를 믿음으로 의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양심과 마음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의의 흉배'라고 표현하여
가슴보호막으로 비유했다.
여전히 혼동이되고, 헷갈리며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면
그 흔들리는 마음을 탓하거나
붙들려 하지 말고 진리에 대한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진리를 모르고, 믿음이 부족하여
의에 이르는 수준이 되지 못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 흔들림과 변질을
막을 수 없다.
오늘 가르침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곳은
'의인'이라고 표현한 곳이다.
범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를 알고, 의에 선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은 한 번 허락하면 그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이 말은 끝까지 고집한다,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본인의 결정과 선택이 의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재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마무리될지, 혹은
어떻게 관계를 정리하고 끝을 맺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혹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다시 처음 결정으로 돌아가 그 결정이
의에 입각한 것임이 확인되면
현재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의의 근거가 하나님이어야 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중간에서 발생하는 그 어떤 환란이나
유혹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가게 된다.
중간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흔들리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처음 가진 마음을 진지하게 점검해
보라고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책망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첫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금 처음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이 주신 사명 등을 생각해보고
중심을 잡으라는 말이다.
다시 도의 본질이 나온다.
근원에 대한 강조다.
어려울 것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고 믿는다면 지금 일어나는
고통과 아픔도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인내하는 것이 합당하다.
심지어 억울하게 비난과 욕을 당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베드로는 말했다(베드로전서 2:19).
우리가 만일 모든 것의 근원과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가지면 우리의 삶은
별 문제가 없다.
죽어도 주께로 돌아갈 것이니 무슨
걱정이겠는가?
사실 고난을 두려워하여 피하고,
죽기를 무서워 떠는 자들은
다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한다.
처음, 가장 처음을 보라.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계신다.
그 처음을 알게 되면 마지막도 알게 된다.
결국 누가 남겠는가?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71
이제 60사를 지난다.
언제 이만큼 왔나 싶은데
지루한 줄 모르고, 힘든 줄 모르고
달려왔다.
진리는 그렇다.
성경이 재미 없고, 경전이 딱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의식 수준이 낮거나
엉뚱한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진리에 맛을 들이려면
다른 욕망의 맛들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먼저 체험해야 일어나는 일이다.
아직 세상의 것이 좋다면
더 열심히 빠져보도록 권하고 싶다.
어정쩡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내니
아예 끝장을 보려는 마음으로
대 들어볼 필요가 있다.
목숨 걸고 대들면 아마 그 욕망이
손을 들고 우리로 진리에로 인도해
줄지도 모른다.
재미 있고 없고 문제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내 즐거움을
그저 나눌 뿐이다.
이번에는 제 60事 信 1團 義 중에서
네번째 부분(1團 4部) 不貳(불이)에
대한 말씀이다.
信 1 團 4 部 (신 1 단 4 부)
제 60사 不貳(불이)
不貳者(불이자)는
不貳於人也(불이어인야)라
流水一去而不返(유수일거이불반)하고
義人一諾而不改(의인일락이불개)라
故不重基克終(고부중기극종)이지만
重基有始(중기유시)니라
'불이란 사람에 대해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흐르는 물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의인은 한 번 허락한 마음을
다시 바꾸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끝맺기를 잘하려 하지 않고
첫 마음을 소중히 지켜 나가느니라'
의는 흐릿하지 않다.
하늘의 뜻을 알고 거기에 맞추게 되면
의심이나 흔들림이 없다.
계산할 필요도 없고, 원망도 없다.
믿음으로 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가능하면 자주 바꾸거나 바꿀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그 때 버티고 있다가는 어리석은 고집이
되어 영원히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서게 되면 바꿀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사실상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너무나 강력한 확신으로 빛을 비추는데
어떻게 그것을 거부하고 어둠을 따라
가겠는가?
진리를 믿음으로 의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양심과 마음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의의 흉배'라고 표현하여
가슴보호막으로 비유했다.
여전히 혼동이되고, 헷갈리며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면
그 흔들리는 마음을 탓하거나
붙들려 하지 말고 진리에 대한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진리를 모르고, 믿음이 부족하여
의에 이르는 수준이 되지 못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 흔들림과 변질을
막을 수 없다.
오늘 가르침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곳은
'의인'이라고 표현한 곳이다.
범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를 알고, 의에 선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은 한 번 허락하면 그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이 말은 끝까지 고집한다,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본인의 결정과 선택이 의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재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마무리될지, 혹은
어떻게 관계를 정리하고 끝을 맺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혹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다시 처음 결정으로 돌아가 그 결정이
의에 입각한 것임이 확인되면
현재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의의 근거가 하나님이어야 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중간에서 발생하는 그 어떤 환란이나
유혹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가게 된다.
중간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흔들리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처음 가진 마음을 진지하게 점검해
보라고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책망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첫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금 처음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이 주신 사명 등을 생각해보고
중심을 잡으라는 말이다.
다시 도의 본질이 나온다.
근원에 대한 강조다.
어려울 것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고 믿는다면 지금 일어나는
고통과 아픔도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인내하는 것이 합당하다.
심지어 억울하게 비난과 욕을 당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베드로는 말했다(베드로전서 2:19).
우리가 만일 모든 것의 근원과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가지면 우리의 삶은
별 문제가 없다.
죽어도 주께로 돌아갈 것이니 무슨
걱정이겠는가?
사실 고난을 두려워하여 피하고,
죽기를 무서워 떠는 자들은
다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한다.
처음, 가장 처음을 보라.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계신다.
그 처음을 알게 되면 마지막도 알게 된다.
결국 누가 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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