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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8사 公廉(공렴)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8사 公廉(공렴)

柏道 2019. 3. 16. 07:14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9 
 
초보적이고 왜곡된 개념을
점검함 없이 사용하고, 그 편견과
고정관념을 붙들고 살게되면
반드시 큰 낭패를 만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참전계경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기본개념들을
새롭게 정리해 주는 말씀들이다.
잘못된 기초나 치우친 의식은
속히 교정해야 한다.
이번에는 제 58事 信 1團 義 중에서
두번째 부분(1團 2部) 公廉(공렴)에 대한 말씀이다.
 
信 1 團 2 部 (신 1 단 2 부)
제 58사 公廉(공렴) 
 
公不偏也(공불편야)요
廉潔也(염결야)라
公以視事(공이시사)이면
無愛憎(무애증)하고
廉以接物(염이접물)이면
無利慾(무리욕)이니
無愛憎(무애증)이면
人腹基義(인복기의)하고
無利慾(무리욕)이면
人信基潔(인신기결)이니라 
 
'공(公)은 치우침이 없음이요
렴(廉)은 깨끗함이라
치우침 없이 세상을 바라보면
사랑이나 증오가 없고
깨끗함으로 사물을 대하면
이익에 대한 욕심이 없느니라
사랑이나 증오가 없으면
사람들이 그 의를 따르게 되고
이익에 욕심이 없으면
사람들이 그 깨끗함을 믿느니라' 
 
역시 멋진 말씀이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이 말씀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경솔한 사람의 가장 큰 문제가 안다고
덤벙대다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와 정치가 너무 덤벙댄 느낌이다.
제대로 근본을 보는 눈이 없고,
진리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이미 치우치고, 더러워진 마음이
그리로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도 엉뚱한 데로 이끌고 간다.
이 말씀의 결론을 잘 보자.
얼핏 읽으면 사람들이 내가 치우치지 않아서
공평하여 편애나 미움이 없으면
사람들이 나의 의로움을 보고 나를 따를 것이고,
내가 깨끗하여 이익에 대한 욕심이 없으면
사람들이 나의 깨끗함을 보고 나를 믿을 것이라고
풀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푸는 자들은 결국 진리를 이용하든,
선을 이용하든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과 명예를
얻으려는 속셈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의미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눈을 크게 똑똑히 뜨고 잘 보자.
내가 치우치지 않으면 내가 얻게 되는 것은
사랑이나 미움에 빠져서 고통을 받는 것에서
자유해 진다.
바로 이것이 내게 돌아오는 열매다.
그리고 나의 이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의로움'을 따르게 된다.
내가 아니고, 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의 길로 가게 된다.
사람들이 나의 의를 보고 나를 따르게 되면
그것은 사람들을 다시 오도하는 것이요,
그릇된 길로 이끄는 죄가 된다.
많은 지도자들이 이런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치우치지 않고 공평함을 통하여
자신에게 돌아오는 편애와 미움 등에서
자유로와 지는 축복을 모른다.
그것은 없으면 안되고 있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편가르기와 적 만들기를 애를 쓴다.

종교도 잘 보라.
얼마나 많은 적들과 편을 만들고 있는가?
자신이 공평하면 이런 좋고 미움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가장 미움과 편애가 심한 곳이 종교 아닌가?
심지어 하나님에게 조차 자기를 더 사랑해 달라고,
자기 자식, 자기 교회, 자기 나라만 사랑해 달라고
편애를 부추기지 않은가?
그러면서 잘한다고 떠드니 진리의 기초도 모르는 꼴이다.

하늘의 깨끗함을 따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물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게 된다.
그게 나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도 '부자되세요'가 덕담이다.
돈을 잘 버는 것이 잘사는 것으로 여긴다.
거꾸로 가는데도 그것이 옳은 줄로 착각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진리를 왜곡해서 듣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도 돈장사다.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에 실망하고
돌아간 것이나, 오늘날 교회마다 돈 문제로
싸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리가 없는 이유다.

하늘의 깨끗함을 추구하여 물욕이 사라진
모습으로 살아야 할 자들이 거꾸로 물욕을 가지고
하나님까지 이용하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왜 이런 극단적인 일이 발생하는지 잘 생각해 보라.
마지막 구절을 잘못 해석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의를 따르도록 해야 하는데
자기의 의를 보고 자기를 따르도록 하려고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깨끗함을 추구하도록 해야 하는데
자기의 깨끗함을 주장함으로 사람들로
자신을 믿게 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의롭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의롭다, 깨끗하다고 자랑하면서
자기를 따르라고, 자기를 믿어달라고 한다.
이런 후안무치한 일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어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꾸지람할 만한
정신적, 영적 지도자가 없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먼저 아합과 이세벨의 잔치상에 앉아 있으니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도리가 없다.
그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은 자기 의로 편을 가르고,
자기 욕심으로 신의를 깨뜨린 자들이다.
진리를 깨닫는 백성들이 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진리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나와야 한다. 하늘의 뜻에 합한 자의 목소리는
두려움 없이 우주를 울릴 것이요.
그 앞에서 벨사살이 떨듯이
거짓된 자들은 벌벌 떨 것이다.

지도자를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와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라.
그것이 세상이 변하는 가장 빠른 길이고
가장 효과적인 일이다.
'대통령 잘 뽑아야 한다'
'좋은 목사 모셔야 한다'
'지도자를 잘 세워야 한다'는 말은 하지도 말고
그 말에 속지도 말라.

내가 진리에 서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를 구해주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해 줄것인가?

푸른오솔길 마을 발췌